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바로, 이곳에는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안희정의 노선을 좋게 보지는 않습니다. 조선시대보다도 못한 역대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가 벌어진 현 시국에서, 그 뒤를 이을 정부는 온화함과 관용보다는 단호함과 엄격함을 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한때 이재명을 내심 지지했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요).
하지만 제가 좋게 보든 안좋게 보든 저 포용정신은 그 자체로 안희정 지사님의 신념이자 노선입니다. 이 사람이 단순히 보수층 지지표를 흡수하기 위해 저런 발언들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건 과거 인터뷰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스탠스야말로 안 지사님의 길이며, 이건 7년 전이고 지금이고 변함이 없었습니다. 반짝 차별화를 위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원래 저런 생각을 지녔던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오유의 몇몇 분들은 안 지사님의 이런 행보를 보고 흑화했다느니 변질되었다느니 하는 말을 합니다. 글쎄요, 대체 뭐가 흑화고 변질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저 사람은 꾸준히 똑같은 것을 주장해왔을 뿐인데, 자기 입맛에 맞는 걸 볼 때는 "역시 안지사님~" 하던 사람들이 자기 생각과 좀 다른 것을 보면 너무나도 쉽게 그것을 "옳지 않다"며 부정해버립니다. 저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하는가, 어떤 맥락에서 저런 생각이 나오는가에 대한 고려는 1도 없습니다. 깊이 들여다볼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매번 갱신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일희일비합니다.
여러분이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그래도 이해합니다. 싫어하는 사람을 대상으로까지 이면을 보라고 하는건 너무 과한 요구니까요. 하지만 안 지사는 여러분이 좋아하고 있고, 좋아하고 싶은 사람이 아닌가요. 누구마냥 1위를 시기하고 깎아내리는 게 아니라 인정하고 추켜세워주는 도량을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그럼 최소한 그 사람이 아무리 내가 싫어하는 얘기를 한다 한들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라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게 진짜 지지자의 자세잖아요. 자신과 생각이 100% 일치하는 후보를 원한다면 본인 스스로 출마해야지요.
다시 말하지만, 저는 안 지사의 노선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번 경선에서 그에게 표를 주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정치인 안희정으로서의 활동에는 기꺼이 지지를 보냅니다. 언젠가 그가 말한 관용과 화합이 필요하다고 제가 느끼는 때가 올 수도 있겠죠. 그때 제가 투표할 수 있게 되기 위해서라도 그가 외풍이나 사사로운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쭉 고수해나갔으면 합니다.
새삼 말하기도 입아픈 너무나도 당연한 진리 하나. 무엇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생각은 세상 사람들 모두가 다릅니다. 그렇기에 인류는 그 서로 다른 의견 속에서 가장 합리적인 안을 추려내기 위해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성립하기 위한 조건은 그것이 다양한 입장을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극단적인 말로, 문재인 300명으로 의회를 채울거면 그건 그냥 독재시스템과 다를 바 없습니다. 서로 다른 의견의 대립과 타협 속에서 해결책이 나온다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정신입니다.
그러니 정치인을 비판하는건 좋지만 그들을 규정하려 들지는 말아주세요. 정도正道 는 하나만 있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의견이 틀린 게 되는건 아닙니다. 진짜 너무 당연한 건데 오유에서는 가끔 이 사실을 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아니 꽤 자주 나타나더군요. 다른 회원 의견의 대댓글에도 보면 상대를 국정원/손가혁으로 깎아내리는 표현이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등장하죠. 그런 태도 때문에 오유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고 지금도 엄청 많은데 슬슬 고칠 때도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정치인으로서 우리가 배척하고 경계해야 할 부류는 하나뿐입니다. 당장의 손익에 눈이 멀어 정당하지 못한 말을 거리낌없이 내뱉는 부류. 사도邪道 를 너무나도 가볍게 생각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가려 하는 부류. 이재명 같은 사람이 대표적이죠. 그런 모습이야말로 진짜 변질이고 흑화고 타락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 한 각자의 신념의 영역에 있어서는 서로를 존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