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지만 내용은 모두 픽션입니다. 사실 관계에 완전히 다른 각색을 가했으며 실존 인물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이 소설은 작자의 개인적 일탈로 작성되었음을 명시하는 바입니다. 진짜임.
5월 12일 오후 6시.
"오늘 해는 언제 지나유..?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에세랄 군인 - 미루스 렌디가 카메라를 장농에 넣다 말고 점점 어둑어둑해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때는 어느 덧 오후 6시. 슬슬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싶었지만 여유롭게 밥이나 먹고 있기엔 상황이 영 좋지 못했다. 오히려 어깨가 바짝 긴장한 나머지 움츠러들고 있었다.
그 말에 옆에 있던 오유 군인이 네이버에 [일몰]을 검색하여 곧장 일출일몰시간을 확인하고는 곧장 대답했다.
"서울 기준으로 19시 32분이네요."
"허... 한 시간 쪼오끔 넘게 남았네유...ㄷㄷㄷㄷㄷㄷㄷ..."
그렇게 미루스가 탄식하자 오유인도 걱정이 앞서는지 짧은 한숨을 뱉었다. 마치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안 봐도 고화질 HD라는 듯, 그들의 표정에는 질린 기색이 역력했다.
"그 파쇼 녀석들은 해가 지면 본격적으로 움직이니 미리 준비 단단히 해야 합니다. 어제 헤르묜헤스키에서의 교전도 새벽 2시에 시작됐잖아요."
바쁘다면서 새벽이 다 되서야 총 잡아 쏘는 잠 없는 것들. 옆에서 듣고 있던 아르겐 푸모스키가 불쑥 끼어들며 짜증 섞인 투정을 부렸다. 밤을 새워가며 격전을 벌인 끝에 헤르묜헤스키에서 이제 막 자유게시판으로 귀환한 아르겐은 다른 오유군이 그러하듯 그동안의 전투를 통해 여시 제국군의 행동 방침을 몸으로 체득한 지 오래였다.
"저야 본국에 탑시인지 뭔지의 괴뢰국 때문에 여까지 왔지만, 참말로 저짝의 자존심이 뭔 밥을 먹여주는 건지는 모르것네유....ㄷㄷㄷㄷㄷ..."
마지막엔 쯧 하고 미루스가 짧게 혀를 찬다. 같은 생각이었는지 두 군인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상황에서 평가를 내려보자면, 비록 적이긴 했지만 여시 제국군의 그 포기할 줄 모르는 집념은 높이 살만 했다.
그랬다. '짐념'만큼은. 사실 이 전쟁엔 명분도 실리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차라리 일찌감치 이 전쟁을 포기를 하는 편이 여시 제국 입장에서도 좋을 터였다. 무슨 배짱으로 갑자기 선전포고를 감행한 것인지 오유나 에세랄인 입장에선 알 도리가 없었다. 그저 뭔가 믿는 구석이 있겠거니 하고 관심을 두지 않을 뿐이었다.
적국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면 병력을 돌려 또다른 적국을 치면 된다는, 군사학의 ㄱ자도 모르는 여시군의 추태를 보고 있자면 누구나 한심함을 넘어서 저 치들에게 측은지심을 느끼고도 남았다. 어떤 오유군 장교는 자유게시판에서만 서식하는 파란 전서구를 날리며 꼭 하는 짓이 수양제 같다고 했다. 스스로 적을 늘리는 어리석은 행동 만을 되풀이하는 모양새를 보자면, 저들이 정말로 사회적 책임을 스스로 지는 성인인지조차 의심스러워졌다.
그렇게 엎치락 뒤치락 하는 공방전은 여시 제국의 망념 아래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다. 여시 제국이 공세에 들어가면 무도갤리아 등지에서 랜드리스로 화력을 증강한 오유 쪽에서 응전을 도맡고, 그 사이 연합군 본대가 요충지를 공략하여 주요 병력을 일소하는 전투가 짧게는 하루, 길게는 이삼일에 한 번 꼴로 이어졌다. 그 결과 에세랄 연방에 주둔하고 있던 여시 제국군의 기세가 한풀 꺾이는 수확도 건질 수 있었다. (다만 여시 괴뢰 정부와 한통속이던 에세랄 정부는 용케 봉기군을 피해 변경 지역으로 도주했기에 분통을 터뜨리는 에세랄인이 많았다.)
바야흐로 여시 제국의 외교적 이미지마저 이미 바닥을 뚫고 지구의 중심부로 푹 꺼져버린 지 오래였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신속한 사과와 후속조치로 마무리하고 종전 협상을 테이블로 가져오는 편이 여시 제국의 매몰비용을 줄이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전장에 한 번이라도 서본 이라면 누구나 그들이 먼저 잘못을 시인할 성격이 아님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점점 전력이 바닥을 드러내는 중인지 근래 들어 여시 제국의 전법은 게릴라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실제로 여시 제국은 자신들이 대(對) 오유 신식 무기라고 신나게 자랑하던 추자크(Tzhuzak)-75의 포탄을 비처럼 쏟아내며 격렬하게 오기, 아니 치기를 부려댔다. (그러나 단지 요란한 빈 수레였다.) 거기에 현 시점에서 가장 빠른 대인 차량 아르몰랑(Armulang)-20으로 잽싸게 회피기동하며 꼬리를 감추는 여시 제국군의 히트 앤 런 기법은 오유군에게 심각한 짜증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러고보니, 두라크(*Durak; 바보)에게선 아직 별 소식이 없습니까?"
아르겐이 참호 구석에 앉아있던 통신병 세피오 오피키날리치를 붙잡으며 물었다. 꽤나 애가 타는지 묻는 말투에서 재촉하는 느낌이 묻어났다.
두라크는 오유의 서기장인 루카바 아르키틴의 별명이다. 말하자면 오유의 최고 직책자라 할 수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서기장'이나 '루카바'보다는 '두라크'로 불리는 경우가 많았다.
세피오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직은요. 그 파쇼 녀석들 땅굴을 혼자 힘으로 찾아내시는 것 같던데, 아무래도 조금 더 기다려야할 것 같습니다. 듣자하니 일단 예상 경로 중 한 곳에서는 잠입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더라고요. 가능성 하나가 소거됐으니 곧 뭔가 나오긴 할 겁니다."
"...그렇군요."
공세를 취하기 위해서라도 가능한 빨리 캐내는 게 좋을 텐데. 낮게 중얼거린 아르겐은 미루스에게도 잊지 않고 고맙다는 말을 덧붙였다.
"두라크도 두라크지만, 유(*鰇; 오징어. 오유어의 1~3인칭 대명사)도 참 수고가 많습니다. 아재도 고마워요."
"아유...ㄷㄷㄷㄷ...망한 나라에서 온 난민 받아준 것만으로도 감사헌데유....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뭘요. 저만 해도 그냥 지나가던 바쁜 벌꿀에 불과합니다. 아재들이 와서 한 시름 놓았어요."
그렇게 웃으며 서로 겸양의 말을 주고받지만 표정은 묘하게 굳어있다. 필경, 그 간의 일로 신경이 곤두서있는 것이겠지. 아르겐은 격려 대신 추천을 하나씩 박아넣어주며 오늘도 잘 해보자는 투의 말을 건넸다.
"여시 무리를 발견했습니다!"
문득 정찰을 나갔던 정찰병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여시 제국군이 모이고 있다고? 장소를 묻자 정찰병은 숨을 몇 번이고 고른 뒤에야 대답했다.
"그게, 여기서 남쪽으로 7.5km 떨어진 '레이프그라드'로 향하고 있습니다."
"프라우 하일(Frau Heil; 여성만세)!"
'태스크-포스', 일명 TF 친위대라 불리우는 여시 제국의 정예 부대는 어느덧 레이프그라드에서 2km도 채 안 되는 거리까지 도달하고 있었다. 마지막 정비를 위해 잠시 행군을 멈춘 TF는 먼저 대열을 가지런히 정리하여 이탈자의 존재 여부와 자신들만의 전우애를 재확인했다. 물론 앞에 선 상관의 손짓에 특유의 여치즘식 경례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TF에서 이번 작전의 지휘권을 얻은 마니파 젝스트(Manipa Sechst)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부하들에게 외쳤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즉시 '루트2' 작전을 시작한다. 개념갑을 몰아내고 여혐 종자와 여왕벌, 괴뢰 패당 해충을 모조리 쓸어버리자!"
마니파가 한손을 주먹쥐어 번쩍 들자 우레와 같은 날카로운 함성이 쏟아졌다.
"222222222222222 힘내자 여시야@@@@@@@@@@!!!!"
"333333333333333333333333 사랑해 나도 도와줄게 파이팅!!!!!!!!!!!!"
저마다 키보드와 부리와 마우스를 뽑아 흔드는 TF 친위대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보였다. 이번은 확실하게 이길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마니파는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2편입니다. 3편은 언제 쓸지 모르겠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상황이 급변해서... 이 다음 편을 쓴다면 "고솔린 원폭투하"가 될 것 같습니다.
등장인물은 실제 인물과는 무관합니다. 어떤 사건의 주체가 되는 장치라고 생각해주세요. 다만 작명 방법에는 나름의 패턴이 있습니다.
잘 살펴보시면 재밌는걸 발견하실 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