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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나는 어릴 적, 눈치를 보고 다니는 꼬맹이였다.
원하는것을 얻을때까지 울고 바닥에 드러눕고 떼써도 될 나이인 여섯살때부터 나는 부모님의 눈치를 보면서 다녔다.
가지고 싶은게 있어도 입을 꾹 다물고 있어야 했다.
말했다가 집에가서 맞을지도 모르니까.
가끔 장난감을 사주실때도 나는 부모님 눈치를 봤다.
좋은거 집으면 집에가서 맞을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난 항상 낡고 허름한, 그것도 누가 쓰다 버린 장난감들을 집어오곤 했다.
그게 아니라 다른것을 고르라고 해도 믿을수가 있어야지.
자전거도 롤러스케이트도 소꿉놀이 세트도 레고도
모두 장난감가게집 아들딸들이 쓰던걸 박박 우겨서 가져오곤했다.
가끔 엄마가 직접 데리러 오기로 한 날은 유치원차를 안타고 남아있었는데
엄마는 와서 꼭 선생님이랑 나에대해 이야기를 했다.
거기서 보통 애들 같으면 기다리고 놀고 있겠지만
집에가서 왜 그걸 기다리고 있냐 눈치없냐 소릴 들을까봐
어른이 걸어도 15분 이상 걸리는 집까지 걸어갔다.
결국 그래서 더 혼났지만.
초등학교 5학년때는 엄마아빠가 이혼을 했다.
엄마는 우릴 놔두고 나가버렸다.
아빠는 매일 술만 마시고 일도 가지 않았다. 모든 집안일을 다 나에게 시켰다.
하루는 아빠가 페트병 여덟개를 던져주면서 약수터에 가서 물을 떠오라고 시켰다.
너무 많아서 동생에게 조금 도와달라고 해서 같이 뜨러 갔다가
아빠한테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았다. 왜 동생 시키냐고.
나는 그때 왕따였다. 그러다가 어렵게 친구를 사귀었다.
겨우 사귄 친구들이 우리집이 궁금하다고 말했다. 놀러가도 되냐고 물었다.
아빠 있는데 괜찮아? 라고 물었더니 괜찮다고 해서 데려갔다.
어차피 아빠는 방안에서 자고 있거나 뉴스보고 있을테니까.
그런데 아빠는 술먹고 다벗고 누워서 자고있었다.
그 친구들은 날 버리진 않았지만 학교 내에서 내 소문이 조금 더 이상하게 퍼졌다.
한 학년에 반이 4개여서 소문이 금새 쫙 퍼졌다.
그나마 조금 나아지려고 했던 내 상황이 더 어두워졌다.
초등학교 6학년때 엄마가 다시 우릴 키우고
중2땐 엄마랑 아빠가 다시 재혼을 했다.
난 집이 더 화목해질줄 알았다.
확실히 집은 예전보다 더 화목해졌다.
나를 제외하고.
아빠는 또 날 때렸다.
난 잘못한것도 없는데.
아빠가 기분이 나쁘면 그날은 맞는 날이었다.
대답 한번 잘못하면 맞고 십원짜리 쌍욕을 들었다.
동생도 엄마도 날 구해주지 않았다.
동생은 맞는 날 보면서 뒤에서 비웃고 있거나, 나중에 그 일을 놀림감으로 날 괴롭혔다.
하루는 아빠에게 심하게 맞아서 개학식인데도 학교에 못 갔다.
할머니댁으로 피해 있었는데 할머니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니가 뭘 잘못한게 있으니까 니아빠가 그렇게 때린거겠지.
잘못한게 있으면 학교도 못 갈 정도로 얼굴이 엉망이 되어도 되는거예요?
라고 묻고싶었지만 참았다. 할머니가 아빠에게 쪼르르 전화해서 이르면 진짜 죽을지도 모르니까.
동생도 엄마도 할머니도 모두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았는데
다음날 학교에서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반 친구들이 모두 내 편을 들어줬다.
일부러 넘어지고 문에 받혀서 난 상처들이라고 거짓말 했는데
눈 안에 터진 실핏줄은 넘어져서 생기는거 아니야. 그거 되게 오래가. 누가 너 건드렸어?
여기 연고 가져왔으니까 좀 발라.
너 병원 가봐야되는거 아니야? 내가 이따가 학교 끝나고 같이 가줄까?
양호실이라도 한번 가보자.
난 정말 그때 정말 죽을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그 말들에 그 마음이 모두 녹아내렸다.
그래도 끝까지 아빠에게 맞았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아빠의 폭력은 계속됐다.
난 맞을때면 옆집에서 신고라도 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더 큰소리로 울면서 소리질렀다.
옆집도 신고해주는 일은 없었고 바로 가까이에 있는 엄마와 동생도 날 외면했다.
내가 그렇게 소리지르면서 울때면 엄마는 계속 이렇게 말했다.
너때문에 저기 베란다로 지금당장 뛰어내리고 싶은거 참고 있거든?
야 난 이제 몰라. 니가 알아서 해. 계속 맞으면서 울든 말든.
시끄러우니까 문좀 닫아.
엄마는 그럴때마다 동생과 같이 앉아서 티비를 보고 있었다.
내가 방안에서 아빠에게 무시무시한 욕설을 듣고 있을때도 밖에서는 깔깔깔
내가 방안에서 아빠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하고 있을때도 밖에서는 드라마에 완전 집중.
우리집은 계속 그래왔다.
깔려 죽을것 같은 살기를 내뿜던 아빠도 날 때리고 거실로 나가면 허허허 웃었다.
그 난리를 치고도 거실에 웃음꽃이 피는데엔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나만 방에 들어가 있으면 거실은 정말 드라마에 나올법한 화목한 집이었다.
아빠는 내 가슴을 후벼파는 말들을 자꾸 하곤 했다.
너만 나 쪽팔리냐? 나도 너 쪽팔리거든.
니가 그지랄로 하니까 친구가 없는거야.
우리가 누구때문에 이혼을 했는지는 알고있냐?
넌 왜 빨리 안뒤지고 계속 살아있냐?
난 그렇게 맞아도 아빠를 쪽팔리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구요
나 이제 친구 많아요. 나 친구 없었던건 알고 있으셨어요? 그러면서 모르는 척 나한테 아무 조언도 안해준거예요?
이혼한건 엄마가 겨우 저녁 8시 50분에 들어왔다고 아빠가 화나서 집안살림 다 깨부숴서 그런거잖아요. 나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은거예요? 내가 뭘 잘못했지?
나를 왜 낳았어요?
마음속으로만 열심히 대답했다.
엄마는 복날 개맞듯 맞고사는 날 외면했지만
난 그래도 엄마에게 마음을 열고 살았다.
그마저도 없으면 숨이 막혀서 더 살수 없으니까.
하루는 아빠때문에 정말 힘들다고 투정부리듯 털어놓았다.
엄마에게 머리채를 잡히느라 학교에 결국 지각했다.
선생님은 왜 지각했냐고 내게 물었다.
엄마가 절 때렸어요 라고 말할 수 없어서 결국 아무말도 못하고 죄송합니다 만 말했다.
울고 싶었는데도 꾹 참았다. 모자란 애 처럼 보일까봐.
결국 지각한 벌로 선생님한테도 맞고 반성문도 썼다.
교실로 가려는데 선생님이 급히 날 불렀다. 선생님이 내 손을 잡으면서 계속 미안하다고 말했다.
00아 아파서 병원다녀왔다고 진작에 말을 했어야지.. 선생님이 때려서 미안해. 아직도 많이 아프니?
처음엔 무슨소리인줄 몰라서 아뇨 안아파요 괜찮아요 라고 말하고 교실로 왔다.
친구들이 내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와서 물었다.
너 안와서 얼마나 걱정했는줄 알아? 병원갔다올거면 우리한테 연락이라도 해주지. 너 안와서 너네집에 전화했었잖아.
엄마는 그깟일로 내 머리채를 잡아놓고
딸이 아파서 병원 보내고 약 먹이느라 고생한 엄마가 되어 있었다. 어이가 없어서 눈물이 나오려고 했지만 꾹 참았다.
아빠의 폭행은 대학교 입학 전까지 계속됐다.
그 지긋지긋한 폭행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건 대학교 기숙사 덕분이었다.
기숙사 들어가기 하루 전날 엄마가 내게 말했다.
우리 00이 기숙사 안갔으면 좋겠는데..
그 말에 감동을 받고 왜? 라고 물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너 없으면 니네 아빠를 어떻게 감당해. 엄마 진짜 죽을것같아.
나는 엄마에게 있어서 그냥 아빠를 막아주는 총알받이일 뿐이었다.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왜 내가 맞을때 안구해줬어?
엄마가 말했다
엄마도 너무 무서워서 그랬어.
난 나중에 내 딸이 내 남편에게 그런식으로 맞는다면 내 몸이 불구가 되는 한이 있어도 지켜줄텐데.
결국 난 기숙사에 들어갔다. 룸메이트를 잘못 만나서 불편했지만
집이 아니라는 점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기숙사가 아니었다면 난 아마 지금까지도 맞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다.
서글프다.
당장이라도 뛰어나가 죽고싶은 심정이지만
하룻밤만 자고나면 또 다시 진정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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