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7일은 독일이 제 2차 세계 대전 패전 60주년을 맞는 날이다.
독일 정부는 이날을 맞아 독일의 수도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광장에 제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이 학살한 유대인 600만여 명을 추모하는 대형 조형물을 제막할 예정이다.
독일의 과거사 청산의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1970년 12월에 일어났다.
폴란드는 독일의 이웃국가였던 탓에 수백년간 독일의 식민지배를 받으면서 폴란드어 사용이 금지되는 등 온갖 고초를 겪어야 했으며 독일이 제 1차 세계대전에 패하면서 1919년에 독립했으나
독일은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면서 폴란드를 다시 침략하였으며 폴란드에 전에 볼수 없이 큰 만행을 저질렀다.
독일의 동방진출을 항상 방해한 열등민족인 폴란드를 섬멸하기 위해 폴란드 전토를 잿가루로 만들고 폴란드 국민을 말살하려고 하였다.
이 때문에 폴란드 국민의 마음에는 독일에 대한 깊은 증오심이 자리잡고 있었다.
1970년 12월 브란트 독일 총리가 폴란드를 방문하려고 했을때 폴란드 국민들은 모조리 적개심을 품고 브란트 독일 총리가 오는 것을 반대하였다.
그런데 폴란드를 방문한 빌리 브란트 당시 총리가 43년 유대인의 봉기와 학살이 있었던 바르샤바 게토의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폴란드 관계자들은 물론 브란트 총리의 수행원들도 놀랐다.
무릎을 꿇은 브란트 총리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사죄의 말을 했다.
브란트 총리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보고 폴란드 국민도 뜨거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이 사건이 바로 유명한 ‘브란트의 무릎꿇기(Kniefall in Warschau)’이다.
이 장면은 사과와 보상에 적극 나서겠다는 독일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으며
제 2차 세계대전 종전이후 국교가 단절되어 있던 독일과 폴란드와의 국교 정상화의 밑거름이 되었으며 이 장면을 지켜본 폴란드 국민의 마음에 응어리 졌던 감정의 앙금은 상당히 해소될 수 있었다.
그 후 브란트 총리가 무릎을 꿇었던 바르샤바의 유대인 희생자 위령탑 앞 광장은 "빌리 브란트 플라츠"로 명명됐다.
독일 정부는 그동안 과거사에 대한 사죄와 참회를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왔다.
한 국가의 최고지도자가 무릎을 꿇는다는 장면은 과거 봉건 군주시대 때 전쟁에서 패하고 항복했을 때를 제외하고 근현대사에서 볼 수 없는 일이다.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 이처럼 사죄하고 참회한 것은 이후 독일이 제 2차 세계대전 중 침략하고 엄청난 피해를 끼쳤던 유럽 각 국과의 신뢰를 회복하고 화해를 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특히 독일 정부는 지난 1995년 1월27일에 인간이 저지를 수 잇는 가장 끔찍한 만행이 저질러졌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해방 50주년을 맞아 이날을 과거의 잘못을 기억하는 날로 공식 지정했다.
독일 정부는 지난 2000년에는 나치에 끌려가 강제노역을 한 개개인에게 국가가 배상하는 기관인 "기억, 책임 그리고 미러재단"을 발족했다.
또 독일 정부는 이스라엘에 250억 마르크를 국가 배상금으로 지급했으며, 나치의 피해자 및 희생자 유가족에게는 150억 마르크를 별도로 지급했다.
호르스트 쾰러 독일 대통령은 지난 2월 2일 독일과 이스라엘 수교 40주년을 맞아 이스라엘 의회를 방문, 독일이 유대인에게 저지른 범죄를 반성하고 용서를 빌면서 눈시울을 적셨다.
요슈카 피셔 독일 외무장관도 지난 15일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서 거행된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역사 박물관 개관식에서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기념식같은 제 2차 세계대전 연합국 승리의 분수령이 된 각 전투의 기념식은 승전국만의 잔치는 아니었다.
이 자리에는 패전국인 독일의 대표단도 참석해있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전쟁 중 독일의 침략을 받아 독일과 싸웠던 유럽 각국의 승전국들은 "우리에게 독일이라는 이웃국가가 있다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다." 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처럼 독일은 제 2차 세계대전 후 자진해 사죄, 반성하고 배상했으나 일본은 사실 인정마저 거부하고 있는 현실이다.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패전 후 60만에 만에 최초로 오는 6월 남태평양의 미국령 사이판을 찾아 일본군 전몰자들을 추모할 계획이다.
극우신문인 〈산케이〉(産經)는 일왕의 사이판 방문 소식을 전하면서 “종전 50주년인 지난 1995년 폐하는 오늘날 우리나라가 향유하고 있는 평화와 번영은 많은 이들의 희생 위에서 이뤄진 것임을 깊이 마음에 새겨야 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아키히토의 가슴속에는 자국민들이 희생당한 것만 남아있는 듯하다.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숨져간 수많은 이웃나라 희생자들의 넋은 누가 기려야 하는가. 아키히토 일왕은 1990년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할 수 없다”는 수사적 표현으로 사과만 했을 뿐 이웃국가의 희생자들과 그 유족의 슬픔은 안중에도 없을 뿐이다.
올해는 제 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의 침략을 받아 수탈을 당했던 우리 나라와 다른 수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고통으로 해방된지 60년이 된 해이다.
또 을사조약이 강제로 맺어진지 100주년이며 한일 국교 정상화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런데 지금 독도의 영유권 주장과 역사교과서 왜곡으로 한국에서 반일 감정이 극에 달하고 있다.
아키히토 일왕을 비롯해 일본 지도자들은 진정한 우정은 과거사에 대한 진솔한 반성으로부터 시작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겨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댓글 분란 또는 분쟁 때문에 전체 댓글이 블라인드 처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