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대 인근 대학동 고시촌에서 하숙을 하는 20대 후반 청년이다. 이곳에는 고시생, 서울대생, 회사원, 나 같은 취업 준비생 등이 많이 산다. 우리 하숙집은 주말에 밥을 주지 않는다. 이런 날 나는 주로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때운다. 단골 메뉴는 GS25에서 파는 '혜자 도시락'이다. 혜자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데우는 2분 남짓은 미묘한 시간이다. 이것저것 쓸데없는 잡생각을 하다 보면 순식간에 지나가지만, 아무 생각이 없을 때는 평소에 덧없이 흘려보내던 '시간'의 존재가 문득 떠올라 불안함이 느껴진다. 2분은 짧지만 시간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적막 속에서 내 마음은 잔잔한 호수와 같다.
그 호수를 들여다보면 피자스쿨에서 고구마 피자를 사 먹고 싶은데 몇천 원을 아끼려고 전자레인지에 혜자 도시락을 돌리는 내 초라한 모습이 떠오른다. 아직도 어느 한 군데 둥지를 못 튼 무기력한 청년이 서 있다. 그렇다고 고작 고구마 피자 때문에 우는 건 꼴불견이다. 눈물은 마음속으로 삼킨다. 삼킨 눈물이 잔잔했던 호수에 떨어져 물결이 퍼져가는 것만 같다. 혜자 도시락을 들고 언덕을 타박타박 올라오다 보면 우울함의 물결은 더욱 요동친다. 마치 나 자신이 세상 쓸모없는 '잉여인간'인 것처럼 자괴감도 든다. 서른 살이 가까워질수록 빈번해지는 이 청승맞는 경험들로 인해 부쩍 '문송함(문과라서 죄송함)'을 느낀다. 하지만 혜자 도시락은 죄가 없다. 혜자 도시락은 그저 가성비 좋은 간편식일 뿐이니까."
편의점 감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