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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88397
    작성자 : 홍염의포르테
    추천 : 12
    조회수 : 1038
    IP : 1.240.***.123
    댓글 : 4개
    등록시간 : 2016/06/08 10:26:27
    http://todayhumor.com/?panic_88397 모바일
    [장편, 스압] 등대 12화
    옵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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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부펌금지

    프롤로그. http://todayhumor.com/?panic_88291

    1화. http://todayhumor.com/?panic_88292

    2화. http://todayhumor.com/?panic_88293

    3화. http://todayhumor.com/?panic_88298

    8화. http://todayhumor.com/?panic_88354

    10화. http://todayhumor.com/?panic_88377

    11화. http://todayhumor.com/?panic_88382


    이호철

    ------

    “지혜 씨는 범인이 왜 이런 짓을 벌인 거라고 생각하나요?”

    “제 생각엔... 흐응... 글쎄요. 그냥 그런 것 아닐까요?”

    그냥? 이런 짓을... 그냥 했다고?

    “설마... 그럴 리는 없을 겁니다. 아무리... 아니, 아닙니다.”

    “그래도. 영화나 그런 데 나오는 악당들 보면... 딱히 별다른 이유가 없잖아요?”

    아니... 그건 그렇지만. 설마 실제로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그냥 해본 거라면... 그냥 사람을 죽이는 걸까?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러면 단순한 재미로 이런 짓을 한 걸까? 아니다. 그건 말도 안 된다. 단순한 한지혜의 추측에 불과했다. 실제로 범인이 그럴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 중 누군가에게 원한이라도 있는 걸까? 아니면 우리 모두에게? 모두에게 원한이 있는 거라면... 우리에게 공통되는 것이 있나? 배를 탄 것 이외에 공통되는 것이... 아니 그 전제라면 내가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만한 행동을 한 적이 있었나?

    짐작되는 곳이 없었다.

    하지만 이 전제라면 그 배를 탔던 사람들이 그 배를 탔던 이유도 중요하지 않나? 그 점이 공통되는가?

    그렇다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확인하는 것이 빠를 것이다. 특이 행동을 했던 사람들. 자신이 죽겠다고 나선 전태성과, 소중한 이를 잃은 김재영. 그리고 아까 그 눈. 마치 상처입은 맹수를 보는 듯 했던, 김주성. 이 셋을 확인하는 게 빠를 것이다. 일단은...김주성과 김재영인가.

    나는 ‘1-1’의 방 앞으로 가 문고리를 당겨서 열었다.

    “아. 점심을 가지러 갔었나?”

    “예. . 시간이 되어서.”

    나는 상자를 탁자 위에 내려놓고, 음식물을 꺼내며 앞의 둘을 살폈다.

    김주성에게 먼저 묻는 편이 나으려나. 그것보다 뭐라고 해야 되지? 그와 단둘이 이야기 하는 편이 나으려나? 아니면 이 자리에서?

    “자. 먹죠.”

    나는 음식물을 전부 꺼내 놓고, 사람들에게 건네며 말했다.

    “근데 범인도 참 센스가 없네요. 어제랑 완전히 똑같잖아요? 흠 저녁도 똑같이 나오면... 6일 동안 같은 걸 먹어야 한다니... 좀 다른 게 먹고 싶은데...”

    ... 하아.

    나는 한지혜의 어이없는 말에 속으로 한숨을 뱉었다.

    “주는 대로 먹어야지 어쩌겠나?”

    “아무리 그래도...”

    한지혜 때문에 괜히 힘만 빠졌다. 지금 중요한 게 그런 게 아니었다. 당장 내일 죽을 판에... 나는 한지혜의 말을 끊으며 김주성을 불렀다.

    “아저씨?”

    ... 왜 그러나?”

    “그 섬에는 무슨 일로 가려고 했는지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김주성은 내 말에 망설이더니 나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뭐라도 알아냈는가?”

    저 말은 무슨 뜻이지? 무언가 알아냈다면, 알려줄 수 있다는 걸까? 그가 섬으로 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단번에 이야기하지 못하고 망설일만한...

    하지만 나는 아직 알아낸 것이 없었다. 거짓말을 한다면, 들을 수 있을지도 몰랐지만, 그렇게는 할 수는 없었다. 그건 안 된다. 그 결과 무언가를 알아낸다고 하더라도 거짓말은 안 된다. 힘들게 결심한 이유가 없어져 버린다.

    “그런 건 아니지만, 범인이 왜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 알기 위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흠... 그렇다면야. ...”

    김주성이 고개를 숙이고는 한숨을 짓는다. 그러나 이내 다시 고개를 들며, 말을 이어갔다.

    “섬에 왜 가려고 했느냐라... 친구 때문이었네.”

    “친구 말입니까?”

    “이야기를 하면 조금 길어지네만... 옛날에 내가 군인이었다네.”

    “예.”

    군인이라...

    “내가 월남전에 참전했었는데... 아니, 이러면 또 말이 길어지는군. 간단하게... 그때 그곳에서 친구를 잃었네.”

    “그럼 섬에는 왜요?”

    ... 눈치가 없는 것도 정도 것이지. 저 정도면 눈치 좀 채라. 이 여자야. 당연히 친구와 관련된 장소이지 않은가?

    “친구 놈 고향일세. 그 녀석의 기일이 어제였지. 이 정도면 충분한가?”

    “예.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이야기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도움이 되었길 비네.”

    김주성이 섬에 가려던 이유는 죽은 친구 때문인가? 그렇다면...

    “당신은 왜 그 섬으로 가려고 했던 겁니까?”

    ... 그러는 너는 왜 거기로 가려고 했나?”

    내가 왜 섬으로 가려고 했냐니... 나는.

    “저는 그저... 여행 ...”

    “진짜로?”

    ... 진짜로? 무슨 의미지? 이 남자는 무언가 알고 있는 건가?

    “진짜로 그것 뿐이냐고.”

    “뭐가 더 있어야  합니까?”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반문했다. 뭐가 더 있어야 한다는 거지? 그걸로는 부족한가? 아니 이상한가...

    1 전에… 아니, 됐다. 갑자기 섬으로 가자고 하더군. 이유는 모르겠지만...

    “예...”

    그가 나한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거지? 그 섬에 여행 차 가는 것이 이상한 일인가? 아니면... 그에게는 저 말 뿐만 아닌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그렇다면 그것은 하나의 열쇠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 그것을 물어봐도 괜찮을까? 모두가 있는 앞에서?

    젠장.

    다른 것부터 생각하자. 내가 가려던 그 섬과 이 섬 사이에 무슨 관련이 있나?

    “다들 이 곳에 대해서 무언가 아는 것이 있습니까?”

    “전혀요.”

    “나도 전에 그 배를 몇 번 타봤지만... 이곳은 전혀...”

    “나도 모르오.”

    아무도 이 섬을 알고 있지는 않은 건가? 그러면 다시 그 섬을 확인해야 하나? 그렇다면 전태성이 죽으려는 이유가 왜 그 섬으로 향했는가와 관련이 있는 것인지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전태성이 그 섬으로 향하려 했던 이유는 뭐였지?

    고개를 내려 시계를 보니 벌써 시간이 1시다. 1시라면 이미 오늘 하루는 7시간 밖에 남지 않았나.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다. 전태성이 생각을 정리하고 뭐고 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최대한 빠르게 범인을 잡아내야 했다.

    “저는 태성 씨를 찾아보겠습니다. 알아볼 것이 생겼어요.”

    “저도 같이 가요.”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한지혜가 나를 따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데.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등대의 문을 열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안개도 거의 걷혀있었고, 창고 쪽을 바라보니 마침 전태성도 나와있었다. 전태성은 하늘을 보고 있던 고개를 천천히 내리다가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굳어버렸다. 나는 그런 그를 마주 보며 그에게로 다가갔다. 전태성은 내가 다가오는 것을 보며 안절부절 하는 것처럼 보이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고는, 가만히 서서 나를 바라봤다.

    “생각은 좀 정리 되셨습니까?”

    “아뇨. 딱히 정리 될 생각같지는 않군요.”

    “그럼 그 이유는 말해줄 수 없는 건가요?”

    한지혜의 말을 들은 전태성이 고개를 들며 말을 이어간다.

    ... 제가 죽겠다고 한 이유. 그걸 말해야만 하는 겁니까? 굳이 왜...”

    “원하신다면 굳이 말하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다만 당신이 희생하게 내버려두지는 않을 겁니다.”

    굳이 남의 치부까지 들어낼 필요는 없었다. 다만 설득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

    “만약에... 당신이 죽는다고 해도 말입니까?‘

    “예. 오늘 밤에 제가 죽는다고 해도요.”

    그래. 당장 오늘 내가 죽는다고 하더라도 남을 희생 시키는 짓은 할 수 없다.

    “당신은 왜? 죽고 싶기라도 한 겁니까?”

    전태성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묻는다.

    “도대체 누가 죽고 싶겠습니까? 저도 살고 싶습니다. 단지 남을 희생 시키는 행위 그것을 인정하지 못할 뿐입니다.”

    “누군가 희생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겉보기엔 숭고한 희생이라 던지 그렇게 비칠 수는 있겠지만, 결국 그건 기만이고 살인행위입니다. 차라리 무작위로 죽게 내버려두는 것이 낫습니다.”

    ...”

    전태성이 내 말에 고개를 숙이며 입을 다물어버렸다. 한동안 그렇게 침묵이 이어진 후, 그가 다시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보니 그의 몸까지 떨리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나는 그를 진정시키고 이해시키기 위해 그에게 말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다들 이해해주었습니다. 굳이 당신이 희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김재영이 희생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범인만 잡는다면...”

    “근데 왜 아침엔 가만히 있다가 이제와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전태성이 떨리는 목소리로 내 말을 자르며 말했다.

    ... 아픈 곳을 찌른다. 부끄러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제대로 밝히지 않으면 내 진심이 전해지지 않겠지.

    “저도...”

    말문이 막힌다.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살고 싶었습니다. 살고 싶은 마음에 그때는 차마 말하지 못했고, 김재영이 희생하려는 것을 내버려 두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당신까지 죽는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말리겠다는 겁니다.”

    “하아...”

    전태성이 크게 한숨 짓고는 말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게 왜 문제되는 것인지. 왜 그게 더 낫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 기어코 자신이 희생하겠다는 것인가.

    “태성씨가 희생하겠다는 거예요?”

    ...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희생은 안 할 테니.”

    “하나만... 더 물어도 되겠습니까?”

    전태성이 내 말에 문 고리를 잡고 멈춰 섰다.

    “또 뭐가 남은 게 있습니까?”

    “그 섬에는 왜 가려고 했던 겁니까?”

    전태성이 내 말을 무시하듯 창고로 다가간다. 그리고는 문  고리를 잡고 돌려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문이 닫히기 직전, 그 찰나에 전태성이 한마디를 중얼거렸다.

    “메세지...”

    !

    문이 닫히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세지?


    전태성 

    ------

     

    “음... 먹을 걸 바꾸는 게 좋을까요?‘

    ... ?”

    갑자기 무슨 소리지?

    “여기서도 먹을 거로 불평하네요.”

    하늘이가 한 손으로 귀를 가리키며 귀찮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 . 이호철 쪽인가.

    “그냥 죽여버릴까요?”

    “그건... .”

    “헤헤. 농담이에요. 약속은 지켜야  하니까요.”

    ...”

    약속이라. 그러고 보니, 약속이라면 웃으면서 죽어준다고 한 그것도 약속에 포함되는 걸까. 모르겠다. 나는 하늘이의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그저 하늘이가 빙긋 웃는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하늘이도 지지 않고 내 두 눈을 마주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나도 왜인지 그녀에게 지기 싫어서 하늘이의 눈을 계속 마주 바라보았다.

    얼마나 서로 바라봤을까. 하늘이가 장난스런 표정으로 먼저 입을 열었다.

    “왜요. 제가 예뻐서 눈을 못 떼겠어요?”

    “응...”

    ...”

    나는 하늘이의 갑작스러운 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짧게 대답했다.

    ... 내가 방금 뭐라고 했지?

    .......”

    ...”

    하늘이가 먼저 나에게 낯뜨거운 질문을 건네긴 했지만, 나도 아무런 생각 없이 대답해버렸다. 보통 그런 질문에는 대답하는 게 아닌데...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느낌이었다. 고개를 돌리지도 못하고 푹 숙여버렸다.

    제기랄. 왜 이렇게 조용하지?

    나는 고개를 숙인 채로 눈동자만 살짝 옆으로 돌려 하늘이를 살폈다. 하늘이도 나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긴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귀와 목덜미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침묵이 흐른다.

    ... 먼저 나갈게.”

    나는 민망함을 이기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막상 밖으로 나오기는 했지만 갈 곳이 없었기에 하늘을 바라보며 창고 문에 기대어 섰다.

    차라리 아까 그 상황에서 하늘이가 뻔뻔하게 나왔다면 좀 나았겠지만, 하늘이마저 저렇게 나와버리니 민망함을 견딜 수 없었다. 아니 저럴 거라면 왜 그런 질문을 한 거지? ... 귀엽긴 했지만...

    아니,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정신줄을 놓으면 안 된다. 결국 그 아이는 악질 살인마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런데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 모르겠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허리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지금의 상황을 일깨워준다. 어찌어찌 하늘이에게서 이 권총을 받아  들긴 했지만,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권총을 다른 이에게 넘겨야 할까? 아니, 그랬다간 단번에 하늘이에게 들킬 것이다. 방에 숨겨야 하나? 이걸 들고 있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의심 받을 것이다.

    “후...”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바라보던 고개를 천천히 숙인다.

    저 멀리 등대에서 걸어 나오던 이호철과 눈이 마주쳤다. 젠장. 여러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교차했다. 왜 또 나온 거지? 총은 어떻게 하지? 제기랄. 이호철이 나를 향해 걸어온다. 당장 이 권총만 들켜도 상당히 곤란했다. 지금은 등허리쪽에 껴놨으니, 뒤돌지만 않는다면... 들키지는 않을 것이다.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라앉히자. 결국 저 남자는 나에게 왜 죽으려고 하는지 그것을 다시 물으려고 온 것일 터. 어차피 지금은 내가 죽을 상황이 아니었다. 내가 지금 죽어서는 안 되었다. 내가 죽지 않는다고만 하면, 그가 나에게 뭐라고 할 여지는 없었다.

    오늘  밤에 누가 죽을지는 조금 문제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걸 내가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

    “생각은 좀 정리되셨습니까?”

    생각... 할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그게 중요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런 짧은 시간 안에 정리될 수 있는 생각이었다면, 그렇게 오랫동안 방황하지도 않았겠지.

    “아뇨. 딱히 정리 될 생각 같지가 않네요.”

    “그럼 그 이유는 말해줄 수 없는 건가요?”

    ... 제가 죽겠다고 한 이유. 그걸 말해야만 하는 겁니까? 굳이 왜...”

    “원하신다면 굳이 말하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왜 나에게 온 거지?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다만 당신이 희생하게 내버려두지는 않을 겁니다.”

    “만약에... 당신이 죽는다고 해도 말입니까?”

    ...? 뭐라는 거야? 자신이 나 대신에 희생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나를 살리겠다는 이유가 뭐지?

    “예. 오늘 밤에 제가 죽는다고 해도요.”

    기가 찼다. 나처럼 그가 죽고 싶은 것도 아닐 텐데, 저건 그저 아까 김재영이 말한 것처럼 하찮은 영웅 심리로밖에 보이질 않았다.

    “당신은 왜? 죽고 싶기라도 한 겁니까?”

    “도대체 누가 죽고 싶겠습니까? 저도 살고 싶습니다. 단지 남을 희생 시키는 행위 그것을 인정하지 못할 뿐입니다.”

    살고 싶다고? 그런데 인정은 못하겠다고? 죽고 싶은 것도 아니면서 뭘 안다고, 인정하니 못하니를 정하겠다는 거야?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는 건가?

    “누군가 희생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겉보기엔 숭고한 희생이라던지 그렇게 비칠 수는 있겠지만, 결국 그건 기만이고 살인 행위입니다. 차라리 무작위로 죽게 내버려두는 것이 낫습니다.”

    ...”

    누군가의 희생이 아니라 무작위로 죽자니, 그런 건 미친 짓이다. 누군가가 동의해주지 않는 혼자만의 생각에 불과할 것이다. 누군가 동의해준다고 해도 미친 짓이라는 것은 틀림 없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다들 이해해주었습니다. 굳이 당신이 희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김재영이 희생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범인만 잡는다면...”

    다들 그 미친 짓을 이해했다고? 전부 죽고 싶기라도 한 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머리가 아프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것을 어떻게 이해시킨 거지? 다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저 인간은 왜 이제 와서야 저러는 건지도 모르겠다. 허리에서 느껴지는 금속의 감촉에 집중도 되지 않는다.

    “근데 왜 아침엔 가만히 있다가 이제와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저도...”

    이호철이 갈라지는 목소리로 운을 띄우며 말을 잇는다.

    “살고 싶었습니다. 살고 싶은 마음에 그때는 차마 말하지 못했고, 김재영이 희생하려는 것을 내버려 두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당신까지 죽는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말리겠다는 겁니다.”

    “하아...”

    결국 또 하늘이 때문인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게 왜 문제되는 것인지. 왜 그게 더 낫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창고로 돌아가자. 머리가 아프다.

    나는 문에 기대었던 몸을 세우고는 뒤로 돌았다. 그리고는 문  고리에 손을 올렸다.

    “태성씨가 희생하겠다는 거예요?”

    희생? 아니 지금은 등허리에 있는 차가운 금속을 해결해야 한다. 희생 같은 걸 할 여유도 이유도 없었다. 지금은 오히려 내가 살아남아야 한다.

    ...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희생은 안 할 테니.”

    “하나만... 더 물어도 되겠습니까?”

    ... 뭐가 또 남은 거야.

    “또 뭐가 남은 게 있습니까?”

    “그 섬에는 왜 가려고 했던 겁니까?”

    ? 그것도 알아야 하는 건가? 뭐라고 대충 둘러대고 싶었지만, 그것을 숨기고 싶었지만, 생각하기가 귀찮다. 지금은 쉬고 싶었다.

    “메세지...”

    나는 그 섬에 가려고 했던 이유를 떠올리며, ‘메세지’라는 단어를 씹듯이 내뱉었다. 그리고 창고로 되돌아와 문을 세게 잡아 당겼다. ‘쾅’하는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나는 닫은 문에 기대어 앉아버렸다.

    괜히 말했나. 뒤늦게 후회가 밀려왔다. 저걸 물고 늘어질 경우, 모든 걸 들켜버릴 수도 있었다. 게다가 이걸 들은 것은... 저 둘만이 아니었다. 지금 이 안에 있는 하늘이도 들었을 것이다. 귓속에 들어있는 그것으로. 고개를 들어보니 역시나 하늘이가 나와 눈을 마주친다.

    ...”

    ...”

    2시까지 아직 30분이나 남았어. 기다려.”

    “쳇.”

    하늘이가 짧게 혀를 차더니, 고개를 휙 돌렸다. 은근히 알기 쉬운 느낌이 들었다. 역시 어리긴 어리다고 해야 하나, 유치하다고 해야 하나. 30... 그냥 솔직히 지금 말해도 별 상관은 없을 것 같았다. 30분 동안 뭘 생각한다고 별로 나아질 것도 없을 것 같은데. 그냥 빨리 끝내고 마음 편하게 있는 편이 나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굳이 앞당기고 싶지 않았다. 천천히 해도 충분하다. 어차피 범인을 찾을 필요도 없었다. 이 상황을 타개하는 것. 그것만 할 수 있다면 몇 초 만에 끝날 일이었다. 아니면 하늘이를 설득해야 하나? 그래. 그쪽은... 가능성이 낮긴 하지만, 도전할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생각하자. 하늘이가 했던 말. 뭐가 있었지?

    그래. 하늘이가 아까 자신이 이런 짓을 저지른 이유를 맞춘다면 이 상황을 끝내주겠다고 했었다. 하늘이는 대체 왜 이런 일을...

    “넌.”

    “네?”

    내 말에 하늘이가 다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빛나는 두 눈만으로도 나에게 무슨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네가 이런 일을 벌인 진짜 이유는 뭐야?”

    “그건 아까 했던 이야기 같은데요?”

    “그러니까 묻는 거잖아. 내가 말한 것이 아니라면 너의 진짜 의도는 뭐지?”

    “정답으로 쳐 준다고 하지 않았나요?”

    하늘이가 계속해서 말을 돌린다. 마치 그것에 대해 대답하기 싫다는 듯이.

    “하지만 그게 진짜 정답은 아니었잖아? 너의 진짜 의도는 뭐야?”

    “그냥 그걸로 해두죠. 그냥 심심해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궁금해서. 급박한 상황에 처했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사람들의 숨겨진 모습이 보고 싶어서 그랬다고 해둘까요. 그것도 틀린 건 아니니까요.”

    “그거랑 이 상황이 무슨 상관인데? 굳이 사람을 죽일 필요는 없잖아!”

    “아뇨. 상관있어요. 제가 생각하기에 사람은 죽음이 자신의 눈앞에 닥쳤을 때가 되어야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더라고요. 호철 오빠도 지금은 저렇게 나올지 모르지만... 내일 아침에도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아마 오빠의 행동도 바뀌겠죠.”

    그럼 지금 이호철과 나의 모습은 거짓되기라도 하다는 걸까.

    “지금 내 모습이 가짜라는 거야?”

    “그건 모르죠. 근데 바뀔 거라는 건 확신해요.”

    하늘이가 자신있다는 듯이 말했다. 그 모습이 조금 어이없게 느껴졌다. 이해되지도 않았다. 한편으로는 그 모습에 두려움마저 느껴졌다. 내일 아침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죽음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했지만, 하늘이가 오늘 밤 무슨 짓을 하려는 지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다. 저걸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

    “그러면, 내가 진짜 이유를 맞춘다면 그 때라도 이 상황을 멈출 거야?”

    ... 그건 안 돼요. 시간 초과니까요. 하지만 다른 건 유효해요. 그건 약속이었으니까.”

    유효하다는 건... 이 권총을 말하는 거겠지.

    “그래서. 오빠가 죽고 싶은 이유는요?”

    “아직. 10분 남았잖아?”

    “저도 질문에 대답했으니까 조금만 빨리 알려줘요.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죠.”

    그걸 대답이라고 할 수 있나... 아니 뭐. 딱히 상관은 없을 지도 모른다. 어차피 결국은 말해 줄 거였고, 하늘이가 나의 말에 마음이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니 말하기가 조금 편해졌다.

    “빨리 말해봐요.”

    ...”

    뭐라고 말을 시작하지?

    “하아... 간단하게 말하면 살기가 싫어서겠지.”

    “살기 싫어서요?”

    “그래. 살기가 싫어서 살 자신이 없어서.”

    그녀가 없는 이상... 더 이상 아무런 자신이 남지 않았다. 지금 이 짓도... 그렇고.

    “왜 살 자신이 없는 거죠?”

    “왜냐고?”

    자괴감. 상실감. 무력감. 그리고... 죄책감. 결국엔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나에 대한 죄책감.

    그것 때문이다.

    “소중한 사람이 죽었거든.”

    “어떤 사람이었는데요?”

    “그냥. 참견 잘하고.”

    아무것도 못하던 나에게 먼저 다가온

    “고집도 세고.”

    남들이 말려도 결국 기어코 해내는.

    “잘 웃는.”

    항상 미소가 떠나지 않던.

    “그런 여자였지.”

    ... 애인이었나요?”

    “그래.”

    나에게 그 누구보다 소중했던 여자였다.

    “그 사람이 그렇게 좋았나요? 따라서 죽으려고 할 정도로?”

    “글쎄. 원래는 동경에 가까웠는데. 매사에 부정적이고 우울하고 무기력한 나에게 먼저 다가와 이끌어준 버팀목 같은 애였으니까.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이겨내는 그 애를 보면서 동경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그 감정이 바뀌어 있더라.”

    어느 순간 그녀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그녀를 따라 미친듯이 노력해서 나름 옆자리에 설 수 있을 때, 그녀에게 고백해서 사귀게 되었어. 나도 그 애랑 붙어있으면 나도 그 애처럼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으니까. 같이 있던 시간도 오래되었으니, 그 애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고 말이야.”

    “그래서요? 그런데 왜 그 사람이 죽은 거죠?”

    “모르겠어. 아직도. 그걸 알기 위해 한참을 방황했는데. 그런데도... 사고로 죽었다고 밖에는 알 수 있는 게 없었어. 하지만 그건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을 거야. 그녀가 어느 순간 조금 변했다는 걸 알았을 때, 조금만 더 그 애를 위해 노력했다면, 그 애의 행동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아마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만 들어.”

    분명 뒤에 뭔가 있었다. 그런데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건 분명했는데, 나의 능력으로는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 했다는 그 생각에. 그 애를 잃었다는 자책감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

    “으~.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라니?

    “죽으려는 이유는 그게 단가요?”

    ...”

    “그 여자 분이 자기가 죽었다고 당신이 따라 죽기를 바라진 않았을 것 같은데요?”

    ... 그건 나도 알고 있다. 그 애가 어떤 성격인지 아는 나는 내가 그 애를 따라 죽겠다고 나서면 어떻게 행동할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나도 알아! 하지만... 그 애가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내가 그 애처럼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었다고! 나는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그 애를 지키지도 못했다고!”

    눈물이 시야 앞을 흐리게 만든다. 하늘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그 흐릿한 시야 사이로 하늘이가 문으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하늘이는 문을 열고선 말했다.

    ... 그래서 따라 죽겠다고요?”

    ...”

    “여자를 따라서 죽겠다니 한심하네요.”

    “그만해.”

    “방금 전의 이호철의 말이 떠올라요? 희생 시키는 건 결국 살인행위랑 다를 바 없다는 말?”

    ...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그 남자 말대로라면, 당신은 그 여자를 살인자로 만들겠다는 거군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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