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4일 고 이남종 열사 노제의 기록입니다.
가장 처절하게 박근혜의 퇴진을 외쳤던 그.
기억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열사라는 단어가 입에 잘 붙지는 않지만, 달리 표현할 말이 없네요.
이분은 아무런 정당에도, 아무런 단체에도 속해 있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잘은 모릅니다만...
살아서 지금의 현실을 보셨다면 어땠을까요.
시국이 여기까지 온 것은 그때 그 사람들과, 이남종 열사와 같이 불의에 목숨을 내던진 사람들 덕도 클 것입니다.
마침 그를 기리는 다큐멘터리도 만들어지고 있다고 하네요. 그때 남기신 유서도 같이 올려 봅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부도 묻기 힘든 상황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총칼없이 이룬 자유 민주주의를 말하며 자유 민주주의를 전복한 쿠데타 정부입니다.
원칙을 지킨다는 박근혜 대통령은 그 원칙의 잣대를 왜 자신에게는 들이대지 않는 것입니다.
많은 국민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진 공권력의 대선개입은 고의든 미필적 고의든 개인적 일탈이든 책임져야 할 분은 박근혜 대통령입니다.
이상득, 최시중처럼 눈물 찔끔 흘리며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다던 그 양심이 박근혜 대통령의 원칙이 아니길 바랍니다.
여러분
보이지 않으나 체감하는 공포와 결핍을 제가 가져가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모든 두려움을 불태우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두려움은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일어나십시오.
2008년 광주에서 촛불집회하면서 처음 가입한 이곳입니다. 
저는 당시 대학생이었고 졸업핑계로 동지들을 저버렸습니다. 동지들이라고 해봐야 중학생, 고등학생, 공익요원, 회사원 등 아이러니하게 대학재학생은 저뿐이었던... 
그땐 그랬습니다. 접점이 하나도 없던 사람들이 그 정책에 반대하기 위해 모였었죠. 
결국 집회가 커지고 단체들이 주역이 되면서 뿔뿔히 흩어지고...그 뒤로 이어지는 강경진압, 광우뻥 낙인... 그 후로 하루하루 빚을 진 것 같고 첫 시위가 있던 5월만 되면 밖에 나가지도 못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저는 집회에 나가도 구호를 못 외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