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훈 칼럼] 안희정 현상
양상훈 논설주간
안희정 충남지사의 인기가 예사롭지 않다. 보수층 인사가 "민주당 경선에 등록해 안희정에게 표를 주겠다"고 말하는 것도 보았다. 여기저기 자리에서 '안희정이 괜찮다'는 얘기가 무척 많이 들린다. 특히 식자층에서 그렇다. 물론 안 지사가 민주당 경선에서 문재인 전 대표를 이길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문 전 대표 진영은 이겨놓고 게임하는 척할 뿐이다. 국민 경선은 말만 '국민'이지 실제로는 조직 동원력 싸움이다. 안 지사는 당내 조직에서 문 전 대표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한 민주당 사람은 "경선은 형식적 절차일 뿐"이라고 했다. 그의 말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안희정 현상'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그의 이 인기가 무엇인지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안 지사의 지금 정치적 얼굴을 만든 언급은 다음과 같다. "사드 배치 한·미 합의 되돌릴 수 없다" "신뢰할 만한 북의 변화가 있어 국제 제재가 완화되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세금 나눠주는 정치는 답이 아니다" "일할 수 없는 약자에게 우선 복지" "국민은 공짜 밥을 원하지 않는다" "세금으로 공무원 늘리는 게 일자리 만드는 것이냐" "(이재용 삼성 부회장 영장 기각에 대해) 무조건 구속하는 것이 사법 정의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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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안 지사의 입장은 무언가 기발하거나 번뜩이는 것이 아니다. 그저 상식적 얘기일 뿐인데도 많은 식자층이 '감동' 비슷한 감정까지 느끼고 있다. 지금 야권과 대중(大衆) 사이에 얼마나 비상식적 기운이 퍼져 있으면 누구나 아는 상식을 말하는 사람이 식자층에서 대통령감으로 급부상하느냐는 생각이 든다. 지금 야권에선 상식을 말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엄청난 비난 폭탄을 각오해야 한다. 안 지사가 공격을 덜 받는 것은 경선 흥행에 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론조사를 보면 문 전 대표 1인 독주 같지만 흥미로운 점이 있다. 문 전 대표와 이재명 성남시장,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지지율을 합치면 40% 안팎이다. 반문(反文)이나 비문(非文)적 성격을 가진 안 지사, 황교안 총리, 안철수 의원, 유승민 의원, 남경필 지사, 손학규 전 대표 등의 지지율을 합치면 역시 40% 안팎이다. 여 대 야, 진보 대 보수로 보면 차이가 크지만 문재인류 대 비(非)문재인류로 하면 팽팽하다. 비문재인류가 합쳐질 가능성은 없지만 이 구도가 가진 정치적 의미는 무시할 수 없다. '탄핵 안 되면 혁명' '사드 철회' '개성공단 재개' '현금 살포' '무조건 구속' '친일파·군부 무덤 파헤치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은 듯 보이지만 '헌재 승복' '사드 배치' '대북 제재 지속' '약자 우선 복지' '증거 있어야 구속' '과거 아닌 미래 지향'을 원하는 사람도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 후자(後者)인 사람들은 무책임하고 얼굴 없는 대중이 쥐고 휘두르는 사회, 이성 아닌 감정이 지배하는 사회, 부조리를 비합리가 대체하는 사회, 몰상식을 또 다른 몰상식이 끌어내리는 사회를 걱정하고 있다. 그들이 안 지사를 보고 '민주당에도 이런 사람이 있느냐'고 다시 쳐다보고 있다. 이들이 원하는 대통령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어떤 경우든 다음 대통령이 문 전 대표 말대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이 절반의 국민을 무시하고 깔아뭉개면 그와 나라 전체에 또 한 번 불행이 닥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