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에서 기본소득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나라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안 했으니 우리나라도 하면 안된다는 이야기냐. 우리나라에서 먼저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라는 지적이 있을 것 같은데요. 유럽복지국가에서도 이게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확신할 수가 없어서 '테스트'를 선행하고 있는 것이 기본소득제입니다.
자,생각해봅시다. 비경제인구를 대상으로 해서 '수당'이나 '연금'으로서 지원하는 정책은 유럽에서는 흔하디 흔합니다. 이것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죠. 보편적 복지라고 해서 소득수준이나 적용요건을 판별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해당 연령이나 계층에 포함되면 다 줍니다. 보통 북유럽식 복지모델이라느니 독일식 복지모델같은 말을 사용하기도 하고, 중복지 모델이라 표현하기도 합니다.
최근 기본소득제를 도입하려 실험을 하는 나라는 핀란드와 네덜란드가 있습니다. 네덜란드가 주민 100명, 핀란드가 실업자 2천명을 대상으로 기존에 받는 각종 수당과 상관없이 백만원 내외를 지급하는 실험을 하는 것인데요. 이 국가들은 상기 수준의 복지정책을 이미 시행중입니다. 핀란드가 애당초 북유럽이기도 하고......그런데 기본소득제라는 이름으로 인원과 지역을 한정해서 100만원 내외의 돈을 조건없이 지급하는 실험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본소득제가 보통의 복지제도와는 차원이 다른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이거...신자유주의적 기본소득제도 있습니다. 그 예가 바로 스위스죠. "모든 복지정책을 해체해버리고 그 재원들을 통합해서 전 국민에게 300만원씩을 지급한다." 이걸 국민투표에 붙였죠. 국가가 제공할 복지를 해체하고 돈으로 줄테니 그 안에서 알아서 해결하라는 겁니다. 당연히 반대 76.9%로 부결되었지만요. 그만큼 기본소득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복지'와는 결이 다릅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중복지가 아닌 저복지 국가라서 복지확대에 의해서 발생할 사회현상에 대한 연구와 경험이 적습니다. 복지정책과 인프라가 충분히 마련 된 국가에서도 "이 돈을 받은 국민들이 어떤 행동을 보일 것인가" 를 실험하는 판에 기본소득제를 단순한 복지확대의 차원으로 접근해서 국가적으로 실시하는 것은 매우 무리한 일 입니다.
가장 문제는 재원입니다. 유럽의 경우 이미 충분한 복지재정이 확보된 상황이라서 기본소득제에 대한 재원마련도 여유로운 편입니다. 추가재원이 필요없고 오히려 복지대상자를 선별하기 위한 관리비용이 극단적으로 절감되서 재원이 증가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뭐, 아직은 이론이지요. 반면에 우리나라는 새로운 재원을 마련해야하는데 '예산절감' 이라거나 '법인세 증세'같은 수준으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저런 것들로만 실현이 가능하다면 북유럽이나 독일은 멍청이들이라는 이야기죠.
16%에서 25%에 이르는 부가가치세. 누진구간이 있지만 50%에 이르는 소득세. 유럽도 국가간 편차가 크지만 대략 30%에 가까운 법인세. 이런 것들이 그냥 생각없이 책정 된 금액이 아닌 겁니다. 때문에 '중복지에 중부담은 필수'인 것이고요. 기본소득제는 중복지 수준의 부담만으로도 실현이 가능할 수 있어서 그 이상의 재원이 필요하지는 않겠습니다만....그렇다면 유럽 수준의 중부담은 필수라고 봅니다.
저성장의 늪에 이미 들어갔다는 평가가 나오는 한국 경제상황에서는 재정절벽은 현실입니다. 특히나 이명박근혜 개잡년들 때문에 막대한 국가부채에 허덕이는 상황이고 가계부채가 터지면 성장률이 IMF 수준...즉, 마이너스가 될 가능성도 있는데 반쪽짜리 재원확보만으로 기본소득제를 하겠다면 그건 허상입니다.
기본소득제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집단에서는 '기본소득제와 함께 세금제도도 전면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주장하기도 합니다. 법인세와 소득세를 없애버리고 모두 부가가치세에 몰빵해서 간접세와 소비세로 재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죠. 이 경우 부가가치세를 50%까지 끌어올려도 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기본소득제는 완전히 새로운 페러다임인 것이죠.
처음에는 저도 기본소득제를 단순한 복지정책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들여다봤는데...이게 그렇지 않습니다. 4차 혁명으로 촉발 될 혁신과 재앙. 완전히 새로운 페러다임으로의 전환. 국가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모델 제시. 자본시장의 격변. 그 속에 들어잇는게 기본소득제입니다. 대통령 후보가 자기 복지정책에 마음대로 툭툭 던지듯이 넣고 대중들의 '기득권에 대한 반감'을 자극해서 인기몰이에 사용할 성격의 제도가 아닌 겁니다.
양극화의 해소라거나 부의 재분배같은 것은 기본소득제가 아니라도 가능합니다. 실상 주장하는 정책들도 보면 기본소득제와는 거리가 있어보이고요. 그냥 중부담 중복지에 네이밍만 붙어서 정책으로 삼으면 진짜 기본소득제가 필요한 순간에 꼬여버립니다. 기본소득제는 대선후보들이 자기 정책에 자가발전하고 싶은 욕망에 소제로 써먹어도 될 정도로 가벼운 이름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