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퇴근하니 아홉시다. 좀 씻어야겠다.
오늘도 직원들의 눈을 피해 김부장의 손은
내 하나뿐인 정장치마 위로 올라왔다.
"이래서 뽑았지."
머리카락을 말리며 컴퓨터를 켠다.
오늘은 누구의 이름을 노트에 적어볼까.
김부장은 이제 시시하다.
페이스북에 들어가 봐야지.
모르는 사람을 골라야겠다.
마침 고등학교 동창의 글이 뜬다.
여우같았던 계집애.
댓글창을 보니 여전히 주변에 남자가 많다.
이 중에 골라볼까.
"김중훈"
1987년 4월 15일 생.
조소 띈 곱상한 얼굴의
프로필 사진이 마음에 든다.
4년제 대학을 나왔다.
여자친구가 있는 모양이다.
며칠 전 올라온 생일 축하 글들이 가득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나보다 행복하다.
합격이다.
하루에 하나씩 증오의 대상이 필요하다.
이토록 왜곡된 세상에서 살아남는 나만의 방법이다.
내 부모는 죽는 그 날까지 미웠다.
다만 그 날의 사고는 밉지 않았다.
그들의 속박이 미웠다.
자유는 미운 것이 아니었다.
내 빨간색 노트를 펴고 김중훈 세 글자를 적는다.
나는 이 남자가 밉다.
혼자 한 칸 짜리 방에 앉은 외로운 나보다
행복한 사람이다.
고졸에 초라한 직장에 다니는 나보다
행복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증오한다.
이유를 끝도 없이 댈 수 있다.
하루종일 더럽혀진 감정이 풀릴 때까지가
이 무차별적인 증오의 끝이다.
다음날도 내 노트의 주인공은 김중훈이다.
이 남자의 인생은 너무나 행복하다.
근사한 식사, 행복했던 여행의 추억,
연인과의 아름다운 사랑.
어떻게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인간의 속내는 모두 추악하다.
이 남자를 아는 모두가 그를 미워하고 있을 것이다.
내 인생은 사진 속 그의 그림자처럼 어둡다.
커피를 타고 종이를 채우는 것이
지루한 내 일상의 전부다.
바람 한 점의 새로움도 없다.
이 인간만이 질리지 않는 단 하나의 일상이다.
머릿속에서 수 천 번을 짓밟아도 다시 살아난다.
며칠이고, 몇 주고, 몇 달이고.
그런데 왜일까.
오늘도 TV앞에 놓인 작은 앉은뱅이 책상 위로
노트를 펴는데,
맞은편 구석에 놓인 선인장이 보인다.
언제부터 저기 있었지.
물을 준 기억이 없다.
아무런 관심도 기대도 받지 않은 채로 그저
그 자리에 살아있다.
갑자기 나의 심장박동 소리가 귀에 울려온다.
새삼스럽다.
나한테도 심장이 있었나.
맞은편 벽의 벽지무늬가 눈에 들어온다.
원래 저기에 꽃이 있었나.
차가운 바닥에 엉덩이가 시려온다.
모든 것이 견딜 수 없이 선명하다.
당장 뛰쳐나가지 않고서는 여기서 죽고 말겠다.
다만 나는 목적지가 필요하다.
어디로도 가고 있지 않은 느낌은 정말 싫다.
목적지는 김중훈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 핸드폰에 알림이 뜬다.
그 인간의 페이스북에 새로운 글이 있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다.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 술집이다.
길을 나선다.
그 인간의 얼굴을 보면 분명히 미울 것이다.
너무나 미워서 며칠 간 노트를 펼 일도 없겠지.
술집 앞을 기웃거린다.
안에 없다.
가게 옆 한 발짝 들어간 골목길에서 토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 그 사람이다.
내 손이 그 사람의 등을 두드리고 있다.
왜 혼자 이러고 있는 거지.
얼마나 마신거야.
근처의 모텔로 들어간다.
그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얌전히 따라와 침대에 눕는다.
콧대가 높다.
발이 꽤 크다.
그를 쳐다보는데,
밉지가 않다.
귓가에 또다시 심장박동 소리가 들리고,
나는 견딜 수가 없다.
무엇이든 해야만 한다.
싸구려 탁상 위에 꼴에 장식이라고 화병이 놓여 있다.
그는 빨간 색 침대에 누워 있고
맞은편 거울에 내 얼굴이 비친다.
나는 늘 갖고 다니는 조그만 칼을 꺼낸다.
미워해야만 하기 때문에.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야만 한다.
하루에 하나씩 증오의 대상이 필요하다.
이토록 왜곡된 세상에서 살아남는 나만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