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이화여자대학교 조기숙 교수가 본인의 페이스북에 올린 'SBS 대선주자 국민면접 안희정편' 소감문 전문입니다.
---
<안희정의 국민면접 시청 소감문> 글이 길어서 죄송합니다.ㅜㅠ
안희정, 참여정부 탄생의 과를 홀로 짊어지고 감옥에 간 사람. 청와대 근무시절 정권 창출의 공에 감사해야할 듯해서 잠시 만나 인사하며 "미안하지만 참여 정부 남은 임기 동안 아무 역할도 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잔인한 말에 넉넉하게 웃음으로 동의를 표했던 사람.
친노 모두에게 그렇듯, 안희정은 자랑스런 친노 가문의 든든한 장남이고, 잘 생긴 아이돌이고, 아픈 손가락이고, 마음 한 켠의 빚이다. 그런 안희정에 대한 애정을 나는 절대로 내려놓을 수 없다.
안희정은 참여정부 시절이나 노대통령 장례 기간이나 그 후 몇 번 만났을 때에나 지금이나 한결 같은 사람이다. 따뜻하고 넉넉하고 진실하고 진지하고 인기에 편승하지 않는.... 면접 곳곳에서도 그 느낌이 그대로 잘 전해져왔다.
이해할 수 없었던 안희정의 주장 두 가지 1. 김대중과 노무현도 도전과 역전을 했다. 나도 도전과 역전을 하겠다 2. 지방분권을 통해 시민이 주인되는 참여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해 대통령이 되겠다
1. 김대중대통령은 철권 독재에 목숨 걸고 도전했고 나라를 금융위기에 빠뜨린 세력에 도전해 최초로 정권교체를 이룩했다. 노무현대통령은 김대중대통령의 업적을 잇고 나라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기 위해 기회주의자 이인제에 도전해 이겼고, 국가파탄 세력에 도전해 이겼다.
나의 질문: 안희정은 도채데 왜 문재인에 도전하겠다는 건가? 도전에는 이유와 명분이 있어야 한다. 소중한 친노 장자가 왜 이렇게 명분 없는 도전에 자신을 던지려 하는가?
2. 시민이 주인이 되는 일상 속 참여민주주의에 누가 참여할까? 깨어있는 시민이다.
나의 질문: 문재인의 지지자 다수가 참여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깨어있는 시민이다. 만일 경선에서 안희정이 문재인을 이긴다면 안희정은 문재인 지지자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동의할 수 없었던 안희정의 답변: 노무현대통령이 이런 상황에서 누구를 지지할까라는 질문에 안희정은 두 사람 모두를 격려할 것이라고 했다. 노대통령은 후보시절 내가 출연한 토론과 칼럼은 빼놓지 않고 보시며 “어떻게 조교수는 한국정치를 나와 똑 같이 분석하는지 모르겠다”고 감탄을 하셨다고 한다.
내가 아는 노대통령은 그러실 분이 아니다. 철저히 원칙대로 판단해 확실하게 선 긋고 교통정리 하실 분이다. 열린우리당 해체에 그리 반대를 하셨으면서도 결국은 이에 반대하는 유시민, 이해찬을 모두 설득해 대통합민주신당을 따라 가도록 했다. 나에게도 정동영이 우리 때문에 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도와주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아는 노대통령은 안희정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다.
“이번에는 문재인이 준비도 많이 했고 국정경험도 많으니, 희정이는 국회의원도 해보고 청와대 살림도 더 공부해서 다음에 도전해라”
가장 실망스러웠던 안희정의 답변 두 가지는 국정을 도정의 사이즈 확장 정도로 생각하는 인식과 위기대응능력에 대한 답변이다.
도지사는 기본적으로 외교와 국방의 경험이 없다. 노대통령 시절 옆에서 배울 기회도 없었고 대통령의 저작이나 보고서를 통한 공부도 부족해보인다. 민주적 절차가 생략된 박근혜의 사드배치 결정을 한미동맹 속에서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안지사의 주장은 매우 실망스럽다. 입만 열면 민주주의를 말하는 사람이 박근혜정부의 일방적 정책결정을 뒤치다꺼리 하는 게 민주주의란 말인가? 노대통령은 한반도를 열강의 싸움판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MD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부시대통령과의 갈등도 마다하지 않았다. 사드배치는 MD의 일환이다.
위기상황 질문에 대한 답변도 실망스러웠다. 우선 호흡기 질환으로 13명이 죽는 상황, 참여정부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있었다 해도 평창올림픽은 단지 64억불이란 돈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신인도, 수만 명의 선수생명, 방송, 기업의 후원, 광고 등 복잡한 국제관계의 문제이며, 눈과 영하의 기온이 있어야 되는 경기를 올림픽위원회와 날짜 조정하는 게 가능할까? 호흡기 질환은 계절이 바뀌어야 안정된다는 건 상식이다. 내부에서 위기관리 회의를 통한 각종 시나리오에 대한 검증도 없이 너무 쉽게 대통령 혼자 날짜 조정을 결정하는 걸 보며 안지사가 지금 국정을 맡기엔 준비가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희정의 면접을 보면서 큰 수확도 있었다. 왜 안희정은 문재인에게 도전하는가에 대한 답이다. 안희정은 최순실게이트가 터지기 전 문재인으로는 본선에서 이기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나도 그 가능성을 걱정했으니까. 그래서 자기라도 본선에 이기려고 준비했는데 상황이 달라져버렸다. 문재인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그럼에도 안희정이 이번을 꼭 고집하는 이유는 자신이 문재인보다 더 좋은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게 내 추측이다.
안희정은 갈등을 싫어하는 젊잖은 충청도 아들임에 틀림없다. 충남도정의 경험으로 협치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화합을 잘 이루는 자신과 달리 문재인은 적을 많이 만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중앙정치는 나눠 먹을 게 많지 않은 지방자치와 다르다. 도정에선 큰 원칙을 어기지 않고도 적절히 나눠주면 지역유지나 도의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중앙정치는 다르다. 문재인이 좌우언론은 물론 민주당 내 계파로부터도 왕따를 당하는 건, 문재인 지지자들과 우리사회 기득권층이 양립할 수 없는 대립관계이기 때문이다.
시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에서는 특권도 반칙도 용납되지 않기에 그 동안 이를 누리던 엘리트 집단은 새로운 세상에 반발할 수밖에 없다. 좌우언론, 새누리당은 물론이고 국민의당과 민주당내 반문계파까지도 문재인을 배척하는 건 문재인의 갈등적이고 그들을 적대시하기 때문이 아니다.
문재인이 원칙을 지키면 비판적 시민집단의 힘이 커지기 때문이다. 역으로 기득권의 권한은 약화되면서 점점 국회의원, 언론, 재벌 해먹기 힘든 세상이 오기 때문이다.
안희정은 노대통령도 말로 인심을 잃어서 불필요한 갈등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자기는 누구든 품으면서 갈등 없이 정치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하지만 막상 권력을 잡아보기 전에는 모르는 법이다. 그리고 그 권력을 기득권과 적절히 나누지 않으면 갈등은 필연적이다. 기득권과 적절히 타협하면 깨어있는 시민이 안희정을 버릴 것이고, 시민의 뜻을 추종하면 기득권으로부터 왕따 당하는 건 시간문제다. 그게 피할 수 없는 역사의 진보다.
물론 안희정은 점진적으로 변화하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역사를 봐라. 지식의 발전은 물론이고 제도적 변화마저도 점진적인 변화는 드물다. 변화는 단절과 혁신을 동반하는 게 보통이다. 점진적 변화란 제자리걸음에 다름 아니다.
안지사가 왜 도전하는지, 왜 꼭 반전이 필요한지를 다시 성찰하는데 내 소감문이 도움이 된다면 바랄게 없겠다. 나는 여전히 안희정과 문재인 두 사람을 죽을 때까지 사랑할 것이다. 하지만 유럽 민주국가의 역사를 봐도 세계는 비판적 시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으로 이동하고 있다. 안희정이 시대적 흐름을 거스르지 않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