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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블로그씨
문이 꽉 잠겨 있는 방이 있습니다. 그 방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아-아아아-"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위한 나의 발악을 비웃기라도 하듯
벽을 여러 번 부딪힌 소리는 다시 내게 메아리쳐 들려온다.
"아아아-" "아아-" "아-"
빌어먹을, 아무 것도 없는 잠긴 방이면 좁기라도 하든지.
온통 하얀 벽지만 발라져 있는 방은 못되게도 넓다.
벽을 두드려 보아도 콘크리트 재질인 건지 차갑고 딱딱하기만 하다.
주제에 방음 잘 되는지 밖에서의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새소리나 아이들 소리는 바라지도 않으니 자동차 경고음이라도 삑삑 들렸으면, 하고 생각한다.
빛 조차 들어오지 않는 이 곳엔 천장에 외로이 매달린 백열 전구 하나가 고작이다.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온다.
이런 쓸 데 없는 실험따위 참가하는 게 아니었어. 젠장, 돈이 다 뭐라고.
몇 시간이 흘렀을까. 아니 사실은 몇 분일 뿐일까? 어쩌면 몇 초였을 지도.
200원짜리 펜 하나도 주어지지 않은 이 곳에서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내라는 건지.
약속한 시간은 이틀.
이 곳에 이틀 간 감금되는 데에 따라오는 보상은 2억.
일당 1억이라니, 백수로 부모님께 손 벌리며 거머리처럼 살아온 나에게 큰 돈을 만질 기회가 온 것이다.
이걸로 부모님의 잔소리나 친척들의 한심하단 눈초리도 당분간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주식이나 펀드에 잘 투자한다면 이 돈을 몇 배고 불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틀을 투자해서 인생을 바꾼다ㅡ나에게 이 돈은 인생 역전의 찬스로 보였다-라.. 그 누가 이 제안에 흔들리지 않을 것인가?
이 실험은 나에게 최소한의 조건 하나를 제외한 모든 것을 차단시켰는데, 그 조건으로 나에게 제공된 것은 "빛"이다.
이곳을 완전히 외부로부터 차단시키는 것이 실험의 핵심이기 때문에 음식과 물을 조달해줄 수 없다고 했다.
따라서 실험이 시작되기 전에 나는 이틀을 넘길 만한 식량과 물을 충분히 섭취했다.
물이 없어도 이틀의 몇 갑절은 버텨낼 수 있는 게 사람이니 겨우 이틀 안에 이로 인해 신체에 문제가 생길 리는 전무하다고 들었기 때문에 나는 안심했다.
며칠이고 집에서 뒹굴 때에는 굶는 게 일상이었는 걸, 뭐.
스미다 강의 불꽃이 피어 질 때까지는 만나러 가겠습니다ㅡ
머리 속을 간지럽히던 노래를 입으로 쏟아냈다.
방 안에 카메라와 마이크가 설치되어있어 내 모습과 노래가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을 테지만 겨우 그런 이유로 마네킹마냥 조용히 앉아 침묵을 지키기에 이 적막은 너무나 강력했다.
마치 침묵이라는 거대한 매트리스로 내 몸을 짓누르고 있는 듯한 느낌.
그걸 억지로라도 밀어내기 위해 나는 노래를 불렀다.
몇 곡이고 한참 머리에 떠오르는 노래를 순서대로 불러내고 닫은 입은 조금 말라있었다.
왠지 시간을 잘 때운 것 같아 뿌듯했지만
생각해보면 노래 한 곡에 4분이라 쳐도 한 시간이 흐르려면 15곡은 불러야 한다. 그것도 전곡으로.
실제로 내가 보낸 시간은 30분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괜히 허무하다.
두 시간쯤 흘러갔을까.
뜬금 없이 사색에 잠겼었다.
괜히 빈 시간을 폭탄으로 맞자 최근에 있었던 일들을 다시 곱씹어보게 됐다.
엄마가 나한테 화 냈었지.
학교도 다니지 않고 집에서 뭐하러 뒹굴고 있느냐며
나가서 돈을 벌어 먹고 살든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공부라도 하든지
그것도 아니면 좋은 여자 만나 장가라도 가든지.
신데렐라라고 여자만 되라는 법 있냐며 스스로 금수저 찾아 물지 않을 거라면 금수저 든 사람 옆에서 반찬이라도 얻어먹으라던.
그때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괜히 찔리는 걸 숨기려고 엄마한테 큰 소리 냈었지.
엄마가 못나서 못난 자식 낳은 거라고, 아들 앞가림도 제대로 해주지 못할 거면 왜 낳은 거였냐고
스스로도 미쳤다 싶을 정도의 심한 말을 했었다.
나도 엄마한테 자랑스러운 아들이고 싶었는데
다른 동기놈들, 동창놈들처럼 번듯한 직장 들어가서, 상사눈치 봐 가며 일에 시달려 그만두고 싶은 생각에 사로잡히더라도 월급날이면 그 쥐꼬리만한 돈이라도 내가 벌었다는 뿌듯함과 그간 잘 참아냈다는 안도감과 만족감에 입꼬리 올리며 작은 적금 하나 들어서
이 불효자식때문에 늙어버리신 엄마 아빠, 해외는 안 되더라도 저기 제주도라도 비행기 태워 보내드리고 싶었는데
서류는 매번 접수가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도 모르게 탈락되어버리고
그나마 면접이라도 보게 되면 실어증이라도 걸린 사람마냥 말을 못하고 목소리를 냈다싶으면 말더듬이가 되고
나도 잘 하고 싶은데 기회조차 얻을 수 없는 게 답답하고 비참해서 자신에게 났던 화를 부모님께 내버렸다.
그래, 이게 끝나고 나면
상투적이지만 먼저 부모님 내복이라도 한 벌씩 사다드리고 저기 어디냐, 그 관광지로 유명한 섬 있잖아,
엄마가 한 번 꼭 가보고 싶다고 작은 목소리로 얘기했던, 적도 근처의 그 섬 있잖아.
거기, 거기 보내드려야겠어.
처음으로 하는 효도, 이왕 거창하게 시작해야지.
동생한테도 뭐 하나 해줘야겠어. 부모님만 여행보내드리고 하면 저녀석이 분명 삐질 거야.
그 뭐냐, 동생이 매일같이 인터넷에서 찾아보던 그 가방있잖아, 맨 처음 가격을 보고는 한숨 한 번 쉬고 창을 닫았지만 한 번 꽂힌 물건이 쉽사리 머리에서 떠나가겠어, 그 뒤로 자꾸자꾸 많으면 너덧 번씩 하루에 그 사진을 쳐다보던만.
그래, 그거 하나 사서 몰래 침대 위에 올려놔야겠어. 이 녀석 평소엔 쌀쌀맞고 퉁명스럽지만 가끔씩은 귀여운 구석이 있었으니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색을 끝마치고 난 후에 무심코 방을 휙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변한 게 없었다.
배가 조금 꺼진 걸로 봐선 저녁 즈음은 됐으리라.
정오에 이 곳에 들어왔으니 족히 6시간은 지난 셈이다.
이틀도 별 거 아니겠는데?
지루하다.
권태롭다.
아까 이틀도 별거 아니라고 한 내 말에 시간이 심술이라도 부리는지 시간이 정말 가지 않는다.
시계도 없는 터라 얼마나 지나는지, 지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히 몇 분 지나지 않았다는 건 알겠다.
저 하얀 벽지에 글이라도 쓰고 싶다.
하다 못해 금 하나라도 긋고 싶다.
인간은 빈 공간을 참고 보지 못한다고 했던가.
벽들이 온통 도화지로 보인다.
나는 화가, 물감을 빼앗긴 화가라고 생각된다.
붓은 있는데 말이지.
난 오색의 물감은 필요 없어. 단 한 가지, 한 가지면 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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