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길 탈출하겠다고"
....
한편의 영화의 줄거리를 듣는 듯 했다.
왜 전쟁영화나 독재정권 당시를 그려낸 영화나 다큐, 드라마를 보면
이런 비슷한류의 전개의 이야기들이 꽤 있지 않은가.
어쩌면 그 괴담글 작성자라는 사람이 이런 것들을 많이봐서
짜집기를 해 있었던 것 처럼 지어내서 글을 썼을지도 몰랐을거란
생각도 났다.
"허, 그거 내용 참 무슨 신비한 TV서프라이즈에나 나올법한 전개네요"
"흥미진진하지? 근데 앞으로가 더 흥미진진해 계속 들어봐"
너무 흔한전개면서도 당시엔 흔히 있을법한 일이라서 나는 조금씩 혼동이 왔다.
이게 사실일까...?아니 장난일까...?하긴 성진이형이 그 진실을 알 턱이 없다.
"나도, 그니까 괴담작성자의 아버지도 어느정도 깡다구가 있었거든.
자신이 이렇게 부당하게 끌려와 노역을 하고있다는것에 항상 울분에 차있기도 했고 말이야.
그렇게 우리 둘은 4월 10일날 밤 탈출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지.
탈출은 성공적이었어. 평소 항상 노역자들의 행동을 교대근무로 24시간 감시하던
녀석들의 패턴을 철저히 조사했거든.
녀석들은 홀수날과 짝수날을 나누어 일정한 조를 이루는데, 짝수날 밤에 야간보초를 서는
놈들이 좀 어리버리 했거든. 잠도많아서 보조경계서다가 꾸벅꾸벅 조는놈도 많았고 말이야."
"경비가 허술할때 도주했군"
"그래 맞아. 근데, 사실 한 녀석에게 발각이 되긴 했었어. 근데 그 군인이 친구녀석의
어릴적 친했던 동네 동생이었던거야. 참 운명이란게 기구하지 그치? 자신은 군인신분이라서
평소에도 그 친구녀석을 어찌하지도 못하고 지켜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던거야.
사실 언제 경비가 허술해지는지 자세한 내용을 알려준 것도 이 동생이라는 녀석이었지
그리고 탈출할때도 망을 봐주는 역할을 했었던거야."
참, 가면갈수록 드라마틱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납득도 했다. 제주도라는 땅이 워낙 좁아서
서로가 서로를 외면하고 살아가는 지금의 시대에도 제주도에서만큼은 한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일만큼 인맥네트워크가 좁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주도에서는 행실을 잘 해야한다. 한번 안좋은 소문이 돌게되면 그 소문이
돌고돌아 금방 지역전역으로 퍼져버리기 쉽상이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이렇게 단기간에 치고 올라온것도 인맥덕을 많이 본 케이스니 부정할 수가 없다.
"그렇게 야반도주에 성공한 우리는 일부러 포장되지 않은 도로를 따라 달렸어. 군인들이 추적하기 쉽지 않게 말이야.
그녀석이 살던곳과 내가살던곳이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거든. 우리 옆옆마을 녀석이었던거지.
그 위치가 지금의 이 신제주야. 노형동 쪽 말이지."
나는 내가 살고있는 동네가 언급되자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되어버렸다.
516도로에서 노형동까지 걸어서 오다니...현대에 살고있는 나로서는 잘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긴 옛 사람들은 지방에서 상경할떄도 걸어서 서울까지 가곤했으니..
"그렇게 한 이틀밤날을 내리 도망쳤나, 수풀너머로 불빛이 보이더군.
그 불빛을 보자마자 녀석이든 나든 할것없이 그자리에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어."
"그렇게 도착한 그 마을은 내가 살던곳이었어. 난 친구녀석을 데리고 바로 내 집으로 달려갔지.
노환에 자식이 사라졌는지도, 그리고 다시 돌아왔는지도 모르고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벽만을 바라보며
누워있었어. 아마 내가 강제로 끌려갔다 왔다는 사실조차도 기억을 못할거야.
사실 난 아버지가 돌아가셨을거라 생각했거든. 그런데 다행히도 남은 마을사람들이 노역장에
끌려간 나를 대신해 돌아가며 아버지를 보살폈었던거지."
"나야 뭐 그 노역장에서 빠져나왔단 것 자체만으로 기뻤지만 그 녀석은 나처럼 마냥 기뻐할 수 만은 없었어.
빨리 자신의 가족들이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가 너무나도 궁금했었거든.
하지만 마을에 도착한 날 우리는 이틀간의 강행군으로 인해 온몸이 만신창이여서 잠을 먼저 자고
동이 트기 전 새벽에 다시 이동을 하기로 했지."
"아니 그러다 추적해온 군인들에게 발각이라도 되면 어쩔려구요?"
"그때는 둘 다 그런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어. 사실 마을불빛을 보자마자 둘다 온 몸에 힘이 풀려버렸거든.
그간의 고된 노동과 이틀간의 강행군 때문에 말이야. 사실 둘 다 내심 그냥 이대로 영원히 푹 잠들어 버렸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었을지도 몰라."
"형 근데 마치 형이 근처에서 지켜본것처럼 엄청 감정이입해서 얘기하시네요"
난 형의 그 놀라운 감정이입 연기에 놀라고 있었다.
"그랬나? 내가 원래 이런 얘기같은거하면 엄청 맛깔나게 잘 해. 너도알지? 형이 입담하난 끝내주는거.
형이 술자리에서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한게 한두번이냐? 여자애들이 내가 입만 열었다하면
홀려들어가는거 너도 여러번 봤잖냐"
하긴 형의 화법은 굉장했다. 듣는이로 하여금 그 이야기가 마치 생생하게 눈 앞에 펼쳐지는 것 처럼
흥미진진 했기 때문이다. 특유의 전라도 사투리가 조금씩 섞여있어서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얘기 계속해줘요"
"우리는 새벽동이 트기 전, 녀석의 마을로 이동하기위해 채비를 갖췄어.
사실 우리 옆옆마을이라 걸어서 한두시간이면 도착하는 곳이었거든.
나는 그사이 든 우정도 우정이었지만 그 녀석의 그렇게나 애지중지하는 마누라와 자식들이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해서 같이 발걸음을 했어. 그 당시에 지금처럼 재밌는 놀거리나 흥미거리가
뭐가있었겠어. 이런거 하나하나가 그떈 삶의 즐거움이었으니까."
"약 한시간쯤 더 걸어가니, 친구녀석의 마을이 보이더군. 아직도 기억나. 그 마을이름은
'월랑마을'이었어. 달이 밝은 마을이란 뜻인데, 그 마을에선 유독 달이 밝게 보였거든.
친구는 불빛을 보자마자 오랫동안 유지했던 평정심을 잃고는 무작정 마을로 달려가기 시작했어.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르던지 내가 따라잡으려고 같이 전력질주를하다 지나친 가지에 옆구리가
찢길 정도였으니까 말이야.
그렇게 또 이분여를 달리니 그 녀석이 학생들을 가르치던 학당을 지나 그녀석의 집 대문앞에
도착했지. 친구는 덜덜덜 떨리는 손으로 대문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문을 열었지.
그렇게 미친듯이 전력질주로 집으로 달려가고서는 막상 집앞에선 도둑놈 몰래 대문열고 들어가듯
그리 조심조심 들어가더란 말이지.
녀석은 아마도 헐레벌떡 뛰어들어가고 싶었겠지만, 그 와중에도 자신의 아이들과 아내가 혹여
이른아침부터 깰까봐 신경을 썼었던 것 같아."
"대단한 사람인데요. 그 와중에도 그런 세심한 것 까지 신경쓰다니...그래서요?"
"조심스레 대문이 열리고 난 후의 그의 얼굴은 아직도 나는 잊지못해.
그의 환희에 찬 눈은 삽시간에 썩은 동태눈깔마냥 흐리멍텅해지기 시작했어.
하지만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을거야."
"왜..."
"대문앞 마룻바닥엔 그 녀석보다 열배는 더 탁해보이는 초점없는 눈을 한
머리가 헝클어지고 군데군데가 멍투성이인 한 여인이 허공을 응시하며 앉아있었거든..."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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