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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과거 일제시대에 일어난 민생단 학살사건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
민생단 학살사건은 북한 관련 근현대사에는 소홀히하는 교육과 중국 당국의 쉬시하는 분위기 때문에 국사를 공부한 적이 있는 학생들도 대부분 모르는 사건이지만, 최소 500명에서 최대 2000명이 넘는 조선인들이 간도에서 학살을 당한 사건입니다.
근현대사를 아시는 분들이라면, 일제시대에 먹고 살기 막막해진 조선인들이 만주지방으로 많이 이주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실 겁니다. 하지만 1931년 만주사변이 발발하고 조선인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자 만주지방에서 활약중이던 공산계열 항일유격대와 농민들이 간도 산간지방으로 물러나게 되는데요.
이 당시 간도의 조선인들의 공포는 상상 이상이었겠지요. 언제 일본군이 쳐들어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가득할테고, 시시각각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들이 뒤통수를 치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일본군이 오고 있다는 소식만 들려도 마을에 불을 질러 소각하고 도망치는 일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자기들 중에 배신자가 숨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심이 항상 가득차 있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마침 중국 공산당 측에서도 한가지 야심이 있었는데, 당시 만주지방에서 활약하던 중국 공산당 소속 항일유격대의 경우 지휘부 극소수를 제외하면 90% 이상이 한국인이었습니다.(당시 소련의 1국1당주의로 인해 주권을 빼앗긴 조선에는 공식적인 공산당이 없었고, 어쩔 수 없이 한국 공산주의자들은 중공당에 가입을 했지요.) 그런데 얘네들이 중국의 공산혁명에는 신경을 안쓰고 조선독립에만 신경을 쓰고 있으니 유격대 내의 조선인들을 쓸어버리고 중국인으로 대체할 생각이 있었지요.
이런 상황에서 조선인 학살을 일으킬만한 사건이 터지게 되는데요. 중국 공산당 지부라고 할 수 있는 동만 특별위원회에서 간도로 파견이 된 반경유라는 인물이 박두남이라는 조선인을 일제의 배신자라고 지목을 했는데 박두남이 반경유를 살해하고 일본으로 투신을 해버린 것이었습니다.
민생단이라는 것은 원래 과거 일본의 힘을 빌어 간도를 조선인 자치구로 만들고자 했던 단체의 이름인데요. 반경유가 살해당함으로 인해 이제는 간도 내에 민생단이라는 일제의 간첩조직이 있다는 의식이 팽배하게 됩니다. 이를 빌미로 중국 공산당에서는 민생단이라는 혐의로 3~4년에 걸쳐 수많은 조선인들을 학살하게 됩니다.
무서운 점은, 당시 공포로 이성이 거의 마비되다 시피한 간도의 조선인들도 마치 마녀사냥처럼 이런 학살에 동참을 했다는 것이죠. 죽음을 당한 사람들은 중국인은 없으며 전원 조선인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사학계 쪽에서는 이 사건이 유태인 학살처럼 중국에 의해 자행된 민족학살이 아니냐는 의견이 많은데요. 하지만 이 학살에 피해자인 조선인들 역시 무서울 정도로 가담을 했기에 단순 민족학살로 보기에는 문제가 있지 않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한번에 수십명씩 수십차례에 걸쳐 조선인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중국쪽에서는 공식적으로 500여명 정도가 학살당했다고 축소발표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2000여명이 넘게 이 사건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진짜 일본 간첩이 섞여있을 수도 있겠지만, 무고한 유격대원이나 농민들도 엄청나게 많았지요. 생각없이 사람들을 죽이다가 이러면 안되겠다 싶은데 1935년이었습니다. 당시 항일유격대에서 고위직 간부이던 중국인 위증민(웨이쩡민)이 뭔가 문제가 있는게 아니냐고 뒤늦게 의문을 제시했지요. 당시 중공당에서는 간도지역내 일본간첩이 조선인의 70~80%라고 우기고 있었는데, 그렇게 많은 간첩이 있을 수가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약간 의견이 분분하기는 하지만 김일성 역시 여기에 문제를 제기했다고 합니다. 당시 김일성은 항일유격대에서 활약을 하던 최고위직 간부 중 한 명이었는데, 그가 민생단 사건을 막는데 큰 역할을 했다 안했다에 대한 의견이 꽤 분분합니다.
하여튼 뒤늦은 문제제기로 인해 민생단 학살은 1936년 정도가 되서야 완전히 멈추게 되지만, 그 학살로 인해 간도 내에 조선 항일유격대는 말 그대로 치명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얼마 되지도 않는 인원에 대해 학살이 자행되었으니 거의 괴멸 직전의 피해를 입게 되었고, 때마침 1930년대 후반에 이르러 일제의 탄압이 더욱 거세지자 한때 3만 여명에 달하던 조직을 가지고 있던 항일유격대는 1940년에 이르러서는 1500여명으로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결국 1940년 정도에 이르면 패퇴하다시피 하면 소련으로 후퇴를 하게 되고, 후에 광복이 되고 나서야 북한 지역으로 돌아갈 수 있게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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