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했던 첫 두 달동안 남편은 전혀 집안일을 하지 않았다.
한번정도 빨래를 갤때 같이 도와준적은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아침밥을 차리고 출근을 했고, 퇴근하고 청소와 남은 집안일을 처리했다.
평일엔 남편은 밤늦게나 들어와 씻고 잘뿐이었고 한시간씩 일찍 일어나 차린 아침밥은 밥 맛이 없다며 먹지도 않은적도 많았다.
주말에 함께 대청소를 하자는 의견은 회사일이 피곤하다는 이유로 거절했고,
왜 나만 집안일을 해야하냐며 화를 내면 너도 하지 말라고 답변했다.
결혼전에는 출근 전엔 식탁위에 밥이 세팅되었고, 옷장을 열면 새옷이 항상 준비되어있었다.
퇴근 후 돌아오는 집은 항상 깨끗했고 주말에는 데이트를 하러 다녔을 뿐이었다.
물론 퇴근 후 청소기를 돌리거나, 다리미질을 하거나 주말에 집에 있는 날이면 어머니를 도와 집안일을 개미 뒷다리털만큼 했었지만, 사실 딱히 그렇게 많이 집안일을 한것은 아니었다.
고등학교때는 집안일 하지말고 공부나 더 하라고 들었고, 회사다닐때는 회사다니느라 힘든데 쉬라고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그런데,
그저 결혼을 했을 뿐인데,
갑자기 집안일이 물밀듯 몰려오자 멘붕이 함께 시작되었다.
그것도 2인분어치나.
말한다고 고쳐지는 것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잔소리 하는 것은 싫어하는지라 내가 남편 식모를 하려고 결혼한건지,
결혼은 왜 한건지 정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심지어 그시기엔 월급도 내가 더 많았다.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나는 불만이 쌓여갔고,
남편은 집에 들어와서는 무슨 말만 하면 입을 다물고 짜증만 낼 뿐이었다.
...
그리고..
언제라도 폭팔할것 같은 화약고로 바퀴가 기어들어왔다.
서울촌년인 나는 평생 아파트에 살면서 집에서 바퀴를 볼 일이 없었다.
바퀴는 시골 축사옆이나, 쓰레기장이나 도심지 식당 뒷골목에서나 봤을 뿐이었다. 나에겐 바퀴는 책이나 드라마같은데서 나오는, 비위생적인 환경에 서식하고 사람에게는 해로운 병균이 가득한 생명체로 개인적으로는 살면서 10마리도 채 보지 않았었다.
나에게 바퀴라는 것은 공포의 대상이었으며
세X코에서 티비광고로 제공해준 정보를 참조하자면 한마리가 보이면 보이지 않는 곳에 백마리가 존재한다는 어마어마한 존재였다.
심지어 죽을때 알까지 던진다는 마치 악의로 가득찬 덩어리이자, 끝없이 악마를 불러내는 지옥의 문 같은 존재였다.
어느날과 마찬가지로 녹초가 되어 퇴근하고 컴컴한 집안의 현관 문 바로 옆에 붙어있는 주방 불을 킨 나는 손바닥 반마디 정도의 크기의 거대한 검은 그림자와 마주쳤다.
'바퀴?'
바퀴가 우리집에 왔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했던 나는 인지부조화가 일어났다.
'바퀴일리가 있나, 종이쪼가리거나 그림자일것이다.'
나는 애써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후후 웃으며 그 종이 쪼가리를 버리기 위해 한걸음 움직였고 그 검은 그림자는 내 걸음에 왈츠라도 추듯 슬슬 뒤로 움직여 냉장고 밑으로 들어가버렸다.
종이쪼가리길 바라던 그것이.. 움직이자 뇌가 확인사살을 해주었다.
' 거봐 정말 바퀴야.'
...
.....!!!!!
멘붕이 온 나는 남편에게 긴급히 카톡을 보냈다.
'집에 바퀴가 있어'
남편에게는 짧게 답했다.
'잡아'
참고로 나는 정말로 벌레를 잡지 못한다.
자다가 모기가 날 괴롭히면 모기에게 방을 양보하고 (문을 잘 닫고 방에는 약을 치고 나와서) 거실에서 잘 정도이다.
파리나 풍뎅이라도 들어오면 종이컵과 종이를 이용해 잘 잡아서 창문 밖으로 날려보낸다.
...그런 나에게 바퀴를 잡으라니.
파리크기도 힘든데 손바닥 반정도의 크기라면 내가 감당하기는 너무 끔찍했다.
내가 벌레를 잡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 무심히 말하는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나는 바퀴를 잡을 수 없다고 남편에게 항의했다.
차라리 세X코라도 부르는것이 어떻겠냐 말했지만 바퀴 한마리 가지고 뭘 세X코씩이나 부르냐고,
잡말 말고 잡으라는 것이었다.
남편은 몇번 보다가 카톡을 씹기 시작했고 나는 멘붕해서 1시간 정도 냉장고 옆에 쭈그리고 앉아 멘붕하다가 베프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30분정도 상담해준 베프의 결론은,
그렇게 커다란 바퀴벌레가 갑자기 한마리만 나타났다는 것은 집에 원래 있던 것이 아니라 밑이나 위에서 약을쳐서 기어들어왔을 것이었고,
정말 괴롭겠지만 아직은 한마리일것이니 어서 찾아 알까는 것을 막으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지금 이순간도 어딘가에 알을 까고있을 수도 있어.'
그말에 기겁하며 정신을 차린 나는
저녁 10시에 마트에 가서 바퀴약과 스프레이를 사서 결전을 준비하고
심호흡을 크게 한 후, 냉장고를 밀어 치웠지만 이미 냉장고 밑에는 바퀴는 없었다.
바퀴를 본것도 환장할 일이었지만, 봤다가 안보이니까도 참으로 환장할 일이었다.
밤 12시까지 2시간동안 집안을 다 뒤엎으며 구석구석 모두 대 청소를 하였지만 결국 바퀴는 찾을수가 없었다.
남편 퇴근 후 바퀴를 못찾겠다며 같이 바퀴를 찾자 이야기를 했지만 남편은 일하고 돌아와서 피곤하다며 짜증을 낼 뿐이었다.
사실, 피곤에 대해서는 나도 한마디 할말이 있었다.
남편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나고, 1시간 늦게 자면서 돈도 더 많이 벌고 집안일도 모두 다 하고있는 내 앞에서 피곤을 논하다니 분노가 일었다.
새벽 2시까지 싸우다 어쨋든 출근을 해야하기에 결론도 못내고 나는 자리를 피고 누었고 남편은 씻겠다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누워서 아직도 화가 나서 식식대는데 천장에 그때 봤던 그 익숙한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나는 스스로의 눈을 의심했다.
' 그림자일거야, 빌라 건너 상가창문이나 지나가는 차로부터 들어오는 불빛의 그림자일거야.'
그 그림자는 갑자기 조금 내쪽으로 움직였다.
' 아니야!'
내 머릿속에는 게슈탈트 붕괴와 함께 데프콘 1 경고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 왜 바퀴가 천장에 있는데! 중력이라는 것도 있잖아? 저건 그냥 밖의 그림자일거야'
나의 생각과는 무관하게 그 검은 그림자는 천천히 내쪽으로 다가왔다.
그 검은 그림자는 내가 충분히 겁에 질릴만한 시간을 준 후 내 위로 툭 떨어졌다.
그리고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내 비명소리를 듣고 남편은 씻다가 튀어나왔고,
비명을 지르면서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바퀴를 찾아 이불을 들췄지만 바퀴는 찾을 수 없었다.
무슨일이냐고 화를 내는 남편에게 나는 바퀴가 이 방에 있고 도저히 이방에서는 잘수가 없으니 이 방을 봉인하고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이불을 끌고 사람 둘이 겨우 누울만한 크기의 옷방으로 들어갔고 남편에게도 이 방엔 무서운 바퀴가 있으니 절대로 문을 열지 말라고 했다.
시골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던 남편은 이런 나의 반응에 어처구니 없어했다.
바퀴 한마리 때문에 세X코를 부른다는 것도 황당해 했고,
세X코가 올때까지 이 방을 봉인하여 바퀴를 방안에 있게한다는 내 이론도 이해할수 없어했다.
절대로 사람이 잡을 수 있는 크키가 아니라는 내 설명에도 남편은 그깟 바퀴, 자신이 잡겠다고 화를 냈고
설명이 통하지 않는다고 느낀 나는 문을 닫고 옷방에 들어가 문을 단단히 닫고 잠을 청했다.
막 잠이 들려는 순간 무언가 때려부수는 소리가 쾅쾅 들리더니 곧 쾅쾅쾅하고 굉음이 들려왔다.
나는 남편이 성질내느라 물건이라도 부수나 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안방엔 장농밖에 없어서 부술물건도 없는데, 장농이란건 새벽 2시에 부수기엔 좀 해비한 물건이긴 했다.
그리고 5분이 지난 후 남편이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 잡았어. 쓰레받이는 어딧어?"
겁에 질린 나는 그 방에 들어가지도 못했고 남편은 내 어깨를 잡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말했다.
" 세상에 살면서 그렇게 큰 바퀴는 처음이야. 잡느라 너무 힘들었어"
어쨋든 이미 새벽 3시였음으로 급하게 잠을 청했고, 아침이 되자마자 우리의 화재는 바로 바퀴로 돌아갔다.
남편은 어떻게 그 무시무시한 바퀴를 장농에서 찾았는지에 대해서 말을 시작하다가 출근시간이라 급하게 헤어졌고,
퇴근 하자마자 다시 바퀴 이야기를 시작했다.
퇴근하자마자 남편은, 아침의 이야기를 이어서 했다.
설마하며 장롱에 끼워둔 상을 슬그머니 꺼내자 그 위에 바퀴가 뀨? 하고 더듬이를 갸웃거렸고,
겨우 나타난 그 바퀴가 한번 다시 장농으로 들어가면 다시는 잡을 수 없다는 위기감에 들고있던 빗자루로 필살의 일격을 날렸지만, 그 일격에도 다리 하나만 부셔졌을 뿐 그 큰 괴물은 멀쩡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놈을 때리고 때리고 때리는데 다리들만 부셔질뿐 끝까지 버티다가 혼신의 힘을 다하여 날린 일격에야 겨우 찌부라져 죽었다는 것이었다.
내가 보면 기절할까봐 사체는 변기속에 내려보내고 방 구석구석에 널부러진 파편들까지 다 쓸어담았다고 한다.
남편의 말에 나는 울컥 온갖 서러움이 몰려왔다.
" 그렇게 큰걸 나보고 잡으라면 어떻게해! 내가 카톡으로 엄청 크다고 했잖아! 손바닥 반만하다고 했잖아!"
내가 울먹거리면서 말하자 남편은 말했다.
" 아니, 바퀴래서 기껏해봤자 새끼손가락 만할줄 알았지. 나도 힘들었는데 그렇게 큰 걸 잡으라고 했더니 내가 잘못했네."
" 나는 벌레 못잡는것 알잖아!"
" 앞으론 벌레는 다 다 내가 잡을테니 걱정하지마."
[내가 잘못했네] 그 말 한마디와 [앞으론 벌레는 다 내가 잡을게]라는 말에 갑자기 그동안의 불만과 서러움이 사그라들었다.
다음날은 내가 그 큰 바퀴를 어떻게 발견했는지 이야기를 했다.
주중엔 대화할 시간이 얼마나 없었는지 바퀴이야기만 하는데 일주일이 걸렸다.
주말에는 본격적으로 그 바퀴 이야기를 처음부터 다시 제대로 이어서 했고,
바퀴이야기를 하면서 왜 남편이 그 상황에서 카톡을 답하지 않았는지, 왜 내가 힘들었는지 등 결혼 후 처음으로 대화다운 대화를 했던 것 같았다.
남편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당시 상황에 카톡 답을 하지 않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집안일 관한 남편의 가치관은 상상을 초월하는 지경이었다.
서울에서 몇년간 친구와 자취해온 남편의 입장을 들어보면 남편은 내가 주중에 집안일을 하는 것이 이해가지 않는 다고 했다.
청소는 한달에 1번 정도 집이 더럽다고 느끼면 하는 것이고 (그리고 내가 너무 더럽기 전에 청소하므로 영원히 그 시기는 오지 않앗을 것이었지),
설거지는 밖에서 사먹으면 되기에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남편이 매일마다 사먹자고 해서 난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서울서 자취하는 5년이 넘는 기간동안 물컵정도 몇번 씻어본것이 다라고 한다.
빨래는 입을 옷이 없으면 하면 된다 하였다. (어쩐지 연애기간 내내 티/후드티에 청바지만 입고 다녔었다. 지금 생각하니 좀 냄새도 났었나...?!)
같이 살던 친구가 너 그렇게 살면 이혼당할거라고 쌍욕은 들었지만 자신은 무엇이 잘못된지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집에서 살때는 집안일은 구경조차 해본적이 없어서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아이고 ㅠ 시어머니 왜 그러셨어요. ㅠㅠ)
배고프면 동생시키면 되는 거라 한다. (밥때되면 동생에게 밥차려주는 언니로서는 이해안가는 오빠의 마인드...)
걸래한번 빨아본적 없고 셔츠 다림질 역시 역시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른다 했다. (군대가면 다들 다림질들 한다고 들었는데 안그런가보다)
집에 있는 드럼세탁기 사용하는 법도 모르겠다고 했다.
...
그리고 나는 느꼈다.
이 남자가 집안일을 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을.
내가 정말 기초부터 하나하나 가르쳐야겠구나. 하고.
...
음...
....
쓰고싶었던건 이 이야기가 아니었는데 ㅠ
정말 이 바퀴는 정말.. 개인적인 의견으로 부부사이 before 바퀴 와 after 바퀴를 가르는 중요 에피소드였다보니
쓰면서 바퀴 이야기가 너무 길어져서 집안일 가르치는 이야기는 다음에 쓰도록 하겠습니다.
글솜씨가 별로라 ㅠㅠ 잘 못살린것 같네요....
제가 힘든건 집안일을 하는게 아니라 (사실 혼자 살아도 요리도 하고 청소도 하긴 하잖아요. 1인분 더한다고 그렇게 힘들리가.)
내가 그걸 다 뒤집어 쓰고 한다는 사실이 가장 힘들었었어요.
조별모임에 다 잠수타고 혼자 다 하는 기분.. + 사랑하는 사람이 날 그렇게 대한다는 것에 대한 배신감
뭐 다른 분들은 결혼하고 저같이 하찮은 일로 힘들어할것 같지는 않아요.
설마 저렇게 말도 안되는 집안일 센스를 가진 제 남편같은 사람이 세상에 두명은 없겠죠....
.. 가 아니라 친구중 오빠를 가진 친구가 내가 바퀴 이야기 하는 데 이말은 한적이 있는었데..
" 그래도 너네 남편은 변기시트는 올리고 싸지? 그럼 양반인거지."
...
에이 설마, 변기 시트 덮고 싸는 남자도 있을리가..
..
... 있을까...
...
에이, 설마.. (소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