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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여자 : 어쩌면 당신도 봤을지 모를...
1. “저 여자 뭐야... 장사 말아 먹을라고 환장했나?”
대학로 외곽의 한 작은 술집, 식당 사장과 종업원 두 명이 모여 한 여자를 두고 불편한 대화를 이어나간다. 어두침침한 구석자리, 여자는 혼자였다. 얼굴 가득 눈물이 맺혀 있었고, 메뉴를 건네고 주문을 받기도 전에 이미 테이블에 엎어져 오열하고 있었다.
“저기...” “처음처럼 하나랑 그리고 여기서 제일 비싼 걸로 주세요.” “네? 그게 아니고” “여기서 제일 비싼걸루 주시라구요.”
우는 여자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기 힘든 듯 테이블에 얼굴을 파묻은 채, 운다. 또 운다. 서럽게도 울었다. 테이블에 앉은 다른 손님들의 시선도 모두 동반자가 아닌 우는 여자에게 꽂혔다. 그럴 만도 했다. 물 먹은 스펀지 마냥 담뿍 젖은 것이 짜보지 않아도 알 그런 서글픔이 배어 있다. 다들 눈치만 보며 무슨 일일까 궁금해 할 즈음, 손님이 버린 영수증 마냥 구겨진 인상의 남자 하나가 카운터에서 걸어 나왔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옷, 점잖아 보이는 인상... 하지만 그의 손은 엎드린 여자의 팔을 답답한 듯 흔든다. 그리곤 말했다.
“나가주시면 안될까요?”
정중함을 가장했지만, 불편함과 짜증을 애써 숨긴 듯 한 목소리였다.
“아저씨, 그냥 제일 비싼 걸로 주시고 여기 좀 있으면 안 될까요?.” “제일 비싼 거 지금 재료가 떨어져서요. 죄송하지만 좀 나가주세요.” “그럼 아무거나 주세요. 네? 부탁드려요. 잠깐만 있을게요.” “죄송하지만 여기서 이러고 계시면 다른 손님들 보기 안 좋아서요... 죄송합니다. 나가주세요.”
누군가의 서글픈 사정이야 들어 무엇하겠냐마는 주변 테이블 사람들의 눈초리에 사장의 매정한 행동이 밟힌다. 여자는 곧 쫓기듯 나갔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무어라도 된 듯, 우는 여자의 사정을 추측하여 떠든다. 약간의 안타까움, 경험적 애틋함도 느껴졌지만, 그래봐야 늦은 저녁 술자리의 안주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남의 일인 것이다. 싸구려 동정심은 겨울밤 흔한 바람처럼 쉬이 흩날려 사라졌다. 다만 가장 매정한 척 했던 사장만이 밖으로 나가 저만치 걸어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그리곤 [끊겠다] 생각했던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문다. 그도 아픈 적 한 번 없는 사람이었겠냐 마는 짊어진 생업의 짐이 무겁다. 내뿜는 담배연기 사이로 매정한 이의 입은 썼다.
2. 우는 여자는 그리 멀지 않은 곳의 허름한 술집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손님 하나 없다. 모처럼의 손님에 사장은 달 뜬 표정이었지만, 기쁨은 곧 숨는다. 손님 하나 없어도 우는 손님은 달갑지 않은 법이다. 그래도 다행히 제일 구석 후미진 자리 하나를 내어준다. 여자는 앉자마자 또 다시 테이블에 얼굴을 파묻고 운다. 사장이 다가와 말을 거니 똑같이 부탁 했다. “여기서 제일 비싼 걸로 주세요.” 평소라면 제일 비싼 안주를 내오라니 기분 좋아 농이라도 걸 텐데, 사장은 물장사 특유의 눈치를 발휘해 농담대신 “막 우셔도 되요. 힘 좀 내구요.”란 짧은 위로를 테이블에 남긴다.
3. 자정으로 향해가는 시간, 우는 여자는 쌓인 술병들을 뒤로한 채, 취한 몸을 이끌고 택시를 잡으려 애쓴다. 분명 갈 곳이 있다. 허나 매서운 밤공기마냥 택시 잡기는 녹록치 않다. 문득 주위를 돌아보니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길게 늘어선 행렬이 마치 누군가의 장례식 발인(發靷)처럼 처량하다. 여자는 무심코 행렬의 중간에 끼어들어 함께 걷는다. 그런다고 슬픔이 묻어지기야 하겠냐마는, 무작정 걷고 있으니 헛헛한 마음, 쓰린 것은 덜 하다. 긴 행렬의 끝은 아래로... 아래로... 또 아래로 이어진다. 전철역 안이다. 슬픔 모를 바쁜 소리와 함께 열차가 왔다. 열차는 그녀가 가고자 하는 곳과 멀지 않은 곳으로 간다. 한 번을 갈아타면 된다. 그녀는 구석에 자리를 잡고 드나드는 사람들을 잠깐 보다 눈을 감았다.
4. 톡톡, 톡톡, 누군가 어깨를 두드린다. 낯선 이의 무심한 손길이다. 낯선 이는 짧은 시선 한 번 주고 멀어져 간다. 열린 문 사이로 싸늘한 새벽바람이 그녀를 끌어 당겼다. [인천], 대여섯 정거장만 더 가려던 그녀의 바람과 달리, 낯선 플랫폼이 그녀를 생경하게 한다. 내뿜은 입김이 성긴 것이 공기가 차갑다. 그녀는 습관처럼 전화기를 들었다. 단축번호 1번, 손길은 익숙함으로 번호를 누른다. 익숙한 통화대기음은 생경한 공간의 낯설음을 덜 해주는 약간의 위로... 문득 돌아보니 역 앞 덩치 큰 사내 몇이 홀로 선 그녀를 흘깃 바라본다. 오해일지 모르나 교차하는 시선은 불편하다. 수화기를 든 그녀의 목소리가 타인을 의식한 듯 커졌다. “나 여기 인천이야, 춥고 어떻게 가야 될 지도 모르겠어! 나 좀 데리러 와 응?” “인천? 어쩌다가 거기까지 갔냐? 으이구! 조심하지... 내가 금방 갈게 기다리고 있어” “그래 고마워 오빠” “추우니까 어디 따듯한 데라도 들어가 있어, 이 밤에 위험할 수도 있고... 넌 진짜 나 없었음 어쩔 뻔 했냐? 밥팅아! 저번엔 간다고 하고 바람 맞춰서 미안해! 이번엔 꼭 갈게!” “그래 오빠! 빨리와! 빨리와! 춥고... 너무 춥고... 또 보고 싶어! 너무! 너무 보고 싶어!” “그래 나두! 나도 보고 싶어 너...”
목소리에서 그리움이 담뿍 배어난다. 바로 며칠 전에도 나눴던 대화다.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다.
5. 수화기를 내려놓은 여자는 역 앞의 모르는 사람들을 등지고, 종종걸음으로 달린다. 종점, 막차 손님이 종종 있는지, 커피숍 하나가 늦은 시간에도 불을 밝혔다. 조용히 앉아 따듯한 라떼 한잔을 청했다. 조명도, 실내 온도도, 라떼도 따듯했다. 여자는 예전의 따듯했던 하루를 추억하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띠링] 카톡이 왔다. 아니 이미 수십 통도 넘게 와 있었다. 깜빡 잠이 든 걸까? 여자는 휴대폰을 열어 메시지를 확인했다. 친한 언니오빠 서너명이 보낸 것 들이었다. 버튼을 누르니, 길고 짧은 글들이 느닷없이 그녀의 가슴팍을 쥐고 흔든다.
[야! 이 미친년아! 연석오빠 너 만나러 가다가 사고 나서 죽고, 내일이 발인인데 넌 어떻게 코빼기도 안 보이냐!] [인간적으로 너 때문에 죽었는데 장례식 첫 날 띡 왔다가 갑자기 사라져서는 안 나타나는 건 무슨 경우야? 여기 형네 가족들은 울고 난리 났어! 내일 벌써 발인이니까! 그때까진 꼭 와라! 형이 너 얼마나 좋아했냐! 마지막 가는 길이라도 배웅하는 게 진짜 인간적 도리다 응?] [언니 실망이에요. 우리 오빠가... 어쩌다가 죽었는데!! 언니는 어디서 뭐하는지! 정말 우리 오빠가 왜 언니 같은 여자를 만난건지 정말 원망스럽네요. 그냥 오지 말고, 앞으로 우리 다신 안 봤음 좋겠네요] [미현아 남희 언닌데, 너 정말 그러는 거 아니다. 어디 처박혀서 뭐하는 진 모르겠는데, 내일 발인까진 꼭 와라! 응? 알았지? 그때도 안 보이면 난 정말 너 다신 안 본다. 나 지금 너한테 너무 실망했어...] [내일 발인도 안 오면 너는 진짜 사람새끼도 아니다. 이 나쁜년아!]
그제서야 생각이 났다.
[우는 여자가 가려고 했던 곳] [그리고 술에 취해야 했던 이유]
탁 하는 소리와 함께 휴대폰이 바닥에 떨어져 나뒹군다. 충격 탓일까? 떨어진 휴대폰의 화면이 바뀐다. 액정 중앙엔 마지막 통화 [연석♥오빠 통화시간 00:45]가 찍혀있다.
“온다고 했잖아... 오...온 다고.... 그 날도 오... 온다고 했잖아...”
[인천역], 그리고 종점 앞 불 켜진 작은 커피숍, 우는 여자가 또 운다.
: 어쩌면 당신도 봤을지 모를... 우는 여자 ***** [괴담으로만 치부되던 장기밀매 조직이 일망타진 되었습니다. 조선족 출신의 중국인들을 중심으로 한 이 조직은 인천의 차이나타운 일대를 근거지로 활동하다가 덜미가 잡혔습니다. 안대기 기자가 전합니다.]
[인천 차이나타운 외곽의 작은 방, 평범해 보이는 외관과 달리 내부로 들어가면 놀라운 광경이 연출됩니다. 수술용 조명과 메스, 운반용 냉동박스까지... 장기 밀매를 위한 시설이 모두 구비되어 있습니다.]
[에... 이 조직은 핵심 장기의 경우 인천항을 통해 공유수면지역에서 중국 측 배와 접선하여 장기를 전달하고, 남은 부산물인 피부와 피하지방의 경우 강남의 유명 성형 외과등에 시가보다 싼 가격에 제공하는 등 그야말로 수법이 악랄하였습니다. 하지만 첩보를 접한 저희 인천지방경찰청 강력계는...]
[늦은 밤 귀가하는 여성들을 주로 타겟으로 삼았던 끔찍한 불법 장기 적출 조직으로 인해 괴담으로만 알려졌던 연쇄 납치사건의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관계당국은 예산부족 등의 이유를 들어 CCTV의 추가 설치 등에는 미온적인 입장입니다. 하루빨리 여성들도 마음 편히 귀가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합니다. KBC뉴스 안대기([email protected])였습니다.]
[별 일 없니? 발인은 잘 끝났다. 하지만 나는 너 원망 안한다. 너도 어린데 얼마나 놀랐겠니? 나는 우리 연석이 가슴에 묻었다. 나야 내 배 아파 낳은 내 새끼니 가슴 찢어져도 넌 앞길이 구만린데 어찌 그리 살겠나? 싹 다 잊고, 잘 살거라]
[진짜 개 씨발년! 넌 끝까지 안 오는구나! 그래! 평생 그렇게 살아라! 평생 도망 다니면서 그렇게 살아! 연석 오빠 니가 죽인거야! 이 살인자야!]
[이미현씨 가족 분 되십니까? 휴대폰 보고 연락드렸는데요. 네 경찰입니다...]
[미현아 남희 언닌데, 뉴스에 나온 거 너 아니지? 그치? 이 거 보면 연락 줘] |
글쓴이의 말 [뭐이씯밭?]님의 개인적 사연을 각색하여 옮겼습니다. 실제 사연과는 다소 무관한 픽션을 포함해 변주했지만, 사람의 아픈 마음이야 그 형태만 조금 다를 뿐, 결국 다 같은 것이겠지요. 뜻하지 않은 괴담소설에 가슴 아픈 사연을 소재로 사용토록 허락해주신 [뭐이씯밭?]님께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나저나 [뭐이씯밭?] [뭐이씯밭?] 닉네임이 경쾌하고 좋네요 [뭐이씯밭?] 욕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친목의 의도가 전혀 없기때문에 닉언죄는 붙이지 않겠습니다. 그게 무슨의미인지도 모르겠고) p.s 안 무서운 건 죄송합니다. 그래서 븅신사바에는 올리지 않습니다. 뭐 잠깐이지만 죽은 사람이 나오니까 뭐 이 정도는... 안되나? [뭐이씯밭?] -.,-;; p.s 아마추어 창작자는 추천과 댓글을 먹고 삽니다. 감사합니다. p.s 꼬릿말을 통해 저의 다른 글들을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
출처 | 나, 뭐이씯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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