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붙었지만 왠지 모르게 허전해요.
수도권 쩌리 대학이지만 제 성적에 비하면 과분한 대학인데도....
창피해서 친구들이고 선생님이고 얘기를 못했어요.
똑똑한 척, 잘난 척 다 해놓고, 그렇게 부모님 속 썩여놓고 난 결과가 겨우 이거구나..
제 자신이 이렇게 창피하고 초라해 보인 적은 처음이에요.
부모님께 말씀드렸지만 역시나 별 말씀 없으시네요.
아빠에게서는 연락 한 통 안왔구요.
그래도 고생했다, 앞으로는 더 열심히 해라, 한마디 정도는 기대했지만 역시나 저의 욕심이었던 것 같아요.
그 동안 부모님이 저한테 기대하고 투자한거에 비하면 이 결과는 정말 초라할 뿐이에요.
그게 너무 미안해서 저는 감히 부모님께 격려해달라는 부탁을 할 수가 없어요.
워낙에 부모님이나 친척들이나 어렸을 때부터 저한테 건 기대가 많았어요.
특히 부모님은 연년생인 오빠보다 저를 더 많이 신경쓰고 큰 기대를 거셨죠.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ㅎㅎ 반 일등도 도맡아 하는 나름대로 자랑스러운 딸이었는데.
고등학교 올라와서 무기력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면서 성적이고 뭐고 아예 놔버렸거든요.
그나마 좋아하던 글쓰기를 우연찮게 배워서 꾸역꾸역 백일장 대회에 나가서 겨우 상 하나 타오는 게 전부였어요.
부모님, 저한테 안 해주신게 없어요.
좋은 옷, 좋은 음식, 학원, 과외 등등등... 그 동안 너무 많이 받았죠.
그런데 자꾸 저는 실망만 시켜드리고, 공부는 거들떠도 안보고, 방 안에 틀어박혀서 히키코모리처럼 살았어요.
똑부러지던 애가 저렇게 아무것도 안하고 멍청하게 늘어져만 있으니, 우리 엄마아빠, 얼마나 답답하셨을까요.
누구한테 구구절절 본인 얘기 늘어놓는 성격도 아니라서, 부모님은 그저 수년 동안 제가 왜 저러는 지 알지도 못한채 빚까지 내가면서 저에게 수백만원, 수천만원을 쏟아부으셨어요.
심지어 저는 제가 좋아서 하겠다는 글쓰기 마저 제대로 하지 않았어요.
부모님은 서울부터 땅끝마을까지 각지 지방에서 열리는 백일장 대회에 매번 수십만원을 감당하며 꼬박꼬박 데려다주셨는데 말이에요.
(그게, 정말 변명같지만, 그리고 지금도 그렇지만, 무기력하다는 건 정말 너무 끔찍한 일이에요. 저의 가장 큰 적은 다름 아닌 바로 저였어요. 전 여전히 제 스스로를 이기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겨우 수 십 개의 대학에서 상 몇 개를 타고, 수시를 넣고, 어찌저찌 해서 대학에 합격했네요.
그동안의 저의 생활 태도를 보자면 지금 이 학교도 저에게는 충분히 과분해요.
저는 종종 나를 합격시키는 학교가 있다면, 당장 그 학교의 입학처를 갈아엎어야 한다고 스스로 비웃곤 했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저에게 대학생활이라는, 그래도 좀 더 활기차고 새로운 환경이 주어졌다는 것에 너무너무 감사해요.
다만, 단 하나. 부모님께 너무너무 죄송해요.
그렇게 끝까지 자랑스러운 딸이라고, 똑똑하고 멋진 딸이라고 믿어주시는 부모님께 실망만 안겨드렸다는 것이요.
집에 오실 때 맛있는 거 사가지구 와주세요~ 하는 애교스런 부탁도 못하겠어요.
저는 스트레스 받을 때 맛있는 거 먹으면 풀리는데, 그래서 지금 족발이 너무 먹고 싶은데 차마 아빠에게 전화 할 수가 없네요.ㅎ...
아직 누구한테도 제대로 된 축하를 받지 못해서, 그래서 조금 기운 빠진 것두 있고 해서.
그나마 제가 믿고 맘 편히 털어놓을 수 있는 오유에다가 글 한 번 써봤어요.
너무 긴 글이라 안 읽으시는 분이 더 많을 것 같네요.ㅎㅎ
그래도 축하해주신다면 정말 감사할 것 같아요.
오유분들, 모두 행복한 저녁 시간 되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