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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86686
    작성자 : 신주쿠요
    추천 : 8
    조회수 : 664
    IP : 211.187.***.32
    댓글 : 2개
    등록시간 : 2016/03/09 23:58:35
    http://todayhumor.com/?panic_86686 모바일
    일상 -3-
    옵션
    • 창작글
    1.
     
    여름이 한 바탕 시작되고 있었다. 나에게 여름은 특별한 의미였다.
     
    내 안에 숨어있는 또 하나의 세계를 불러낼 수 있는 계절이였다.
     
    여름이 되면 내가 좋아하는 무서운 이야기와 납량특집 프로그램들이 TV에서 줄차게 방송되었고
     
    때에 맞춰 호우가 쏟아지기도 했었다.
     
    또한 호우가 쏟아질 때면 흙냄새, 비냄새에 취했고 빗소리와 대낮인데도 어두침침한 하늘빛에 취해있었다.
     
    어떤 날도 하늘은 비를 무척이나 세차게 쏟아붓고 있었다.
     
    나는 엄마, 누나와 함께 집에 있었고 누나는 누나 방에서 혼자 잠이 들어 있었던 것 같다.
     
    엄마는 나와 함께 쓰는 방의 구석에서 홀로 잠이 드셨고 난 무슨 소리인지 도통 모르겠는 SBS의 나이트라인 뉴스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 시간에 방송되는 그 뉴스를 매우 좋아했다. 그 뉴스의 내용이 좋아서 즐겨봤던 것은 아니였다.
     
    어딘가 냉소적인 분위기, 씁쓸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내게 안겨주던 그런 프로그램이였다.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자니 그 때의 내 어휘력으로 말해본다면, "꼬추가 가렵다" 이런 느낌이였다.
     
    약간의 발기증상이 왔었던 것이다. 그 느낌이 나는 좋았다.
     
    그렇게 뉴스를 시청하다가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었다. 그리고 나르시시즘에 취하고 싶었었던 것 같다.
     
    그 때의 나는 혼자서 하는 연극을 좋아했다. 상황극이였다.
     
    빗소리를 크게 잘 듣기 위해 나는 엄마와 내가 쓰는 방과 가까이 있는ㅡ방구조가 특이한 집이였다. 대문이 2개였다ㅡ
     
    대문을 살짝 열어놓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집과 이불 속으로 가로등의 주황색 불빛이 많이 새들어왔다.
     
    이불을 살짝 들어올렸다. 그리곤 손가락을 펴 세로로 세운 뒤 사람의 다리모양처럼 묘사하고 이불 안으로 들어오는 여름바람을 느꼈다.
     
    빗소리를 느꼈다. 나르시시즘에 빠지고 있었다. 나는 비를 피해 동굴로 들어온 어느 아련하고 가련한 소년이였다.
     
    가끔 아직도 그 동굴 속의 소년을 추억하며 똑같은 행동을 해보곤 한다. 비록 예전의 그 느낌은 나지 않지만.
     
    2.
     
    우리 동네는 변두리 동네라 집값이 쌌던 것 같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우리동네엔 꽤 많았다.
     
    내 친구 성훈이와 놀다보면 길거리에서 자주 마주치던 얼굴이 하나 있었다. 외국인 삼촌이였는데, 그는 항상 어린 아이들의 놀림감이였다.
     
    아이들은 그 삼촌을 보면 꼭 가운데 손가락을 내밀곤 "뻐큐!"하고 소리쳤다.
     
    그럴 때 마다 그 삼촌은 그 아이들을 향해 달려가곤 했는데 표정엔 화가 난 기색이라곤 전혀 없어 보였다.
     
    오히려 재미있어 하는 듯 보였다.ㅡ그런 아이들 중에 성훈이와 나도 속해있었다ㅡ
     
    어떤 날, 그 날도 성훈이 미진이와 함께 놀이를 하며 놀고 있었다. 성훈이 미진이와 함께 하던 놀이란 '연기놀이'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상황극놀이를 하며 매우 즐거워했지만 남들에게 들키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냥 '놀이'라고만 부르기로 하였다.
     
    상황극이 점점 난 강하다, 하지만 내가 더 강하다. 하지만 결국 내가 주인공이다. 이런 식으로 산으로 가고 있을 무렵
     
    요란한 오토바이 소리를 내며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외국인 삼촌과 예쁘장하게 생긴 친구 병호였다.
     
    그 때에 나누었던 대화들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진 않다. 외국인 삼촌이 병호를 집으로 데려다주던 길이라는 것과
     
    병호가 나 이 삼촌과 정말 친하다며 자랑하듯이 이야기했던 것 정도가 기억이 난다.
     
    오토바이의 좌석은 꽤나 길고 넓었다.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모두가 타고 싶어했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외국인 삼촌은 우리를 태웠다. 우리는 가까운 가래여울ㅡ광진교였을 지도 모른다ㅡ쪽의 한강을 달렸다.
     
    바람이 무척이나 시원했다. 한강의 풍경은 아름다웠고 기분이 정말 좋았다. 나는 TV 애청자였다.
     
    "오빠 달려!"
     
    내가 외치자 성훈이와 미진이가 크게 웃었다. 나는 그 때 머리마저 길어 영락 없는 여자아이로 보였을 것 같다.
     
    한강에서 변두리 동네로 돌아와 오토바이를 세우고 우리는 시덥잖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가 한국말을 할 때 마다 우리는 매우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고, 그는 그게 재미있었던 것 같다.
     
    외국인 삼촌의 이름은 알라딘 삼촌이였다. 역시 그냥 넘어갈 우리가 아니였고, 우리는 마구마구 놀려댔다.
     
    시덥잖은 대화가 끝나갈 무렵 성훈이와 미진이가 어디서 나타난 한 친구에게서 부모님의 호출을 받았다.
     
    집에 와 밥을 먹으라는 호출이였던 것 같다. 그래서 성훈이와 미진이는 갈 채비를 하고 있었고.
     
    알라딘 삼촌은 내게 너와 더 오토바이를 타고 싶다고 했다. 넌 무척 재미있는 아이라고 말했다.
     
    나는 칭찬에 약한 아이였고,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일이 정말 재미있었다. 성훈이가 눈빛을 보냈다.
     
    만류하는 눈빛이였다. 하지만 난 별 생각 없이 뒷좌석에 올라탔고 오토바이가 출발할 때 뒤를 돌아 성훈이의 표정을 보았다.
     
    성훈이는 망연자실한 표정이였다.
     
    난 알라딘 삼촌을 만족시키고 싶었던 것 같다. 사람을 웃기는 광대짓이 그렇게 재미있는 지 몰랐다.
     
    "오빠 달려!"
     
    알라딘 삼촌은 정말 좋아했다.
     
    그가 날 데려온 곳은 그의 집이라고 했다. 그는 나의 눈을 가렸다.
     
    "소리 내지마."
    "천천히 들어와."
    "주인이 있어."
     
    막상 그의 집까지 도착해 그와 단둘이 앉아있으려니 매우 어색했고, 기분이 이상했다.
     
    정말 묘한 느낌이였다. 약간의 발기증상 같은 느낌과 함께 두려움이 엄습했다.
     
    알라딘 삼촌의 집에서는 이젠 그가 나를 만족시키려 하는 것 같았다. 온갖 맛있는 과자를 내게 대령해주었고.
     
    온갖 달달한 말들을 속삭였다. 희한한 느낌이였다. 엄마아빠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한 기묘한 느낌이였다.
     
    그리고 그가 나를 껴안았다. 누구와 껴안아도 그런 느낌은 받아본 적이 없는 데, 정말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무서웠다.
     
    나는 집에서 엄마가 기다린다고 했다. 그리고 머리에 번뜩 스쳐지나간 것이 있었다.
     
    이 삼촌은 나를 여자로 알고 나를 좋아하는 것이다.
     
    삼촌은 우리집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이트라인을 시청할 때의 그 냉소적인 느낌과 닮아있었다.
     
    집 앞에 도착해 멋쩍은 미소를 남기고 그는 떠났다. 성훈이와 미진이가 마중나와 있었다. 마구 캐물어댔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 여자였었다면 그와 나는 사랑의 도피를 떠나게 됐었을까?
     
    지금도 궁금하다. 
    출처
    신주쿠요의 꼬릿말입니다
    흠...조회수가 유독 낮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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