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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의 부친 신상묵(1916~ 1984)씨가 일본군 헌병 오장(伍長·하사)이었다고 17일 발매될 시사 월간지 신동아 9월호가 보도했다. 신동아에 따르면 신상묵씨는 1938년 3월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전남 화순군 청풍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1940년 일본군에 지원, 조선총독부 국군병 지원자 훈련소에 입대했다. 신동아는‘시게미쓰 구니오(重光國雄)’로 창씨개명한 신씨는 훈련소를 수료한 직후인 같은 해 11월 8일 반도호텔에서 일본군 지원병 수료생 자격으로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좌담회에 참석했고, 매일신보는 이 좌담회를 같은 해 11월 30일부터 8회에 걸쳐 연재했다고 보도했다. 신동아는 신씨의 이름이 들어 있는 일본군 지원병 합격자 명단, 창씨개명한 기록이 담긴 일제시대 신씨의 호적자료, 신씨의 이름·출신지역·출신학교·나이가 기록된 매일신보 좌담회 기사를 공개했다. 당시 매일신보 보도에 따르면 신씨는 좌담회에서 "나는 반다시(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절대로 복종하야(해야) 되겟다는(되겠다는) 정신수양을 하게 되엇습니다(되었습니다)"라고 입대소감을 밝혔다. 신씨의 대구사범학교 5기 동기생인 송재천씨는 “1943년 6월 충북 옥천 죽향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할 때 일본군 오장 군복을 입은 신씨가 말을 타고 집으로 찾아와 ‘일본군 헌병으로 근무하고 있다. 일본군 징병 기피자들을 찾고 있는데 정보가 있으면 가르쳐 달라’고 해 ‘모른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대구사범대학 동기생인 송성욱씨는 "신씨는 교사 경력이 있어 일본군에 들어간 뒤 헌병이라는 좋은 보직을 받았고, 광복 직전엔 조장(상사)으로 진급해 부산에 근무했다"는 얘기를 동창에게서 들었다"고 말했다. 대구사범 동문회지도 “신씨가 교사에서 경찰관이 되기 전까지 기간에 군인으로 활동했다”고 기록했다. 신씨는 광복 직후인 1946년 경찰에 투신해 서남지구전투사령관등을 역임했다. 한편 신 의장측은 "가족에게 확인한 결과 전혀 사실이 아니다"면서 "이 보도는 소설이다. 내용을 보고 나서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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