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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네(本音)와 민낯(素顔)
최근 한일 양국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졸속 협상 이후, 이곳 일본에서 한국인 목사인 나의 의견을 묻는 경우가 많아졌다. 솔직히 말해서 피하고 싶은 주제이다. 여러 명의 일본인에 둘러 싸여 제대로 된 답변을 못하기 십상이고, 작심을 하면 논쟁이 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친하게 지내는 목사님의 초대로 집근처 교회를 찾았다. 조만간 사임하실 예정이라 일부 교인들과 환송회를 가진 뒤, 60대의 남녀 교인과 대화를 나누고 계셨다. 한국인 목사가 와서 그런지, 60대 남성 교인은 갑자기 과거 일본 제국주의의 역사 문제를 화두로 꺼낸다. 대화가 이어지자 결국은 ‘위안부’ 문제까지 나온다.
60대 일본인 남녀 두 분은 “옳지! 잘 만났다!”는 표정으로, 흥분하며 만담하듯 주거니 받거니 떠든다. 그들은 위안부라는 말도 사용하지 않았다. 10여 분 동안 ‘매춘’(바이슌)이란 말을 40-50번은 들었다. 그들 대화의 요지는,
“전쟁이 나면 매춘을 안 할 수 없다.”
“전쟁이 나면 강간은 당연히 많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일본만 그런 게 아닌데, 왜 우리만 사죄하라고 문제를 삼는지 모르겠다”
“이번에 결정된 것처럼, 이젠 더 이상 이 문제가 언급되지 않으면 좋겠다”
수년 전, 유신의 모임(維新の会)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이 파문을 일으켰던 말들이, 최근 한일 협상 이후부터는, 일본 대중 사이에서 폭넓게 일반화 됨을 피부로 느낀다.(영애의 큰 공로이신가?) 60대 여성 교우는, 자신도 과거에 위안부 역사를 접하고 가슴이 아팠지만, 이제는 그만 듣고 싶다고 한다. 그동안 못내 지겨웠다는 '혼네'(本音, 속마음)의 노출...
듣고 있자니, 그들은 소위 ‘일본군 위안부’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모르는 듯 했다. (1) 경제 활동을 위해 돈을 받고 성을 매매하는 ‘매춘업’ 종사자로 인식하거나, (2) 패전국의 여성들이 통제불능 상태에서 적군에게 당하게 되는 개별적 ‘강간’ 행위를 ‘일본군 위안부’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간혹 ‘종군 위안부’라는 말도 사용하였고...
한참을 듣던 나는, 우선 ‘종군’(從軍)이라는 용어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종군기자’나 ‘종군신부’와 같은 ‘자발성’을 전제로 한 표현은 일본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그릇된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들이 수십 번 사용한 ‘매춘’이라는 단어로도 일반화시키기 어려운 면이 있음을 알려 줬다. 마지막으로 개인 범죄로서의 전시 ‘강간’과도 구별되는 것이 ‘일본군 위안부’임을 말해줬다.
그래도 그들은 내 말을 쉽게 긍정하려 들지 않는다. 이내 나는 60대 여성 교우에게 “000님의 따님이 그와 같은 일을 당해도 지금과 같이 말씀하실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전쟁이 나면 어쩔 수 없다. 2-3년 그런 일 겪었어도 살아남았으면 그것으로 감사해야 하지 않겠나? 남은 인생이 훨씬 긴데, 나는 저 한국인 할머니들처럼 평생 분노하며 헛되고 불행하게 살 바엔, 그 2-3년은 잊고 새 출발해서 행복하게 살라고 야단칠 것이다!”
여러 번 만난 적 있던 인상 좋은 여성 교우로부터의 뜻밖의 반응에 어안이 벙벙했다. 문득 한국의 ‘나라사랑어머니연합’의 아주매 모습들이 떠올랐다. 아... 이들은 전쟁이 나면, 또다시 ‘히노마루센수’(日ノ丸扇子, 일장기부채)를 만들며 자신의 아들과 딸을 전장으로 내몰 수도 있겠구나 싶어 섬뜩해졌다.
할 말을 잃은 내 앞에서, 두 사람은 더 의기양양해져서, 일본 오키나와에는 지금도 미군기지 옆에 집창촌이 있고, 미군들의 강간 사건이 많지만, 그런 문제들을 모두 저 한국인 위안부들처럼 난리쳐 가며 문제로 만들어야 하냐며 목청을 높인다. 결국 나는 이렇게 반론한다.
“두 분, 같이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일본은 왜 저토록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을 강조합니까?
그건 핵무기로 인해 희생당한 유일한 나라라는 피해의식 때문이지요?
인류가 다시는 그와 같은 희생을 당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 때문에 매년 8월이면 아침저녁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보여주지요? 그렇지요?”
“네... 그렇지요...”
“두 분께서 계속 ‘일본군 위안부’를 일반 매춘이나 강간 범죄와 같이 말씀하신다면, 저도 이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네? 어떻게 말하실 건데요?”
“일본은, 전쟁나면 당연히 발생하는 폭격가지고 왜 저리들 호들갑인가? 한국전쟁(조선전쟁) 때도 공습으로 수백만이 희생당했는데, 히로시마, 나가사키가 뭐 대단하다고 저렇게 전 세계를 상대로 선전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주장하겠습니다.”
두 분의 표정이 일순 굳어지고, 나는 말을 이어간다.
“원자폭탄도 따지고 보면 그냥 폭탄이지요... 도쿄대공습 때 15만이 죽었어요... 고베공습, 오사카공습하고 뭐가 다릅니까? 이라크 전쟁, 팔레스타인... 지금도 계속되는 다 똑같은 폭탄 투하인데... 히로시마 나가사키가 뭐가 그리 대단합니까?”
“에이.. 그건 아니지요... 다르지요...”
“네... 다르지요. 일본군 위안부가 그런 겁니다. 원폭이, 핵무기가 그냥 폭탄과 다른 인류사에서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일본군 위안부’도 그렇다는 겁니다. 스스로 먼저 문명화된, 근대화된 국가라고 자부하던 일본 정부와 군이, 영내에 강간시설을 설치해서, 매춘업과는 무관하던 식민지 여성들을 데려와 집단 성노예로 만들고, 그걸 조직적으로 관리하던 야만성을 직시하자는 겁니다. 그런 일이 인류사에서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고 법에 근거한 국가 차원의 공식적인 사후 조치를 요구하는 겁니다.”
그들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희생자들 가운데 조선인 강제 지용 노동자들이 10%(4만 명 희생)란 것도 모르고 있었고, 조선인들은 일본인 피폭자들과는 달리, 치료와 피해보상에서 철저히 배제돼 있었다는 사실도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히로시마 평화공원에는 조선인 희생자 위령비가 오랜 세월 세워지지 못해 바깥에서 설움을 겪었고, 나가사키의 조선인 위령비는 2016년 현재까지도 허가를 못 받아 세우지 못하고 있다. 불허 이유는 “강제노역”이란 표현이 비석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한국인도 이 사실을 모른다는 거다.)
함께 희생당한 조선인들을, 사후에도 이토록 차별하는 히로시마 나가사키라면 과연 전 세계를 향해 선전하고 읍소할 수 있겠느냐고 나는 반론했다. 그리고 방금 하신 말씀들을 고집하신다면, 나는 전시하에 다들 겪는 폭탄 좀 얻어맞았다고 저렇게 선전해 대며 피해자 코스프레하는 일본의 행태를 비난할 것이라고 했다. 내가 그러고 다니면 좋으시겠냐고 물으면서...
흥분해 있던 두 분은 침묵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대화는 끝이 났다.
아... 인류 가운데 일본이 처음으로 겪은 참혹한 히로시마나가사키의 원폭 경험을 통쾌해 하면서도, 그 안에 생명 말살의 비극과 우리 동포들의 억울한 아픔과 설움이 뿌리깊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눈귀 막힌 한국인들...
그리고 인류사 가운데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되는 '일본군 위안부'의 참혹한 경험을, 일상적 매춘과 전시하의 불가피한 강간 범죄로 등치시켜 퉁 쳐 보려는 비겁한 일본인들...
한일 양국민의 부끄러운 민낯(素顔)이다!
현해탄 위에서 한일을 높은 산맥을 바라보노라면,
높은 파고에 늘 멀미가 나 죽을 지경이다. (京都東幕)
출처 | https://www.facebook.com/yipyo.hong.5/posts/8202455514384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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