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남자 혼자서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특히 나와 같이 게으른 사람은 더 그렇다. 심지어 혼자살기에는 지나치게 넓은 지금의 집에서 혼자 살게된 이후로는 빈말로도 깔끔하다는 얘기는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한때는 조금 더 작으면서 정리하기 쉬운 집으로 이사를 할까도 생각했었지만 아내의 흔적이 깊이 남아있는 이집을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왠만큼 더러운 것에는 익숙해졌고, 때때로 찾아오는 지인들의 잔소리를 제외하고는 불편없이 살고있는 중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번에 발견한 얼룩만큼은 나로써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처음 그 검붉은 얼룩을 발견했을 때, 나는 그저 특이한 곰팡이이 번식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뭐 곰팡이나 벌레들과는 아내가 없어진 다음부터 함께 살아온 것들이니 그렇게 충격적인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처음 사람머리크기정도였던 얼룩이 시간이 지나면서 커져가는 것은 가히 충격적인 일이었다. 머리뿐이었던 얼룩은 마치 사람의 그림자처럼 목이 생기고 몸통이 생기고 점차 팔다리까지 사람의 형상으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어쩌면 텔레비전에 매일같이 나오는 신기한 자연현상 중 하나라고 치부하고 지나칠 수도 있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필이면 다른벽도 아니고 '그벽'에 얼룩이 생겼단 말인가. 아내의 흔적이 남은 그벽에... 내가 아내를 매장해버린 그 벽에 말이다.
그것이 사람의 형상이 되고 점차 진해지고 있는 것을 보는 나의 심정이 어떨지 상상이 되는가? 그 얼룩이 자라날 수록 내 정신도 붕괴되고 잇는 것일지도 모른다. 밤중에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몇번이나 잠에서 깨어나 벌벌 떨기도하고 고함을 쳐보기도 했다. 벽에 십자가를 걸어놓기도 했었고 이윽고 부적이나 염주등 이제 그 벽은 뭔가 종교적인 물품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룩은 점점 진해져 이제는 새까만 색이 되었고 내 정신도 새까맣게 썪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이쯤되자 처음에는 두려움에 떨었던 나도 이제는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분노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더이상 두려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챈모양인지 아내는 그전보다 훨씬 심하게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밤에는 비명을 질러대고 내가 잠들기라도 하면 벽속에서 새까만 팔을 꺼내 내목읅 졸라댔다. 그러는 날에는 나는 한숨도 자지 못하고 밤을 지새우곤 했다. 저년은 살아생전에도 그렇게 들들 볶아대더니 죽어서까지 나를 괴롭히고있다.
드디어 오늘, 나는 그년을 벽에서 파내기로 했다. 커다란 헤머를 휘둘러 벽을 부수는 이 순간 나는 그동안에 쌓인 스트레스가 한번에 날아감을 느꼈다. 숨이 거칠어지고 땀이 흐를 수록 나는 점점 신이나기 시작했다. 한방한방 온힘을 다해서 휘두르고 부숴낸다. 벽은 생각보다 쉽게 부서져나갔고 나는 일종의 우월감을 느끼고 있었다. 살아생전에도 나에게 이기지 못했던 여자다. 죽어서라고 별 수 있겠는가? 드디어 힘차게 휘두른 헤머에 커다란 벽의 파편이 떨어져 나갔다. 내가 아내를 파묻은 그벽이 다시 아가리를 벌리고 나를 보고있다. 나는 어떤 광경을 보아도 무서워하거나 놀라지 않을 자신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내 자만이었다.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그 벽의 검은 아가리를 본 순간 나는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그년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