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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여성위원장 사퇴 및 탈당의 변
안녕하세요, 김윤영입니다. 노동당 여성위원장직을 내려놓고 탈당하고자 합니다. 먼저 많은 기대와 응원 해주신 마음에 끝까지 부응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페미니즘과 사회운동을 비슷한 시기에 처음 접했습니다. 사회운동을 하며 살기로 결심하고 청년이든 노동자이든 빈민이든 장애인에 대한 것이든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 함께하고 싶었고, 한편으로 언제나 제가 배우고 믿는 평등이라는 가치가 여성에게도 적용되었으면 했습니다. 진보주의자라면 페미니스트여야 한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노동당을 포함하여 제가 속했던 진보 운동의 영역에서는 여성의 이야기, 여성들이 선택하지 않았지만 살아버린 것만으로 받아온 피해들과, 잃어온 -잃어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많은 힘이 드는- 권리들은 거의 언제나 '나중에' 할 일로 치부 받아왔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만큼 당장 절박하지 않아서, 아니면 가부장제는 너무 공고하여 어떻게 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아니면 사회변혁의 주체가 되기에 여성들은 조직되어 있지 않아서, 또는 조직되기 어려워서. (감정 기복이 심하고, 집안마다 흩어져있고, 이유들이야 다양했지요.) 페미니즘은 마치 취사선택 가능한 ‘라이프 스타일의 문제’로 다뤄졌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페미니즘이 라이프 스타일이 아니고, 세상의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동등한 인간이라는 것을 주장하고 관철시키는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별 따위 상관없는 것처럼 살아보려던 주변의 여성들이 돌부리에 걸리듯 넘어지는 수많은 장면들을 보며, 왜 여자는 인간이 아닌지 생각하곤 했습니다.
노동당 여성위원회에서 활동하며 만났던 많은 당원들이 직위를 막론하고 제게 ‘요즘 젊은 여성 당원들은 왜 계속 피해에 대한 이야기만 하냐, 언제까지 그 이야기를 들어야 하냐, 20년 전에도 똑같았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약자는 부당한 피해에 대해 계속해서 말하며 운동을 만듭니다.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언제까지 들어야 하냐는 말은 하지 않으며, 20년째 똑같은 인간다운 삶의 권리 주장에 대해서는 지겹다고 하지 않지요. 당명을 바꾸자고 했을 때 많은 분들이 ‘노동’이라는 이름에 충분히 여성 문제가 포함된다고 반박하셨지만, 그렇다면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에 노동 문제가 포함되지 못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페미니스트들이 왜 당으로 유입되지 않냐는 조급한 의아함이나, 위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진보 운동 문화 속에서 피해를 호소하는 여성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여성주의자들에게 공감하기보다는 의심하는 시선, 함께 어떻게 회복할지 고민하기보다는 부족함을 지적하는 이야기들을 듣곤 했습니다. 사회 진보를 이야기하는 공간에서조차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로부터 오는 차별에 익숙해져야하고, 자기 존재의 권리가 후순위임을 인정해야만 조금의 ‘양보’를 받을 수 있는 공간 속에서 저는 눈앞의 유리벽을 손으로 하나씩 만져서 확인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노동당을 나가서 ‘페미니스트 정당’을 만드는 데에 힘쓰고자 합니다. 여성의 권리, 페미니즘의 가치가 유예되지 않는 정치 운동을 하고 싶습니다. 예민해서나 피해의식 때문이 아니라고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과 바쁜 길을 가고 싶다는 마음 때문입니다. 벽을 만지며 확인하는 데에 쓰는 에너지를 보다 의미 있게 쓰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겠지만 저에게도 요 근래의 페미니즘의 물결은 너무 기다리던 것이자 저를 바꾼 것이었고, 이것이 한때의 꿈같은 시간이 아니라 실제로 사회를 나아지게 하는 것이었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 페미니스트들이 사회에 유의미한 정치적 세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여러 사람들과 나눈 상상력 속에서 그 모습은 (이름도 정해진 것도 아직 없지만) 페미니스트 정당의 모습입니다. 강령이나 선언문부터 의사소통 방식까지 하나씩 함께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미처 모든 분들께 따로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고, 함께 하고자 하시는 분들께서는 댓글로, 메시지로 말씀해주시면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저는 사회운동이 훈련된 운동가들이 대중을 이끌어가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손에 잡히는 일을 성사시키는 데에는 효과적이지만, 위계를 수반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최대한 많은 요소를 예측 가능한 범위에 두려고 하기 때문에 통제적이기도 했고요. 저는 요새 저 또한 여전히 몸에 배고 있는 이런 운동 방식에 대해 많은 부분 반성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올해 초 한 페미니즘 행사에서 왜 넷페미들은 연대하지 않냐는 질문을 받은 넷페미 한 분이 ‘그렇지 않다, 어떤 집회에 가지 않아도 온라인에서 사람들의 시각을 바꾸기 위해 많은 활동을 하고 있고, 그런 분위기의 변화가 그 어떤 집회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우리는 이미 연대하고 있다’는 취지의 답을 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사회 변화를 우연에 맡기자거나 막연하게 낙관하자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다만 위계적이고 통제적이지 않은 방식, 그리고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연결하고 연대할 수 있는 운동의 방식을 찾아나가고자 합니다. 노동당과도 그렇게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진보 정당을 이어가고자 고민하고 애쓰시는 모든 분들께 연대의 말씀을 드리며, 연대의 공간에서 웃으며 만나 뵙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7년 11월 20일 김윤영
출처 |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1679188732141336&id=1000015067594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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