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처음 글 올렸을 때는
'반응이 없네? 역시 예상대로 노잼이었군'
이라고 생각이 들어, 그냥 있었는데
오늘 다시 들어와보니 무려 베스트에 올라갔더군요(감동).
그래서 용기를 내어 나머지 얘기들도 올려 봅니다.
오늘은 이직할 회사의 사장님과 면담하고 오는 길이라 공손하게 쓸게요.
4. 취사장 귀신.
군부대에 한정된 얘기는 아니지만 보통 '음기가 강하다' 고 느껴지는 자리가 있습니다.
괜히 그 곳만 가면 서늘하고 으스스한 느낌이 드는 장소, 혹시 경험들 있으신지요.
저희 부대에서는 취사장이 그런 곳이었습니다.
실제로 한 여름에도 취사장에는 선풍기 정도만 틀어도 더위를 거의 느끼지 못 할 정도였어요.(사실 이건 꿀)
하지만 부대 자체가 워낙에 노후한 시설들이어서 취사장 건물도 야간에 잠궈놓고 불도 다 꺼 놓으면 으스스한 모습이 연출되곤 했습니다.
그 근처에는 경계등도 없었거든요...
대충 부대의 구조를 표현해 보면
대충 이런 느낌이었어요.
야간 근무에 투입을 할 때면 막사 앞에서 탄약을 보급받고 갈색으로 표시되어 있는 길을 따라 위병소까지 내려갑니다.
넓은 부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막사에서 위병소까지는 보통 걸음으로 가면 3분 내외면 도착하죠.
사건이 발생했던 때는 제가 상병 2개월 정도 됐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군번이 매우매우매우매우매우 꼬인 케이스라서... 이 때도 소대 막내(사실 이게 공포 포인트)
여서 근무 때도 사수나 조장이 아닌 부사수로 들어갔는데요.
같이 근무에 투입하던 선임이 평소에 귀신을 자주 본다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약간 허언증이 있는 느낌이라서 지금도 그 말을 완전 믿지는 않습니다만... 여하튼)
그 날 야간근무 투입을 하다가 취사장 근처에서 이 선임이 멈칫 하더군요.
"야, 야 오늘 뭔가 이상하다. 나올 것 같은데?"
"뭐가 말입니까? 화장실 급하십니까? 위병소 조장실에 화장실 있지 말입니다"
"아 qudtls아, 귀신나올 것 같다고!"
"에이 무슨 귀신입니까? 추운데 얼른 가시지 말입니다"
이런 식으로 대충 넘기고 안보관을 지나는데 같이 가던 선임이 "야야 빨리 가자" 하더니 빠르게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안보관과 위병소 사이에서 다시 멈칫 하더니 뒤를 돌아보더군요.
그러더니 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기 시작하는데, 저를 툭툭 치더니
"야, 아까 우리 내려올 때, 안보관 불 켜져있드나?"
"꺼져 있었지 말입니다. 그거 켜져있으면 상근들 개털리지 말입니다"
"근데 저기 왜 불 켜져있냐?"
돌아봤더니 선임 말대로 안보관에 불이 켜져 있더군요.
"어? 이상하네? 제가 가서 끄고 오겠습니다"
하고 걸음을 옮기는데, 선임이 저를 잡고는 못 가게 말렸습니다.
"야야 가지마 미친놈아, 저기 있다니까!"
선임 얼굴을 봤더니 정말 사색이 되어서 출근하는 엄마 옷가지 붙잡는 애기마냥 잡고 늘어지는데,
아무리 그래도 근무투입중에 그런 걸 보면 조치하게 되어 있고, 나중에 탈탈 털리는(재차 말하지만 상병이었지만 군번이 꼬인 관계로 짬찌 ㅠㅠ)이유로
어거지로 안보관으로 갔습니다.
그 선임은 자기는 못 가겠다며 저만 다녀 오라더군요.
안보관 쪽문을 열고, 세 걸음인가 옮겼는데, 탁! 하는 소리가 나면서 갑자기 불이 꺼지더군요.
이 탁 소리가 뭐냐면 요즘 전등 스위치 말고 약간 오래된 전등 스위치 모양 아시는 분 있나 모르겠습니다.
좌우로 누르는 버튼이 아니라 검정색으로 된 위아래로 조작하는 스위치 있잖아요.
끝까지 누르지 않아도 살짝만 힘을 주면 용수철 때문에 탁 하는 소리를 내면서 내려가는 그거.
그 소리였습니다.
분명 저기 앞에 스위치가 보였었는데 거긴 아무도 없었는데 말이죠.
이상하다 생각만 하고 다시 발걸음을 돌려 안보관에서 나가려고 하는데
탁! 탁! 소리가 연속으로 들리면서 불이 빠르게 켜졌다 꺼지더군요.
갑자기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습니다.
밖에 있는 선임은 멀찍이서 다급한 목소리로
"야 빨리 튀어나와 빨리!"
하며 보채고 저도 섬찟한 느낌이 들어 잰걸음으로 안보관에서 튀어나갔습니다.
선임이 있는 곳 까지 가자, 선임이
"네가 불 껐다켰다 했냐?"
라고 물었습니다.
"아닙니다. 가니까 혼자 막 꺼졌다켜졌다 했지 말입니다. 아무래도 배전이나 차단기 쪽에 문제 있는거 아니지 싶습니다"
라고 대답하고 위병소까지 가서 전번 근무자와 교대했습니다.
근무 투입을 하고 나서도 선임은 조장실 안에 틀어박혀(여긴 라지에이터가 있어도 한겨울에도 있을만 했죠)
벌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저도 벌벌벌 떨었고요. 물론 전 밖에 있어서 추웠...
근무 중에는 딱히 별 일은 없었습니다만, 사수가 워낙 겁에 질려 있어 말도 없고 해서 혼자 엄청 지루했었네요.
여차저차 해서 시간이 지나고, 후번 근무자가 내려왔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별 일 없었냐?"
"무슨 일 말입니까?"
선임이 후번근무자에게 물었는데, 후번 근무자는 별 일 없이 내려온 모양이었습니다.
어쨌든 인수인계 하고 막사쪽으로 복귀하는데, 안보관 근처에서부터는 선임이 숨도 안 쉬고 잰 걸음으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속도 맞춰서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취사장 앞까지 갔을 때
취사장 안에서 갑자기 커다랗게 라디오 소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볼륨을 끝까지 키운 것 같은 소리가 들리더니 이어서
'와장창창'
하더니 마치 테이블 위에 쌓아놓은 식판이 한번에 바닥으로 쏟아진 것 같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정말 시각적인 것 보다 청각적인 요소가 공포심을 자극하는데는 최고인 듯 싶습니다.
안보관에서는 그냥 소름만 끼치고 말았었는데 여기서는 선임도 저도 튀어나오는 비명을 반쯤 삼키면서 동시에 미친듯이 막사까지 달려갔습니다.
막사 앞에서 탄약수거를 위해 대기하고 있는 당직부관이 저희를 보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너네 미쳤냐?" 라고 물었습니다.
"유, 유뱀. 지금 취사병들 다 자고있습니까?"
"그럼 다 자고 있지, 지금 시간이 몇시인데... 왜?"
"취사장에서 라디오소리랑 뭐 엎어지는 소리 못들으셨습니까?"
"아니? 안들렸는데?"
총기를 거치하고 불침번을 시켜 확인해 보니, 취사병들은 다 자고 있었고, 현재 깨어 있는 인원은 상황병 1, 당직부관 1, 당직사관 1, 탄약고 근무자2, 위병소 근무자 4(전후번 포함)명을 제외하고는 이상이 없었습니다.
다음 날 들은 얘기인데, 당직부관이 직접 취사장에 가서 확인했는데 라디오도 꺼져 있었고 식판이나 조리도구도 전부 제 자리에 놓여있었다고 합니다.
그 뒤로 취사장에서 별 일은 없었지만 전역하던 때 까지 취사장만 가면 그 당시 사건이 자꾸 생각나 찝찝해 하던 기분이 들었습니다.
얘기가 하나 더 있긴 한데, 위의 얘기를 적다 보니 진이 빠지네요 ㅠㅠ
남은 얘기는 다음에 다시 적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