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가 들려주는 무서운 이야기 1
언니가 내 방 침대에 누워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2학년인 언니는 어렸을 때부터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했다고 했다.
언니-정확히 말하면 사촌 언니랑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난 어렸을 때부터 무서운 이야기를 들으며 커왔다. 처음엔 무서웠지만, 듣다 보니 괜찮아졌다.
“오늘도 무서운 이야기를 해줄게.”
“언니가 하는 이야기면 나는 뭐든지 좋아.”
난 언니나 오빠가 없었기 때문에, 사촌 언니와 특히 각별히 지냈다.
어렸을 때는 언니 언니 하면서 졸졸 쫓아다녔다고 한다.
“언니 중학교 때 친구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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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이 된 지 얼마 안 된 날 이였어. 대충 사람이 많아 보이는 무리에 들어가서 친구를 사귀었지. 내 눈에 띈건 밝은 갈색 머리카락에 큰 눈을 가진 여자아이였어. 보통의 여자아이와 다를 바가 없는, 지극히 평범한 애였지. 집 가는 방향이 같았기 때문에 우린 금방 친해질 수 있었어.
그 애의 특징은 거짓말을 잘 못하고 고지식하다는 거였어. 아이들끼리 다같이 누구 한명에게 장난치기 위해 거짓말을 할 때도, 그 애는 거짓말 하는게 다 티가 났어. 커진 동공, 약간 떨리는 목소리. 딱딱하게 굳은 얼굴. 그 애는 장난치기 어렵겠네. 거짓말이 다 티가 나니까 말이야. 그런 생각이 들었어.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나고, 단지 여름방학만을 기다릴 뿐인 지루한 어느 날, 학교에서 틀어주는 공포 영화는 이미 봤던 거라 잠이나 잘까-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비어있던 내 옆자리에 앉더니 자기 꿈 얘기를 들어 보라는 거야. 내가 좋아할 거라나? 내가 호러 매니아라는 건 반 전체에서 꽤나 유명한 이야기였거든.
꿈에 누군가가 자기를 마주보고 서 있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그리고는 계속 뭐라고 중얼거리는데, 시험 끝난 뒤부터 매일 매일 꾸고 있다는 거야. 주위로 같은 무리의 여자아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세세한 디테일이 추가되기 시작했어. 거기서 추가한 건지, 아니면 진짜 꿈이 그런 모습이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다들 관종 기질이 있잖아, 그치?
중얼거리던 말?
-……줘. …줘. 앞에 말은 잘 들리진 않지만, ‘줘’ 라고 끝난다는 거겠지. 뭐, 어쨌든 같은 꿈을 매일 매일 꾸는 건 흔한 일이 아니잖아? 특이한 꿈이네― 싶어서 넘어갔지.
방학식이 시작하고 나서도, 단체 톡방에서는 그 애가 하루 하루 그 꿈을 꾸었다는 거였어.
오후 2시쯤 일어나서 101개쯤 밀린 카톡을 살펴보면 아침 일찍 일어난 그 애가 오늘도 그 꿈을 꿨다는 말로 시작했지. 그리고 점점 무언가가 추가되기 시작하더라. 꿈에 나오는 아이의 얼굴은 점점 선명해지기 시작하고, 이제 여자아이란 것도 알게 되었대. 목소리도, …꿔줘. 라고. 좀 더 잘 들리기 시작했고. 우리는 뭘 꿔 달라는 거야, 걔 가난하대? 같은 우스갯소리만 있기에. 그 꿈을 이 주째 꾸고 있는게 신기하기도 해서 난 이렇게 적었어. 정말 장난같은 한마디였어.
‘절대 꿈 속에 인물에게 뭘 주지 마.’
아이들은 무섭게 왜 그러냐, 너 또 그런다 이러면서 무시하고 지나갔지. 그 애도 마찬가지였어. 2주째 꾸고 있으니까 이제 좀 무섭긴 하다. 그 애의 감상이었어.
3주째가 되던 어느 날…말야. 선명해진 꿈 속 아이의 얼굴을 보았대.
자기 얼굴이었대.
깜짝 놀라서 일어났다고 하더라구. 그리고 아마도……… 무슨 말인지도 알게 되었대.
그건 ‘바꿔줘’ 였어.
아이들은 무섭다, 무섭다 연발이길래 내가 물어보았지.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어? 설마 승낙했어?’
‘글쎄?’
뭔가가 쿵 내려앉는 느낌이었지. 다음 날 부터는 그 꿈을 꾸지 않는다고 했어.
2학기가 되어, 수련회에서 하룻밤 자는 날. 난 내 옆에 누운 그 애에게 몰래 물어봤어. 정말 아무 말도 안하고 깬거야? 그 꿈은 이제 더이상 안 꾸는거야?
그 애는 나에게 속삭였어.
‘그 다음 날 부터, 나와 똑같이 생긴 여자아이가 ’돌려줘‘ 라고 말하는 꿈을 매일 꾸고 있어.’
그 목소리에서는 어떠한 떨림도 느껴지지 않았고, 마주 보고 있던 눈동자는 흔들림 없이 굳건했어. 말을 마치고 싱긋 웃는 표정에선 어떠한 이상함도 느낄 수 없었지. 마치 당연한 얘기를 하는 것처럼….
난 그 애 쪽을 향해 돌렸던 몸을 반대로 다시 돌렸어. 그 애를 등지고 말야. 그리고 그 날 밤, 나는 잠들수 없었어. 아마, 그 애도 자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어. 하지만 뒤로 돌 수 없었어.
수련회 이후로 우리 사이는 점점 멀어졌어. 그게 끝이야.
언니의 이야기는 늘 그렇듯이 소름돋았지만, 나는 몇년 째 익숙해져버린 말을 꺼내었다.
“그게 뭐야, 하나도 안 무서워!”
“앗, 정말? 진짜 하나도 안 무서워? 그럴리가 없는데…… 좋아, 이번엔 다른 이야기를 해 볼께.”
언니는 침대 위에서 뒹굴 뒹굴, 몇번 생각하더니 다음 이야기를 꺼내어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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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잇]
언니네 고등학교 도서관이 좀 작단 말이야. 난 조금 더 클 줄 알았어! 다른 고등학교 도서관은 안 가봐서 모르겠지만… 아닌가, 큰 건가. 어쨌든. 우리 여고를 포함해서 남고랑 중학교까지 다 거기서 책을 빌리는데 책이 터무니없이 적은 것 같았어. 중학교때 도서관보다 조금 더 커진 정도? 그래도 난 책을 좋아하니까― 당연히 도서부에 들었지. 책 정리하거나 대출 반납 일을 맡는건 의외로 힘들더라고. 다른 요일 애들이 제대로 정리 안 해놓거나 미루기만 해서 안 그래도 시간도 없고 사람도 많은데 할 일만 한가득이었지.
책을 읽거나 빌리고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고 싶었는데. 한숨을 팍 내쉬던 어느날이었어.
친구도 같은 도서부였는데. 어느 날 책을 정리하다가 아마도, 책 사이에서 떨어진 포스트잇을 하나 발견한 거야.
포스트잇에는 단정한 글씨체로, [죽고 싶다] 라고 써 있었어. 빌려 간 책은 데미안이었지. 누가 빌려 갔던 책인지는 알 수 없었어. 내가 엊그제 확인한 책인데, 어제 일 처리 하는 애들이 정리해놓지 않은 모양이었지. 나랑 친구는 목요일 담당이었는데, 그렇게 수요일을 맡은 애들을 욕하면서 사서 선생님께 포스트잇을 하나 빌려서, 친구는 [죽지 마. 내가 상담해줄께.] 라고 적은거야.
그 다음주 목요일. 데미안에서 친구가 쓴 포스트잇은 떼어져 있었어. 데미안 자체가 인기가 많은 책도 아니고, 우리는 포스트잇을 쓴 아이가 친구 것도 읽고 가져갔다고 생각했어. 왠지 두근거려서, 데미안은 물론이고 우리가 꽂아야 하는 책들 하나하나를 팔락팔락 넘기면서 확인했지. 그 곳에는 또 포스트잇이 있었어. [고마워. 내 고민을 들어 줄래? 앞으로 반납하는 책에 포스트잇을 넣을 테니까.] 책 제목은 유진과 유진이었어. 이건 나름 인기 많은 책이어서 우리가 발견한게 천만 다행이었지. 친구는 이러한 상황이 재미있다고 했어.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시츄에이션이라며. [무슨 고민인데? 나한테 다 말해 봐!] 라고 적힌 발랄한 분홍색 포스트잇을 꽂았지. 그 뒤로 친구는 포스트잇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습관이 되었어.
그렇게 시작된 상담은 길게 길게 이어졌어. 한번 포스트잇을 분실한 이후로, 그 애는 사람들이 읽지 않을 법한 책에 꽂기 시작했어. 반납 기록을 조회해보니까, 그 애는 남고 학생이더라고. 남고 학생? 친구는 당황하기 시작했어.
[내가 좋아하는 남자애한테 고백하고 싶어]
이게 상담 내용이었거든. 게이인가봐! 친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어. 무교였던 나에게 자꾸 교회오라고 조르던 아이였지. 걔네 교회에서, 동성애 혐오 성명? 이었나? 암튼 그런것도 시내에서 받더라고. 아무튼………… 정말 나쁜 상황이었어. 친구는 더럽다는 듯이. [너 게이야? 더럽다. 그만하자] 고 적은 포스트잇을 넣었지.
그렇게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반납 기록으로 친구는 그 남자애의 이름도 알고 있었거든. 내 친구는 입이 엄청 싼 애였고. 나불 나불. 진중함이란 찾아 볼 수도 없는 애였는데.
뭐, 남고에 소문이 퍼지는건 한순간이었지. 악질적인 소문은 커지고 커졌어. 친구는 조금 불안해 보였지만, ‘상관 없다’ 는 태도였어. 소문은 여고, 남고, 심지어 다른 고등학교에까지 쫙 퍼졌어. 생김새도 여성스럽더라. 트랜스 젠더 아니냐. 뭘 모르는 멍청한 아이들의 이상한 한마디까지, 그 애한테 상처가 되면서.
‘남고에서 따당한다더라. 근데 그럴만 하지 않아? 게이면 왜 남고에 간거야?’
‘아― 부럽다. 자기 스타일을 고를 수 있잖아?’
‘원래 성격 이상했대. 은근슬쩍 스킨쉽도 하려고 하고. 으! 징그러워.’
당연한 절차로, 그 남자애는 내 친구를 저주하며 자살했어. 그 애가 사는 아파트 15층에서 떨어져서. 끔찍한 모습으로. 완전 유명하게. 아마 뉴스에도 나왔을 지 몰라. 걔네 부모님은 학교 운동장을 영정사진을 안고 한바퀴 돌면서 오열했지. 그래도 친구는 변함없이 혐오스럽단 표정이더라고. 왕따 주동자들도 처벌이 내려졌어.좀 약했지만. 학교 측에서 고생 좀 했겠지. 공부 잘하는 애도 껴 있었다는데. 진짜 가해자는 여기에 있는데. 난 내 친구가 아무 벌도 받지 않은 게 너무 짜증났어.
그리고 나서? 한동안 도서실에 왠 귀신이 나온다고 유명했지. 난 좀 미안해서 도망가지 않고 열심히 책 정리를 했지만. 머리를 풀어헤친 귀신. 데미안 근처에서 서성이는 귀신. 눈알 한쪽은 없고, 머리는 다 깨져 있고. 어두운 얼굴. 안 그래도 음침했던 도서관은 사람이 더 가지 않게 되었어.
아 그 다음. 친구. 죽은 아이의 저주를 잔뜩 받은 친구의 성적은 나빠지고, 매일 가위 눌리고. 교회에 가서 기도해봤자 소용 없었나 봐. 초췌해진 얼굴이 조금 불쌍했지만 ‘자업자득’ 이란 생각이 들었어. 한 사람의 목숨을 잃게 만든 죄는, 아마 평생 치르지 않을 까? 아니면 일찍 죽을지도 모르지. 그렇게 매일 매일 괴롭히고 있으니까.
“하나도 안 무서워. 그리고 비현실적이야, 언니! 언니가 지어낸 이야기지?”
라고 말하는 내 머릿속은 이제 언니가 포스트잇 얘기를 꺼내다니, 한계에 다달랐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매일 매일 무서운 이야기를 해달라는 건 역시 조금 너무한 일이었지.
“음―! 안 무서울 리가 없는데. 으으… 하지만 인터넷에서 본 이야기들은 너도 다 알고 있잖아? 조금 신선한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을 뿐인데.”
“내일 새로운 이야기를 또 해줘, 언니. 오늘은 하나도 안 무서웠어.”
언니는 침대에서 일어나 나갔다. 나는 언니의 것이었던 물려받은 국어 문제집을 닫았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용이 엉성해서... 걱정이 많이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