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팀 선수의 선발은 전적으로 대표팀 감독의 권한입니다. 이는 감독의 축구 철학에 부합하는 선수를 기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부여된 아주 강력한 권한입니다.
히딩크감독은 이동국을 배제하고 무명의 박지성을 중용했고, 본프레레감독은 유망주에 불과했던 김진규를 주전 수비수로 발탁했습니다.
아드보카트감독은 대표팀 경력이 전무했던 이호를 월드컵에 데려갔고, 허정무감독은 끝까지 염기훈을 중용했습니다.
조광래감독은 풋내기 윤빛가람에게 태극마크를 내줬고, 최강희감독 역시 최후의 순간까지 이동국에 대한 신뢰를 져버리지 않았죠.
이렇듯 역대 대표팀 감독들은 항상 "논란의 선수 선발"을 해왔고, 그 누구 하나 여론의 비난과 질타에서 자유로운 분이 없었습니다.
이 중에는 박지성과 같이 성공적이었던 파격 선발이 있었던 반면, 염기훈 이동국 등 상당히 실망스러운 퍼포먼스를 보여준 선수들도 있었습니다
다만 이들 모두의 한 가지 공통점이라면, 그 어떠한 감독들도 자신이 선발한 선수들을 여론의 십자포화 앞에 노출시키는 일이 없었다는 겁니다.
외압이 있었다며 축구협회에 대해 날선 비판을 할 지언정, 자신이 뽑은 선수를 언론 앞에 등 떠민 감독은 그 누구도 없었습니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자신이 뽑은 선수이기에 감독은 그 선수의 선발의 리스크, 그리고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홍명보감독님은 비겁하시게도 자신의 선수선발에 대해 일말의 책임조차 지려 하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명분이야 그럴싸하죠.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선수가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을 경우 과감히 내치겠다. 언뜻 봐서는 참 남자다워 보입니다.
하지만 순서가 잘못되었습니다. 홍감독님이 기성용에 대한 면죄부를 원했다면, 최강희감독님에 대한 기성용선수의 사과는 대표팀 선수 선발 이전에 이미 선행되었어야 합니다.
이미 선수를 엔트리에 뽑아 놓고 선수의 등을 떠밀며 "너 사과 안하면 다시 돌려보낸다"며 협박하는 것은
선수 선발에 대한 정당화와 명분 부여를 기성용 선수와 최강희 감독님께 떠넘기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본인이 선택한 선수 선발의 명분 만들기를 감독 본인이 아닌 다른 이에게 떠넘기는 것 만큼 비겁한 게 또 있습니까?
홍감독님이 진정으로 기성용 선수가 최강희 감독님께 사과하고 기성용선수에 대한 여론의 반발을 무마시키기 바랬다면,
이러한 원칙을 대표팀 엔트리 발표 전에 기성용 선수에게 충분히 인지시키고, (가식이든 진심이든) 기성용선수가 미리 사과하도록 했어야 합니다.
이제 와서 대표팀 엔트리 다 발표해놓고 "사과 안하면 돌려보내겠다"라니, 홍명보감독님께 대표팀 엔트리 자리는 그렇게 가볍나요?
최강희감독님께서 사과를 거절한 마당에 기성용 선수를 돌려보낸다면, 그 빈자리는 바로 뽑을 수나 있습니까?
그 한자리를 바라보며 공을 차는 다른 수많은 선수들의 박탈감은 중요치 않다는 건가요?
홍감독님이 기성용을 진정으로 필요로 했다면, 차라리 남자답게 "언론 X까 나는 내 마음대로 뽑는다"는 자세로 기성용 선수를 선발했으면 그만입니다.
축구협회의 공식적인 징계도 받지 않을 선수를 대표팀 감독이 뽑아 쓰겠다는데 이를 저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차라리 "축구선수는 그라운드 위에서 말한다"는 태도로 여론을 무시하고 기성용 선수를 뽑아 그 선수가 새로운 대표팀에서 축구에 전념하게 했다면
지금과 같은 어마어마한 반발/비난 여론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기성용 선수가 지금처럼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차라리 그랬다면, 여론은 그래 저 XX가 얼마나 잘하는 지 보자는 쪽으로 흘러 갔을 것이고, 기성용 선수가 축구 외적인 곤란에 처하지도 않았을 거라는 겁니다.
지금 홍감독님의 대처로 인한 결과는 말 그대로 최악입니다.
최강희감독님은 묻어 두기로 했던 (이미 기성용의 뒷담화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힐 수 밖에 없게 되었고,
기성용선수는 최감독님의 사과 거부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데다가, 자신의 사과의 진정성을 보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조차 놓치게 되었습니다.
홍감독님 본인 또한 멀쩡히 소속팀에서 잘 뛰고 있는 선수를 선발해 놓고 부상도 아닌데 다시 돌려보내야 하는 초유의 사태를 피할 수 없게 되었구요.
이 모두가 선수 선발에 따른 리스크를 해당 선수와 제 3자에게 넘기려고 한 홍명보감독의 비겁한 행위의 결과물입니다.
홍감독님 참 비겁하십니다. 박주영이 군대를 안간다면 내가 대신 가겠다고 호언 장담하며 박주영을 보호했던 그 때의 기백은 어디가셨나요. 정말 실망입니다.
--
두서 없이 글이 좀 길어졌네요. 쓰잘데기 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