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결말은 결국은 끝입니다.
끝, 그것에 대해 저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끝을 마주해야만 합니다.
끝을 만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요.
그런 생각을 하던 도중 어느새 병실에 도착했습니다.
드르륵, 소리와 함께 문은 열리고 그곳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저는 끝을 마주하는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갑자기 울컥하더니 눈물이 쏟아질것만 같았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보게될 아버지의 모습이어서 그런것일까요.
어찌어찌 눈물을 참으려고 했지만 세월은 저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우는 얼굴로 아버지를 맞이할수 밖엔 없었습니다.
그래.. 요샌 어떠니?
아버지는 아무렇지 않은듯 물어봤습니다.
저는 그저 언제나와 같다고 대답할 뿐이었습니다.
그런 말 밖엔 나오지 않았습니다.
문득 아버지의 얼굴을 보니 아버지와 함께한 세월이 떠올랐습니다.
그 세월동안 저는 정말 악동이었고, 불효자식이었습니다.
우리 부자는 언제나 과묵했었습니다.
사실 철없는 제가 언제까지나 철들지 않았기 때문일겁니다.
삶을 되짚어 봅니다.
반짝이는 별을 보며 그것이 별이라는 것을 알려주셨던 아버지.
푸른하늘 아래 샛노란 국화꽃밭에서 뛰놀던 나와 아버지.
전쟁통에 숨어지내던 나와 아버지.
그와중에 보급품이든 뭐든 내게 다 주셨던 아버지.
어머니 없이 홀로 온갖일을 하며 나를 도와줬던 아버지.
제 인생은 아버지와 함께 흘러 갔습니다.
어느날 아버지는 저를 불러 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어머니의 이야기 였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와 나는 점점 멀어져만 갔습니다.
아버지는 성숙해졌다고 생각하셨겠지만 저는 당시 아직 미숙한 아이였던 것이죠.
그렇게 저는 집을 나와 살게되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저 몰래 혼수를 준비해 주셨더고 합니다
하지만 철없는 저는 그런 사람 모른다고 시치미 땠었습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이미 돌아가시고 없다고.
하지만 아버지는 몰래 몰래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언제까지나 미숙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에 와서야 깨달았습니다.
아버지의 비애를.
아버지의 절망을.
그의 인생에서 저의 특별함만을 저는 알고 있었던걸 까요.
나의 인생에서의 아버지의 특별함을 잊고 살아왔었던 걸까요.
저는 정말. 정말 오랜만에
아주 오래전 아름답게 반짝이는 은하수를 바라보면서 활짝 웃고 했던 그말.
샛노란 국화꽃밭에서 돌아오는 버스길에 했던 그말.
그리고 다신 하지 않았던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오랜만에 전해드렸습니다.
아버지는 빙그레 웃고 계실 뿐입니다.
아픈건 아버지일텐데.
결국 언제나 아픔을 갖고 사는것은 아버지일텐데.
아버지는 정말.
정말 아무말 없이 웃어주셨습니다.
저는 눈물을 애써 눌러 참으며 웃어보였습니다.
그런 저를 보며 아버지는 눈물을 닦아주셨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보곤 말하셨습니다 .
정말 미안하다고.
사랑하는 이를 먼저 보내는 아픔을 겪게하여 정말 미안하다고.
내 기구한 인생에 휩쓸리게 만들어 미안하다고.
저는 그런 아버지의 손을 쥐며 말했습니다.
슬퍼하지 말고 행복하시기를.
다신 고통없이 행복하시기를.
마지막의 순간이 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삶의 끝은 이제 찾아오는 것이겠지요.
눈을 감고 떠올려 봅니다.
몰래몰래 도와주던 아버지.
그러다 들통나면 멋쩍게 웃으시던 아버지.
아내의 죽음에 슬퍼하던 나를 위로해주던 아버지.
아들이 자라 손자를 낳았을때 같이 환호해주셨던 아버지.
아들도, 딸도 죽고 찾아오지 않는 손자,손녀들을 기다리며 쓸쓸해 하던 나를 위로 해주셨던 아버지.
그들도 죽고 더이상 가족도, 친구도 없는 세상에서 찾아오셨던 아버지.
지금까지 그렇게 함께해주셨던 아버지.
마지막 순간, 저는 살짝 눈을 떠 아버지를 바라봤습니다.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웃어주셨습니다.
저도 따라 웃었습니다.
그리고 눈을 감았습니다.
수백년의 삶이 뭉게뭉게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떠오른 것은 보름달이 뜬 하늘 아래의 아버지와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정말, 아버지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저는 행복해 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삶들이 사라지고 어둠만이 남았습니다.
그 속에서 저는 아버지의 행복을 소망했습니다.
그렇게 제 삶은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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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익 소리와 함께 남자는 문밖으로 나왔다.
나는 그 순간 그 방에 있던 환자의 죽음을 깨달았다.
이상한 환자였다.
정말 젊어보이는데 60살이라고 했었다.
정말 60살 먹었다고는 지금도 생각하지는 않는다.
끽해봤자 40대 아닐까?
놀라운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병은 불치병이었다.
아직까지도 설명할 수 없는 병이 있다는 것은 학회에 보고될 만한 이슈였다.
하지만 왜인지 그의 존재는 이 작은 시골병원 밖으로 새어 나가진 않았다.
나는 청년에게 환자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그러고보니 그에게 병문안을 온것은 이 청년 뿐이었다.
혼자 살고, 혼자 죽는 사람이 늘어난 오늘날에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청년은 환자가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주었다.
젊은 사람이었는데 안타깝다고 전하니 그 청년은 그저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청년은 서류를 작성하고 병원을 떠났다.
서류를 확인해 보는데 환자와의 관계에 '父'라고 적혀있었다.
음? '父'가 무슨 말이지?
뭐 대충 아들이란 말인가.
그에게 물으려고 했지만 그는 이미 병원을 떠나고 있었다.
저 멀리 떠나는 그는 왜인지 고독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