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됐던간에, 지금부터 써 내려갈 두서없는 글은, 내 개인적인 고백이 될 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나의 인간론에 대한 이야기이며, 여태까지 써 왔던 글들과는 조금 핀트가 다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히 해야할 것은, 나 나름대로의 인간상을 고백하는 글이며, 어디까지나 객관을 떠난 주관적인 글이 될 것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사람마다 다를 수 밖에 없으며, 그것을 타인에게 강요할 수도 강요받을 수도 없는 것이니까. 그저 나에게 있어 나라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다라는 것을, 나 스스로에게 고백하는 것일 뿐이다. 내 인생 속에서, 한번쯤은 이런 불쾌한 고백따위는 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있어서 인간이라는 동물은, 적어도 나라는 동물은, 어디까지나 위선에 가득 찬 짐승일 뿐이다. 내가 무언가를 위해 희생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그것은 자기희생을 통해 나 개인의 만족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사실 다른 것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가장 우선순위에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내 개인의 만족'이다. 그것을 위해서, 나름 희생도하고, 노력도 하는 것에 불과하다. 남들에게 비치는 나는, 적어도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보다는,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조금 더 많을 것 이라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것이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왠만해선 선의를 배풀려고 하기 떄문이다. 하지만 그 선의는, 어디까지나 나 자신을 위한 선의일 뿐이다. 내가 저 사람에게 선의를 배풂으로써, 나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기 위한 일종의 연극과도 같은 것이다. 어디까지나 궁극적인 목표는, 나의 개인족인 만족이고, 남에게 배푸는 선의는 그것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이런 나의 추악한 모습을 딱히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는 어디까지나, 내 개인의 만족에 준거해 행동한다는 것에 대해서 그것이 어긋나있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나는 순수하게, 나의 이익을 위해 행동할 뿐이며, 그런 나의 추악한 일면을, 달콤한 말로 포장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내 만족을 위해서, 악한 행동을 할 때도 있다. 그러려고 잘 하지 않는것은, 어디까지나 악의적인 행동이, 선의의 행동 보다는 만족감을 덜 주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 나름대로의 행동양식이라면, 나에게 있어 정의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추악한 일면을 마주할 수 있는 태도일 것이다.
나에게 있어 정의란, 이런 위선적인 나를 나 자신에게 속이지 않고, 그것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거짓을 갖고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아디까지나 정의가 될 수 없다. 물론 그 방법이나 결과가, 옳은 방법과 방향으로, 그리고 결과를 낳았을 때 진정으로 '정의'라는 타이틀을 붙일 수 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순수하게 자신을 전혀 생각치 않고 희생만을 한다면, 그것은 '옳은 행동'이지 '정의'라고는 표현하기 힘들다. 정의라는 것은, 자기 자신을 마주할 용기가 바탕이 되어있는 일종의 정신적인 면이기 때문이다.
나를 마주하고, 나를 인정하고, 나를 이해하고, 그리고 나서 나에게 있는 것들을 짊어질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정의로운 사람' 이라고 하겠다. 자신에게 솔직하지도 못한 사람에게, 정의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란 쉬운 일이 절대 아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간상'과, 실제로의 자기 자신은 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이상적인 인간상에 자신을 끼워 맞추려고 하고, 그 틀에 맞춰서 살아갈 뿐이다. 실제의 자기 자신은 전혀 인정하지 않은 채, 억지로 만들어진 자신의 모습을 실제로 자기 자신이라고 어거지로 흉내내고 있는 것 뿐이다. 예를들어 자신의 인간상이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라면, 자기 자신의 진정한 모습은 제쳐두고, 자신이 마치 자기가 만든 인간상과 아주 똑같은 사람인 척 하며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앞으로 대부분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며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강제로 억눌러버린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해, 항상 정신적으로 괴로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자신의 인간상을 흉내낼 뿐인 사람은, 어디까지나 이 사람이 얼마나 선량한 일을 했다고 해도, '정의로운 인간' 이라고는 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나를 마주치는 단계를 거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정한 정의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고, 자신의 진정한 모습대로 행동하는 데, 그것이 선량한 행동일 때 진정한 정의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디까지나 자신의 선의는 위선에 불과하다. 아니, 정의와 옳은 행동의 결정적인 차이는, 어떻게 보면 이것이맂도 모르겠다. 정의로운 사람은 자신이 위선자임을 분명하게 자각하고 있는 사람이고, 올바른 사람은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기 이전에 선의의 행동을 하는 사람일 것이다.
나는 어디까지나 추악한 사람이다. 추악하기도 하고, 항상 선의의 행동만을 하는 것도 아니다. 대체로 선의의 행동을 많이 하려고 하지만,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라면, 옳지 않은 일도 꽤나 여러번 했다. 나는 어디까지나 '옳은 사람' 조차 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