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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티어!”
마녀의 손가락이 그리는 붉은 선을 따라 거대한 불덩어리는 안개 수집 장치를 박살내며 수직으로 꽂힌다. 튀어 오르는 불꽃과, 잿빛 연기와, 매캐하게 번지는 탄내, 그리고 무수한 파편들. HQ가 무너져 내린다.
“임무를 완수했다.”
다이무스는 무전기를 들어 보고한다. 타라를 슬쩍 돌아본다. 그녀는 손바닥에 하, 입김을 분다. 아무리 두꺼운 외투를 껴입고 왔대도 이곳, 혹한의 땅의 추위는 불의 마녀에겐 너무 가혹하다.
“수고했어, 다이무스.”
타라는 다이무스의 팔짱을 슬쩍 끼며 잡아당긴다. 회사로 돌아가서 맥주나 한 잔 하자, 그녀가 말한다.
“잠깐만.”
다이무스가 고개를 돌리며 혀를 쯧, 찬다. ‘귀찮게 됐다.’ 다이무스는 칼집을 든 왼손을 긴장시킨다. 당장이라도 질풍참을 쓰며 뛰쳐나갈 듯하다. 그의 사나운 눈빛이 닿은 언덕에는 몸에 딱 붙는 블랙 슈트를 입은 남자가 앉아서 발을 구른다. 하얀 가면 너머의 눈빛은 조소로 가득하다. 타라가 손가락에서 불꽃을 튕긴다.
“누구지?”
“아이작, 안타리우스의 잔당이다.”
다이무스가 답하자마자 타라는 그를 향해 오른손을 내뻗는다. “타라” 다이무스가 그녀를 제지한다.
“상황이 좋지 않다.”
타라는 고개를 돌린다. 북방의 울창한 타이가 수풀 사이에서 딱 붙는 슈트를 입은 강화인간수십명이 걸어 나온다. 타라는 그들이 능력자를 모델로 만들어진 복제 인간임을 깨닫는다. 아이작은 언덕에서 사뿐히 뛰어내리더니 그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온다. 동시에 강화인간들이 회사의 두 에이스를 향해 동그랗게 포위망을 좁혀온다. 다이무스는 타라와 자연히 등을 맞대고 선다. 이거 좀 위험하겠군, 다이무스는 오른손으로 칼을 쥔다.
“사냥감이 저기 있다!”
아이작이 소리를 지르자 강화인간들이 일제히 그들을 향해 돌진한다. 타라의 손가락에서 불꽃이 피어오른다. 그녀의 반대편에서는 그보다 훨씬 강력한 폭발이 일어난다. 공간을 태우는 그녀의 화염은 강화인간 셋을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어버렸지만, 적들의 숫자는 압도적으로 많았다.
“타라, 엎드려.”
다이무스가 몸을 비틀며 말한다. 칼집에서 튀어나오는 것은 한 자루 태도였으나 거기서 뿜어져나오는 것은 그저 한 차례의 횡베기가 아니다.
“만월참!”
허공에 뿌려지는 혈흔과 함께 십수명의 강화인간이 아랫배를 움켜쥐고 쓰러진다. 다이무스는 바닥에 엎드려 새파란 얼굴을 한 타라를 집어 들어 왼쪽 어깨에 들쳐 멘다. 그녀는 당황해서 다이무스, 소리를 질렀지만, 그 목소리는 바람 소리에 묻히고 만다. 그녀의 시야에는 좀 전에 그들이 등을 맞대고 서있던 장소가 조그만 그림이 되어 한 눈에 들어온다. 일순간 수십 보를 폭발적으로 도약한 다이무스는 여전히 타라를 어깨에 얹은 채 평원을 질주한다.
“내려줘! 다이무스, 내 발로 뛸게!”
“입 다물어, 혀 깨문다!”
다이무스는 계곡 바깥으로 나가는 좁은 골목으로 달려간다. 안개 수집 장치가 이런 곳에 설치되었기 때문에 발견하기 힘들었지만, 이런 곳에 설치되었기 때문에 달아날 때 도움이 될 것이다. 계곡의 하나 뿐인 조그만 출입구. 다이무스는 그곳에 타라를 내려놓는다. 그녀의 어리둥절한 표정에 단단한 등을 보여주는 것으로 응수하며 다이무스는 무뚝뚝하게 말한다.
“회사로 돌아가.”
타라는 허, 하고 어이없음을 탄식으로 표현하더니 다이무스의 팔을 잡아당기며 화가 난 목소리로 말한다.
“하나도 안 멋있으니까 터프한 척 하지 마. 저 숫자를 혼자 어쩌려고?”
“타라!”
다이무스가 소리친다. 그 사나운 눈빛에 타라는 살짝 기가 꺾인다.
“저들은 우리가 이곳에 오기를 마치 기다렸단 듯이 튀어나왔다. 우리가 이곳에 안개 수집 장치가 있다는 걸 어떻게 알게 됐지? 회사에 날아왔던 그 익명의 메일. 난 처음부터 신뢰하지 않았지. 아직도 모르겠나? 이건 함정이다!”
“그러니까 같이…….”
“임무 완료 보고를 했을 때, 아무런 답도 받지 못했다.”
다이무스의 표정이 굳는다.
“우리 둘을 일부러 빼놓은 거다. 정확히는 너를. 회사가 위험하다. 다수의 적과 공성전을 벌인다면 회사는 네 유성 낙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타라는 일주일 전 회사에 날아온 익명의 메일을 떠올린다. 혹한의 땅에 설치된 안개 수집 장치를 파괴하기 위해선, 얼음을 불사를 정도의 화력을 가진 불의 마녀가 직접 가는 수밖에 없다는 그의 정보. 마틴이 두 시간에 걸친 스캐닝 끝에 그 땅에 정말 장치가 있다고 했으니 이 긴 여정을 떠나왔지만, 그 정보 제공자는 왜 하필 그녀가 직접 가야한다고 했을까. 실제로 혹한의 땅에서 그녀의 힘은 오히려 반절밖에 되지 않아서 그 조그만 건물 하나 파괴하는 데도 혼신의 힘을 쏟지 않았던가.
강화인간 중 하나가 단검을 들고 날아든다. 하지만 그는 공중에서 다이무스가 날려 보낸 검풍을 맞고 요격된다. 나도 그냥 죽겠다는 게 아니다, 다이무스가 말한다.
“이 골목은 좁아서 적들이 한꺼번에 덤벼들 수 없다. 일 대 백은 무리지만, 일 대 일을 백 번 하는 건 승산이 있다.”
타라는 아랫입술을 깨문다. 미안해, 그녀가 말한다. 반드시 구하러 올게. 타라는 다이무스를 뒤로하고 달리기 시작한다. 다이무스가 그녀를 한 번 돌아보지도 않았던 것은, 아이작이 오싹한 분위기를 풍기며 그의 앞으로 위압적인 걸음을 옮기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너.”
아이작의 목소리에서 비릿한 웃음이 느껴진다.
“조노비치에게 연정을 품었군?”
다이무스는 왼 손 엄지손가락을 튕겨 칼을 뽑는다.
“무사에게 그런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작은 킥, 비웃더니 곧 광기 어린 웃음소리를 크게 터뜨린다. 그 소리에 기계음 같은 괴성이 섞이자 강력한 정신력으로 무장한 홀든조차 팔뚝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아이작은 다이무스에게 한 걸음 다가온다.
“하지만 저렇게 보내도 될까. 다이무스, 왜 하필 우리가 너희를 이 땅으로 끌어들였다고 생각하지? 회사가 위험해? 정말?”
아이작은 바닥에 수북이 쌓인 눈을 한웅큼 집어 든다.
“이 혹한의 땅에서 그 힘이 배가 되는 능력자가 있지. 조노비치에게 원한을 가진.”
심장에서 들리는 쿵, 소리. 다이무스는 경악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다. 타라는 이미 사라져서 보이지도 않는다. 안 돼, 다이무스는 그녀를 쫓아가려 했으나 등 뒤에서 날카로운 살기를 느끼고 멈춘다. 그는 날아오는 수류탄을 반으로 쪼갠다. 두 파편은 골목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힘없이 떨어진다.
“그리고 우리는 너에게 볼 일이 있지.”
아이작이 주먹을 꽉 쥔다.
“노인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한 게 너였다지?”
다이무스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그는 앞으로 성큼성큼 나온다. 좁은 골목에서 평원 한 가운데로, 강화인간들의 포위 속으로 들어간다. 무사는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는다. 칼을 뽑아드는 그의 자세와 눈빛이, 그 결심을 말할 뿐이다. 와라, 일격에 베어주겠다!
-2-
연합의 영웅은 평소처럼 후드를 덮어썼다. 그 모습이 오늘따라 마치 중동의 고대 암살자처럼 느껴진다. 그의 손가락에 결정 조각들이 엉겨 붙는다. 타라는 침을 꿀꺽 삼킨다.
“오랜만이야, 조노비치. 능력자 전쟁의 빚을 갚으러 왔다.”
루이스가 말한다. 타라는 손가락에 열기를 모은다.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온 신경을 루이스의 손끝 발끝에 집중한다.
“빚은 트리비아에게 졌겠지. 이번엔 구해줄 사람도 없을 텐데 어떡하지?”
“걱정 마라, 네가 날 이길 가능성은 없으…….”
루이스의 얼굴에서 불꽃이 폭발했다. 그 폭발은 한번에 그치지 않고 가슴팍에서, 아랫배에서 몇 번이고 터졌다. 타라의 오른손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른다. 그러나 루이스는 쓰러지지 않는다. 그의 얼굴과 몸 바로 앞에서 얼음 결정이 나타나 불꽃을 막아낸 까닭이다. 불꽃을 막아낸 결정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타라는 이를 꽉 깨물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난다. 루이스의 손가락엔, 타라의 눈에 보일만큼 선명한 한기가 감돈다.
“아무래도 이 땅에서 네 힘은 반절도 되지 않는 모양이군. 하지만, 내 힘은 훨씬 막강해졌다. 봐라, 타라. 이게 샤드리볼버다.”
루이스의 손가락에서 큼직한 결정 조각들이 튀며 날카로운 소음이 귀를 찌른다. 거대한 바위산 일부가 산산조각 나서 흘러내린다. 맙소사, 타라는 다리가 풀리는 걸 느낀다. ‘저 미친놈이 손가락에서 용성락을 쏘잖아?’ 그녀는 무리한 싸움을 피하기로 한다. 자존심 세우다 죽어버리면 다이무스까지 죽는 셈이니까. 타라는 루이스를 피해 달아난다. 온 힘을 다해 뛰었으나 그녀의 필사적인 마음이 무색할 정도로 손쉽게, 루이스의 결정 슬라이드가 타라를 앞지른다.
옛날 벨저를 패배시켰던 영웅의 결정검이 타라의 허리를 스친다. 아슬아슬한 순간에 그녀가 몸을 틀었기에 상처는 얕았지만 상황은 최악이다. 루이스의 왼손에서 하얀 안개가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드라이아이스.”
“으아아!”
타라의 몸에서 화염이 폭발한다. 안개는 그 화염에 녹아 쓸려나갔고, 루이스 역시 그 위력에 튕겨 날아가고 만다. 그의 몸은 몇 미터 떨어진 눈 속에 폭 파묻힌다. 쳇, 루이스는 목 뒤로 흘러내린 후드를 다시 덮어쓰고 고개를 든다. 타라는 계곡 반대편에 놓인 긴 나무다리를 향해 달린다. 그녀가 반 쯤 다리를 건넜을 때, 다리 끝에 도착한 루이스는 와이어를 잘라버린다.
타라는 무너지는 다리 위를 달린다. 다리가 쏟아지는 순간 점프하여 손끝을 간신히 계곡 반대편에 걸치고 매달린다. 위로 기어오르던 타라는 루이스의 결정 슬라이드가 그녀의 머리 왼편을 지나는 것을 발견한다. 루이스는 그녀의 손가락 앞에 쪼그리고 앉는다. 그가 손가락을 총 모양으로 만들어 타라를 겨눈다.
“이제 끝났어.”
타라는 숨을 들이마신다. 너는 항상, 그녀가 말한다.
“조심성이 부족해.”
“조심성?”
“머리 위를, 조심하라고.”
타라가 빙긋 웃는다. 머리 위에서 쐐액하는 파공음이 들린다. 루이스는 이를 빠득 씹으며 고개를 든다. 거대한 유성이 떨어진다. 그는 다시 아래쪽을 쳐다본다. 타라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계곡 저 아래에서 첨벙 튀어 오르는 물덩이와 파문이 보일 뿐이다.
유성은 계곡 일각을 산산이 부숴버린다. 타라는 떨어지는 바위조각을 조심하며 물에서 나온다. 젖은 몸에 곧장 얼어 죽을 듯한 추위가 엄습한다. 옆구리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진다. 루이스 때문에 한 바퀴 빙 돌게 되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 혹한의 땅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이 되었다.
얼음의 힘으로 간신히 유성을 막아낸 루이스는 욱신거리는 왼 팔을 문지르며 타라가 추락한 계곡 아래로 내려온다. 바위산 아래 기슭은 급류에 깎여나가 천연의 동굴이 수없이 생겨났다. 부상을 입은 타라가 숨을만한 장소로 적합하다. 루이스는 그녀를 추적하는 데 자신이 있다.
“일반인보다 높은 체온 때문에, 이 기후에서 네 몸에선 희미한 김이 솟아오르기 때문이지.”
루이스는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동굴에 들어서며 말한다. 그러나 준비해둔 샤드리볼버는 쓸모가 없다. 그 곳엔 타라 대신 그녀가 벗어놓은 젖은 외투 자락만이 있을 뿐이다. 루이스는 그걸 집어 든다. 따뜻하다. 불을 피우지 않고 열만 남겨 뒀다. 정말 불장난엔 도가 튼 여자다.
타라는 남쪽 기슭을 지난다. 앞으로 7킬로미터 정도만 더 걸으면 사람 사는 민가가 나온다. 거기서 교통편을 찾아서 바로 회사로 돌아가야 한다. 아니 그 전에, 윌라드 이사님께 연락해서 다이무스에게 지원군을…….
걸음이 멈춘다. 다이무스, 왜 그 생각을 못했지? 타라의 숨이 가빠진다. 그녀가 루이스와 결판을 짓지 않고 이대로 떠난다면, 루이스가 다이무스를 공격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녀는 입술을 깨문다. 회사와 다이무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다.
“타라?”
뜻밖의 목소리에 타라는 놀라서 고개를 든다. 이글이다. 오늘 칼잡이들을 다 만나는군, 당황한 그녀는 곧장 손가락을 튕겨 공간을 세 번 태우지만, 이글은 정확히 세 번 칼을 휘둘러 그 불꽃을 흐트러뜨린다. 불놀이 역시 소용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만 해, 이글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소리친다.
“난 너랑 싸우러 온 게 아냐. 루이스가 형을 만나게 해준대서 온 건데. 아니, 그것보다 넌 어떻게 살아 나왔지? 루이스를 못 만났나?”
“만났어! 그래서 죽을 뻔 했다고!”
“하지만 용케 도망쳤군. 조금 하는데?”
타라는 도망친 걸 칭찬받는 데서 묘한 수치심을 느낀다. 그녀가 이글을 빤히 노려보자 이글은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묻는다.
“근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냐? 회사로 안 가?”
“다이무스 때문이야. 지금 혼자 싸우고 있어. 내가 이대로 도망치면 루이스가 다이무스를 죽일 거야.”
이글은 갑자기 낄낄 웃는다.
“멍청한 소리 하지 마. 루이스는 강하지만 형을? 홀든을 죽일 수 있는 건 홀든 뿐이야. 네가 낄 자리는 없으니 깝치지 말고 집에나 가라. 형하고 오랜만에 진검 대결을 한번 해야겠으니까.”
타라는 주먹을 꼭 쥔다. 분하지만 지금은 이글을 상대할 힘도 시간도 없다. 그녀는 적의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의 옆을 지나면서 일부러 조금의 경계도 하지 않은 것은 그녀도 이글을 공격할 마음이 없기 때문에 그냥 지나치는 것이라는, 일종의 자기 합리화였다. 그러나 그것은 큰 실수였다.
딱딱하게 얼은 바닥에서 솟아오른 빙산. 중심을 잃고 쓰러진 타라는 그녀의 오른발이 빙산 안에 갇혔음을 깨닫는다. 그녀는 불꽃으로 빙산을 폭파시키지만, 화상을 피할 수는 없었다. 발목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으로 움직일 수 없었던 그녀는 왼편 절벽 위에서부터 빙산 옆까지, 결정 슬라이드가 완만한 나선을 그리며 내리깔리는 것을 발견한다. 루이스는 너무나 여유만만하게 그녀의 앞까지 미끄러져 내려온다. 이글이 고개를 쩔레쩔레 흔든다.
“정말 방심 못할 상대군.”
루이스가 말한다.
“자칫하면 놓칠 뻔 했다. 하지만, 이제 끝이야.”
루이스의 손가락에 한기가 얼음 조각으로 엉겨 붙는다. 이글은, 루이스가 타고 온 나선형의 결정 슬라이드를 올려다본다. 무언가를 발견한 그의 입이 벌어진다.
-3-
영웅의 샤드리볼버는 분명 용성락에 근접한 공격력을 보여주었으나, 심안도를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타라는 아이작을 만났을 때 마주했던 그의 널찍한 등을 다시 발견한다. 태도를 움켜쥔 그의 단단한 팔뚝을 보면서, 타라는 롤러코스터의 안전바를 떠올린다.
태도에 튕겨나간 루이스는 금방 자세를 고쳐 잡는다. 다이무스? 그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아이작은 뭘 하는 거야, 그가 불평한다.
“아이작?”
다이무스가 말한다.
“한참 멀었더군.”
타라는 다이무스가 이미 심각한 부상을 당했음을 깨닫는다. 그의 긴장된 어깨와 옆구리에서 피가 흐른다.
“타라.”
다이무스는 루이스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한다. 다친 데는 없나?
“괜찮아. 하지만, 다리를 다쳐서 움직일 수 없어.”
“그럼 됐다. 내 뒤에서 꼼짝하지 마라.”
다이무스는 앞으로 성큼, 한 걸음을 내딛는다. 그 걸음이 너무나 묵직해서 타라는 그가 발을 딛는 곳을 중심으로 이 혹한의 땅이 얼음째 부서지는 느낌을 받는다.
벨저를 패배시킨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정검은 태도를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다이무스는 홀든 특유의 빠르고, 범위가 넓은 공격으로 루이스를 몰아세운다. 루이스는 한 걸음 한 걸음 밀려나다가 오른손의 결정검을 흐트러뜨리고 샤드리볼버로 전환한다. 손가락에서 폭발이 일지만, 먼젓번과 같이 태도가 손가락 끝에 바짝 밀착하며 공격을 튕겨낸다.
심안도를 파훼하지 않으면 승산이 없다. 영리한 루이스는 전투가 일어난 지 몇 분만에 그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무슨 수로? 이 묵직하고 신속한 태도를 막아내는 것조차 버겁다.
루이스는 다이무스의 칼을 받아내며 뒤로 크게 뛴다. 조금 거리가 벌어지자 그의 손가락에서 안개가 뿜어져 나온다. 잠깐이라도 얼어붙어 움직임이 멎으면 그의 승리다.
“드라이아이스!”
“하아!”
다이무스는 드라이아이스를 세로로 쪼갠다. 검풍은 안개를 갈라 흩날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탐욕스럽게 루이스를 향해 날아든다. 칫, 루이스는 빙산을 세워 검풍을 막아낸다. 고개를 든다. 다이무스가 보이지 않는다.
질풍참이 무서운 이유는 태도가 근접하기 전까지 적이 다이무스를 제대로 볼 수조차 없다는 데 있다. 기술의 이름처럼 질풍 같은 그의 움직임은 인간의 눈으로 쫓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루이스는 어느새 코앞에서 솟아오르는 태도를 발견한다. 그의 반사 신경으로는 방어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지만 혹한의 땅은 그의 편이다. 루이스의 방어본능에 반응해, 자동으로 엉겨 붙은 얼음 조각이 치명상을 막는다. 하지만 단지 자상을 피했을 뿐, 다이무스의 힘은 그대로 전해져 루이스는 공중으로 십여 미터를 치솟는다.
루이스는 공중에서 자세를 고쳐 잡으며 바닥에 착지한다. 아랫배에 전해지는 통증이 죽을 만큼 아프지만,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다이무스가 몸을 뒤틀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태도 끝에서부터 차원이 뒤틀리는 게 보인다.
“참철도!”
다이무스는 굳은 표정으로 루이스를 바라본다. 그 역시 몹시 긴장한 얼굴이다. 서릿발과 비슷한 모양으로 루이스를 감싸며 솟아오른 빙산은 다섯 겹이나 되었고, 그 밀도는 몹시 조밀하다. 태도는 마지막 한 장을 가르지 못한 채 빙산 속에 멈추었다. 강철조차 자르는 홀든의 오의가, 다이무스는 침을 삼키며 칼을 뽑는다.
“솔직히 충격적일 만큼 강하군.”
루이스가 말한다.
“하지만 이제 끝났다. 바닥을 봐.”
다이무스는 고개를 돌린다. 혹한의 땅에는 붉은 눈도 내리는가, 다이무스는 저게 전부 그의 피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갑자기 정신이 아득하다. 다이무스는 간신히 칼로 바닥을 짚고 선다. 루이스가 희미하게 보인다. 그가 한 걸음씩 다가온다. 정확히는 다가오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다이무스는 이미 의식이 반 쯤 나갔다.
루이스의 손가락이 다이무스의 미간 앞에 멈춘다.
“이제 피할 수 없겠지?”
“잠깐만!”
이글이 달려든다. 타라가 손가락을 튕긴다. 그러나 다이무스가 맞을까봐 조심해서 쓴 그녀의 공간발화는 루이스에게 깜부기불 수준에 불과하다. 이글의 발은 빠르지만 이미 늦었다.
“샤드리볼버!”
루이스의 손가락에서 푸른빛이 폭발한다. 여태 쓴 것들과도 비교되지 않을 강도의 샤드리볼버는 마치 티엔의 비룡재천처럼 화려하고 강력했다. 그러나 그 가공할 위력은 다이무스에게 꽂히지 못했다.
다이무스가 샤드리볼버를 피한 것은 반사 신경이 좋아서라기보다 무사로 살아온 그의 평생이 만들어낸 일종의 기적이었다. 뇌를 거치지 않은 신경 단위의 회피. 뺨이 찢어지면서 다이무스는 정신을 차렸다. 그가 왼 손으로 루이스의 오른손을 잡고 있었다. 얼어붙은 표정을 마주하고, 다이무스는 태도를 휘두른다. 질풍참과 비슷한 올려치기였으나 그보다는 덜 위력적이었고, 대신 추가 동작이 있었다. 백로 떨어뜨리기. 허공으로 십여 미터 치솟은 루이스는 그를 추격하듯 뛰어 오르는 다이무스와 거꾸로 쥔 태도를 본다. 칼은 루이스의 심장을 겨냥하며 허공을 가른다. 루이스의 오른손이 결정검을 만들어 칼을 쳐낸다. 태도가 너무나 쉽게 빗겨나간 것은 이미 다이무스의 체력이 한계에 이르렀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낙하한 두 사람은 재빨리 일어난다. 먼저 공격 자세를 잡은 것은 다이무스였다. 참철도와 비슷한 자세를 취했으나 그것이 그의 오의가 아니라는 것을 루이스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 공격에 모든 걸 거는군. 루이스는 발아래 결정을 튕긴다.
“만월참!”
태도가 허공을 가른다. 루이스는 공중으로 솟았다. 심안도를 파훼하지 않으면 이 싸움은 끝나지 않아, 저 남자는 척추가 끊어져도 좀비처럼 움직일 기세니까. 뛰어 오른 루이스는 얼음 바닥 대신 결정 슬라이드에 착지한다. 허공에서 만들어낸 결정슬라이드는 다이무스의 머리를 넘어서 타라를 향한다. 당황한 그녀의 표정, 그보다 더욱 당황한 다이무스.
“안 돼!”
다이무스가 결정 슬라이드를 향해 달려든다. 허리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을 참으면서 다이무스는 순간 십 수 미터를 도약한다.
질풍참이 결정 슬라이드를 부수고 솟아오른다. 하지만 그곳에 루이스는 없다. 극도의 혼란 속, 다이무스는 등 뒤에서 소름이 바짝 돋는 것을 느낀다. 다이무스, 뒤! 타라의 고함소리. 다이무스는 몸을 돌린다. 그의 옆구리에 차가운 손가락이 붙는다.
얼음 파편보다 살점과 핏덩이가 더 많이 튀었다. 경악한 이글과 타라의 시선이 멎은 곳에, 다이무스는 너덜너덜한 몸으로 추락한다. 타라가 다가와 그를 끌어안는다. 울컥 눈물이 솟는다. 루이스가 그녀에게 다가온다. 몹시 지친 듯한 그가 손가락을 내민다. 태도가 땅을 짚는다. 일어나는 다이무스의 눈에는 이미 초점이 없다.
“존경스럽다. 다이무스.”
루이스가 숨을 고르면서 말한다. 과연 트리비아를 등 뒤에 두면 나도 이렇게 싸울 수 있을까, 루이스는 적을 좀 더 극찬하고 싶었지만 속으로 삼킨다. 다이무스가 참철도를 휘두를 자세를 취했기 때문이다. 루이스가 말한다.
“이렇게 되면, 나도 적당히 하는 게 예의에 어긋나겠지. 극한의 추위를 안겨주겠다.”
이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잠깐만, 루이스!”
“그만해! 나만 죽이면 되잖아!”
타라가 소리친다. 그녀의 목소리는 결정이 얼어붙는 소리에 파묻히고 만다. 그녀가 온 힘을 다해 화력을 몰아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날카로운 추위는 그녀의 열을 간단히 꺼뜨린다. 다이무스는 아직도 참철도를 휘두르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으나, 거대한 빙산에 갇힌 태도에겐 움직일 공간도, 힘도 없다. 타라는 압사할 듯한 무력함과, 다이무스를 잃은 슬픔에 눈앞이 캄캄해진다.
다이무스는 태도를 든다. 소년 시절 그가 검술을 연마하던 홀든 자택의 뒤뜰. 어린 동생들을 책임지는 맏형으로써 그가 숙달했던 오의는 강철조차 잘라버린다는 절명.
다이무스는 거치대에 태도를 걸어놓는다. 이제 끝났다. 상당히 무거운 검이었다. 다이무스는 생각한다. 내 마지막이 그럴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지, 홀든 삼형제 중 둘은 루이스에게 당했고 하나는 그와 친구라. 다이무스는 쓰게 웃는다.
“그러나 전투 중 죽었다면, 무사로 살아온 내 삶에 후회는 없다.”
다이무스는 저택으로 들어간다. 저택은 갑자기 헬리오스사로 변한다. 윌라드 이사와 기사들, 자네트, 호타루, 앨리셔가 그를 친절하게 맞이한다. 마를렌이 그의 다리에 붙는다. 멀리서 그녀를 지켜보는 샬럿. 귀여운 것들, 다이무스는 표정으로 드러나지 않는 미소를 짓는다.
“수고하셨습니다.”
윌라드가 말한다.
“이제 편히 쉬십시오.”
다이무스는 고개를 까딱여 인사하고 그의 방으로 움직인다. 불현 듯 뭔가를 깨닫고 걸음을 멈춘다. 윌라드, 로라스, 드렉슬러, 자네트…….
“타라는 어딨지?”
윌라드가 고개를 갸웃한다.
“조노비치양은 전사했습니다. 혹한의 땅에서…….”
심장이 얼어붙는다. 다이무스는 손끝에서 전율이 이는 걸 느낀다. 난 대체 뭘 하는 거야. 그는 헬리오스 사를 박차고 뛰쳐나간다. 다시 홀든의 자택 뒤뜰. 다이무스는 거치대의 태도를 집어 든다. 아직 칼을 내려놓을 때가 아니다.
얼음에 이는 균열을 루이스는 놓치지 않는다. 감람석 망치를 만들어 끝을 보려던 그는 공간의 뒤틀림이 예사롭지 않음을 깨닫고 빙산 장벽을 세운다. 여섯 겹의 장벽이 그를 탄탄하게 둘러싼다. 깨지는 얼음. 잘려나가는 얼음. 가르는 태도.
“헉,”
다이무스는 가쁜 숨을 뱉으며 칼로 바닥을 짚는다. 버티고 서려고 하지만 그의 다리는 제멋대로 주저앉는다. 뒤로 쓰러지는 그의 머리를 타라가 받쳐 안는다.
“참, ……참철…….”
다이무스의 입에서 피가 울컥 솟는다. 그는 모기만한 목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한다. 타라는 루이스를 바라본다. 그의 가슴에서 피가 왈칵 치솟는다. “실수다.” 영웅의 무릎이 바닥에 닿는다. 수북이 쌓인 눈의 차가움이 뺨에서 느껴진다.
“젠장!”
이글이 대상 없는 욕설을 퍼붓는다. 영구동토의 거대한 얼음 빙산들이 산산조각나 무너지자 그가 달려온다.
“이렇게 되다니…. 야!”
이글이 타라의 어깨를 잡아당긴다. 놔! 타라가 거칠게 그의 손을 쳐낸다. 다이무스를 끌어안고 펑펑 눈물을 쏟는 모습이 마녀는커녕 순진한 시골 소녀 같다.
“형은 아직 안 죽었어.”
이글이 말한다.
“젠장. 죽을 사람이 아냐. 형이 죽는 건 상상도 안 된다고. 이봐, 루이스를 치료해줘.”
“뭐라고?”
타라가 사납게 이글을 노려본다. 그를 이길 자신은 없지만 애초에 싸울 생각조차 없다. 그녀는 여기서 다이무스와 함께 기꺼이 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글이 답답하다는 듯 소리친다.
“두 사람 상처를 지져서 출혈을 막으라고. 내가 너와 형을 요 앞 민가까지 데려다 줄 테니까. 헬리오스로 빨리 데려가면 살지도 몰라.”
타라는 다이무스를 살핀다. 분명 그는 죽을 수밖에 없는 부상을 입었지만, 아직까지 심장이 뛰고 있다. 타라는 이글을 바라본다. 그녀의 손가락에 뜨거운 열이 오른다. 그녀는 증오스런 눈으로 루이스를 쏘아보면서, 그의 상처를 지진다.
-4-
헬리오스 사 천장. 다이무스는 눈을 떴지만 전신의 세포가 비명을 지르는 듯한 고통에 일어나는 것을 포기한다. 이번엔 정말 죽은 줄 알았는데 어떻게 살았지? 다이무스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다가 목 근육이 너무 아파 멈춘다. 이거 또 환각은 아니겠지? 아직 루이스와 싸우는 중일까.
문이 열린다. 마를렌이 활짝 웃는다. “아저씨!” 그녀가 임팔라처럼 달려든다. 놀랍게도 꼬맹이 하나 들어왔을 뿐인데 상상을 초월하는 소란이 인다. “아저씨가 깼어요!” 마를렌이 소릴 지른다. 그녀는 기본 이동 수단이 달리기인 것 같다. 걷는 법이 없군, 다이무스는 피곤해져 눈을 감는다.
“일어나셨습니까.”
윌라드 이사가 창기사들과 함께 들어온다. 자네트도 함께이다. ‘타라는?’ 다이무스는 혀끝까지 올라온 질문을 삼킨다. 윌라드가 말한다.
“까미유가 왔다 갔습니다. 사흘 동안 이 방에서 반딧불이 번쩍거렸습니다. 이미 시체나 다름없는 걸 살려놓긴 했지만, 의식을 차릴지는 다이무스씨의 체력에 달렸다고 하더군요.”
“난 일어날 줄 알았어.”
드렉슬러가 말한다.
“비록 나흘이나 걸린 게 천재의 예상을 벗어났지만. 젠장,”
그가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로라스에게 건넨다. 이 양반들이 부상자를 두고 무슨 내기를 한 거지, 다이무스는 속으로 생각한다.
다시 문이 열린다. 또각 거리는 힐 소리가 화강암 바닥에 울린다. 걸음이 부자연스럽군, 한쪽 발을 다친 모양이다. 부상이 낫지도 않았는데 벌써 서류를 들고 다니는가, 다이무스는 타라를 바라본다. 떨어지는 서류 파일. 타라의 양손이 그녀의 얼굴을 움켜쥔다. 그 작은 어깨가 가늘게 떨린다.
“난, 네가…….”
타라의 눈물은 순식간에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자릴 비켜주는 게 좋겠군요, 윌라드가 말한다. 그들은 우르르 방 밖으로 빠져나간다. 나가지 않으려는 마를렌을 드렉슬러가 질질 끌다시피 데리고 나간다.
타라는 침대 옆에 앉는다. 눈물이 번진 눈가를 정리한다. 어색한 침묵 끝에 다이무스가 입을 뗀다.
“부상은 괜찮나.”
“어! 어, 응.”
타라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다.
“이번엔 네 덕분에 살았어. 정말 고마워. 네가 아니었으면 난 벌써…….”
“타라.”
다이무스가 말한다. 창밖에 벚나무의 가지가 보인다. 흩날리는 꽃잎을 보면서 시름없이 하루를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지금 벚나무는 꽃이 모두 졌지만 여름을 앞두고 녹음이 우거졌다. 요즘 햇빛이 꽤 뜨거워졌지, 다이무스는 생각한다. 뜨거움과 여름, 격정, 불꽃. 항상 냉정하고 침착한 그의 삶과는 한 걸음 떨어진 것들이다. 하지만 이렇게 지켜보니 좋군.
“무사에게 이런 감정은 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임무 수행에 지장을 줄 거라고 믿었다.”
다이무스가 말한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참철도를 쓴 것은 체력이나 정신력이 아니었다.”
그는 침을 삼킨다. 잠깐의 침묵을 두고, 타라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본다.
“너를 지키고 싶다는 생각이.”
놀란 그녀의 눈빛이 두렵다. 하지만,
“태도를 휘두르게 했다. 조노비치, 나는 널…….”
자신의 방에 다녀온 자네트는 복도를 지나다가 다이무스의 병실 앞에 우르르 쪼그려 앉은 이사와 창기사들을 발견한다. 유리창에 눈을 간신히 갖다 붙인 그들의 꼴이 민망하다.
“뭐하시는 겁니까.”
“너도 같이 볼래?”
드렉슬러가 권한다. 됐습니다, 자네트가 기겁한다.
“아름답지 못하군요.”
“나도 볼 거야!”
마를렌이 폴짝 뛰어오른다. 하지만 그녀의 눈높이는 여전히 창문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녀는 몇 번 점프를 반복하다가 ‘작은 것’을 만들었다. 그녀가 올라탄 미니 머큐리글로브를 드렉슬러가 창으로 찔러 터뜨린다.
“너 보면 운다.”
-5-
“이번 임무는 혹한의 땅에 안타리우스 세력이 재결합하는 장소를 확인하는 겁니다. 조노비치양은 그 땅에 트라우마가 있으니 빼주고 싶었지만, 남는 인력이 없군요. 다이무스 씨와 함께 가주실 수 있겠습니까.”
윌라드가 서류파일을 내밀며 말한다.
“물론이죠.”
타라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그 땅에 트라우마 같은 건 없어요.”
이틀 후 출발하는 아침부터 타라는 지각을 했다. 준비를 마치고 먼저 나와서 기다리던 다이무스가 뒤늦게 도착한 그녀를 발견한다.
“늦었다. 타라.”
“미안해, 잠깐만.”
타라는 가방에서 뭔가를 꺼낸다. 그녀의 머리카락처럼 새빨간 목도리가 다이무스의 목덜미에 감긴다. 거긴 추우니까, 타라가 빙긋 웃는다. 다이무스의 당황한 표정. 헬리오스 2별관 앞에서 로라스가 휘파람을 분다. 드렉슬러가 외친다.
“그거 지난겨울에 타라가 직접 뜬 거야!”
“좋겠다!”
“조용히 해!”
타라가 소리친다. 그녀는 민망한 표정으로 다이무스를 힐끔 살핀다. 그는 몹시 당혹스러워 보인다. 입모양이 ‘고’를 만들고 있지만 고맙다는 말은 튀어나오지 않는다. 그는 잠깐 망설이다가 말한다.
“그, 나, …나대지 마라.”
창기사들이 우우, 빈정거린다. 저런 바보, 멍청이, 이제 얼마 못가서 헤어진다, 타라가 아깝다. 다이무스는 칼을 뽑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타라가 깔깔 웃는다. 그녀가 다이무스의 손을 잡아끈다.
“늦었잖아? 어서 가야지.”
다이무스는 고갤 끄덕이며 그녀에게 이끌려 움직인다. 한여름에 목도리 선물이라니. 우습지만 혹한의 땅에선 꼭 필요하겠지. 다이무스는 땀이 날 것 같지만 목도리를 풀지 않는다. 슬며시 미소 짓는다.
“임무를 시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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