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듣고 계세요? 저는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수척해보이기 때문에, 그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의사는 그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 보이네요. 병웅씨."
의사는 짧게 대답하며 차트의 이곳 저곳을 살피고 있었다. 의사는 악필이라는 얘기처럼, 아무렇게나 휘갈겨 놓은 듯한 영문 약자들이 널려 있어서 도무지 뜻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Insomnia. 뭐 이렇게 또렷하게 적어주면 안되는 걸까? 차트에는 BWF-7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마도 BW는 내 이름이겠지. F-7은 뭔지 짐작도 안 가네.'
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때였다.
"그럼 예전처럼 졸피뎀을 처방해 드릴게요. 다섯알이고, 일단 반알씩 쪼개서 드시고 그래도 안되면 한 알을 전부..."
환자는 미치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탁자를 내려치며 말했다.
"이미, 먹어봤어요!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고요!"
의사는 잠깐 놀란 듯한 눈을 하더니, 이내 평정을 되찾고는 대답했다.
"좋습니다. 다시 한번 증상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그는 숨을 고르고는,
"죄송해요. 잠이, 들려고, 하면 자꾸 이상한 소리가, 들려요. 다른 사람 귀에는, 안 들리는, 듯한데, 제, 귀에만 들려요. 그것도 평소에는, 안 들리다가, 잠자리에 누우면, 그것도, 잠이 들려고 하면 소리가 들리기 시작해요......'
그는 더듬듯이 말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무척 답답한 일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의사는 그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면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하고, 좀처럼 잠이, 오질 않아요. 책을 읽고 뭔가, 하기 시작하면 다시 잠이 오지만, 잠들려고 할 때마다 그 소리가 들려요. 선생님. 제발 살려주세요. 벌써 4주째 한숨도 잘 수가 없었다고요!!"
그는 마치 꿈을 꾸는 듯 말했고, 거의 애원하는 듯했다.
"어쩔 수가 없군요..선생님 같은 케이스는 저희도 처음이라서.."
의사는 고개를 돌려 키보드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처방전이 출력되어 나온다. 졸피뎀 IR정 다섯 알.
"아아악!! 씨발!!"
그는 평정을 잃고 처방전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기 시작했다.
"데리고 나가세요."
의사는 차갑게 말하며 안경을 매만졌다. 건장해 보이는 남자 간호사 하나가 들어와 그를 끌고 나가기 시작했고, 한 동안 욕설이 계속되었다. 의사는 한숨을 쉬고, 조용히 만년필을 집어들고 차트를 한 장 넘겼다.
BWF(Biochemical WarFare생화학전) - 7
W4(4주차)
: 지향성 스피커와 특정 주파수의 소리를 이용한 4주간의 실험에서, 이 주파수의 소리를 들으면 각성 수준이 올라가 피로가 극에 달한 상태에도 잠을 잘 수 없는 것으로 확인됨. 심지어 즉효성 수면 유도제를 먹어도 수면을 취할 수 없음.
높은 정도의 공격성을 보였으며 언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음.
생화학전 무기로 채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