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2년 3월 5일 오후 7시
"오늘 잘 해야해 잭! 알았지?"
간호사인 수잔이 내 손을 꼭 쥐어준다. 걱정어린 그녀의 표정이 마치 엄마 같았다.
진짜 내 엄마보다도 더...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미리 숙지해 두었던 것들을 다시 한번 상기한다.
밝게 웃는 얼굴-마치 습관처럼 보이는 왼쪽눈의 윙크
아일랜드인 특유의 억양 - 말할때마다 습관처럼 빼쭉거리는 입술
모든것이 준비되었다고 생각한 순간 나는 문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은 꽤 컸지만 난 손쉽게 그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엄마! 아빠!"
웃으며 달려가 안기는 나를 떨떠름한 표정으로 받아주는 두 남녀
나의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밝은 내 표정을 보며 울듯 말듯 어쩔줄 몰라하는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의 얼굴은 다소 굳은 채 경직되어 있다.
사진으로도 보았고, 많은 설명을 통해 대략 어떤 성격이신지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공부한 그대로였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점잖은 옷을 입은 웨이트리스가 메뉴판과 함께 주문을 받는다. 이 부분도 미리 교육을 받았다.
나는 웃으며 메뉴판을 받아들었고, 아버지는 여전히 굳은 표정이었지만 조심히 내게 물었다.
"재... 잭... 얘...얘야... 넌 뭘 먹겠니?"
아직은 날 어색해하는 아버지를 보며, 난 웃으며 말했다.
"저는 늘 먹던 쉐퍼드 파이(다진고기로 스튜를 만든 후 감자를 으깨 덮은 아일리쉬 요리)로 주세요. 참! 전 콩 알러지가 있으니까 콩이 들어간다면 꼭 빼주시구요"
"오 세상에... 잭... 흑흑흑... 흑흑흑..."
내가 주문을 하자 엄마는 갑작스레 눈물을 쏟아냈다.
가족들이 함께하는 저녁식사... 엄마는 도대체 왜 울까?
"아네스 진정해 울지말라구, 잭이 보고 있잖아... 계속 이렇게 울면 어떻게 해"
아버지는 엄마를 진정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엄마는 그만큼 너무도 고통스럽게 울었고, 뻘쭘해진 나는 이젠 익숙해진 습관대로 테이블에 턱을 괸 채 다리를 떨었다.
그런 내 모습을 아버지가 흘깃 보시더니 말했다.
"재.. 잭... 나는 니가.. 니가.. 다리를 떨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아! 네 죄송해요 안할게요"
내가 아버지에게 잔소리를 들은것 때문일까? 엄마는 더욱 더 크게 울어댔다.
그리고 얼마나 울었을까? 주문했던 요리들이 나왔다.
스튜와 정어리를 곁들인 감자요리, 그리고 내가 주문한 쉐퍼드 파이였다.
엄마는 그즈음 겨우 진정이 되셨는지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어린 나였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거라곤 내 앞에 놓여진 쉐퍼드 파이를 맛있게 먹는 것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 스푼, 한 스푼, 나는 개의치 않고 먹었다.
엄마의 눈물이 나에게 전염되기라도 했던걸까? 나도 모르게 자꾸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순간 식당 밖 창문을 통해 나를 바라보고 있던 수잔과 눈이 마주치지 않았다면 난 아마 왈칵 눈물을 쏟았을지도 몰랐다.
난 이를 악물고 참아낸 뒤 방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 순간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던가?
왼쪽눈을 살짝 찡그리는 윙크도 먹는 순간에도 쉬지않고 빼쭉거리는 입술도 다 오늘을 위한 거였다.
그렇게 내가 쉐퍼드 파이를 다 먹을 동안에도 어머니는 음식엔 한 스푼도 대지 않고 나를 바라고 있었다.
마치 다시는 볼 수 없을 사람처럼...
그리곤 빼죽거리는 내 입을 보며 다시금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주머니 안엔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나게 되면 주려고 만들었던 작은 목각인형이 들어 있었다.
이건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내가 준비한 선물이었다.
"오늘 식사는 여기까지 하는게 좋겠습니다."
아버지는 자리에 일어나 어머니를 부축하며 말했다. 어머니는 혼자선 걸을수도 없을만큼 큰 슬픔에 빠져 울고 있었다.
나는 별다른 지시가 없었기에 그냥 그대로 자리에 앉아있었고, 두 분은 나를 놔둔 채 식당 밖으로 나갔다.
"오 잭... 무슨일인거니?"
어느샌가 식당안으로 뛰어들어온 수잔이 나를 안아주며 말했다.
"아니예요 아무일도... 다 좋았어요. 나쁜것은 없어요. 다만 나를 너무 사랑하셔서 그런가봐요. 나를..."
나는 내 대답이 제법 어른스러웠다고 생각했지만,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났다.
"돌아가자 잭"
수잔이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어느새 정이 들었는지 나를 보는 수잔의 눈동자도 촉촉히 젖어온다.
나는 그제서야 주머니속에서 흔들거리는 목각인형의 존재를 깨닫고 수잔에게 말했다.
"잠시만요... 이 인형 깜빡하고 못 드렸어요. 약간의 여유가 있다면 잠깐 가서 드리고 와도 될까요?"
"오 잭... 이 사랑스러운 아이 같으니라구... 그러려무나 내가 어떻게 그걸 반대하겠니...그리고..."
수잔이 말 끝을 흐렸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녀가 내게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네가 원한다면 오지 않아도 좋아. 난 널 잃어버릴꺼야"
그렇게 마지막 말을 마친 후 수잔은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리고는 돌아섰다.
많은 생각들이 머리속을 지나 심장을 울린다.
수잔 그녀는 내 어머니가 아니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가 내게 보여준 감정은 어머니의 그것처럼 숭고하게 느껴졌다.
난 손에 든 목각인형을 꼭 쥔 채 식당 문 앞을 향해 달려갔다. 문 앞에 서서 창 밖을 보니 다행히 어머니와 아버지는 멀리가지 않고 주차장 한켠에 서서 대화를 나누고 계셨다.
나는 닫힌 문을 살짝 열며 뒤돌아 선 수잔을 향해 외쳤다.
"이것만 전해드리고 돌아올꺼예요. 고마워요 수잔. 하지만 내가 없으면 엄마 아빠가 더 슬퍼하실 거예요. 그 분들이 행복하고, 내가... 잭이 행복할 수 있으면 난 그게 더 날 행복하게 할 것 같아요"
"오 잭..."
수잔이 오열하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는 그런 수잔을 뒤로하고 문 밖으로 달려나갔다. 주차장은 넓고, 아버지의 차는 먼 곳에 주차되어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내 두다리는 튼튼하고 내 심장은 너무도 건강했으니까...
난 달렸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내 첫번째 선물을 전해드리고 싶었으니까
"이제 선택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생명 윤리법에 의거 잭러셀a와 잭 러셀b중 부모로서 누구를 선택하시겠습니까?"
"빌어먹을!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거야!"
잭의 아버지 도슨이 큰소리로 고함쳤다.
"어쩔 수 없습니다. 저는 공무원이고, 국가의 생명윤리법에 의거해 선택권을 드릴뿐입니다. 법에 의거해 극중증 외상환자에 한해 유전자 조작 클론을 생성해 뇌이식수술을 받을 수 있으나 뇌이식 수술 후 피 이식자의 생존 확률이 20%미만인 관계로 부모는 수술을 시행할지 아니면 유전자 조작 클론을 새로운 가족으로 선택할지에 대해 선택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오늘의 접견도 그래서 이루어진거구요. 자 잭 러셀A입니까 잭러셀B입니까!"
"젠장"
"거듭 말씀드리지만 교통사고로 극중증 외상을 입고 식물인간이 된 아드님 잭 러셀A의 이식 수술 후 생존 확률은 20%미만입니다. 어제 오후에 보셨던 잭 러셀B는 대부분의 질환에 면역을 가지고 있으며 건강합니다. 기억은 가지지 못했지만 후천적 학습을 통해 잭 러셀A의 습관과 성향을 대부분 표출할 수 있습니다."
"닥쳐! 젠장! 물어보나 마나 한 이야기 아냐! 당연히 내 아들! 내 아들 잭을 선택할꺼야!"
"선택은 자유입니다. 믿으실지 모르지만 의외로 생존확률때문에 건강한 새 아들을 선택하시는 부모도 계십니다."
"미친 자식들! 난 어제 봤어 껍데기를... 그건 껍데기야! 내 아들이 아니었다구! 윙크를 하고 입을 빼쭉거리고, 마치 내 아들인양 다리를 떨어대도 난 알아! 왜? 난 잭의 아버지니까! 그건 그냥 그럴듯하게 내 아들을 닮은 껍데기이자 밀납인형에 지나지 않는다구! 빌어먹을! 왜 내가 살인자라도 된 것 같은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거야!"
도슨인 테이블에 얼굴을 파묻은 채 괴로워하자 내내 곁에 앉아 오열하던 그의 아내 아네스가 슬픈표정으로 물었다.
"그 아이는 꼭 죽어야 하나요? 네?"
"누군가가 살기 위해선 누군가는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해하시리라고 믿습니다."
남자는 지극히 사무적인 위로를 건넨 뒤 들고 있던 서류를 내밀어 사인을 받아낸다.
"죄책감 가지지 마십시오. 적절한 예시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자동차 부품과 같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차는 두댑니다. 새차를 타셔도 되고, 새차의 부품으로 정든 차를 고쳐서 타셔도 됩니다. 이에 대한 비난과 매도는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으니 걱정안하셔도 되구요"
"흑흑... 우리 잭은... 잭은 살 수 있을까요?"
"생존확률 20%는 낮다면 낮고 높다면 높은 확률입니다. 희망을 가지세요. 어땠든 당신들의 아이이니까요"
아네스의 볼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테이블 위에 떨어졌다.
2042년 3월 6일 오후 2시
잭 러셀A(8세) 기적적 의식회복으로 중환자실에서 재활병동으로 이관
잭 러셀B(2세) 사망 및 폐기처리 후 소각
매캐한 그을음 냄새와 알 수 없는 슬픔이 묻어나는 작은 소각로 앞에서 한 여자가 작은 목각 인형을 만지작 거리며 말했다.
"잭! 나야 수잔... 함께 했던 30분 43초 동안 누군가의 가족이었던 것 만으로도 만족한다던 넌 과연 그들에게 무엇이었을까?"
끝.
사실 우리의 발밑엔 너무도 많은 타인의 희생과 시체들이 그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