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배지 관련 발언을 듣고 기가 차서 밤을 새서 썼습니다.
이재명 시장이 경선에서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대한민국 민주당 정치인으로서,
표현상의 실수라면 정중히 사과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의로움을 독점하려는 이재명 시장님께]
‣ 파시스트 = 진리를 독점하려는 자
‣ 정의로운 사람에게 달려 있어야 할 배지의 개수는?
‣ 진보도 강박이 되면 진상이 된다.
“오늘 보니까 다들 세월호 배지 달고 나오셔서 일면 다행이다 생각합니다. 필요할 때만 떼었다가 붙였다가 이런…”
3월 26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경선토론회에서 이재명 성남시장이 최성 고양시장에게 한 말이다. 세월호 추모 배지를 달고 안 달고의 문제를 같은 당 후보에 대한 정치적 공격의 소재로 삼은 것. 정의의 사이다 이재명이 이런 저열한 공격을 했을 리가 없다. 뭔가 깊은 뜻이 있겠지.
“일관성을 이야기 한 것이다.”
일관성? 좋다. 선한 의지로 봐 주자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해결 의지를 촉구하는 발언이라고. ‘배지의 탈부착’을 ‘세월호에 대한 관심의 있고 없음’에 비유한 은유적 표현이자 정치적 수사라고.
가만있자. 은유적 표현!? 정치적 수사!? 도대체 어떤 감수성으로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아야 이런 천박한 은유적 표현이 가능할 것이며, 어떤 접근법으로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아야 이런 정치적 수사가 가능할 것인가.
세월호 배지에 대한 강박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라면 저런 은유는 불가능하다. 자신이 세월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남들이 알아주기를 병적으로 갈망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배지는 곧 관심, 관심은 곧 배지’라는 식의 단순무식한 판단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더 큰 문제는 자신만의 절대적 도덕관념이라는 그 강박적 잣대를 자신이 아닌 남에게까지 들이댔다는 것. ‘선한 잣대’가 빌어먹을 ‘폭력적 잣대’가 되는 것은 바로 그 지점에서다.
진보도 강박이 되면 진상이 된다.
배지가 세월호 참사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는 일종의 선한 액세서리의 기능을 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상징에 불과한 액세서리로 세월호 참사에 대한 관심의 척도를 함부로 재단하는 순간, 세월호 참사 그 자체가 액세서리화 되어 버리고 만다. 세월호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고 힘을 합쳐 끝까지 진상을 규명하자는 의도의 주장이 아닌, 나는 이렇게 세월호에 관심이 많은데 너희들은 나와 비교하면 그렇지 않다는 식의 이 오만한 도덕적 폭력 앞에서 타인의 죽음은 곧 특정 정치인의 정치적 액세서리로 변질 되는 것이다.
이 시장의 비뚤어진 세월호 강박증은 지난 해 9월 ‘지방교부세법’ 공개변론을 앞둔 헌법재판소 앞에서의 기자회견 자리에서도 드러난다. ‘이재명 노란리본 지겹다는 여성에게 버럭’ 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이 영상을 보자. 이 시장에게 ‘노란 리본 좀 안 달면 안돼?’라고 말한 여성에게 이 시장은 이렇게 말한다. ‘내 자식과 남의 자식이 왜 다릅니까? 같은 사람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죽었는데 저런 소리를 합니까?’ 여기까지는 좋다. 시원하다. 그런데 그 후에 한 말을 더 들어보자.
“본인의 자식이 그 일을 당할 날이 있을 겁니다.”
이건 시원함의 범주를 넘어섰다. 오싹하고 섬뜩하다. 저주에 가깝다. 여기서 바로 그 강박적 정의 과잉을 읽어낼 수 있다. 정확한 워딩을 다시 읽어 보자. '본인의 자식이 그 일을 당해도 그럴 겁니까?' 가 아니다(다들 그 당시에 들었을 때는 이렇게 듣고 넘겼을 것이다). ‘본인의 자식이 그 일을 당할 날이 있을 겁니다.’ 다시 말해 ‘니 자식도 그렇게 죽을 겁니다’라는 말 아닌가? 달리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단순히 ‘정의를 수호하려는 남다른 열정을 가진 사람’ 정도로 여기고 넘어 갈 수 있겠는가? 난 도저히 못 그러겠다. 특히 이 자가 대통령이 되려는 자임을 고려할 땐 더더욱 못 그러겠다.
영상이 화재가 되었을 당시에는 ‘세월호가 지겹다’고 말한 저 여성의 패륜성과 반인륜성에 이 시장의 ‘도 넘은 저주’가 가려졌던 것일 뿐(더군다나 링크 첨부퇸 오마이뉴스 영상을 제외한 다른 영상에는 이 시장의 마지막 발언이 편집되어 있는 것이 대다수다. -비디오머그 등-), 이 시장의 내면에는 이미 ‘비뚤어지거나 과잉된 정의감’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최근 문제가 된 토론을 통해서 ‘정의에 대한 독점욕’으로 발전되어 드러난 것은 아닐까.
파시스트 = 진리를 독점하려는 자
(세월호 추모 공원이 성남시청에는 있는데, 고양시청에는 없다는 사실로 우리가 어떤 결론을 내리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길 빈다. 이런 해괴한 논리를 무의식 중에 토론에서 뱉어 버린 것이 아니라면 표현상의 실수에 대해서는 사과하는 게 옳다.)
토론에서 무례하거나 짜증나게 구는 부분은 있다 치더라고 그건 그냥 ‘정책 경쟁’으로 보아 넘어가자. 문제는 ‘정의로움에 대한 독점’이다. 세월호 배지 논란은 바로 이 ‘정의로움’을 ‘독점’하려고 하는 파시즘적 내면 의식의 발로가 아닐까. 자신만이 절대적 정의를 독점하고 있다는 착각, 혹은 독점해야 한다는 강박. 이것은 명백한 도덕적 폭력이다. 게다가 이러한 폭력은 자신을 제외한 거의 모든 것을 ‘불순한 것’으로 몰아붙이는 극우 반공주의의 매카시즘적 폭력과 다르지 않다.
세월호에 대해 자신과 같은 수준의 지속적 도덕 감각을 보이지 않는다고 비난한다면 자기 자신과 일부 손가혁들의 카타르시스에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역량을 모으는 길이 되지는 못함은 자명하다. 배지 착용이 곧 세월호에 대한 일관적 관심의 척도라는 듯한 논리에도 동의할 수 없거니와, 세월호에 대한 타인의 관심을 자기만의 절대적 잣대로 감별하는 것도 문제다. 국민도 세월호 유족도 희생자도 이재명에게 ‘세월호 관심도 일관성 측정 감별사’ 지위 같은 건 부여한 바가 없다.
나의 세월호와 남의 세월호가 왜 다릅니까?
모든 정치 현안이 그렇지만 특히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은 정파와 이념을 초월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경선에 나선 넷을 포함한 민주당 정치인들은 각자가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 온 자들이며, 앞으로도 함께 힘을 모아야 할 국민이요 죄인들이다. 이런 상대방에게 도덕적 우월성의 잣대로 경쟁을 하자고 덤벼들면 그것은 세월호 아이들과 유족들에게 너무나 큰 죄를 짓는 일이다.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새누리 잔당들의 막말 앞에서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듯한 민주당 후보’를 지켜봐야만 하는 국민들의 마음은 씁쓸하기만 하다.
‘내 자식과 남의 자식이 왜 다릅니까? 같은 사람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죽었는데 저런 소리를 합니까?’ 이재명 시장의 사이다 발언, 조금 바꿔서 돌려드린다. ‘이재명의 세월호와 최성의 세월호가 왜 다릅니까? 우린 같은 죄인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죽었는데 배지 소리를 합니까?’
정의로운 사람에게 달려 있어야 할 배지의 개수는?
표현상의 실수에 대한 이재명 시장의 최소한의 인정과 사과가 있기 전까지,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정의로운 사람에게 달려 있어야 할 배지의 개수는 몇 개인가? 일관성을 증명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배지를 어느 장소에서 어느 기간 동안 달아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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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장은 내가 너무 ‘말꼬리 잡는 것’이라고, ‘네거티브’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3월 26일자 토론에서 이 시장이 하신 말씀을 돌려드리고자 한다.
“‘말꼬리 잡는 것’이라고 하는 것도 ‘네거티브’고, ‘네거티브라고 하는 것’도 ‘네거티브’다.”
“제 의견을 말씀 드리는 거죠. 의견 말씀 드릴 수 있지 않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