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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친한 친구가 정신병이 있다면 어떨 것 같아? 그 친구가 병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가 떠오른다. 그 친구는 원래 약간 자신의 외모에 집착하고, 지나다니는 여자들 얼굴을 평가하기 좋아하는 그런... 약간 질이 안 좋다면 안 좋은 그런 친구였어.
하지만 난 내 가장 친한 친구가 그 녀석과 친했기 때문에 어쩌다보니 어울리게 됐지. 봄이니까 그 친구의 이름은 범준이라고 할게. 범준이는 그래, 내 신경을 항상 긁던 친구야. 하지만 몇 년을 같이 붙어 다니다 보니 이 친구의 좋지 못한 생각들을 고쳐주고 싶더라고. 뭐... 그랬던 그 시절의 이야기야.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빠져버렸네. 범준이의 병을 알게 된 건 내 가장 친한 친구, 그래 이 친구는 형태라고 할게. 형태, 범준이와 함께 새벽에 술을 마시던 때야.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준 그 날이지.
평소와 같이 시덥지 않은 여자얘기, 첫사랑얘기를 하고 있었어. 그런데 그 친구가 갑자기 그러더라고. 너희는 신이 있다고 믿느냐고. 이 친구가 이런 쪽으로 관심이 많아서 평소와 다른 것을 눈치 채지 못했어.
그러면서 자기가 할 얘기를 막 하는데, 범준이의 주장으론 우리가 신이라는 거야. 형태, 나 범준이 이 셋이 신이래. 난 그냥 아무생각이 안 들더라. 이 친구가 좀 이상한 친구긴 하지만 정상적인 범주 안에서 이상한 친구였거든.
대략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했냐면, 우린 신인데 우리가 모르고 있는거다. 자기는 오늘 홍대에서 놀다가 눈치를 챘다네. 주위 온 사람들이 자기이름을 부르더라는 거야. 무서워서 도망쳤는데 그게 자기가 신이라서 그런 거래. 오늘 무슨 뭘 하려는데 뭐가 지맘대로 됐다나 뭐라나. 전지전능하다는 거야. 집에선 손도 안대고 불을 켰다 껐다 하고.
지금도 우리랑 같이 천사가 있데. 지한테 천사가 몇 만이 있으니 니들한테 몇 천씩 준다나 뭐라나. 뭐 지금은 무덤덤하게 쓰고 있지만 그 때 당시엔 무서웠어. 진짜 눈이 미친놈 같았거든. 인정안하면 진짜 들고 있던 포크로 우릴 찍을 거 같았어.
근데 같이 있던 형태는 원래 알고 있는 눈치더라. 범준이를 잘 달래서 집에 보냈어. 그리고 그때서야 말해주더라고. 범준이는 군대에서 정신병이 걸려서 왔데. 정신분열증인데 원래 약을 먹어야하는데 오늘 아마 약을 안 먹은 거 같다고. 그래도 사고나 그런 건 안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만 친구였으니 정신병이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 근데 지금 생각으론 그 때 범준이와는 안 엮였어야 했어.
우리 셋이 처음 싸웠던 날이 있어. 그 날도 술을 마셨던 날이야. 나와 형태는 약간 깐족거리기를 잘해, 항상 범준이에게 깐족거리며 놀리거든. 그런데 나에게 험한 말을 하면서 위협을 하더라고. 정말 충격적이었어. 웃으며 놀던 친구가 1분 만에 갑자기 돌변하는 그 느낌, 그리고 난 이 친구가 정신병이 있는 것을 알고 있잖아.
그런데 형태는 아마 이런 상황도 익숙한 느낌이었어. 잘 달래서 집에 보냈지. 아, 참고로 말하자면 형태는 정말 부드러운 남자의 표본이야. 남 생각부터 하고, 남 챙겨주는게 정말 자연스러운 친구지. 형태와 범준이는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친했던 사이야. 아무튼, 이런 일은 정말 자주 있었어. 그런데 이런 일의 특징이 뭐였는지 알아?
점점 폭력적인 행동이 커진다는 거야. 정말 무서워, 너희가 생각해봐, 처음엔 그냥 삐짐, 그다음엔 폭언, 다음엔 멱살, 그리고 소주병을 거꾸로 들고, 마지막으론 진짜 폭력행사.
언제나 범준이가 열이 받는 순간은 예측을 할 수가 없었어. 노래방에서 노래를 하다가 내가 “어? 이 노래 진짜 오랜만이네.” 라는 말에 내 노래에 딴지를 걸었다, 라며 노발대발하며 멱살을 잡거나, 원래 범준이와 형태가 같이 부르던 노래를 나와 함께 부른 다음이라거나.
그래... 그 때는 어렴풋이 알았던 거지만 지금은 확신 할 수 있어. 이 친구는 형태가 자기 인생의 전부였어. 진짜 모든 행동의 이유는 형태였어. 형태가 연애를 하면 범준이도 연애를 하고, 형태가 하자고하면 하고, 하지말자면 안하고, 난 안중에도 없었지. 오직 형태뿐이었어. 나와 형태가 둘이 있으면 우린 한마디도 안했어. 그 때 눈치를 챘어야했는데. 난 둘 사이의 방해꾼이었던 거야. 무섭지 않아? 정신병이 있는 사람이 날 눈엣 가시로 여겼던 거야. 난 그것도 모르고 몇 년을 같이 보냈지.
둘이 있을 때는 이유 없이 차갑게 굴고 그랬던 것들이 다 납득이 가더라고. 그래, 소주병을 들고 위협을 하며, 결국 폭력을 사용한 이유, 뭘거같아?
내가 바로 저것들을 눈앞에 대고 지적했기 때문이야. 처음엔 납득하는 듯 싶더라고. 나도 걔한테 잘못한 것, 형태가 잘못한 것, 그리고 범준이가 우리한테 잘못했던 것, 우린 여행을 가서 이런 깊은 이야기를 했어. 근데 그게 실수였나 봐. 집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납득하던 그 녀석은 결국 몇 분전에 폭발해서... 그 때를 생각하면 아주 아찔해. 죽을 뻔했다고 생각해. 눈에 독기가 뿜어져 나오고 진짜 형태가 말리든 말든 눈이 미친 사람 그 자체였어.
그 사건이 있은 후로, 그 친구와 아주 멀어졌어. 그 친구가 나한테 사과할 필요성을 못 느꼈거든. 형태한테만 사과를 하려 하더라고. 그래서 넌더리가 난 우리는 그 친구와 연락을 끊었고, 둘이서만 놀게 됐어.
그런데 이정도 얘기면 평범한, 뭐 그런 특별할 것도 없는 이야기겠지? 근데 사건이 터진 거야. 난 마지막에 그 친구에게 연락을 했어. 넌 나한테 사과 할 맘이 없냐고, 내가 너한테 서운했던 거는 신경 안 쓰겠냐고, 그랬더니 이제 와서 왜 옛날이야기를 하냐고 도리어 뭐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난 형태도 너한테 사과 할 맘 없다고, 아주 직설적으로 얘기를 했지. 형태를 되찾을 수 없을 거라고 내가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말을 한 거야.
이 이후로 무슨 일이 있었을 것 같아?
별일은 아니었어. 형태한테 연락이 왔다더라고. 진짜 예전에 약 안 먹었을 때처럼 횡설수설 하면서. 뭔가 사과하고 싶은데 뭘 사과하고 싶은지 모르는 느낌이었데. 형태도 짜증이 나서 그냥 사과할게 뭔지 모르겠으면 전화하지 말라고 매몰차게 끊었던 거야.
난 이때 너무 불안했어. 약도 안 먹었고, 이러다 형태를 못 가지게 되면 형태를 아예... 그러거나 내가 이간질했다고 생각하고 나한테... 그러거나. 그래서 우리 둘은 당분간 출퇴근 할 때 매우 조심하면서 다니기로 얘기를 했어.
그런데....
.....
......................
이런 일은 정말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터지더라.
.....
범준이가 할머니를 찔러 죽이고, 아버지 찔려서 중환자실이라는 거야.
너무 무서웠어. 우리 탓 같았지.
이해 할 수가 없더라고. 왜? 왜지?
너무 슬펐어. 내 자식이 내 엄마를 죽였다고 생각해보니 정말 미치겠는 거야.
죄책감과 무력감이 진짜 미칠 듯이 밀려왔어.
뭣도 모르는 타인들은 온통 억측과 원래 그 놈은 나쁜 놈이었다. 집밖에 몇 년 동안 안 나왔다. 원래 개차반이었다. 이런 이야기들이 오고가더라고. 뉴스에서도 뭣도 모르는 주위 사람들이 떠들더라고. 그게 아닌데. 얘는 맨날 밖에 나돌아 다니던 앤데. 심지어 뉴스에선 그 녀석의 병명도 틀렸어. 그래도 착한 면이 있던 아이지만, 감당하기 힘든 단점이 하나 있었을 뿐인데, 내가 이 친구를 망친 것 같더라고.
주위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 내가 좀 더 친하게 지내줬으면 이렇진 않았을 텐데, 인사라도 따듯하게 해줄걸, 이런 나와는 동떨어진 후회와 자책의 말들이 들려왔어 .
나와 형태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더욱더 나락으로 떨어졌어. 결국 나와 형태보다 그 녀석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사람은 없더라고.
그 녀석의 아버지는 어떻게 됐냐고?
중환자실에서 다행히 정신을 차리셨어. 할머니는 안 돌아가신 줄 아시고. 의사가 말하지 말랬데. 회복하는데 악영향 있을 거라고. 그리고 뒤는 안 봐도 뻔하지. 결국 아셨을 테고... 상상하고 싶지도 않아.
그 녀석은 어떻게 됐냐고?
결국 온 가족이 일반 교도소 말고 병원으로 보내길 바랐어. 그래도 자식은 무슨 짓을 저질러도 용서하나봐... 나에게 부탁하시더라고. 혹시 경찰이 연락하면 꼭 평소에도 이상했으니까 병원으로 보내달라고 말해달라고.
나중에 들은 얘긴데, 그 녀석은 약을 안 먹었데. 한 4일 동안?
그리고 아버지가 잔소리를 하니까 돌변한 거야. 그런데 경찰 조사를 받을 땐, 사자가 덮치는 것 같아서 찔렀다고 진술했다고 하더라. 난 안 믿어. 자기 병 이용해서 형 적게 받으려고 발악하는 거 다 보이거든. 그래도 난 가족들의 의사를 존중해서 가족들이 바라는 방향으로 가도록 얘기를 했어. 죄를 지은 사람의 처벌도 중요하지만, 남은 사람들의 인생이 난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 자식과 어머니를 모두 잃었지만, 적어도 자식만은 덜 괴로운 곳에 있게 해드리고 싶었어.
벌써 7개월이나 된 이야기네. 이제 슬슬 감각도 무뎌지고, 그때의 슬픔도 희미해져서, 그냥 이렇게 올려봐. 그래도 죄책감만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겠지.
그냥... 당부하고 싶은 말은, 기왕이면 정신병이 있는 사람의 행동을 바꾸려고 하지 말라는 거야. 싫어하거나 피하란 게 아니라, 행동을 바꾸는 건 병원과 의사에게 맡기자고.
이만... 쓸 이야기가 없네. 재미없는 이야기 그냥 생각이 흘러가는 것을 따라 쓴 이런 어처구니없는 글 읽어줘서 고마워.
죄송합니다. 댓글 작성은 회원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