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해 죽겠네...”
초소벽에 삐딱하게 기대어 있던 나는 크게 하품을 하며 중얼거렸다.
전역까지 며칠 남지도 않았는데 야간 근무를 서게 될 줄이야.
전역을 며칠 앞두고 부대에 큰 훈련 일정이 잡혀 버렸다.
전역 직전에 훈련을 뛸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에 중대장님께 애걸복걸한 결과
이번주에 막 들어온 신병들과 함께, 경계근무 명목으로 부대에 남게 되었다.
훈련에 빠지는건 좋았지만 막상 야간근무를 나오니 짜증이 일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병에게 경계를 몽땅 맡기고 잠을 잘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졸지도 못하고 이렇게 툴툴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야 뭐 재미있는 얘기 없냐?”
내 옆쪽에서 긴장한 표정으로 전방을 주시 하던 신병은 화들짝 놀라며 대답 했다.
“재미있는 이야기 말씀이십니까?”
“그래. 지금 나 피곤해 죽겠다고. 잠이 확 깰만한 재미있는 얘기 좀 해봐.”
내 말에 신병은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잘 모르는데... 무서운 이야기는 어떠십니까?”
무서운 이야기라니 제법 흥미가 생겼다.
“오. 그것도 좋지. 자! 어디 한번 잠이 확 달아날만한 무서운 이야기를 해봐.”
신병은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사실 제가 귀신을 볼 수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말이 튀어 나왔다.
신병은 내 표정을 슬쩍 살피고는 말을 이었다.
“저희 외가가 무당을 하셔서 그런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귀신이란 놈들 대부분 그 모습이 말도 못하게 소름끼칩니다.
머리가 없는 귀신. 사지가 잘린채로 굴러다니는 귀신.
눈알이 없는 귀신. 입 찢어진 귀신. 난도질 당한 귀신. 정말 끔찍합니다.
처음 보면 일주일간은 입맛이 싹 달아날 정도입니다.”
신병은 소름끼치다는 듯이 몸을 과장되게 부르르 떨었다.
“제가 부대 들어와서 놀란게 뭔 줄 아십니까?
부대 안에는 귀신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밖에선 정말 간혹 가다가 한 마리씩 보였는데 여긴 사방에서 귀신이 튀어 나옵니다.
처음 부대로 들어오니 연병장 한가운데에 수십개의 사람 머리가 뒹굴거리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하나같이 웃는 얼굴로 저를 쳐다보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생활관에 들어갔는데 웬 어린애 하나가 거미 마냥 바닥을 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말입니다.
그리고 취사장 앞쪽 나무에는 여자 한명이 목을 매달고 흔들흔들 거리고 있었습니다.
혀를 허리까지 쭉 내민 채로 말입니다.”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늘 봐오던 장소에 그런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어느새 잠은 저 멀리 달아난 상태였다.
난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재미있네. 그래서 지금 여기도 뭐가 보여?”
신병은 조용히 주변을 둘러봤다.
난 긴장한 채 내심 ‘없다’라는 대답을 기대했다.
“네. 있습니다.”
신병은 초소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을 가만히 응시하며 말했다.
“여학생인 것 같습니다. 자주색 반팔 교복을 입고 있습니다.
교통사고라도 당한 것처럼 피투성이 고, 한손에 작은 인형이 달린 휴대폰을 들고 있습니다.
명찰에 이름이 써있는데, 이름이... 정수진입니다. 그리고....”
신병의 설명을 듣고 있던 나는 잊혀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철없던 학생 시절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다가 미처 보지 못한 소녀.
자주색 교복에 한손에 인형이 달린 휴대폰을 들고있던...
설마하던 그때 신병이 말을 이었다.
“김병장님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습니다.”
난 등줄기로 한줄기 땀이 흐르는걸 느끼며 기억을 더듬었다.
피 묻은 이름표에 써있던 이름 정수진. 확실히 정수진이란 이름이었다.
급히 달려온 구급차가 그 아이를 병원으로 옮겼지만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고 말았다.
미성년자인 탓에 비교적 가벼운 처벌만을 받은 나는 유가족들에게 무릎 꿇고 사과했다.
죄송하다고, 잘못했다고, 울면서 정신 차리고 정말 착실하게 살겠다고 다짐을 했다.
하지만 일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이 모든 기억들은 점차 지워져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정말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 여자아이는 그런 날 원망하며 지금까지 날 따라오고 있는 것일까?
난 떨리는 목소리로 신병에게 물었다.
“그... 그말 진짜야?”
신병은 잠시 내눈을 바라보다가 작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거짓말입니다. 귀신을 본다니 말이 안되지 않습니까?
그냥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저희 외가는 그냥 농사 지으셨습니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빌어먹을 자식 나를 놀리다니.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냥 지어낸 이야기라기엔 신병이 말한 학생이 내가 죽인 그 아이의 모습과 너무나 똑같았다.
그러고 보니 저 녀석 얼굴 어딘가 익숙하다.
난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신병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 이름이 뭐랬지?”
신병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병 정수민. 이제야 기억나셨습니까? 이런데서 다시 볼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신병은 날카롭게 갈린 쇠붙이를 꺼내들며 이어서 말했다.
“정수진은 제 친동생 이름입니다.”
by. neptun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