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한적한 공원 벤치에 앉아 또다시 담배를 한 대 꺼내어 물었다.
담배라도 피고 있지 않으면 긴장되고 떨려서 견딜 수 없었다.
후회가 되기도 했지만 꼭 잡아야 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불안함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사진에서 봤던 남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며칠 전, 과도한 빚으로 사채업자들에게 시달리던 내게 한 사람이 접근했다.
그 사람은 누군가를 만나서 물건을 건네주고 돈을 받아오면 그중 20%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고작 20%지만 그 액수만 해도 빚을 갚기에는 충분할 정도로 많았다.
보나마나 위험한 일이겠지만 이대로 가다간 나뿐 아니라 내 가족들 까지 사채업자들에게
큰일을 당할지도 모를 노릇이었기에 난 그 제안을 수락했다.
물론 착수금이라면서 내민 현금 뭉치가 결정에 큰 영향을 주기도 했다.
그 사람의 설명은 간단했다.
특정 시간에 지정된 공원에 가서 앉아있으면 중년 남자 한명이 다가올 것이다.
그 남자에게 물건을 건네어 주고 돈을 받아와 주면 끝.
단 무조건 돈을 먼저 받고 나서 물건을 건네야 한다.
또한 상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니 나 역시 아무런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물건 이란게 어떤 건지 대충 알 것 같았지만 그냥 모른 척 하기로 했다.
찜찜하긴 하지만 이번 일만 잘 끝나면 빚을 갚고 새 출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멀리서 사진에서 봤던 중년의 남성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난 모자와 마스크를 고쳐 쓰곤 똑바로 앉았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지만 겉으론 최대한 내색을 하지 않고 그 남자가 다가오길 기다렸다.
잠시 후 그 중년의 남자는 긴장한 표정으로 날 잠시 보더니 내 옆자리에 앉았다.
이야기 들은 대로 남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제법 묵직해 보이는 가방을 내게 내밀었다.
나 역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돈을 받은 뒤, 테이프로 단단히 봉해진 상자를 건네었다.
제법 묵직한 것이 내가 생각한 그것이 맞는 것 같았다.
내가 내미는 상자를 본 중년 남자는 약간 주저하다가 물건을 받았다.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입만 살짝 열었다 닫았을 뿐 말을 하지는 않았다.
가방의 무게를 가늠해본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공원을 나갔다.
이제 이 가방을 공터에 세워진 차 안에 실어 놓으면 끝.
집에 돌아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통장으로 약속한 돈이 들어온다.
잠시 동안 이 돈을 가지고 그대로 도망칠까 고민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괜히 욕심 부리다가 어떤 꼴을 당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얌전히 내가 받을 것만 챙기는 것이 뒷탈이 없을 것이다.
미리 지시 받은 대로 트렁크에 가방을 실어놓고 차키를 자동차 아래에 숨겨놓았다.
그제야 긴장이 풀리며 목이 말라왔다.
일도 끝났겠다 캔맥주라도 사가지고 갈 생각으로 편의점을 찾아 나섰다.
홀가분한 기분으로 걷고있던 그때, 갑자가 눈앞에 아까의 중년남성이 나타났다.
날 찾아 열심히 뛰어다닌 듯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날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설마 물건이 뭔가 잘못 된건가?’
나로선 알길이 없었다.
그때 남자가 품에 안고 있던 상자를 내밀며 말했다.
“이게 뭐야? 도대체 무슨짓을 한거야?”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당황하여 뭐라고 변명하려 했지만 아는게 없는 나로서는 할 수 있는 말도 없었다.
그 남자는 내 침묵을 다른 의미로 해석했는지 상자를 집어 던지며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막대기처럼 생긴 전기충격기였다.
그리곤 맹렬한 기세로 내게 달려들었다.
당황한 탓에 반응이 늦어 난 그 남자가 휘두르는 전기 충격기를 피하지 못했다.
난 제대로 된 반항 한번 하지 못하고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남자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쓰러진 내게 전력을 다해 구둣발을 날렸다.
숨이 턱턱 막히는 고통에 몸무림 치던 내 눈에 남자가 집어던진 상자가 보였다.
놀랍게도 상자 안에는 피로 얼룩진 여자아이의 잘린 머리가 들어있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고통도 잊고 충격에 빠져 있는 내 귀에 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돈만 받으면 내 딸을 무사히 돌려보내겠다고 약속했잖아!
시키는 대로만 하면 딸은 안전할거라고 했잖아!
근데 저게 뭐야 내 딸한테 무슨짓을 한거야!”
난 아무래도 내 생각보다 더 위험한 일을 맡았던 것 같다.
충격에 빠진 난 그저 웅크린 채로 남자의 발길질을 맞고만 있었다.
한참을 발길질을 해대던 남자는 숨이 가쁜지 내 옆에 무너지듯 주저앉아 떠들기 시작했다.
“내 딸은 말이야, 애 엄마가 죽었을 때도 울지 않았던 아이야.
내가 조심스레 재혼 이야기를 꺼냈을 때도 웃으며 축하해 줬던 아이지.
새엄마한테도 죽은 친엄마처럼 상냥하게 대해준 아이였다고.
그런데 그런 착한 아이를 납치 한 것도 모자라 저런 모습으로 돌려보내?
넌 내가 용서 못해. 죽여 버릴 거야.”
남자는 일어나 다시 내게 발길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사람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 할 때까지 난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웅크리고 있었다.
난 허탈한 마음으로 판사의 최종 판결을 기다렸다.
내가 아무리 정황을 설명해도 그 누구도 귀담아 듣질 않았다.
모두가 내말은 그저 쓰레기 같은 범죄자의 추악한 변명으로 치부할 뿐이었다.
돌아가는 꼴을 보니 그 중년 남자는 제법 높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너무나 억울했지만 이제 와서 돌릴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한숨을 쉬고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눈에 불을 켠 채 날 노려보고 있는 그 중년의 남자.
옆에는 아내인 듯 한 여자가 앉아있었다.
여자의 얼굴을 확인한 나는 심장이 얼어붙는 느낌이 들었다.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그리고 어디서 봤는지 정확히 기억이 났다.
날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 내게 일을 맡긴 그 사람이었다.
재혼이라면 전처의 딸이 그리 예뻐 보일리가 없을 것이다.
그 딸이 아무리 예의가 바르고 착해도 말이다.
저 여자는 눈엣가시 같은 소녀를 없애기 위해 다소 과격한 방법을 선택한 모양이다.
난 남의 집 가정사에 가장 안 좋은 방식으로 휘말리게 된 것이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 여자는 내게 보일 듯 말 듯 한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충격에 빠진 나는 판사가 사형이라고 말하며 망치를 두드리는 소리조차 듣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