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화하는 병은 아마도 2000년도 초반에 버디홈피를 꾸미면서부터였던거 같아요.
초반에는 그저 무작정 퍼온 글들을 정리하는 정도였어요.
그러다가 홈피의 사진첩과 게시글을 다 지우고, 나중에는 방명록을 지우게 됬죠.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그 지저분한(?) 기분을 참을 수가 없었거든요.
하지만 이 때는 별로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버디버디 친구들은 거진 다 학교 친구들이었고
다른 학교 친구들도 종종 전화나 편지(21세기에 참 어울리지 않는 수단이지만;)로 나름 꾸준히 연락을 주고 받았거든요.
그리고 네이버 블로그로 친구들과 덕질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저는 블로그 업데이트를 꾸준히 하는 편이었어요. 홈피를 꾸몄을 때처럼 퍼오는 글도 많았고, 제가 쓰는 글도 많았죠.
그렇게 온라인 상에서 친분을 쌓은 사람들도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다고도 말할 수 없었는데...
문제는 저 초기화 하는 병(?)이었어요. (이걸 뭐라고 명칭해야할지 모르니 리셋병이라고 하죠.)
정말 1년에 단 한번도 초기화를 안한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게시글만 깨끗하게 지우던게, 나중에는 블로그 초기화로 이웃까지 지워버리고, 그 다음에는 아예 아이디를 바꾸게 됬죠.
그렇게 바꾼 아이디가 지금까지... 몇개더라.
기억이 안나는 것들도 있어서 잘 모르겠지만 지금 기억나는 아이디만 해도 열손가락을 채우네요.
인터넷 상에서 만난 친구들과 문제가 있어서 그런건 아니었어요.
그냥 단순히 모든걸 갈아엎고 싶었어요.
블로그에 글이 10개 이상이라도 되면 왠지 근질근질해지고 아이디를 바꾸고 싶었죠.
그렇게 게시글을 지우고 아이디를 바꿔버리면 속이 시원하면서도 꼭 후회를 해요.
인터넷에서 만난 사람들이랑 교류하던 흔적들과 내 이야기들이 그냥 클릭 몇번에 모두 날라가버린게 되버리니까요.
그런데 그게 또 시원하기도 해요. 클릭 한번에 다 날라가 버리니까 모두 없던게 되는 것 같아서 마음도 편해지구요.
근데 그게 네이버에서만 이러는거면 상관없는데
트위터나 페이스북같은 sns에서부터 카카오톡같은 것들이 생겨나면서 더 복잡해졌어요.
특히 구글계정은... 만들고 지우거나 잊어버린 계정들이 도대체 몇개인지...
게임 캐릭터같은 경우도 열심히 키워봤자 소용 없어요.
금방 다시 레벨 1부터 키우고 싶어서 온몸이 근질근질 하거든요.
이렇게 리셋병이 점점 다른데로 번져가니까 너무 피곤해요.
낙서장에 그림을 그려도 마음에 안들면 첫페이지부터 여태까지 그렸던 페이지까지 찢어놔야 속이 시원하고
컴퓨터도 백업파일이 남는 것 마저 싫어서 백업 설정은 아예 꺼놓고
언젠가는 아무 이상도 없는데 컴퓨터를 포맷해버렸죠.
물론 이정도이니까 폴더에 저장해놓고 일주일간 살아남아 있는 문서, 사진, 음악, 동영상 파일들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셔도 무관합니다.
...
이렇게 말해놓고 나니 또 집에 돌아가자마자 컴퓨터 폴더를 싹 정리해버리고 싶네요.
아무튼, 이렇게 자주 리셋하는게 너무 싫어요.
예전에 만났던 지인들이랑 다시 네이버 블로그로 교류하고 싶고
게임할 때도 진득히 캐릭터 하나 잡고 열심히 키우고 싶고
좋아하는 사진같은것도 폴더 안에 차곡히 정리해서 생각날때마다 꺼내보고 싶기도 하고
좋아하는 앨범도 저장해놓고 듣고 싶고...
근데 리셋을 안하면 너무 근질근질하고 불편해요. 로그인 할 때마다 신경쓰이고, 회원가입창을 몇번 눌러보기도 하고.
실은 이 아이디도 오유에서 세번째 만든 아이디입니다.
오유를 시작한지 아직 1년도 안됬다고 생각하면 정말 짧은 시간에 갈아치운다고 생각하시지 않나요?
이런 글을 쓴 이유는... ㅡㅡ 제가 네이버 블로그랑 넥슨 아이디를 또 갈아치운 뒤에
오유 게시글과 리플들도 싹 갈아치우고 난 뒤 또 후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글을 안남기고 활동을 하면 좋을텐데. 그런데 또 이렇게 글을 쓰고 싶고 교류도 하고 싶어요.
근데 조금만 채우면 바로 지우고 싶고... 어떡하죠?
글 다 쓰고 나니까 또 다 지우고 싶네요.
어떡하긴 뭘 어떡해! 지워야지!
근데 지우고 싶지 않아요. 으아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