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The boy'라는 제목의 영화를 보다가 십수년 전 잊고 살았던 일이 떠오르고 말았습니다.
제가 어릴 적 살던 동네엔 매일 집 앞에 나와서 하는 일 없이 인형을 안고 의자에 앉아 계신 아주머니 한 분이 있었는데,
어릴적에 그 분위기가 꽤 음산하고 무서워서 동네 사람들도 미친여자라고 근처에 가지 않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학교에 다녀오는데 그 아줌마 집 앞을 지나게 되었고
아줌마가 여느 때처럼 의자에 앉아 계셨습니다. 한 손엔 아이 인형을 들고 말이죠.
막 아줌마 옆을 지나려는데 아줌마가 갑자기 저를 불러 세우더니
" 얘 너 이거 먹어라. " 하면서 당시에 팔던 팥고랑을 주시는 겁니다.
과자보단 일단 아주머니 눈이 너무 무서워서
" 네, 감사합니다 " 라고 하고 받아든 후에 무서워서 냉큼 도망쳐서 집에 왔습니다.
어머니는 받아든 과자를 보시더니
" 너 용돈도 없을텐데 그건 어디서 생겼어? " 물으시길래
" 동네 미친 아줌마가 줬어 " 라면서 바닥에 과자를 내팽개쳤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갑자기 표정이 변하시더니
" 미친 아줌마라니 그렇게 못된 말 쓰는 거 아냐. " 라면서 꾸짖으시더군요.
전 제가 좋아하는 과자도 아니고, 괜히 아줌마가 준 건데 아줌마 이야기를 했단 생각에 짜증이 좀 났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아줌마와 만났던 장소를 지나치는데 아줌마가 눈에 안 보이더군요.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계속...
그리고 어느 토요일에 레슬링을 보기 위해 거이 뛰다싶이 집까지 달려가선
티비를 막 켜고 친구들과 라면 물을 끓이다
어머니께 별 생각없이 물었습니다.
" 엄마 매일 보이던 그 미... 아니 그 아줌마 안 보이던데? "
엄마가 잠시 머뭇하시더니
" 응... 그 아줌마 돌아가셨어... "
" 뭐? "
친구들이 돌아가고... 어머니와 둘이 남았을 때 여쭤봤습니다.
" 엄마 그 아줌마 왜 돌아가셨는데? "
어머니가 나지막하게 말씀하시길
" 그 아줌마 미친 아줌마 아니야. 마음이 많이 아파서 그래. 엄마랑도 가끔 이야기 했는데
너 태어날 때쯤 그 아줌마도 아이가 있었어... 그러니까 "
라더니 말을 끝까지 안하시더군요.
그러시더니 " 넌 아직 어리니까 알 필요 없어 아줌마 욕하면 안 돼. " 라면서 말을 끊으셨습니다.
십 수년이 지나고 우연히 The boy란 영화를 보고 나서 오랜만에 어머니가 집에 찾아오셨길래
문뜩 떠올라서 " 엄마 예전에 동네에 살던 그 미친 아줌마 있잖아 "
" 누구?... 아... "
" 응 근데 그 아주머니 왜 미친 거야? "
어머니가 한숨을 쉬시더니
" 그 아줌마 미친 거 아냐. 우리 달동네 살던 시절에 동네에 족제비가 많았는데, 그 때 애엄마가 잠깐 반찬한다고 방안에 애를 뒀는데
족제비가 창문타고 들어와서 애 물어 죽인 거야... "
" 듣기론 애엄마가 방에 들어갔을 땐 이미 애의 입과 코를 꽉물고 애는 컥컥 거린 거 같긴 한데
음식 끓는 소리에 애엄마는 그 소리를 못 들은 거야
애엄마가 놀라서 물건을 막 던지니까 그때서야 입에 물었던 애기 얼굴을 놓았는데
애는 이미 질식으로 죽었다고 하더라 "
" 그 후에 애엄마가 병원도 다니고, 경찰 진술도 하고, 다 사실로 밝혀졌는데도 엄마 심정은 그게 아닌가보더라구
멀쩡하고 착한 사람이었는데, 점점 더 이상해지더니 나중엔 그렇게 볕이나 째면서 인형을 안고 있더라구
불쌍한 사람이야 "
그 얘기를 들은 후, 어렸지만 아주머니 옆을 지나갈 때면 무섭다고 생각했던 제가 후회되더군요.
친구들끼리 뛰어놀다 아줌마 이야기가 나오면 미쳤다고 수근거렸던 제 자신이 아무리 어렸다지만 지금도 용서가 안 되구요.
지금은 하늘에서 편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