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링크 걸고 간략하게 코멘트만 할까 하다가 링크는 뭔가 불친절한 듯 하여 내용 그대로 복붙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철게에 가면 원문 글이 있긴 한데 아래 내용과 똑같습니다...)
군게 붙들이 이런 주제에 관심이 많으실 듯 하여...저도 한 숟가락 얹어봅니다.
제가 사실 상처를 잘 받는 사람이라서 혹 군데군데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더라도 너무 심하게는 마시고 아주 살짝 까(?)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ㅎㅎ
-------------------------------------------------------------------------------
이름만 대도 알 만한 유명 공연 연출가, 모 탤런트의 성 추행 논란에 이어 한국 사회에도 미투 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듯 합니다.
지나친 예민함과 불편함을 배격하는(악의 없는 농담으로 받아들여 주시길...) 저의 나른하고 게으른 사고 특성 상 '그냥 그런가 보다...' 하던 와중에 고은 시인의 이름이 거론되길래 개인적으로 화들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설마 그 분도...? 라는 생각을 아니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죠.
언제부턴가 나 자신이 직접 만나보지 않은 사람을, 직접 접해서 알게 된 것이 아닌 정보를 통해 판단하지 말자~라는 것을 기본적으로 깔고 살아가고 있긴 합니다만, 어디 사람이라는 게 그렇게 완전히 일관성 있고 엄밀하게 살아지는 존재든가요. 저 역시 이런저런 프로파간다에 휘둘리고 대중적인 편견과 선입견에 쩔어 살아가고 있을 겁니다. 다만 뭔가 회의적인 사고를 아예 안해본 사람보다야 덜 위험하겠지만요.
그런 저에게 있어 간접 정보를 통해 피상적으로 접한 고은 시인의 이미지는 엄혹하고 무서웠던 시절에 군사독재의 군화발 앞에서도 초연히 자리를 지켰던 양심적이고 꼿꼿하고 자존심 강한 문인의 모습이었습니다. 한국인이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면 그 첫 수상자는 반드시 그분일 거다(라기보다는 '그분이어야만 한다' 쪽에 가까웠다고 생각됩니다)라는 말들을 여러번 접하며, 역시 게으르고 무감각한 저의 개인적인 특성 상 '그런가 보다...정말 대단하시긴 한가 보다...' 생각했었죠. 아 써놓고 보니 좀 또는 많이 한심하긴 하네요.
그런데 그분이 성추행 논란에 휩싸여 있다는 거였습니다. 그것도 한두 번, 비교적 최근에 벌어진 것이 아니라 무려 60년대부터 공공연한 비밀이었다는 얘기가 나와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간 수많은 여성 문인과 제자들이 알게 모르게 피해를 입어 왔고, 주변 사람들이나 지인들도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더군요. 하도 얘기가 자주 나오니까 1970년대부터 '나를 사칭하는 가짜 고은이 있다'고 여러번 이야기해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가짜 고은'은 현재까지도 실체가 불분명하다고 하고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냥 고은 시인이 자신이 저지른 일을 '가짜 고은'에게 덮어씌우기 위해 만든 가상의 캐릭터라고 믿는 모양이더군요. 물론 어떤 것도 확실한 건 아닙니다만...중요한 건 고은 시인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성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문열이 1994년에(이것도 20여년이 훌쩍 넘었네요) 출간한, 성추행을 일삼는 어떤 작가를 다룬 소설 또한 고은 시인을 모델로 하고 있다고도 하고요. 그러니까 제 말은, 이게 지금까지 안 터지고 묻혀 있었다는 게 더 신기할 정도라는 겁니다.
언제부턴가 뇌과학과 생물학 같은 자연과학이 인문학 고유의 논의에 끼어들기 시작하면서 저도 그런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직장내 성추행을, 무리 생활을 하는 일부 포유 동물들의 '마운팅'과 비슷한 관점에서 봅니다. 인간이 군집 포유동물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는 한 권력의 편중이 성범죄를 수반하는 일련의 사태는 완전히 근절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죠.
침팬지나 보노보의 사례를 보면, 마운팅은 서열이 높은 수컷-암컷 간의 관계 뿐 아니라, 수컷-수컷 간에도 일어납니다. 마운팅은 성욕 축족이나 번식이 아니라 일종의 서열을 각인시키기 위한 행동이라고 하네요. 물론 그 행동을 촉발하기 위해 뇌는 '성적 쾌감'이라는 보상을 개체에게 주게 되는 것입니다. 즉, 이것이 멀쩡한? 인간이 높은 위치에만 올라가면 발정이 나서 자꾸 그런 행동을 해대는 원인이라 볼 수 있다는 점이죠.
최근의 미투운동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아니, 본의에 맞게?) 페미니즘 세력의 위상이 상당히 올라가고 그들의 발언권이 세지는 양태를 보이고 있는데, 제가 생각하기에 (적어도 요즘 유행하는 형태의) 페미니즘은 이런 현상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휴먼 마운팅?(용어가 좀 거시기합니다만 일단 저런 행동을 지칭하는 용도로 한번 제안해 봅니다)을 없애는 데 있어 페미니즘이 대안이 되기 어려운 것은, 페미니즘은 확실히 권력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 권력을 남성집단만이 갖고 있는 것에 화를 내고 있을 뿐이라 여겨지기 때문이죠.
이것을 스스로 자백하는 증거가, 바로 자신들의 퇴행적 악행을 양성평등?실현?을 위한 하나의 방편 정도로 정당화하면서 '미러링' 따위 해괴한 표현을 쓰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요즘의 페미니스트들이 꿈꾸는 세상은 편중된, 그리고 정당하지 않은 권력을 부정하고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부당한 권력을 남자가 아닌 여자들이 누리는 세상인 것 같습니다. 즉 이들은 불평등 그 자체가 싫은 게 아니라 자신이 그 불평등의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라는 점에 화를 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죠.
페미니즘이건 마초이즘이건 진보건 꼴통수꼴이건 간에 어차피 이해관계 맞아떨어지는 것들끼리 친목질 하는 거고, 사실상 경중이나 사안의 성격이 같은 것임에도 어떤 사안에는 (주로 자기편에 대해서는) 눈 감고,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주로 적대하고 있는 집단에 대해서는) 불같이 들고 일어나는 짓들을 하면서 나름의 내재적인 논리로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있다는 제 생각이 딱히 틀린 구석이 없어 보여서 조금 슬퍼지네요. 아니 뭐 슬플 것 까지는 없고 그냥 쓸쓸합니다.
인간은 역시 그럴 수만 있다면, 무리를 이루지 않고 혼자 사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살고 싶어서, 또는 자신이 속한 무리를 잃는 게 두려워서 자신(의 양심)을 속이거나, 표리부동한 거짓말 따윈 안해도 되니까요.
슈미트-카세그레인식 망원경을 만든 발명가 버나드 슈미트는 히틀러가 완전히 득세하기 전에 죽기 위해 의도적으로 술을 퍼마셔서 결국 알콜에 의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하는데, 그가 생전에 했던 말이 '인간은 혼자 있을 때 가장 정의롭고 똑똑하다'였다네요.
역시 제 글의 마감은 항상 쓸쓸하군요.
댓글 분란 또는 분쟁 때문에 전체 댓글이 블라인드 처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