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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탕!’
한 발의 총성이 울리고, 무토의 왼 어깨가 붉어졌다. 내리는 비보다 거센 핏물의 비가 내렸다. 다행히 어깨다. 출혈이 심했지만, 당장 생명의 지장은 없었다. 허나 뜻밖의 상황이었다. 경악스런 표정으로 바라보는 무토, 그리고 미동도 없이 주시하는 우치다. 반가울 수 없는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했다. 고통스런 얼굴로 무토가 말했다.
“왜... 왜 그래.. 너어...”
우치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총을 든 채 바라봤다. 무토도 다시 묻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는 대답이었다. 망령의 환영 속에서 보았던 검은 눈, 온통 하얗게 변했다 어느 순간 새카맣게 칠해진 흑안(黑眼)의 우치다, 그것이 대답이다. 무토의 손 끝이 떨려왔다. 손에는 피 묻은 우치다의 주머니 칼이 들려 있었다.
‘다시 피를 낼까?’ 무의미한 생각들이 머리를 스친다. ‘이미 피는 넘칠 만큼 쏟고 있다.’ 어깨와 허벅지의 통증이 대신 답한다. 시끄러운 빗소리도 이것이 현실이라 말한다. 하지만 무토에겐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물음은 계속되고, 바닥에 쓰러진 무토를 향해 총을 든 우치다가 다가왔다.
“죄를 지었어... 죄를... 씻을 수가 없어... 그러니까 우리들은... 죽어야 돼!”
“히이익! 우치다! 정신 차려! 우치다! 나야! 무토! 이 얼빠진 녀석아 정신 차리라고!”
무토가 소리쳤다. 망령의 환영에 사로잡힌 우치다, 평상시라면 달려들어 총을 빼앗고 그 얼빠진 얼굴에 주먹을 내질렀을 테지만, 지금의 그는 무기력했다. 허벅지는 스스로 그은 상처에 너덜너덜하고, 왼 어깨는 총상을 입어 조금만 움직여도 통증이 밀려왔다. 일어서는 것도, 치열한 육탄전도 불가능했다. 게다가 우치다의 손에는 이미 총이 들려 있다. 재빨리 고개를 돌려보지만 자신이 메고 있던 총은 어느 틈엔가 망루 한쪽 구석에 나뒹굴고 있다. 박살이 난 무전기 옆이다. 상황을 파악하자 이번엔 현실적인 공포가 밀려왔다. 죽음, 어쩌면 망령의 공포보다 더한 두려움이다. 삶의 종말, 무토의 이가 ‘딱딱딱’ 소리를 내며 떨려왔다. 다리도 팔도 어깨도 모두 제 것이 아닌 듯 떨려온다.
“살려줘... 미안해! 잘 못했어! 그러니까 제발... 제발... 뭔진 모르겠지만 다 내 잘 못이야. 그러니 제발... 쏘지마... 난... 난 죽고 싶지 않아...”
빗줄기를 뚫고 퍼부어지는 무토의 절규, 애절하기까지 한 그 절규에 총을 든 우치다의 고개가 좌우로 흔들린다. 고민하는 것일까? 아니다. 입 꼬리가 위로 오른다. 즐기고 있다. 처절한 복수심이 만들어낸 쾌감이다. 웃고 있는 우치다의 얼굴을 바라보며 무토는 절망한다. ‘용서’, ‘화해’, 이미 11명의 사상자를 낸 최악의 망령에겐 결코 어울릴 수 없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무토는 포기하지 않았다. ‘살아야 한다.’ ‘꼭 살아서 돌아가겠습니다.’ 고향인 고베의 시골집, 홀로 두고 온 어머니가 했던 말이고 또한 무토가 했던 답이다. 일찍이 돌아가신 아버지의 뒤를 이어 두부를 만들어야 했다. 매일 새벽 고생하실 어머니를 위해 콩을 갈고 쪄내겠다했다. 그 약속이... 잊었던 ‘고베 최고의 두부장수’란 꿈이 절망이란 구덩이 속 한줄기의 빛이었다.
“죽어요... 다... 우리들은 악마야 그래서 죽어야만 해...”
우치다의 목소리를 빌은 악령의 속삭임이 들려오고, 무토가 두 눈을 부릅떴다. ‘호랑이 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이 머리를 스쳤다. 호흡을 다잡고, 다가오는 우치다를 바라봤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당장이라도 불을 뿜을 듯 총구가 흔들린다. 우치다의 손가락이 방아쇠 앞에서 꺼떡댔다. 손가락이 움직이면 그 순간 모든 것이 끝난다. 무토가 마른침을 삼켰다.
‘안 돼... 이대로 죽을 순 없어... 돌아가야 돼! 엄마... 엄마가 보고 싶어.’
우치다가 멈춰서고, 무토의 머릿속엔 깊게 패인 어머니의 주름이 스쳐 지났다. 당신께선 꾸중을 할 때면 늘 이마를 찌푸리셨다. 어머니의 찌푸린 이마 위, 깊게 페인 주름의 이유는 대부분 무토의 탓인지도 몰랐다. 고령의 나이에도 어머니는 매일 새벽 콩을 씻었다. 곱게 간 콩을 솥에 쪄내고, 거품이 올라오면 간수를 뿌렸다. 그러면 몽글몽글 콩물이 뭉치고, 면보에 싸 틀에 얹는다. 그 작업을 끝내면 어느새 동이 터 온다. 어머니는 하루도 빠짐없이 그 일을 했다. 게으른 무토가 눈을 떴을 땐, 늘 모든 것이 끝나 있었다. 무토가 하는 일이라곤 고작 손님이 오기 전, 완성 된 두부를 적당한 크기로 자르는 것 뿐. 하지만 그 마저도 잘하지는 못했다. 무토가 잘라놓은 두부를 볼 때마다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마 가득 깊이 팬 주름을 내보이며 말씀하셨다.
‘삐뚤빼뚤... 이래서야 어떻게 아버지 뒤를 잇겠니. 빨리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늦더라도 반듯이, 많지도 적지도 않게 자르는 게 중요해! 왜 무조건 일을 서두르려고만 해!’
그리고 이 순간... 무토가 말했다.
“엄마가 틀렸어요. 빨라야 돼!”
‘탕!’ 망루를 흔들며 들려온 또 한 발의 총소리,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던 무토의 몸뚱이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이미 총상을 입은 왼 어깨에 체중이 실리자 울컥하며 핏물이 솟구친다. 그리곤 ‘털썩’ 갑자기 우치다가 주저앉았다. 비로소 무토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그의 손에 들린 작은 주머니칼, 그 위에 흐르는 붉고 따듯한 핏물 한 줄기, 손끝의 감촉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베었다.’ 작은 상처지만 그의 손이 말했다. 총을 든 우치다의 왼손에도 한줄기 작은 선이 보였다. ‘뚝’ 붉고 아롱진 한 방울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우치다가 휘청댔다.
“됐어!”
총알이 관통한 망루의 난간 한쪽이 부서진 채 바람에 밀려 쓰러지고,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늦은 감은 있지만 비로소 도움의 손길이 올 거란 기대에 무토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허벅지의 자상과 왼 어깨의 총상, 자칫 12번째 희생자가 되었을지 모를 위급한 상황이었다. 용감하고 슬기로운 대처로 난관을 헤쳐 나왔다는 생각이 그를 들뜨게 했다.
“여기야! 여기! 어서들 와! 제발... 흐흐흑...”
무토가 큰 소리로 외쳤다. 어차피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에 묻혀 누구도 듣지 못할 소리지만, 그것은 무토 자신을 향한 칭찬에 다름없었다. 이제 몸을 일으켜 자신을 데리러 온 히라타의 부축만 받으면 상황은 종료. 악명 높은 서쪽초소에서 살아남은 것은 물론, 졸지에 사지(死地)에서 돌아온 역전의 용사가 된다. 그 뿐인가? 망령의 파쇄법(破碎法)까지 찾아온 영웅이다. 만면에 미소를 띤 무토가 아직도 휘청대는 우치다를 향해 소리쳤다.
“이 멍청아! 이제 정신 차리고 날 좀 일으켜봐! 어서!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참이야!”
의기양양한 목소리와 함께 날 선 호통이 이어졌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 무토가 중얼거렸다. 처음 망령의 환영에 휩싸였을 때를 제외하곤 정말이지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 우치다였다. 따라서 무토가 그런 생각으로 핀잔을 주는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고개를 돌리니 저 멀리서 군복을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총성과 사이렌을 듣고 출동한 자들이다. 하지만 지난 사건 당시 발생한 총격 탓에 다들 멀찌감치 서서 대기할 뿐 쉽사리 다가오지 못 한다. 그 또한 당연한 일이었다. 11명의 사상자 중 망루에서 죽은 것은 고작 3명(다카키는 사건 발행 후 즉결처분), 나머지 8명의 사상자는 그들을 돕기 위해 다가오다 죽었다. 일견 이해가 가는 상황이지만 한시라도 빨리 초소를 떠나고 싶었던 무토가 큰 소리로 외쳤다.
“이 겁쟁이들아! 다 끝났어! 다 끝났다고! 어서 이리로 와! 날 좀 데리고 가!”
무토의 외침 덕분은 아니지만, 저 멀리 모여든 사람들의 군집이 서서히 다가왔다. 아직은 조심스럽지만 초소를 향한 행보는 굳건했다. 기쁨에 들 뜬 무토는 사뭇 흥분한 표정으로 계속 소리쳤다.
“하하하! 내가 이겼어! 내가 해냈어! 망령을 물리쳤다고! 어서들 와! 많이 아파... 상처가 쓰리다고 이 얼간이들아! 뭐해 우치다 이 멍청아! 써치라이트를 켜! 그리고 내가 다쳤으니 빨리 오라고 해! 어서! 어... 어... 서... 헉!”
벌어진 무토의 입, 그 입이 다물어지지 못한 채, 숨이 가쁜 듯 연신 거칠게 호흡했다. 눈앞의 현실을 믿을 수 없다는 듯 확장 된 동공, 그 위로 우치다의 얼굴이 맺혔다. 혼백을 잃은 듯 몽롱한 시선, 온통 새까만 눈동자, 불안한 모습으로 떨리는 두 손, 작은 상처는 빨리 아문다. 어렵지 않은 상식이 무토의 발목을 잡았다. 아니 목을 졸랐다.
“으아악!!”
무토가 소리쳤다. 또 다시 목을 조르려 달려든 우치다를 피하려다 총알이 박힌 왼 어깨가 바닥에 쓸렸다. 타는 듯한 고통이 엄습했다. 하지만 고통이 문제가 아니다. 더 무서운 것은 지금 눈앞에 있는 우치다였다. 우치다의 허울을 쓰고 있지만 알맹이는 전혀 다른, 저주받은 망령의 손아귀가 그를 향해 다가왔다.
“살려줘! 으아악! 안 돼!”
부상당한 무토의 몸으론 감당할 수 없는 괴력이었다. 뿌리치려 해보지만 그럴수록 우치다의 손은 집요하게 그의 목을 찾아 나섰다. 최소한 한쪽 어깨만 괜찮았어도 어떻게든 사람들이 올 때까지 버티려 했겠지만, 왼 어깨를 잃은 상태로 두 팔 모두 멀쩡한 우치다를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강한 힘이 목을 옥죄어 왔다. ‘컥’하고 숨이 막히자 방법을 찾아야 할 머릿속까지 어지러웠다. ‘살아야 한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마음속으로 되 뇌이지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누... 누군가... 날 좀...’
혹시 모를 총격에 대비해 구원의 손길들은 초소에 가까워질수록 속도를 늦춘다. 이 지극히 당연한 상황이 너무도 원망스러운 무토였다. 쓸 수 있는 건 오직 한 쪽 팔과 한 쪽 다리. 승리의 기쁨에 취해 들고 있던 칼을 바닥에 놔둔 것이 실수였다. 손을 뻗어보지만 아주 조금 모자란다.
‘한 번만... 한 번만 우치다를 밀어내면... 저 칼을 잡을 수만 있으면...’
우치다의 간절한 바람이 이뤄졌을까? 머뭇대는 병사들의 군집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 하나가 빗속을 뚫고 울려 퍼졌다. 조장인 히라타였다.
“무토! 우치다! 괜찮은가? 나 히라타다! 지금 올라가겠다. 괜찮겠나?”
그렇게 욕을 했던 히라타였지만 위급한 상황이 되자 가장 믿음직한 사람이 된다. 이 경험 많고 노련한 중년은 군인은 총격 사건이 일어난 초소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든다. 겁쟁이 같이 머뭇대는 여타의 사람들과는 달랐다.
“다 죽어야 돼... 다... 그래야... 그래야 끝나...”
그리고 들려온 섬뜩한 우치다의 음성, 덩달아 목을 조르던 손길 또한 힘없이 풀린다. 하지만 무토의 머리카락이 쭈뼛하게 일어섰다. 그는 알고 있었다. 우치다, 아니 망령의 음성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리고 자신을 죽이려 하던 망령이 왜 갑자기 손을 풀었는지, 순간 지난 사고의 사상자 11명의 얼굴이 무토의 머릿속을 스쳐 지났다. 두 번 다 방법은 동일했다. 위험을 느끼고 초소를 향해 다가 선 이들을 향한 난사(亂射), 무방비 상태였기에 피해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이번엔 조심하고 있다고는 하나 거리가 너무 가깝다. 게다가 초소의 특성상 주변엔 어떠한 엄폐물도 없다. 불을 보듯 뻔한 참사의 예감에 무토의 시선이 흔들렸다. 신주불멸(神州不滅 : 신의 나라인 일본은 멸망하지 않는다. 침략전쟁의 선전 구호) 팔굉일우(八紘一宇 : 전 세계에 하나의 집을 짓자. 침략전쟁의 선전구호),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온 말들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한 번도 동의하지 않았다. 전쟁을 이유로 끌려 왔지만 그것은 결국 국가라는 망령이 만든 환영이었다. ‘대동아 공영권’이란 허울 속 어디에 개인의 행복이 있을까? 결국 중요한 건 나 자신, 죽어서는 어떤 것도 누리지 못 한다. 등 떠 밀려 총을 든 자 모두 누군가의 아들과 딸...
우치다가 몸을 일으켰고, 무토도 상체를 일으켰다. 우치다가 바닥에 놓인 총을 집어 들었고, 무토가 다리를 들었다. 망루 바로 아래까지 당도했는지 히라타의 발소리도 들렸다. 다른 이들의 음성도 들려왔다. ‘무토 벌써 귀신이 된 건 아니지?’ ‘우치다 이 얼간아 죽은 거냐?’ 따위의 짓궂은 말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속엔 남다른 걱정이 묻어났다. 차가운 만주 벌판에서 피어난 따듯한 전우애였다.
‘철컥’ 우치다의 소총이 장전됐다.
무토의 괴성과도 같은 함성도 터져나왔다.
“안 돼에에에!”
온 힘을 다해 우치다의 무릎을 걷어차는 무토, 갑작스런 일격엔 망령의 괴력도 소용없는지 우치다가 무릎을 꺾으며 쓰러졌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내부 상황을 모르는 히라타와 사람들은 다가오고, 아직 우치다는 총을 놓치 않았다. 주저앉았지만 언제든 일어서면 그만이다. 무토에겐 다시 일어난 우치다를 제압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일어난 우치다는 무토부터 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절박함이, 그 벅차오르는 생존에 대한 본능이 기적을 일으켰다. 다리를 다친 것도 잊은 채 휘청대며 무토가 일어섰다. 손에는 어느새 바닥에서 주워든 주머니 칼이, 두 눈엔 다부진 각오가 그렇게 무토는 최후의 반전을 위해 나아갔다.
‘상처! 피를 흘릴만한 상처 하나... 어디든 상관없다. 그거면 돼! 그거면 돼!’
혼신의 힘을 다해 달려드는 무토, 다친 허벅지가 그로 하여금 중심을 잃고 휘청대게 하지만 그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살고자 하는 마음,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만든 기적, 무토가 그것을 이뤄내고 있었다.
“우치다아!!!”
자신의 모든 것을 건 회심의 일격, 무토의 몸이 우치다를 밀어내며 쓰러졌다. 망루의 나무 바닥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울렸다. 완벽한 반전이었다. 쓰러져 깔린 쪽은 우치다, 칼을 들고 위에 올라탄 것은 무토, 어둠속을 가르며 작은 주머니칼이 번득였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자 모두를 위한 최후의 일격이었다.
‘탕!’
‘쿵!’
둔탁한 소리가 났다. 그에 앞서 한 발의 총성 또한 들려왔다. 우치다 옆에 쓰러진 무토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히라타... 왜...”
하얀 연기가 빗줄기 사이로 흩어졌다. 불을 뿜은 것은 히라타의 권총이었다. 쓰러진 무토와 눈이 마주친 히라타 역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무토... 미안하다. 네가 우치다를 죽이려고 해서... 그래서... 그래서 난... 널...”
히라타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급박한 심정으로 망루의 사다리를 오른 히라타, 무토는 칼을 들고 있었고, 우치다는 그 밑에 깔려 있었다. 그의 눈에는 무토가 우치다를 해치려는 것으로 밖엔 보이지 않았다.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히라타는 선택 해야 했다. 삶과 죽음, 애초에 자신의 몫이어선 안됐던 최악의 선택이다. 히라타가 황급히 다가와 무토의 몸을 흔들었다.
“왜! 왜 우치다를 죽이려고 했어! 무토! 무토... 미... 미안하다 무토... 우치다! 넌 괜찮나 우치다!”
히라타가 바닥에 쓰러진 우치다를 불렀다. 우치다의 몸에는 작은 칼이 박혀 있었다. 다행히 부위는 생명에 지장이 없는 어깨, 기절한 듯 꼼짝 하지 않는 우치다의 붉은 슬픔이 팔을 타고 흘렀다.
“조... 조장...”
무토가 떨리는 입술로 히라타를 불렀다. 하지만 그의 눈엔 이미 초점이 사라졌다. 출혈 때문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그는 연신 히라타를 불렀다. 상처는 셋, 그 중 둘은 어깨와 등의 총상, 당장 숨이 끊어지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하지만 무토는 죽지 않았다. 그리고 무언가를 말하려 애쓰고 있었다. 무엇이 무토로 하여금 죽음을 미루게 했을까? 무엇이 무토로 하여금 생의 마지막 힘을 다해 히라타를 부르게 했을까? 답을 해줄 사람은 무토 뿐이었다. 하지만 그가 가진 생명의 불꽃은 서서히 꺼져가고 있었다.
무토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히라타..."
“그만해 무토! 말 하지마! 죽을 수도 있어! 그러니 가만히 있어! 들것! 들것을 가져와! 부상자가 있다. 이 멍청이들아 그만 겁내고 어서 올라와! 어서!”
죽어가는 무토를 부둥켜안은 채 히라타가 소리쳤다. 하지만 무토는 멈추지 않고 계속 무언가를 말하려 애 썼다.
“피를... 피... 피를...”
“그래!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무토! 그러니 더 이상 말하려 하지 마!”
“피를... 보면... 크흑... 허업...”
“무토! 무토! 무토오오!”
뒤늦게 사다리를 오른 자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오고, 그 위로 오열하는 히라타의 절규가 들려왔다. 무토, 만주 병참사령부 예하 병참부대 소속의 병장, 향년 26세, 미혼, 피범벅이 된 망루 위, 안타까움과 두려움이 뒤엉킨 기이한 감정의 조류가 사람들을 스쳤다.
쓸쓸한 망루 위, 밤새도록 비가 쏟아지던 그런 날이었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봉신당 : 참회의 서
Written by 야설왕짐보(미스공 괴담공작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코멘트
이런저런 것들을 녹여내고픈 마음에 챕터5가 길어졌네요. 미자의 이야기라던가
무토의 어머니 이야기, 전쟁은 범죄자를 만듭니다. 지시에 의해서든 내몰린 평범한 소시민이든
결국 시대의 죄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의 사정조차 듣지 않을 순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지요.
나쁜 일을 한 나쁜 사람도 있지만, 나쁜 일을 한 평범한 죄인도 있습니다.
죄를 부정할 순 없지만, 나쁜 사람이라 무작정 비난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챕터 6으로 넘어갑니다.
출처 |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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