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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소리 못 들으셨습니까?”
다시금 거세어진 빗소리에 묻혀 모든 것이 고요해진 새벽 0시 30분, 우치다가 선임병인 무토에게 물었다. ‘들리고, 보이는 모든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라!’는 부대장인 스기야마가 평소 강조하던 사항이었지만, 지금의 무토에겐 그리 달가운 질문이 아닌 듯, 다소 신경질 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장난하냐? 무슨 소리!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장난이라뇨. 정말로... 무슨 소리가... 갑자기 휙 하고...”
“바람 소리겠지. 그래 바람소리야! 여긴 아무 문제없어... 그러니 너도 입 다물고 사주경계(四洲警戒)나 잘 해! 이상한 말로 괜히 사람 불안하게 하지 말고!”
무토가 화를 내며 말했다. 단순히 우치다의 조바심에 대한 경고라 하기엔 과하다 싶은 질책이었다. 하지만 나름 이해가 가는 행동이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 공포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 내는 불안감에 무너지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
“하... 하이... 주의 하겠습니다.”
쌀쌀맞은 무토의 핀잔에 우치다가 몰래 입술을 내민다. 등 뒤의 소리에 다소 예민하게 반응하긴 했지만 호된 꾸짖음이 돌아오니 기분이 좋지 않은 듯 했다. 그때 하늘이 번뜩이며 날카로운 낙뢰의 섬광이 허공을 찢었다.
“이번엔 진짜지? 진짜 벼락이 친 거지? 내가 잘 못 본 게 아니지?”
“네 저도 봤습니다.”
“그래... 이건 진짜야. 그냥 평범한 벼락이야.”
앞서 자신을 흔들어 놓은 기이한 환영, 그것에 대한 날 선 경계심이 무토로 하여금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되 뇌이게 했다. ‘진짜’, ‘거짓이 아닌 진짜’ 연신 중얼거리는 무토를 보라보는 우치다의 시선에 불안함이 엿보였다. 잠시 후 ‘우르릉’대는 뇌성의 포효가 지축을 흔들고, 진짜현실의 대답을 들은 무토가 비로소 깊은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한 순간도 방심해선 안 된다는 부담감이 그를 엄습했다. 그래서일까? 무토의 손이 대뜸 우치다의 가슴팍으로 향했다. 당황한 우치다의 표정은 아랑 곳 않고, 열심히 무언가를 찾는다.
“왜... 왜 이러십니까?”
“그 칼... 그 주머니칼... 잠깐 줘 봐!”
“그... 그건...”
“왜? 싫어? 아님 뭐 문제라도 있나?”
“아... 아닙니다.”
무토의 강압적인 태도에 우치다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러자 허락까지 받은 무토의 손이 거침없이 원하던 물건을 꺼내 쥔다. 어두운 망루 안, 희미한 금속의 반사광이 스치고, 무토의 붉은 혀가 푸른 날 위를 핥는다.
‘환영이 보이면, 피를 낸다. 원귀의 혼 따위... 질까 보냐?’
날카로운 금속만이 줄 수 있는 차가운 촉감, 그것이 어떤 위안이 되었는지 무토가 미소 지었다. ‘꿀꺽’ 우치다가 마른침을 삼켰다. 조금은 광기어린 무토의 모습 때문이었다. 빼앗아간 칼은 죽은 우치다의 큰 형이 남긴 유품이었다. 하지만 우치다는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과연 나 자신은 홀로 이 시간을 견뎌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 때문이었다. 설사 광기에 사로잡혔다 해도 무토는 우치다에게 있어 가장 믿음직스런 버팀목, 돌려달라는 말은 마른 침과 함께 목구멍 속에 남는다.
11명의 사상자를 낸 악명의 서쪽 초소, 뚝 떨어진 만주의 밤 기온이 거세진 비바람과 함께 으슬으슬한 추위로 두 사람을 감쌌다.
“어째... 오늘은 평소보다 더 추운 것 같네요.”
가을이 겨울 같은 만주의 밤, 쌀쌀해진 기온에 손 사이로 입김을 불어 넣으며 우치다가 말했다. 뽀얀 입김이 피어나지만 바람은 냉정한 손길로 작은 온기마저 헤집었다. 오전에는 볼 수 없었던 매서운 바람이었다. 거세진 바람은 한데 뒤엉켜 돌풍이 되고, 휘몰아치는 돌풍의 강한 힘이 망루를 흔들었다. 불안한 표정으로 흔들리는 망루의 기둥을 붙잡는 우치다, 순간 그의 목이 움츠러들었다. 자라목처럼 수그린 목덜미 위로 작은 솜털들이 곤두섰다. 거센 바람 사이 자신이 들은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이 그의 얼굴에 가득했다. 앞선 질책이 만든 조심스러움, 우치다의 작은 눈이 무토의 눈치를 살피며 좌우로 오간다. 소리가 들려온 곳, 그리고 자신을 힐난했던 선임병, 하지만 질책보단 불안감이 주는 공포가 더 컸다. 우치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바... 방금도 무슨 소리... 안 들렸습니까? 쉬이익 하면서 뭔가.. 그러니까...”
“조용히 해!”
무토가 소리쳤다. 낮게 실려 오는 바람의 소리, 흙바닥을 두들기는 비의 진동, 정체를 알 수 없는 산 짐승의 울음소리, 신경을 거스르는 수많은 소리와 소리 사이, 기이한 음색하나가 무엇과도 섞이지 못한 채 스친다. 때론 앞에서, 때론 뒤에서... 종잡을 수 없는 궤적으로 겁에 질린 우치다와 무토를 맴돈다.
‘흐흐흐흑... 흐으윽... 흐으으윽’
‘꿀꺽’ 긴장감에 무토가 마른 침을 삼켰다. 잠시 내려두었던 불안감이 육중한 무게로 다시금 그를 압박해왔다. 서서히 밀려오는 두려움에 시선은 평온을 잃고,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불길한 생각들이 그의 목을 뻣뻣하게 만들었다.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이나마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지만 이미 늦었다. 흐느낌은 환청인양 자취를 감추고, 눈앞에 보이는 것은 오직 빗줄기와 텅 빈 공허뿐이다.
잘 못 들은 것일까? 아니면 잘 못 본 것일까? 누구도 답해주지 않는 질문들이 무토를 어지럽게 했다.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 늦은 저녁 식사가 치밀어 오를 듯 구역질이 엄습했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 속에 우치다가 조심스레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또 괜한 말을...”
“입 닥쳐! 조용히 해 이 멍청아! 이번엔 나도 들었단 말이다!”
“하... 하잇!”
“얼빠진 자식!”
잔뜩 예민해진 무토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연이은 호통에 상심한 듯 우치다가 고개를 떨군다. 하지만 지금의 무토에게 신경 쓸 여유 따윈 없었다. 괴성, 흐느낌, 통칭 귀곡성(鬼哭聲)이라 지칭되던 풍문속의 망령과 마주함에 그의 입안이 타들어갔다.
“저기!”
순간 무토가 허공을 가리켰다. 찰나의 순간, 희뿌연 무언가가 빗속을 날고, 우치다 역시 놀란 얼굴로 그것을 본다. 산새일까? 아니면 안개의 군집인가? 무토의 시선이 혼란한 그의 생각처럼 흔들렸다. 손에는 부적처럼 칼을 들고 있지만 그것이 완전한 위안이 되어주진 못했다.
‘흐흑... 흐으으으윽... 흐으으으으’
“또 들립니다!”
우치다가 큰 소리로 외치고, 한층 가까워진 흐느낌의 공포가 무토로 하여금 무전기를 들게 만들었다.
“그게... 그게 온 것 같습니다.”
다급한 시선이 허공의 흐느낌과 대답 없는 무전기를 번갈아 바라본다. 교차하는 시선 위로 그가 느끼는 불안감이 전해졌다.
“어디냐! 어디야! 어서 나타나! 피라도 말릴 셈이냐!”
무토가 허공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어느새 창백해진 핏기 없는 얼굴,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겁에 질린 표정으로 무전기의 버튼을 누르려 하지만 무전기를 쥔 손은 이미 비에 젖은 듯 흥건하다. 떨리는 음성으로 무토가 다시 한 번 말했다.
“다... 당직실! 무토다. 그... 그게 나타났다. 아무도 없나? 다시 한 번 말한다. 그게... 나타났다.”
한 마디, 한 마디 음성 속의 떨림이 마치 애원처럼 느껴졌다. 허나 그가 보낸 무전은 허공속의 메아리가 되어 묻힌 듯 돌아오지 않고, 거센 빗소리 사이로 흐느낌의 망령이 다시금 그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흐흐윽... 흐으으윽’
“머저리 같은 놈들! 그게 나타났다고! 그게! 왜 아무도 대답이 없는 거야! 히라타! 거기 아무도 없나!”
무토가 절박한 목소리로 묻지만, 무전기는 답하지 않았다. 고장이라도 난 듯 입을 다물고 비웃는다. 빼죽이 튀어나온 안테나가 마치 누군가의 조롱처럼 보인다. 화가 난 무토는 급기야 무전기를 내던지고 빗방울 고인 망루의 바닥 위, 박살 난 무전기가 복잡한 제 속을 드러냈다. 그 순간 그는 생각했다.
‘박살이 나도록 내 던졌는데, 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지? 부딪치는 소리도, 부서지는 소리도 없다. 빗소리만... 그리고 흐느낌... 왜지?’
의문이 만들어 낸 작은 파문, 의심의 바람이 소용돌이 치고, 그의 시선이 천천히 움직였다. ‘소리’, ‘반응’, 무엇이라도 좋다. 그 무엇이라도 내야 할 또 한 사람...
‘우치다!’
손끝이 떨리고, 거세지는 심장박동과 함께 호흡마저 거칠어진다. 말없이 서 있는 축 늘어진 어깨, 무토가 우치다를 향해 팔을 뻗었다. 어깨를 붙잡고 흔들며 말했다.
“이... 이봐 우... 우치다...”
다행히 무토의 말에 반응을 보이는 우치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힘없이 떨어진 두 팔은 그대로였지만, 어둠 속의 유일한 우군이 움직이자 무토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무토 병장님...”
“그래 우치다. 노... 놀랐잖아! 무전기가 먹통이야! 당직실의 히라타, 이 개자식! 분명 졸고 있는 게 분명해! 네가 여기 있어! 내가 잠깐 당직실에 다녀올게, 무전기도 고장 안 난 새 걸로 바꿔 와야 돼! 알겠지?”
“무...토 병장님...”
“왜 이 자식아! 혼자 있는 게 겁나나? 하... 하지만 안돼! 내가 갈거야! 넌 여길 지킨다. 내... 내가 선임이니까! 번거롭지만, 내가 다녀올게! 내가! 내가 가야 돼! 넌 믿을 수 없어... 그러니까 내가... 잠깐... 아주 잠깐 당직실에 다녀올게... 아무 일 없을 거야. 그치?”
무전기는 핑계였다. 곤경에 처했을 때, 일단은 피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 누구도 무토를 탓 할 순 없었다. 떨리는 그의 음성에도 일신의 안위를 생각하는 비열함 보단 절실함이 더 강했다. 혹여 우치다가 어떤 항변이라도 할까 불안한지 재빨리 몸을 돌리는 행동도 그랬다. 두려움에 피하는 것, 본능이 시키는 행위, 경계근무자는 절대 초소를 이탈해선 안 된다는 걸 가장 잘 알고 있는 그였지만, 그 순간의 무토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 마비된 이성으로 뻣뻣한 몸을 내밀어 망루의 사다리로 향했다.
그리고... 우치다가 말했다.
“우... 우리는 죄를 지었어요. 속죄해야 하... 합니다.”
“무슨 개소리야! 죄라니 무슨!”
“도... 망치면 안... 돼... 요. 죄... 죗값을 받아야 멈춥니다.”
“누가 도망친다는 거야! 이 멍청한 녀석! 죗값은 또 무슨 말이고!”
거듭된 우치다의 말이 흐느끼듯 들려왔다. 짜증스레 대꾸하던 무토가 돌연 멈춰 섰다. 목덜미를 스치는 서늘한 한기(寒氣)때문이었다. 빗줄기가 한 방울, ‘톡’ 하고 그의 군화 위에 떨어졌다. 그리고 멈춘다. 정적(靜寂), 소리들이 사라졌다. 거세게 몰아치던 비바람의 소리마저 자취를 감췄다. 오직 들썩이는 가슴과 거친 호흡의 소리만이 그를 감쌌다. 공허(空虛), 공간의 모든 것이 숨죽이고, 어둠의 한 편에서 누군가 그를 노려봤다. 우치다였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슬픈 얼굴이었다. 울고 있는지 어깨가 들썩이고, 뺨에는 무언가 다른 색의 액체가 흐른다. 어둡고 검은 액체였다. 아니... 검붉었을까? 이내 감은 눈을 뜬 우치다가 말했다.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흰색의 눈동자, 그것이 눈물처럼 검게 물들며 말한다.
“다... 죽어... 다... 우리처럼...”
“안 돼!”
우치다가 성난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목을 움켜쥐고 강하게 졸라왔다. 피할 수 조차 없는 빠른 속도였다. 강한 힘이 무토의 목을 옥죄고, 그 힘에 짓눌려 정신없이 내밀리니 무언가 딱딱한 것이 그의 등에 닿았다. 망루의 난간이었을까? 아니면 바닥? 허나 의문을 확인하기엔 상황이 너무 급박했다. 무토가 손을 내밀었다. 목을 조르는 우치다의 손을 떼어내기 위해서였다. 허나 손목을 잡고 안간힘을 써도 우치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굵은 나무기둥처럼 미동 하나 없이 짓누를 뿐이다. 점점 가빠지는 호흡 속, 꽉 막힌 기도가 무토의 의식처럼 갑갑하다.
“왜 그랬어? 왜! 왜!”
절규하는 우치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우치다의 음성이나 마치 다른 이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계속되는 흐느낌과 절망의 공포가 엄습했다. 무토가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었다. 이번엔 우치다의 팔이 아닌 얼굴을 손바닥으로 밀어내려 애쓴다. 하지만 단단한 벽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다급한 마음에 손가락을 세운 무토, 검게 물든 우치다의 눈동자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분노와 회한, 그리고 애절함이 느껴지는 눈이다.
“이거... 놔아! 죽어라!”
버럭 소리치며 우치다의 눈을 찌르는 무토, 허나 간절한 바람도 잠시, 밀려오는 것은 손끝의 고통뿐이었다.
“아악...”
부러지기라도 한 듯 통렬한 고통이 밀려왔다. 우치다의 검은 눈, 그것이 무토의 손가락을 튕겨내고 웃었다. 조소(嘲笑), 한 없이 초라한 것을 대할 때의 조롱 섞인 웃음이었다. 허나 손가락의 고통이 잠시나마 무토의 의식을 흔들었을까? 그 조소가 조금씩 흔들린다. 작지만 사라졌던 빗소리도 미약하게나마 귓전을 스쳤다. 바람소리, 작은 아우성, 잠시 잊고 있던 가슴 속의 이물감...
무토가 손을 뻗었다.
“크흡!”
외마디 비명이 들리고 무토의 허벅지가 붉게 물들었다. ‘툭’ 소리를 내며 작은 쇠붙이도 바닥에 떨어졌다. 우치다에게서 빼앗은 주머니칼이었다. 급박한 상황 속, 가슴팍에서 느껴진 이물감을 깨달은 무토가 손을 쓴 것이다.
“으으...”
무토가 눈살을 찌푸리며 신음했다. 상처는 보기보다 깊은지 연신 핏물이 쏟아졌다. 이내 고통을 참으며 눈을 뜨는 무토, 희미한 미소가 그의 입가에 번졌다. 가늘게 뜬 눈 사이로 괴물처럼 절규하던 우치다가 사라졌다. 목을 조르던 육중함도 사라져 차고 축축한 바람이 목구멍을 누볐다.
“하아... 하아.. 됐어... 됐어...”
그제야 정신을 차린 무토가 몸을 일으켰다. 모든 것이 들려왔다. 빗소리, 바람의 나부낌, 먼 곳에서의 풀벌레 소리, 전에는 쉬이 스쳐 지났던 일상의 소리들이 그를 반긴다. 무토는 화색이 도는 얼굴로 가장 먼저 바닥에 떨어뜨린 칼을 손에 쥐었다. ‘부적’ 마치 그것이 자신의 호신부라도 되는 양, 두 손으로 품어 안는다.
‘쿠르릉 쿵 콰콰콰쾅’
번쩍임, 그리고 들려오는 우레의 함성, 살아 숨 쉬는 생동감에 무토가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한다. 악몽(惡夢)에서의 탈출(脫出), 절망에서의 생환(生還), 설마 하던 자신의 추측이 현실이 되자 허벅지의 통증도 잊은 채 웃는다.
‘환영을 이겨냈어, 이제 다 끝났다. 악명 높은 서쪽초소에서의 귀환, 흐흐흐 모두 다 깜짝 놀라겠지? 피, 상처, 망령을 이겨내는 법, 그래 이 사실을 모두에게 알리자. 그럼 훈장이라도 주지 않을까? 다들 나를 우러러 볼 거야... 히라타든 가토든... 스기야마 대장이든... 흐흐흐’
인생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절망에 몸부림치던 무토가 이제는 장밋빛 환상에 젖어든다. 후방이라곤 하나 이 정도면 혁혁한 무훈(武勳)이다. 11명의 사상자를 낸 극악한 망령의 저주를 이겨낸 역전의 용사, 훈장, 조기전역, 갖은 단어들이 떠올랐다 이내 사라졌다. 병사들이 도열하고, 무토 자신은 멋들어진 정복을 차려입고 앞에 나선다. 부대장인 스기야마의 축사와 함께 훈장이 수여되자 환호는 극에 달하고, 특별 전역명령에 의거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를 바라보며 줄지어 선 사람들이 박수를 친다. 가토, 히라타, 사사키, 모두 정든 얼굴들이다. 헌데 그러한 기쁨의 순간에 묘한 이질감이 느껴진다. 긴 줄의 마지막, 힘없이 서 있는 자가 있다. 우중충한 얼굴로 박수는커녕 그를 노려본다. 익숙한 얼굴인데 이상하게도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분명 너무도 잘 아는 이름... 무토가 말했다.
“그래... 우치다.”
‘철컥!’ 쇠붙이가 맞부딪히며 나는 차가운 금속음이 들렸다. 그 소리가 달콤했던 무토의 망상을 깨뜨린다. 심한 출혈 탓에 몽롱해진 시야, 어둠에 가려진 망루의 한쪽 끝, 그의 망상에서처럼 누군가 서 있었다. 끝내 박수 치지 않았던 우치다였다. 헛된 망상과 같은 표정으로, 아니 한층 더 경멸어린 시선으로 그곳에 있다. 그리고 우치다의 손에 든 총이 불을 뿜었다.
‘탕!’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봉신당 : 참회의 서
Written by 야설왕짐보(미스공 괴담공작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 |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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