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기 전에 한참을 고민했다.
일단 공포게시판에 맞는 공포스러운 내용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고
개인적으로 유년시절의 아픈 기억을 굳이 꺼내기 싫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 글의 내용은 100% 실화이다.
살면서 직감이란게 정말 존재하는구나.. 라고 뼈저리게 느꼈던 경험이고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또 존재할지 의문이 들기도 한 사건이었다.
생각하기도 싫은 경험이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은 이렇게 글로 남길 만한
여유가 생기기도 했고..
서두가 거창했지만 내용은 특별한 것은 없다.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직감이 폭발했던 날의 경험담이라고 할까..
내가 어린 시절 아버지는 병원에서 근무하셨었고, 정확한 직업은 그때 당시는 몰랐지만
3교대를 하는 그리 풍족한 월급을 받지 못하는 간호조무사였다.
항상 어린 시절 기억은 다른 아버지들과 다르게 오후나 저녁 등 불규칙한 시간에 출근하셨고
-물론 오전에 정상적으로 출근하시기도 하지만- 아침에 퇴근하실 땐 피곤해하시며
방에서 주무시기만 하셨던 그런 생활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때는 1992년.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무료했던 일요일이었다. 날짜도 정확히 기억한다. 6월 7일.
그 날은 아버지가 오후 출근이셨는지 양복을 입으시고 출근 준비에 한창이셨다.
나는 그런 아버지 옆에서 얼마전 사두었던 빨간색의 자동차 프라모델을 조립 중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아버지의 출근 시간이 다가오면서
이상하게 아버지를 출근시켜드리기가 싫은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더 어렸을 때 아버지와 떨어지기 싫어서 칭얼대던 그런 유아기의 수준이 아니라
그때의 나는 초등학교 6학년으로 더 이상 아버지의 출근이 아쉽지 않았던 나이이기도 하였으므로..
이런 내가 어색하기도 하였지만 그런건 개의치않았고 그냥.. 그냥 그 날은 아버지를 보내기가 너무도 싫었다.
이유는 정말 없었다. 그냥 보내기가 싫었다. 너무나도 말이다. 진짜 이런 적은 전에도 없었었다.
그때 당시의 나는 계속 아버지에게 출근하지 말고 나랑 있자고 계속 몇번이고 몇번이고 졸라대었다.
아버지는 평소엔 볼 수 없었던 나의 끈질긴 부탁과 요구에도 허허허 웃으시며
출근해야 돈을 벌어서 너 맛있는것도 사주고 그러지 라는 예의 말씀을 하시며 출근 준비에 서두르셨다.
결국 현관문을 나서는 그 시간까지도 나의 조름은 계속됐고 아버지는 약간의 역정도 내시며 집을 나서셨다.
왜 그리도 아버지의 뒷모습이 눈에 밟히던지..
아파트 창문 너머로 걸어가시는 아버지를 계속 눈에 담아두려고 애를 썼다.
시간이 지나고.. 그냥 이상하네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곧 잊어버리고 프라모델을 조립하여서
한참을 가지고 놀다가 잠에 들었다.
한참 자고있던 새벽.. 전화벨 소리가 갑자기 울리기 시작했다.
지금 회상해도 그건 너무도 불길한 소리였다. 당시 안방에서 어머니와 누나와 같이 자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시끄러울 정도로 울어대던 전화기에 어머니와 누나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로 말이다. 나는 시끄러워서 바로 깼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잘자고 있는게 아닌가.
졸려서 비몽사몽이기도 했지만 일어나서 받기도 귀찮았고, 새벽에 전화가 오는게 그때 당시의 생각으론
영양가 없는 전화 -예를 들어 장난전화- 라고 혼자 판단하기도 했고.
하지만 핸드폰과는 다르게 일반 전화는 받기까지 계속 전화가 울리는 시스템이라..
제 풀에 지쳐 끊을 줄 알았지만 진짜 몇분을 계속 끊임없이 울려대는 것이었다.
옆에는 진짜 징하게도 안일어나고 숙면을 취하던 어머니와 누나가 보였다.
결국 나는 그 시끄러운 소리에 굴복하고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어. 어머니좀 바꿔줄래?"
처음 들어보는 다급해보이는 아저씨의 목소리.
나는 반쯤 불안한 감정에 휩싸여 어머니를 흔들어 깨웠다.
동시에 오전의 나의 이해할 수 없었던 그런 감정들이 다시금 생각이 났다.
아니겠지. 아닐거야. 아닐거야.. 혼자 되내이던 내 옆에서 어머니는 화들짝 놀라시며 울먹거리셨다.
아버지가 교통사고가 나셔서 병원에 실려가셨다는 내용의 전화.
어머니는 그래도 우리를 불러앉히시며 상황을 얘기를 하시고 바로 옷을 입고 나가셨다.
실감이 안되어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던 누나와 나는 이윽고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다음날은 월요일.
연락을 받고 아침을 차려주시던 어머니와 친하게 지내셨던 401호 아주머니.
퉁퉁 부은 눈으로 무슨 맛인지도 모르던 그 날 아침밥.
군대에서 먹은 첫끼와 함께 내 인생 가장 맛없었던 세 손가락 안에 들던 식사였다.
어쨋든 그 날의 아버지의 교통사고로 안그래도 가난했던 가정은 급격히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고
평범한 내 인생이 180도 바뀌게 되었을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아버지는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으셨지만 뇌를 크게 다치셔서
말도 어눌해지시고, 전반적으로 운동능력이 떨어지시는 큰 후유증을 갖게 되셨다.
집안의 가장이 아버지에서 어머니로 바뀌었고, 관련된 여러가지 불화로 나는 점점 어두운 성격을 갖게 되었다.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러 아버지는 내가 군대가 있던 시절에 돌아가셨다.
그 날 내가 아버지의 출근을 필사적으로 막았더라면.. 물론 당시의 내가 실질적으로 그걸 막을 방법은 전무했지만..
아버지와 우리 가족은 다른 인생을 살 고 있었을지...
과연..
이게 우리의 정해진 운명이었을 수도 있다.
그날부터 나는 직감이란 것을 믿는다. 아직까진 다행히도 또 다시 그런 경험은 해본 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