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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85307
    작성자 : 돌아저씨
    추천 : 20
    조회수 : 2400
    IP : 220.124.***.76
    댓글 : 5개
    등록시간 : 2015/12/27 15:27:53
    http://todayhumor.com/?panic_85307 모바일
    1분을 주었다 #1
    옵션
    • 창작글
    *
    1분을 주었다.

    남자는 또 다시 안전벨트를 재빠르게 풀었다. 옆 조수석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아내가 눈에 들어왔다. 피로 얼룩진 얼굴. 그리고 작은 입에서 얕은 신음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남자는 황급히 아내의 안전벨트를 풀고 차 문을 있는 힘껏 열었다.
     뜨겁게 토해내는 불길이 남자의 몸을 삽시간에 감쌌다. 하지만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차 옆으로 돌아갔다. 자욱한 연기를 헤치고 창문 너머로 아내가 힘겹게 숨 쉬는 모습을 보면서 남자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 차 손잡이를 잡고 열려고 애썼다.
     하지만 이번에도 열리지 않았다. 

     "크흑. 제발!!!"

     남자는 한 발 물러서서 한 쪽 다리로 창문을 힘차게 밀쳤다. 그러나 창문은 비아냥 거리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쓰러진 남자는 다시 일어나서 다시 창문에 발길질 했다. 역시나 미동도 없었다.

     "안 돼! 제, 제발...!"

     남자는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손으로 닦아내며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계속 창문을 치고 차 손잡이를 달각 거리면서 열려고 힘썼다. 남자의 호흡이 가빠지는 만큼 아내의 숨소리도 거칠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알 수 없는 먹먹함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대체 무엇을 위해 나는 이러고 있는가. 결국에는 뻔한 결과가 다시 기다리고 있음을 앎에도 이토록 방관할 수 밖에 없단 말인가. 누구를 위한 기회란 얘기인가.



     잠시동안의 시간이 지나고, 불길은 남자와 차를 에워쌌다. 그리고 엄청난 광음과 함께 폭발했다. 폭발음 속에 남자의 절규가 들렸던 건 아마도 나의 착각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시야가 어두워지면서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다시... 다시 하겠어요..."

     또 다시 내 앞에 나타난 남자는 내가 물어보기도 전에 말을 꺼냈다. 아까와 똑같은, 아니 이전에도 그 이전에도 같았던 대답이었다. 조용히 남자의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보았다.
     살아있으면서도 죽은 모습. 생기를 잃은 꽃 한 송이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어찌됐든 나는 남자의 대답을 거부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차분히 마음을 다스리고 남자를 향해 손가락을 올렸다.

     1분을 주었다.



    *
     "하하. 요즘 고생이 많구만."

     역겨운 웃음과 함께 상사가 말을 걸었다. 앞에서 욕 한 바가지 쏟아붓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대답했다.

     "아닙니다. 제 할 일을 하는 것 뿐인데요, 뭐."

     "쉬엄쉬엄 하라구. 그러다 병이라도 나면 누가 그 자리를 대신하겠나."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잘도 지껄이는구나. 하긴, 이런 병신같은 일을 나 대신 나서서 할 사람은 분명 없기는 하겠지만.

     "아무튼 자네 덕분에 내가 기가 살아, 기가 살어. 계속해서 잘 좀 부탁하겠네."

     말을 끝마친 상사는 또 다시 누런 이를 드러내 기분 나쁘게 웃었다. 그리고는 뒤돌아서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덩그러니 남겨진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자꾸만 아까의 남자가 떠올랐다.
     그는 그렇게 수십번을 계속 더 반복하고는 이내 포기하고 지옥으로 사라졌다. 사라지기 전에 그가 나를 쳐다보던 그 눈빛을 지울 수 없었다. 물과 기름처럼, 고마움과 배신감이 층층히 섞여 있었다. 그런 남자의 눈빛을 똑바로 마주하지 못한 나는 고개를 돌렸다.

     업무로 돌아와 책상 앞에 놓인 의자에 힘 없이 걸터앉았다. 책상 너머로 이번 달 매출그래프가 그려진 칠판이 눈에 들어왔다. 확실히 상한가를 찍고 있었다. 상사가 입이 찢어지도록 헤벌레 했던 이유가 있었다. 나는 눈을 지그시 감고는 고개를 젖혔다.
     
     업무를 시작한지 이제 3개월정도 되었지만 이 불쾌한 마음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내가 스스로 나서서 자원할만큼 뜻 모를 기대감이 있었다. 억울하게 혹은 예기치 못하게 죽어간 이들을 조금이나마 구원해주지 않을까하는 작은 기대감. 하지만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곳이다. 아무런 대가 없이 선행을 베푸는 곳이 아니었다. 그러한 퍼즐 속에서 나 홀로 다른 조각을 짜맞추려 했지만 결국에는 정해진 조각만이 정답이 될 뿐이었다.
     나의 작은 기대감을 이뤄내기 위해 행했던 그 모든 것들이 오히려 기업에 득이 되었다. 매출이 더 오르고 상사가 나를 칭찬해주었다.
     알 수 없는 빗나감에 나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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