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감독님께
2010년 겨울.
한국시리즈를 승리로 끝낸 이후에
제가 아팠던 적이 있었잖아요(안면마비).
입원해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정말 절망스러운 마음이었어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불안하고 막막했어요.
야구를 그만 두어야 하나,
싶은 마음까지 들 때였으니까요.
제일 먼저 병원으로 달려오신
분이 바로 감독님이셨죠.
그때 솔직히 감독님 원망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왜 사람들은
내가 아프다는데
감독님만 욕할까?
왜 감독님은 내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감춰서
사람들의 원성을 들으실까?
그만큼 팬들의원성이 대단했습니다.
'김성근 감독이 다음 해
팀 성적을 위해 김광현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하지 못하게 했다'
그런 터무니없는 말이
떠돌 때였으니까요.
말이라는게 무서워서
한 번 시작되면 눈덩이가
굴러가듯이 커지더라고요.
감독님은 심지어
'매국노'라는 말까지 들으셨잖아요.
그러니 제 마음은 오죽했겠습니까.
차라리 제 병명을 밝히면
감독님이 원성을 들을 이유도 없고
저도 나쁜 사람이 될 이유가 없는데....
마음이 너무 괴로워서
기자한테 말을 해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감독님이
절대 그러지 말라고 하셨죠.
결국은 저를 위해 철저하게
비밀로 지킬 필요가
있다는 말씀이셨어요.
"너는 걱정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내가 다 책임질거야"
감독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저는 어느쪽으로도 길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정도로 감당할 수 없는
막막한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감독님.
그때 병실에 오셔서 저한테
하신 말씀 생각나세요?
그 병실은 병원의 제일
꼭대기 층에 있었고
창밖으로는 강남 방향의
풍경이 다 내다보이는 방이었죠.
감독님이 저를 물끄러미
보시더니 잠깐 숨을 고르셨다가
창밖을 내다보셨잖아요.
그리고 말씀하셨죠.
아직도 그때 그 말씀이
제 기억 속에 선명합니다.
" 저걸 다 네 땅으로 만들어라 "
아, 단지 그 한마디였는데,
저는 뒤통수를 한대 맞은
것처럼 번쩍했습니다.
순간 가슴이 북받치면서
눈이 온통 뜨거워졌지요.
제가 세상에서 가장 절망적이었던
순간에 감독님은 저에게
희망을 말해주신 거였어요.
창밖으로 보이는 세상을
다 제것으로만들라는 말씀.
그만큼 저를 믿으신다는 말씀이셨고
그만큼 저를 걱정하고
계시다는 말씀이셨어요.
감독님을 향한 비난은
아랑곳하지 않으시고요.
어떻게 그러실 수 있으는지
지금 생각해도 대단하신 것 같아요.
그 마음이 느껴지니까
비로소복잡했던 제 마음이
안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더 단단해져야 하는구나.
그렇게 느꼈지요.
감독님.
그때 해주셨던 말씀은
아마 제 평생토록 잊지 못할것 같아요.
그때 감독님과 같이
내다봤던 창밖의 풍경도 그렇고요.
가장 추운 겨울의 풍경이었지만
가장 따뜻한 풍경으로
저에게는 남아 있습니다.
김성근 감독의 화답
김광현이 2010년에 아파서
쓰러졌을 때 말도 못하게 힘들었을 거다.
나도 그마음을 안다.
모든선수들이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피처는 한순간이다.
어깨가 가면 하루아침에 선수 생명이 끝난다.
평생야구만 한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야구를 못하게 되는거다
그렇기 때문에 야구를 하는 순간은
모든 순간을 야구에 집중해야 한다.
김광현이 아팠을 때도 그랬다.
병원에 도착해보니 김광현의 얼굴이 말이아니었다.
금방이라도 삶을 포기할 거
같은 얼굴이었다. 왜 안 그렇겠는가.
사방에서 그를 비난하고 있었다.
내가 비난당하는건 아무렇지 않았다.
하지만 김광현은 달랐다.
앞으로 10년은 대한민국을
대표할 피처인데
그런 김광현이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래도 김광현이 아프다는
사실을 절대 밖으로 알리고 싶지 않았다.
치료를 받으면 완치될 수 있다.
그런 기회도 주지 않고
섣불리 밖으로 알렸다가
한 사람의 선수 생활이 망가져 버린다면
그건 누가 책임질 건가.
그의 미래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한국 야구를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나는 한 젊은 선수가 꽃을 피우기도
전에 그대로 잘려나가는 것을 볼 수 없었다.
2010년 한국시리즈 우승 후 매스컴에
인사하러 갈 때 이미 김광현의 상태에 대한
정보고 내 귀에 보고됐다.
일단 구단에 이야기해서 막으라고 했다.
하지만 구단은 나와 생각이 달랐다.
조금이라도 손해보기 싫다는 뜻이었다.
'진실'을 밝히려고 했다. 진실?
그게 누구를 위한건가
여기다 가져다 붙여도 되고
저기 가져다 붙여도 되는 진실이라면
나는 선수를 위한 진실을
먼저 생각해야 된다고 본다.
그게 리더다.
리더를 믿고 선수들이 야구만
생각하고 야구를 할 수 있게 하는거다.
나는 싸웠다. 정신이 있느냐고 했다.
젊은 애 장래가 걸려있는데
어디서 알리려고 하냐고 밖으로
알려지지 않도록 주치의를
김광현의 집으로 보냈다.
내가 일본에 있을 때여서
일본에서 전화를 걸었다.
그정도로 신중하게 치료를 했다.
아시안게임 때도 내가 김인식
선발위원에게 직접 전화를 했다.
그래서 사퇴하게 된건데
어느순간 김성근과 김광현은
매국노가 되어있었다.
야구팬을 비롯한 전 국민들이 난리가 난것이다.
김광현의 아버지한테서 전화가 왔다.
부담 때문에 광현이를
아시안게임에 내보내겠다는 말이었다.
한 시간 반을 통화했다 겨우 설득해서 막았다.
이와중에 한국에 돌아와 김광현의 병원을 찾아갔다. 내가 무슨말을 해줄수 있겠나
김광현의 고통스런 마음이 너무 절실하게
느껴져서 나도 무슨말을 해줘야 할지 막막했다.
그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생각했다.
이 위기가 지나가면 땅은 더욱단단해 질거라고.
내가 너를 위해 방패가 되어주겠다고
병실 창밖으로 높다랗게 뻗은 빌딩과
집과 거리가 보였다.
저걸 다 가져도 부족할 판에 지금여기서
환자복을 입고 있구나.
김광현을 돌아봤다. 그리고 한마디를 했다.
"저걸 다 네땅으로 만들어라."
잠시동안 침묵이 흘렀다.
나는 말을 더 이어나갔다.
내가 모든걸 다 막아주겠다고 했다
비난은 내가 다 막겠다고 했다.
광현이의 눈이 벌게지면서
고개를 끄덕이는게 보였다.
하지만 결국 이듬해 김광현의 부상에
대한 기사가 나고 말았다.
적어도 난 김광현이라는 사람앞에서
진실하게 그를 만났다.
단 한가지 너무 아쉬웠던 순간이 있다.
2011년은 오로지 김광현의
재활에만 힘쓰려고 했다.
그리고 2012년으로 넘어가서
김광현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2011년 시즌 도중 감독직을
내려놓게 되었고.
결국 한국시리즈에서 김광현의
등판 모습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순간 정말 내스스로 너무너무 속이 상했다.
회상해보면 그떄가 내게는 SK에서
가장 아쉬운 순간이었다.
그해에 김광현을 지켜주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마음아프고 아쉽다.
나는 최대한 선수들의 방패가 되어주고 싶었다.
비록 내가 상처를 입더라도 리더는 제일앞에
서는사람이다.
선수들을 내 등 뒤에 놓고 보호해주어야 한다.
설사 내가 쓰러지더라도
내 뒤의 선수들 만큼은 살려야 한다.
나는 그것이 리더라고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런마음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살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SK를 떠나면서 김광현과 통화를 했다.
이제 혼자서 싸우고 성장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래야 김광현이 한 단계 더 도약하리라고 봤다.
이제 겨우 50퍼센트 만들어졌다.
앞으로 더나갈수있는 선수다.
김광현이 어떤 인터뷰에서인가 메이저리그에
가면 나를 데려가겠다는 말을 했다는
말을 듣고 다시 통화했을 때는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어 그래. 내가 너 가방모찌 할 테니까 꼭 데려가."
출처 : 김성근 자서전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