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6.2 지방선거는 여당의 참패로 끝났습니다.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는 전격사퇴를 했습니다. 이명박 정부도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한 국민의 뜻을 받들어 국정운영을 하시기를 제발 바랍니다.
부산시민인 저는 역시나 한나당의 위엄을 체험하는 시간이었지만, 놀랍게 변한 부산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예상대로 허남식이 재선에 성공했지만 득표율은 겨우 55%의 지지에 그쳤죠. 김정길이 무려 45%에 육박하며 충격적인 선전을 했습니다. 교육감에서도 진보성향의 박영관이 보수의 임혜경에 겨우 3%차로 뒤지며 아깝게 떨어졌지요.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고, 진보를 지지하는 저로서는 부산도 희망이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나라당과 그 지지자들은 이겼음에도 씁쓸하셨겠지만, 정말 진심으로 갱신하고 발전하시기를 바랍니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한명숙의 역전패와 오세훈의 재선 성공에 대한 것 때문입니다. 결과론적인 것이지만, 결국 한명숙의 예상 외의 선전으로 인해 노회찬과의 단일화 실패가 본 선거의 당락을 좌우하게 되었습니다. 분노한 많은 야당지지자들이 노회찬을 비난하고 있고 노회찬의 미니홈피만 해도 엄청나게 많은 욕설 섞인 비난글이 도배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진보신당 지지자이고 정치인들 중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노회찬인지라 마음이 아픕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오세훈과 대결하기 위해서 야당은 단일화 카드를 빼들었지만 한명숙과 노회찬은 끝내 따로 가게 되었죠. 저는 개인적으로 노회찬을 지지하기에 노회찬으로의 단일화를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물론 이는 이상적인 것일 뿐 전혀 현실성이 없기에 일단 그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단일화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민주당에 흡수 당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기에, 단일화가 무조건적인 승리를 담보할 때에야 논의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쨌거나 오세훈을 막고, 현정부를 견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저 역시 크게 갖고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마지막 여론조사가 나올 때 까지도 야당은 큰 힘을 받지 못했고 단일화를 해도 오세훈을 막을 수 없는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그것도 꽤나 크게 말이죠. 그래서 저 역시 어차피 안 될거면 서로 비전도 다르고 정치철학도 다른데 무의미한 단일화 보다는 패하더라도 끝까지 선의의 경쟁을 하는게 차라리 낫겠다라는 생각이었습니다(반면 경기도에서는 빠르게 유시민이 김문수를 추격하고 있다고 했기에, 심상정의 단일화 결정을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오히려 서울이 단일화를 했으면 이길 공산이 컸고, 막상 경기도는 김문수의 지지에 대한 유시민의 추격이 단일화를 했음에도 상당히 뒤쳐졌죠. 여러모로 최악의 상황(물론 야당의 승리라고 평가할 수 있는 이번 선거였지만)이 진보신당 앞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사실상 판단미스를 하게 된 꼴이되었지요.
저도 이번 결과가 안타깝고 슬프지만, 결국 결과론적인 가정의 미련이라는 생각입니다. 노회찬도 단일화가 승리를 보장한다면 단일화하겠다는 방침이었지만 여론조사는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했지요. 그리고 생각해야 하고 이해되어야 하는 것은 진보신당과 민주당(혹은 국민참여당)의 비전은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정치적 자유 민주주의의 신봉 외에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다르다고 할 수 있죠. 진보신당에서 볼 때 민주당은 보수일 수 밖에 없고(실제로 글로벌 스탠다드로 보나, 정책으로 보나 명백한) 지난 국민, 참여 정부 시절의 과오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없는 갱신은 기대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심상정의 단일화 결정 이후 진보신당 당원들의 비판이 쏟아졌던 것도 같은 맥락이죠. 즉, 진보신당의 단일화 승락은 엄청난(혹은 굴욕스러운) 양보라는 것입니다. 현정부의 심판이라는 대의를 위해서 말이지요.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게 했고요(부산도 단일화했죠. 서울은 무산되었지만 여론조사가 바탕이 되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었고).
어쨌든, 결과는 났고 정당한 절차에 의해 선출된 것을 용인해야만 하는 것이 민주주의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거철에만 굽신대고 당선 후에는 기고만장하고 자기 멋대로 하는 권력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끊임없는 감시와 견제, 문제제기가 필요합니다. 따지고보면 특정당을 지지하는 것도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당의 소속과 관계없이 국민들이 바라는 대로 키를 돌리는 선장을 갖는 것이 사실은 가장 바람직한 것이지요.
한나라당의 오세훈 시장이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가 다시 키를 잡았다는 것일 뿐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절대적 힘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국민들의 동의와 권력의 이전(移轉) 없이는 항해를 해나 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시민사회가 힘을 가질 수 있는 오세훈의 정책과 비전에 대한 확실한 문제제기가 노회찬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앞으로의 오세훈의 운영에 견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논거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다시 기회를 얻었지만, 노회찬이 제기했던 문제들에 대한 해답없이는 나아갈 수 없을 것이며, 또 나아가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지금 해야하고 앞으로 해야하는 일은 오세훈이 정녕 노회찬이 제기한 문제를 해결하고 가는지, 아니면 밟고 가는지를 감시해야하는 것이고, 그에 대해 끊임없는 문제제기를 하는 것입니다. 노회찬의 미니홈피에 욕설을 도배하거나 진보신당에 저주를 퍼붓는 패배주의적인 태도보다는 이쪽이 우리 국민을 위한 길이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