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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멀다 하고 여성혐오 관련 이슈가 터지고 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여성혐오 발언이 만연하다. 매일 항의 대자보나 성명을 써도 시원찮을 판에, 여러 차원 여러 공간에서 ‘솔직하게 말한다’는 미명하에 여성혐오를 더욱 폭력적으로 드러낸다.
문제가 된 미디어 속 여성혐오 발언들과 관련하여,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블로그에서 정리해놓은 포스트를 소개한다. (더 지니어스: 여자를 혐오한 남자들 http://blog.amnesty.or.kr/9952) 사실 이슈가 된 내용들 외에도, 각 TV 프로그램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성차별 발언이 등장하고 있어서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잘 몰라도 비난할 수 있는 ‘페미니즘’?
최근에 페미니즘의 뜻을 모르면서 ‘페미니즘이 싫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페미니즘이 뭔지 설명하려고 노력해봤다. 그러나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나는 이것이 여성혐오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이자 고질적인 문제점이라고 생각한다. ‘듣지 않는다’,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모르는 것이 있을 때,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한다. 하나는 그대로 모르는 채 지나가는 것, 다른 하나는 호기심을 가지고 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여성혐오를 둘러싼 최근의 현상을 보면 또 다른 선택지가 있는 것 같다. 바로 무지를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사실 지식이 없는 상태를 비판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무지 자체는 잘못이 아니니까. 무언가를 모른다면, 알 수 있는 가능성도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식의 유입을 봉쇄해버리고서 ‘난 그건 모르겠고, 어쨌든 너희는 싫다’는 식으로 나오면, 논의는 전혀 진전되지 않고 멈추어 버린다.
미셸 푸코는 지식이 담론화되고 담론이 곧 권력이라고 하였다는데, 여성혐오와 관련한 지금 우리의 현실은 ‘무지의 담론’이라는 역설적인 현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놀라운 실험의 장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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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에 대한 무지를 해체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배워야 한다, 식의 순진한 이야기 외에 다른 전략을 짜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게다가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이 ‘남을 가르치려는 태도’라고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인간의 우열을 가리는 것과 같은 차별적인 전제를 벗어나서, 평등하게 정보를 소통하려면 결국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그러한 성찰의 가장 좋은 토대이자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페미니즘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페미니즘 그 자체든, 대화와 정보 전달의 방법으로서의 페미니즘 방법론이든 간에, 무지를 선택하는 집단들과 대치되는 상황 속에서 엄청난 딜레마를 안게 된 것 같다. 한술 더 떠서 무지를 인정하지 않고 왜곡된 정보를 유포하는 사람들도 많다. ‘페미니즘은 그런 거 아냐?’ 식의 반응도 고질적인 여성혐오의 패턴이다.
재미를 위한 양념 정도로 인식되는 여성비하
요즘엔 솔직함을 가장하여 여성차별적이고 혐오적인 표현을 하면서, 농담의 차원으로 환원하는 경우가 잦다. 타인에게 모멸감을 주거나 여성을 열등한 집단으로 묘사하면서도, 자신의 발언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에게 ‘분위기를 망친다’며 되려 화를 낸다.
페미니즘은 제3의 물결을 맞이하는 등 다양한 시각과 방법으로 뻗어나가며 발전적인 논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한국의 현실을 보면 페미니즘의 가장 기본이 되는 부분부터 다시 쌓아야 할 판이다. 여성이 타자화되는 정도가 과거보다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여성혐오가 하나의 재미로 자리잡아 누군가가 즐기는 주제가 되었다면, 상황이 심각한 것이다.
팟캐스트 방송에서 욕설에 가까운 여성혐오 발언으로 인해 청취자들에게 공영방송 퇴출 요구를 받았던 개그트리오 ‘옹달샘’의 장동민은, 최근 tvN “코미디 빅리그”에서 ‘입으로 흥한 자 입으로 망한다’고 셀프 디스를 하며 자신의 잘못을 하나의 코믹한 에피소드로 둔갑시켰다. 그런가 하면 ‘옹달샘’의 또 다른 멤버 유세윤이 진행자로 있는 JTBC “비정상회담”은 ‘혐오주의로 인한 불매운동은 정당한가’를 놓고 토론을 벌이는 식으로, 논란을 비껴가려는 시도를 하기도 하였다.
여성비하와 여성혐오가 재미와 흥미로 읽히는 경우는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뷰티풀 군바리”, “외모지상주의” 등의 웹툰을 보아도 그렇고, 남성 패널들로만 구성된 예능 프로그램을 보아도 그렇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브로(Bro)라는 가수가 낸 “그런 남자”에 이은 “고백했는데”, 얼마 전 자게이스라는 듀오가 낸 “아몰랑”, ‘일베’를 상징하는 ‘베츙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곡들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런 곡들이 버젓이 음원 사이트에 등록되고 늘어나고 있다.
대중음악 안에서도 고질적인 문제는 되풀이되는 중이다. 장현승의 이번 솔로앨범에는 소유 대상으로서의 여성만이 존재한다. 현실의 여성이 아닌 ‘남성의 판타지’를 대변하는 여성가수의 노래도 빈번히 찾아볼 수 있다. 김예림의 “Awoo”(또 꼬리를 치나/ 남잔 다 관심 없다 말해놓고/ 그리고 너 딱 봐도 티 나/ 손발만 남기고 다 고쳐놓고)나 CLC의 “Eighteen”(난 아직 어리지만/ 더는 못 참을 것 같아…예쁜 신데렐라 꿈꾸며) 등도 그러한 뉘앙스를 담고 있다.
사실 대중음악에서는 여성의 타자화, 객체화가 아무 거리낌 없이 연애 관계나 이성에 대한 흥미로운 표현으로 등장해왔다. 빅뱅의 “Bae Bae”만 해도 “넌 시들지 마 이기적인 날 위해/ 그 모습 그대로 넌 그대로여야만 해”와 같은 가사가 등장하지 않은가.
여성혐오가 용인되는 사회는 여성들을 위협한다
순진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결국 여성혐오적인 사회분위기를 바꾸어야 한다. 여성혐오는 누군가에게는 작은 일로, 혹은 농담처럼 보일지라도, 결코 가벼운 장난으로 치부해버릴 수 없는 문제이다. 사회에 만연한 혐오 분위기가 여성들에게 위협을 가하기도 한다. 극단적인 예로, 일베 회원들이 최근 새벽에 여성 혼자 사는 집에 칼, 스패너를 들고 찾아가며 생중계를 벌인 사건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설령 지겹고 불편한 반응을 듣게 되더라도, 여성혐오에 대해 혹은 페미니즘에 대해 질문하고, 답하고, 배우고, 문제 제기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글이 올라가는 이 시간에도 어쩌면 새로운 여성혐오 발언과 이슈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페미니즘에 대해서 ‘무지’의 담론이 권력화되고 여성혐오가 재미 혹은 농담처럼 둔갑하더라도, 세상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인간이 동등하게 대우받길 원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가부장제 질서에 질문을 던지고 또 던져 균열을 내어갈 것이다.
※ 필자 블럭(bluc) 소개: 글을 쓰고 인터뷰를 한다. 주로 음악에 관한 글을 쓰고, 가끔 영화 이야기도 한다. [weiv]를 포함한 몇 웹진에서 일하고 있다.
출처 |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7109§ion=sc1§ion2=%EC%84%B1%EC%B0%A8%EB%B3%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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