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렸을 적 그러니까 제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외할머니 댁은 아궁이에 불을 때서 닌방을 하는 옛집에 계셔서 가끔 할머니 댁에서 놀고는 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할머니랑 같이 아랫목에서 군밤을 따뜻하게 뎁혀 먹고 있었는데 할머니께서 저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우리 강아지 할미가 도깨비 애기 해줄까??"
"도깨비?? 그거 무서운 이야기야 할머니?"
"아니야 왜 할미가 우리 강아지 무서워하게 무사운 애기를 해 신기하고 재미있단다"
라고 하시며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할머니가 결혼하시기 전이니까 말씀으로는 마을 이장이 나라를 되찾았다고 뛰어다니던 그 해 겨울이라고 하신 걸로 봐선 45년 겨울일 겁니다.
어느 날 할머니의 부모님 즉 증조부와 증조모께서 싸우시기에 할머니께서 무슨 일인가 싶어 보니 집에서 사용하던 싸리 빗자루를 버리네 마네 하시며 싸우시더랍니다.
증조부께서는 싸리나무 몇 개 꺽어오면 더 사용할 수 있으니 버리지 말자는 쪽이셨고 증조모께서는 20년 넘게 사용했으니 도깨비가 무슨 장난을 할지 모르니 불태워 버려야 한다고 하셨다는데 증조부께서는 요즘 세상에 무슨 도깨비냐며 안 그래도 벌이가 시원치 않은데 하나라도 아껴야 한다고 강하게 나오셔서 문제의 싸리 빗자루는 그냥 쓰는 걸로 결론이 났습니다.
한동안은 별일 없이 어제가 오늘과 같은 나날이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함박눈 내리던 늦은 밤이었답니다. 부엌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소리에 잠에서 깬 할머니가 눈을 돌려 방을 살피니 증조모와 증조부께서 일어나 앉아 계셨답니다. 그래서 증조모를 부르려하자 잠에서 깬 걸 알아챈 증조모께서 할머니의 입을 서둘러 막으시고는 '조용히 하거라 큰소리랑 나면 큰일이니 조용하고 다시 자려므나' 라고 낮게 읎조렸다고 하셨는데 그 모습이 마치 올것이 왔다는 듯한 표정이었다고 합니다.
밤새 들리는 요란한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드셨던 힐머니는 늘 그렇듯 그 날 쓸 물을 길러가기 위해 부엌에 물동이를 가지러 가셨다가 엉망이 된 부엌에 깜짝 놀라 증조모님을 깨우자 증조모께서 하시는 말이 '내비둬라 밤새 도깨비가 놀다 갔으니 엉망일 게 뻔한데 오늘은 내가 알아서 할테니 넌 돈가지고 아버지랑 같이 돼지고기 사오거라' 하시기에 증조부와 함께 읍으로 나가 고기를 사오셨더랍니다.
그렇게 고기를 사오는 동안 증조모께서는 부엌을 정릴 하셨다는데 무쇠 가마솥 뚜겅은 차곡차곡 접혀 사각형이 되어 있어 도저히 어쩌지 못하고 계시더랍니다. (요즘 만들어 쓰는 가마솥은 그 때 쓰던 가마솥에 비해 두께도 얇고 가볍다고, 특히 뚜겅은 그 때 사용하던 것은 옮길려면 장정 4명이 붙어 낑낑댈 정도로 무거웠는데 그걸 부러뜨린 것도 아니고 고이고이 접어놨더랍니다.) 그 모습을 보단 증조부께서는 한상 푸짐하게 차려놓으면 도깨비가 먹고나서 다시 펴 놓을 거라고 이장님이 말씀하셨으니 음식이나 푸짐하게 하라고 하셨답니다. 그래서 증조모께서는 이웃집 아궁이를 빌려 잔칫상을 하나 크게 마련하여 부엌에 갔다놓고는 집 뒤뜰에 있던 술 한 양동이를 독째로 부엌에 가져다 놓으셨답니다.
그 후 간단히 저녁을 드시고는 방문과 부뚜막 문을 꼭 걸어잠그고 잠이 들었는데 아침이 되어 부엌을 가보니 차려 놓은 많은 음식은 모두 비워져 있었고 술독 안에 술은 한 방울도 남지 않은 채로 놓여져 있었고, 무쇠솥 뚜겅은 안제 그랬냐는 듯이 멀쩡하게 펴져 있었는데 접혀 있었던 거라고는 상상도 안 갈 정도로 흔적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날 증조부께서 싸리 빗자루를 불에 태워 그 재를 마을 냇가에 버리신 뒤에 그러한 일은 다시는 없었다고 합니다.
어렸을 적 할머니께서 하신 도깨비 이야기입니다. ㅎㅎㅎ
그 땐 참 재미게 들은 기억이 있어 여기다가도 올려봅니다.
다음엔 제 군생활 중에 겪은 일은 풀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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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이야기
1. 엄마 어릴 적..
엄마 어릴 적 살던 곳에는 처녀 귀신 같은 것보다는 도깨비가 많았답니다.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엄마도 밖에서 놀면 늦게까지 집에 들어올 생각을 안 하더랍니다.. 그 당시에는 도깨비가 하두 많으니.. 엄마의 어머니(저의 입장에서 외할머니, 이하 외할머니)는 늦게 들어오는 딸을 항상 걱정 반, 이놈의 기지배 들어와 봐라 그냥 확.. 하는 마음 반이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날도 변함없이 늦게까지 동내 친구들과 놀고있는데 멀리 보이는 민둥산에 어떤 희미한 불빛이 둥둥 떠다니더랍니다.
엄마는 속으로 '저게 뭐지' 하면서 친구들에게 '야, 다 일루와 봐라, 저기 좀 봐봐'라고 했고, 이 말을 들은 친구들은 저마다 엄마의 손 끝이 향하던 곳을 쳐다보게 되고 하나 둘 신기하게 그 불빛을 본 채 아무말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몇초? 몇분? 을 쳐다봤을까.. 그 불빛이 꺼지면서 사람 모양으로 변했는데.. 자세한 모습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못보고.. 아무튼. 그 모습을 본 엄마는 무서워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고.. 다른 친구들은 엄마처럼 무서워서 주저앉은 친구들도 있거나 소리를 지르면 집으로 도망가는 친구들도 있었죠..
엄마는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은 굴뚝 같았으나 다리는 말은 안 듣고.. 너무 무서워서 살려달라는 소리도 목에서 안 나오더랍니다..
엄마는 계속 그 도깨비를 쳐다보고 있었고 이제 어느정도 안정을 한 뒤 주저앉은 상태로 뒤로 기는듯 마는듯 갔답니다..
도깨비는 계속 주위를 두리번 두리번 거리더니 정말 무서운 속도로 엄마 쪽으로 오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때 마침.. 엄마를 좋아하던 어떤 오빠(엄마의 입장에서)가 엄마를 끄는 듯 업는 듯 하고 그 자리를 도망왔다고 합니다
엄마는 도깨비를 보고 며칠간 밥도 못먹으며 그 이후로는 밤 늦게까지 노는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근데 엄마가 목격한 도깨비는 우리가 동화나 tv에서 흔하게 보는 한 다리에 그 다리로 쿵쿵 거리며 뛰는 게 아니라.
마치, 원숭이가 땅에서 뛸 때의 모습처럼 몸을 들썩들썩이며 뛰었다고 합니다..
2. 산에서 만난 도깨비
이 이야기는 제가 인터넷 클럽에서 만난 나와 나이가 10살 차이나는 '형님'이 겪은 경험담입니다.
'산을 올라가는 것을 싫어하고 다시 내려올 걸 왜 올라가냐' 라고 생각하는 하는 사람이였다고 합니다..
그러다 형님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데 그 중에 산 타는 걸 좋아하는 산악인이 있었는데..
'너도 한 번 가 봐라.. 정말 괜찮다' 라고 권유를 하시고 그 형님은 '됐다~' 하면서 말싸움을 좀 벌이셨다고 합니다..
원래 그런 말싸움이 있었는데 이내 풀고 하지만.. 그 날은 둘다 좀 격해졌다고 합니다..
'이 자식아, 내가 산에 올라가기 싫다는데 니가 뭔 상관이고?'
'야, 이 자식아, 내가 나쁜거 시키냐?' 이런 식이였죠..
그러다 제가 아는 형님이 '아.. 드럽다 드러워, 그깟 산이 뭔데 그래! 그래 내가 내일 간다 가!' 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집으로 갔죠..
집으로 가는 도중에 너무 화가 나서 그깟 산이 뭔데!! 하면서 내일 가보자. 얼마나 대단한 거라고.. 라고 마음 속으로 되새김질하며 내일 간다!!하면서 집에 도착했대요..
그 때의 계절이 낮은 길어지고 밤은 짧아지는 봄이였죠..
평소 4시~5시 정도면은 손님이 뜸해서 일을 마치거나 하는데.. 그 날은 저녘 6시정도까지 손님이 왔다고 합니다..
한 번 한다면 하는 성격이라.. 밤에 산을 가면은 위험하다는 걸 모른 채 집에 가서 어제 준비해둔 가방을 가지고 산으로 향했대요..
산에 올라가 본 적이 없는 형님이였기에.. '이 껌껌한 산.. 올라간 길로 내려오면 되는 거 아냐. 뭐 별거 없구만' 했죠.. 하지만 그건 낮에나 가능한 법.. 저녁에는 그 산을 많이 올라간 사람을 제외하고는 이 길이 올라온 길인가.. 뭔가가 헷갈리는 길이 있죠..
암튼, 형님이 산을 올라가는데 이상하게 많이 올라온 거 같은데 표지판을 보면은 정상이랑 멀었대요..
그래서.. '아.. 이거 보기보다 쉽지 않구나..' 하면서 가는데.. 끝이 안 보이더랍니다.
그래서 그냥 포기하고 다음에 오자 라고 뒤를 돌았는데..
아니 웬걸.. 오던 길을 모르겠더랍니다.. 올라올 때는 한 길인줄 알았는데.. 갈래갈래 길이 찢어져서.. 자기가 어떤 길로 왔는데.. 또 어느 길로 가야하는지 모르는 그런 상황이 돼버린 거죠.
핸드폰을 꺼내서 카메라 기능으로 후레쉬를 키고 이리저리 움직여봐도 어느 길인지 모르겠고.. 해서 짐작으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한참을 내려간 거 같은데 아까 그 길로 다시 오고.. 다시 오고.. 다시 오고..
아.. 이거 뭐에 홀렸구나 생각하고 정신을 차릴려고 자기 볼을 계속 꼬집고 때리고 노래 부르고 소리 지르고 했대요..
한참을 내려갔을까.. 이제 밧데리도 거의 없고 할때.. 앞에 무슨 사람인가 뭔가가 돌 위에 앉아있더랍니다..
의자에 앉아있는 것처럼.. 그래서 그 형님은 '저 사람도 나처럼 길을 잃어버렸나' 하고 그 사람한테 다가가는데 뭔지 모를 공포감? 위압감? 같은 게 느껴졌대요..
그 때 형님은 산에서 밤에 사람 봐서 그런가 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가는데..
앉아있는 사람 형태의 무엇 (이하 도깨비) 이 형님이 다가오는 걸 느꼈는지.. 형님쪽을 쳐다봤다고 합니다..
'게 누구요..' 라고 도깨비가 말을 했는데 그 말소리가 무협지에서 나오는 사자후처럼 쩌렁쩌렁했다고 합니다..
이젠 체면이고 뭐고 다 필요없고.. 가뜩이나 무서운데 그런 큰 소리를 들으니 형님은 다리가 풀려서 앉은 다음에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리저리 말을 주고 받는 도중.. 형님이 무심코 도깨비의 엉덩이를 쳐다봤는데..
그 도깨비와 돌사이에 공간이 있다는 겁니다. .즉, 떠있었다는 거죠.
형님은 깜짝놀랬지만 잘못 행동하면 죽을 거 같다라고 생각했는지.. 침착했다고 합니다..
(말을 떨면서) 여기서 계속 말을 해봤자 밤이 더 깊어질텐데.. 전 이만 일어날께요..
라고 말하고 자리를 일어나서 빠른 걸음으로 내려왔대요. 막 쓰러질랑 말랑하면서..
그렇게 한참을 가는데.. 그 도깨비가 어딜 그렇게 빨리 가슈..? 하면서 머리가 형님의 얼굴 바로 옆에 있었다고 합니다.
깜짝 놀래서 뒤를 봤는데.,.. 몸은 저~기 아까 있던 곳에 있고.. 목만 쭉 내빼서 얼굴만 형님 옆에 있었죠..
(엄청 많이 걸어 온 거 같은데 50m 정도도 안 돼 보이는 거리.)
형님은 너무 놀래서 풀썩 주저앉았다고 합니다.
'어....어.....어.......' 이런 신음 소리만 내고 아무 생각도 없고 그 얼굴만 쳐다봤다는...
근데 그 도깨비가..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무섭지 않아요. 그저 이 깊은 산속에 말동무만 필요할 뿐이죠' 했죠..
근데 그 형님이 말동무라는 이야기를 자기를 죽인다는 걸로 알고.. (여전히 떨면서) '날.. 죽일건가요..!?' 했더니 그 도깨비가 껄껄껄 웃으면서 아니요.. 이야기나 나누자는 말 그대로 말동무죠..
라고 대답을 했대요..
어차피 도망도 못가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될대로 되라.. 라는 심정으로 '그..그래요..' 라고 대답을 하자 그 도깨비는 신나서 이런 저런 말을 했대요..
(근데 이상한 게 다른 모든 일을 기억하는데.. 그 도깨비가 하는 말은 잊어버렸다고 하네요.. 전혀 생각이 안 난다고.)
이상한 건 그 도깨비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자신의 눈에서 눈물이 많이 흐르고 있더래요..
그리고 손목시계를 보니 자정이 가까워졌다고 합니다..
형님 '저 이제 내려가봐야 할 거 같은데.. 어느 길로 가야 하죠..'
도깨비는 말을 안 하고 손으로 가르켜 줬다고 합니다.
가르켜 준 곳으로 오니 어느새 산 밑으로 다 내려왔다고 합니다..
다 내려와서 산을 쳐다보며 감사하다고 절을 하고 집에 도착해서 바로 잠이 들었는데..
꿈에서 그 도깨비의 형태는 안 나타났지만 목소리로 '일이 엄청 번창될 겁니다.. 껄껄껄' 이라는 말을 듣고 바로 잠에서 깼답니다..
그리고 정말 그 꿈에서처럼 장사가 잘 돼서 돈도 많이 벌고 지금은 그 일을 그만두고 세받아 먹고 살고 있다는...;;;
내가 생김새가 어떠냐고 물었더니..
일반 사람이랑 비슷하다고 했답니다.. 피부는 밤에 봐서 그런지 흑인처럼 보였고.. 이마에는 큰 혹 같은 게 있으며 눈동자는 노랗다고.... 손에는 목도(?) 같은 나무를 하나 들고 있고..
암튼.... 참 신기할 따름이죠..ㅎㅎ
원출처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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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안녕하세요 . 간만에 끝나가는 여름 새벽 두 시에 서늘한 밤공기와 귀뚜라미 소리들으며 무겔님들 글들을 읽자니, 소름도 돋지만서도, 저도 문득 들은 게 있어 글을 끄적여 봅니다. (글쓸 땐 실화로 쓰자! 주의라 최대한 귀동냥을 많이 하고 다닙니다. )
무속인이셨던, 저희 외할머니께서 생전에 이야기해주신 이야기 중에, 유독 시골에선 귀신보다 도깨비들 더 많이 만나고, 또 그런 일이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로 매우 비일비재 했다고 하시더군요.
어머니도 어렸을 적에 자주 이야기를 듣고, 또 보기시까지 하셨다니.... 그중에 제 기억에 있는 몇가지를 꺼내볼까 합니다.
그.... 가족사까지 자세히 이야기할 순 없지만, 외할머니께서는 하시고 계신 일 때문에 따로 사셨고(무속인이셨으니까요.)
어머니와 외할아버지(그러니까 엄니와 엄니 아버지), 두 분이 함께 사셨다네요.
그 때 당시, 어머니 집이 그 동네에서 손가락 몇개 꼽히는 부잣집이셨대요.
그런데, 외할아버지, 즉 어머니의 아버지께서 도깨비의 도움을 받아서 그렇게 됐다고 조심스럽게 추측하십니다.
그....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네요.
그 해 여름에 대가뭄이 들어서, 마을 사람들 논이란 논은 죄다 쩍쩍 갈라져서, 가을 추수 때 어떻게 하나 마을 사람들 모이면 그 소리하며 한숨만 푹푹 쉬셨다고 합니다.
외할아버지께서 밤길에 논길을 걸으시는데, 갑자기 어디서 말소리가 들리더랍니다.
- 이생... 이생... (그... 무슨 무슨 생원... 선비보고 생원 하잖습니까? 그 때가 50~60년)
근데 그 때 당시만 해도, 도깨비가 잘 나오고 해도, 웬만해선(도발이라던가, 쌍욕이라던가 하지 않는 이상) 해코지를 안 하니까, 침착하게 대답하셨다네요.
" 누구요? "
- 이생. 배고파서 그런데, 먹을것 좀 주. 배고프니까 먹을 것 좀 주
그러더랍니다.
" 내가 지금 가진 게 없는데, 뭘 주면 자시것소? "
- 나 혼자 먹을 게 아니니, 생콩을 삶아주시오.
하더랍니다.
그래서 그길로 집에 들어가자마자, 하인들 깨워서 콩으로 한됫박 삶아서 부랴부랴 다시 어두컴컴한 논길로 가셨다네요.
그리고 허공에다가, " 자, 여기 삶은 콩 가져왔으니, 주린 배부터 얼른 채우시구려. "
그랬더니, 그 캄캄한 논 한복판에, 모습은 보이지 않고, 무언가가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쉭쉭~~ 쉬리릭~~~
(표현의 한계입니다...ㅠㅠ 그 옷 스쳐간다는 소리랄까요?) 소리가 나면서, 바람이 이리저리 불더랍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사납게 불던 바람도 잠잠해지고 아무소리도 나지 않길래, 슬쩍 삶은 콩이 들어있던 됫박을 들어서 안을 들여다 봤는데, 정작 배고프다고 하더니만 콩이 그대로 있더랍니다.
뭐지? 뭐지? 하시면서, 그걸 들고 집에 다시 오셨는데, 하인들이 헉..헉.... 하더랍니다.
그래서 그 됫박을 들여다보니까, 아글쎄....
콩의 눈... 다들 아시죠?? 씨앗에서 발아해서 줄기 나오고 하는 그부분. 그 눈만 전부 없더랍니다.
그리고는 며칠 뒤에 또 밤에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오시는 외할아버지께, 어둠속에서 또 말을 건네더랍니다.
- 이생~~ 이생~~ 고마우이 고마우이
외할아버지께선 담에 또 배고프면 말씀하시게 하고선 가려던 찰나에, 도깨비가 말을 또 걸더랍니다. 근데 이번엔 한 목소리가 아니라, 여러 목소리가 시간차로 돌림노래 하듯이 말을 하더랍니다.
- 이생.. 논에 물 대줄까? 가뭄 때문에 힘들지? 이생~ 도와줄까?
외할아버지께선 속으로 허, 도깨비가 은혜도 갚는구나 싶어, 밑져야 본전이니 그러라 하셨답니다.
그리곤 도깨비가 논이 어디쯤이냐고 묻고, 저어기부터 저어기까지가 내 논이라고 알려주셨답니다.
그리곤 집으로 오셔서 주무셨는데, 아침에 논에 나가보니, 정말로 ......진짜로;;;;
외할아버지 논에만 어디서 물이 왔는지, 논에만 물이 가득 차 있더랍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말라서 시들기 직전이었던 벼들도 쌩쌩했구요. 옆논은 그대로 말라 비틀어져있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신기한 게, 그 다음 해도, 그 다음 해도, 외할어버지 논은 가뭄이던 풍년이던 간에, 외할아버지 논만은 항상 물이 차있고 풍년일 땐 쌀도 매우 우수해서 장에 내다놓으면 사람들이 두 배, 세 배로 사가곤 했답니다.
신기한 게, 외할아버지께선 그 일 이후로, 도깨비들을 자주 만나셨고, 그 일 이후엔 생활 담소도 나눌 정도로 도깨비들이랑 친해지셨다고 합니다.
새벽에 첫닭이 울기 직전에 마당에 뭐가 쿵~ 하고 소리가 나서 놀란 하인들이 깨서 나가 보면,
노루가 한 마리 던져져 있을 때도 있고, 가물치나 메기도 두 세 마리가 줄에 꿰여져 마당에서 퍼드덕거리고,
하여튼, 누가 그랬는지 몰라도, 그런 걸 가끔씩 마당에 누가 던지고 가더랍니다.
당연히, 도깨비들이었겠죠.
그러니 살림살이가 나아질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그 때 당시 제 어머니께선 국민학교나 중학교 다닐 시절이셨고, 도깨비들 만나러 가실 땐 항상 혼자서 나가셨다네요. 그리고 도깨비들이 사람 여럿 앞에 모습을 드러내길 싫어한답니다. 은원이 확실하고, 친구처럼 지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하시네요.
그리고, 번화가 좋아하고, 도시에도 바글바글한 귀신과는 달리, 도깨비는 인공적인 불빛이 적은 곳, 공기가 좋은 곳에만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즉, 가로수 길도 없는 도로도 없는 정말 한적한 산속 깊은 곳쯤? ......... 요새는 그런 곳이 과연 있을까 싶네요...
음.... 두서없이 썼지만, 일단 도깨비 이야기는 생각나는대로 또 올리겠습니다.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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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집에서 보낸 10년
내 나이 8살 때의 일이다.
그 당시 우리집은 암울하기 그지 없었다.
대대로 경영하던 포목상을 접고 조상님들 뵐 낯이 없다며 실의에 빠져 술로 날을 보내던 할아버지는 어느 날 주무시듯 돌연히 가버리셨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도 뒤를 따르듯 조용히 떠나셨다.
늘 나를 업어주고 안아주기만 하던 다정한 할머니의 죽음에 나는 울고 또 울었다.
돌아가시기 전날, 언제나처럼 나를 불러 무릎에 앉히고는 네가 이 집 장손이니 정신차리고 어머니 아버지 잘 도와드리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던 그 말이 유언이 될 줄이야.
아버지는 슬퍼하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장사를 그만두었으니 나와 2살 위의 누나, 그리고 또 동생을 가진 어머니를 어떻게 먹여살릴지 막막했다.
더구나 집을 팔아 포목상을 정리할 때 들었던 빚을 갚고 나면 곧 5식구가 될 가족이 갈 곳을 찾아야 했다.
그런 아버지에게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오랜 친구분이 찾아오셨다.
여기서 멀리 떨어진 곳이긴 하지만 값도 아주 싸고 좋은 집이 하나 있다는 것이다.
썩은 동앗줄이라도 부여잡고 싶었던 아버지는 두말없이 그 분을 따라나섰다.
현재의 서울 모처에 있는 그 곳은 그 당시 허허벌판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집은 꽤나 크고 깨끗했고, 가격이 헐값이나 거저없는 가격이었다.
아버지는 놓칠세라 재빨리 이 집을 샀다.
며칠 뒤 할아버지 친구분은 이사 준비를 시작한 우리집에서 술을 마시며 귀띔을 해주셨다.
사실 그 집은 도깨비 터에 지어진 도깨비 집이라는 것이다.
도깨비 집은 집주인이 잘하면 주인을 부자로 만들어주지만 주인이 제 분수를 모르고 헛되이 살면 주인의 가세를 기울게 해 주인을 내친다고 한다.
허나 아무리 선량하고 좋은 주인이라도 그 주인이 10년만 그 집에 머물 수 있고, 10년이 지나면 새 주인이 들어오게끔 주인을 내쫓는다나.
전 주인이 도깨비터라는 말을 듣고 그 땅을 사 거기에 집을 지었는데, 돈을 좀 만지게 되자 도박판을 전전하고 기생을 데려와 축첩을 하자 4년이 채 안 되어 집이 망하고 종손이 급사하여 그 집을 팔고 떠났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은 전 주인이 쫓겨난 것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그 말을 듣고 술김에 그저 웃기만 하셨단다.
노인의 부질없는 이야기로 흘려버리기엔, 한편으로는 새 집에서 그것을 시험해보고 싶으셨다고 했다.
새 집에 오고 나서 어머니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했다.
꿈 속에서 이상하게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키가 엄청나게 크고 덩치도 큰 사람이 다짜고짜 안채 문을 열고 들어왔단다.
그러더니 어머니한테, '맏며느리야, 이제 너희 집안이 실(絲)장사는 운이 다 했으니 먹는 장사를 해라. 사람이 헐벗어도 서럽지만 굶는 게 더 서럽지 않겠니' 하더니 갑자기 여닫는 사람도 없는데 온 집안 문짝이란 문짝들이 쾅 하고 일제히 닫히더라는 것이다.
그 쾅 소리에 깬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꿈 이야길 했더니 아버지가 '그렇잖아도 밥장사하자고 하려고 했더니만 잘 되려나 보다' 고 좋아하셨단다.
아직 밥장사를 제대로 시작할 여력이 안되어 어머니가 새벽마다 두부를 만들어 아버지가 내다팔았는데, 이상하게도 두부가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잘 만들어졌고 또 잘 팔렸다.
옛날에는 일일이 불을 때어 요즘처럼 화력이 일정치 않아 자칫 끓이다 거품이라도 잘못 생기면 두부가 잘 만들어지지 않고 쉬어버리는 일이 잦았다.
그런데 새 집에 와서는 콩을 불려 두부를 만들면 백발백중, 실수하거나 상하는 일이 없이 두부가 어찌나 잘 만들어지는지 아버지는 늘 남들보다 가장 이른 시간에 장에 나가셨고, 누구보다 빨리 두부를 몽땅 팔고 들어오셨다.
인근에 두부가 너무나 맛있다고 소문이 나서 우리집에 두부 만드는 법 좀 알려달라고 아주머니들이 찾아오기도 했다.
남다른 요령도 없다며 손사래를 치는 어머니의 환한 얼굴이 가장 많이 기억나는 나에 비해, 훗날 시집도 못 가고 20살에 손말명(처녀귀신. 뒤에 나오지만 누나가 일찍 돌아가셔) 이 된 누나는 부뚜막 위에 치마 속 고쟁이를 다 내어놓고 걸터앉아 눈만 마주치면 히쭉히쭉 웃는 얼굴인 붉은 아주머니가 제일 많이 기억이 난다고 하셨다.
아주머니인지 할머니인지 애매한 얼굴에, 부엌을 휘적휘적 돌아다니며 아무 것도 들지않은 빈 솥뚜껑이며 그릇들을 수시로 만지작 거리고 밥을 하거나 물을 끓이면 뜨겁지도 않은지 그 솥 뚜껑 위에 앉아서 벙싯벙싯 웃기만 했단다.
나는 나중에야 그 아주머니가 조왕신이겠느니 생각만 했다.
시간이 흘러 어머니 배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던 동생이 태어났다.
동생이 태어난 후 아버지는 두부장사는 접고 본격적으로 밥장사를 시작하셨다.
바깥채 건물을 트고 부뚜막을 하나 더 만든 뒤, 그 앞으로 담장을 치고 밥상을 여러 개 놓았다.
밀려드는 손님을 더 이상 어머니 혼자 힘으로는 감당을 할 수 없어, 일을 도와주는 아주머니들을 셋이나 썼는데도 그들은 해만 떨어지면 녹초가 되곤 했다.
늘 바쁜 어머니를 대신해 누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기 동생을 업었다. 그러고 집안 일을 돕기도 했지만 누나는 왕왕 동생을 업고 동네 밖을 돌다가 해가 떨어질 무렵 집에 돌아왔다.
어머니는 너무 멀리 나가지 말라고 늘 누나를 타일렀지만 누나는 막무가내였다.
하루는 아기 업은 누나를 학교 돌아오는 길에 만났다.
누나는 '너 집에 가기 무습지 않니?' 하고 조용히 물어보았다.
'항상 집이 시끌시끌한데 뭐가 무습느냐' 고 하자, 누나는 그 이상 말을 안 했다.
한참 후에나 들었지만 누나는 온 집안에 귀신이 드글드글하다고 했다.
항상 지붕 위에 사람 발바닥 손바닥이 보이는데 그 크기가 너무나 크고 사람 몸통은 보이지 않고 손발만 뵈고, 손님들 앞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봉두난발의 남녀들이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니는데 이들이 자세히 보면 손발이 없고 옷자락만 질질 끌면서 안 들어가는 곳이 없단다.
사람들 틈에 섞여서 낄낄대고 웃고 좋아하는데 그 소리가 나면 어김없이 손님이 떼로 더 들어온단다. 그것도 비슷한 무리들이 잔뜩 섞여서.
이들은 해가 지면 거의 대부분은 나가는데, 이들이 나가고 나면 수염을 배꼽까지 기르고 코가 시뻘건 영감이 대문 단속을 하고 마당 한가운데에 주저앉는단다.
이 영감이 나오면 낮에 들어왔던 것들이 열어달라고 대문을 두들기고 난리를 치는데 영감은 그럴 때마다 해뜰 때까지 기다리라며 호통을 고래고래 쳤단다. 호통을 칠 적마다 집이 울리고 문 밖의 것들이 비명을 지르는데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고 '바람이 심하게 분다' 며 그냥 잠자리에 든다는 것이다.
나는 누나가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했었다.
누나는 원체 나보다 몸이 약해 밥을 먹다 체하기도 잘했고 열이 나서 드러눕기도 잘했다.
지금 생각하면 누나가 남들보다 그렇게 일찍 가려고 그랬던 건지, 아니면 원래 그렇게 갈 운명이기에 도깨비집의 요사스런 것들을 전부 볼 수 있었는지..... 그 집을 일찌감치 떠났으면 누나가 시집도 가고 잘 살지 않았을까 하는 회한에 종종 잠기곤 한다.
시간이 흘러 나는 까까머리 고등학생이 되었다.
우리집은 그 옛날 이사갈 곳을 찾지못해 발을 동동 굴렀었다는 말을 누구든 거짓말이라 할만큼 부유해졌다.
어릴 적부터 잘 먹고 잘 자란 동생은 그 나이 때의 나보다 힘도 세고 키도 크고 덩치도 컸으며, 또래 아이들에 비해 가진 물건이 많아 늘 골목대장 노릇을 도맡아 했다.
그런 동생이 가끔 또래 아이들과 싸움을 하거나 때렸다고 다른 아이들 어머니가 집에 찾아오는 것, 그리고 하나뿐인 딸의 몸이 약한 것이 어머니의 걱정거리였다.
아버지는 내게 좋은 대학에 가도록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잔소리를 많이 하셨다. 고등학교를 가지 못했거나,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일을 해야하는 친구들이 더 많다는 걸 알면서도 아버지의 공부하라는 잔소리가 싫었다.
그런데 내 나이 열 일곱이 되던 섣달 그믐, 어머니는 10여년 만에 괴이한 꿈을 다시 꾸셨다.
이 집에 이사온 해의 꿈에 나온 그 괴물 같은 사람이 안채로 성큼성큼 들어와 '맏며느리야, 이제 보따리 싸거라. 1년이 남았어도 1년 안에 가야 한다. 멀리 가되 남산(서울의 남산이 맞다.) 을 꼭 넘어가야만 한다, 그래야 거지들이 따라오질 못해' 라고 했단다.
처음엔 온 집안 문을 다 닫아제끼더니 이젠 문을 다 열어제껴놔서 깨셨단다.
어머니는 모골이 송연해지셨다. 이제 이 좋은 운이 다한 것이로구나. 이렇게 잔뜩 받았으니 말을 듣지 않으면 사정없이 빼앗기리라.
그런 불안감에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집을 옮기자고 하셨다.
아버지는 달랐다. 1년이 남았지 않냐. 1년 안에 더 벌고 나가자는 것이다.
사실 아버지는 다시 포목점을 열고 싶어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내 대에서 끝을 낸 게 송구스러워 저승갈 낯이 없다.' 며 우셨던 게 가슴에 박히셨던 걸까, 밥장사를 그만두지 않아도 작게나마 포목점을 하고 싶다고 하셨다.
두 분은 이 문제로 싸우셨다.
하던 장사나 더 열심히 하자는 어머니와, 이제 하던 장사는 손이 덜 가니 포목점을 같이 하면 더 잘 되지 않겠냐는 아버지.
무어라 할 수 없는 마음에 나는 책상 앞에 돌부처처럼 앉아 책만 보았다.
그런 다툼이 이어지며 지리하게 1년이 가고 나는 열 여덟이 되었다.
이 집에 온지 정말 꼭 10년이 넘은 것이다.
아버지는 결국 고집대로 포목점을 냈다. 작게 낸다더니 생각보다 가게는 컸다. 장에서 제일 컸다는 옛날 그 가게를 재현하고 싶으셨을까.
어머니는 포목점에 발길도 하지 않고 원래 하던 장사에 몰두하셨다.
또 꿈을 꾸셨단다. 안채에 들어오지도 않고 귓가에 조곤조곤 속삭이더란다.
'때를 놓쳤으니, 알아서 해라. 이 집 덕 볼 생각 말아라. 장독의 장이며 곳간의 쌀들이 배 속에 들어가기도 전에 죄 똥으로 변할 거다.'
라는데 끝 말미에 낄낄대는 음성이 어찌나 소름끼치는지 일어나서는 식은 땀이 줄줄 흘렀다고 하셨다.
장사는 여전히 잘됐다. 그런데 누나는 그 때부터 자꾸 아프면서 더 무서워했다.
전에는 해가 지면 수염긴 영감이 낮에 들어오던 것들을 못 들어오게 막아줬는데 그 영감이 어디로 갔는지 이젠 대문을 잠그지도 막지도 않는단다.
그것들이 동이 틀 무렵까지 어찌나 온 집안에서 시끄럽게 난리를 치는지 잠을 잘 수가 없단다.
그리고 그것들이 들어올 때 웬 꺼뭇꺼뭇한 것들이 섞여 들어와서는 서까래를 물어뜯고 갉아먹는데 그런 다음 날에는 꼭 누가 다치거나 와야할 물건이 못 오거나 재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포목점이 장사도 잘 안 되는데 기껏 밥장사로 벌어놓은 돈이 그리로 자꾸 샌다며 짜증을 내셨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싸움이 일상적으로 변한지 반년, 가을로 들어서던 초입에 누나는 감기에 걸려 눕더니 일어나질 못했다.
급성 폐렴이라고 했다.
죽기 전까지 의식을 못 차린 누나는 유언조차 남기지 못했다.
어머니는 꿈자리가 사납더니 이렇게 하나 뿐인 딸을 데려갔다고 외할머니를 붙잡고 내내 우셨다.
꿈에서 푸른 저고리에 머리를 다 풀어헤친 여자 둘이 방에 누운 누나의 발목을 한 쪽씩 잡고 질질 끌고 대문 밖으로 나가면서 깔깔 웃었단다.
누나의 초상을 치르며 어머니는 딸 잡아먹고도 정신 못 차렸냐며 이사를 가자고 다시 아버지에게 말하셨다.
아버지는 누나의 초상과 집 이야기를 연관짓지 않으려 하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 없게 되었다. 포목점을 도와주던 직원이 돈과 돈될 만한 물건을 모조리 가지고 도망가버린 것이다.
그제서야 두 분의 싸움은 끝이 났다.
집도 옮기기로 했다. 그 무렵 막내가 늦은 홍역을 앓았다. 막내마저 잃을 수는 없다는 일념이 두 분의 마음을 이어준 것이다.
동생을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두 분은 장사를 정리하고 집을 구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셨다.
연말연시에 갈 곳이 없었던 우리는 옛날 이 집을 구하기 전처럼 여기저기 백방으로 뛰어서 다른 집을 구했다.
몇 달이 흘러 내 나이 열 아홉 봄에야 우린 그 집을 나왔다.
어머니의 장사는 이상하게 도깨비집에서 살 때만큼 되지 않았다.
그냥저냥 먹고사는 정도였지만 두 분이 이미 너무나 큰 성공을 해보셔서인지, 내내 서운해하셨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은근히 도깨비집을 그리워하셨다.
그 집에서 보낸 10년이 가장 금전적으로 승승장구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리라.
세월이 흐른 요즘 듣기로 도깨비 터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다르다. 사람이 사는 가택이 아니라 장사만 해야 한다는둥, 부적을 쓰고 굿을 해야 한다는둥, 터만큼 기가 센 사람이 거주해야한다는 둥.....
그러나 이제 지천명의 나이를 앞둔 내가 회상하기로는, 사람이나 귀신이나 정말로 공짜가 없다는 것만이 도깨비 터에 대한 인상이다.
도깨비의 운은 10년을 퍼주고 나면 더 이상 받을 수 없고, 그 집에 드나들던 수많은 귀신들은 부를 주는 대신 부모님의 마음을 얼크러뜨리고 누나의 목숨을 가져갔다.
사람은 그저 같은 사람들끼리 제 몫껏 사는 것이 최선이라는 나를 다른 사람들은 너무나 욕심이 없고 그릇이 작다고들 한다.
그러나 나는 누가 뭐래도 그 귀신 그릇의 밥을 먹고 싶지 않다.
원출처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