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서의 일기 by 아카스](2015-5/12) - 위기
지진의 위험은 끝난 듯 하다.
여진의 소식도 들리지 않는다.
이제 지진의 피해가 남았다.
심각한 직접적 피해를 입은 '카투만두', '고르카', '랑탕' 등의 지역은 구호작업과 복구및 재건작업이 한창이고,
여타의 피해지역도 많은 뜻있는 사람들의 도움이 한창이다.
지진과 같은 원인으로 생긴 히말라야 산맥으로 인해 세계적인 관광지로 알려진 네팔,
역시 같은 원인으로 터진 지진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
자연의 섭리앞에 인간의 나약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 인간들이 오늘도 네팔 곳곳에서 땀흘리고 있을 것이다. 묘하다.
이곳은 네팔 제 2의 도시, 페와 호수와 안나푸르나 트레킹의 출발지로 유명한 포카라.
하지만 지금은 언제 끝날지 알수 없는 불황의 초입에서 모두들 매일마다 더 커지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여기는 포카라 중에서도 여행자거리 레익사이드 '할란촉'이라는 이름의 사거리.
페와 호수가 손에 잡힐 듯 가깝고
오늘따라 날씨는 좋아서 동네 뒷산처럼 설산 '마차푸차레'와 '안나푸르나 남봉'이 창 밖에 보인다.
혹시나 해서 창밖 거리를 둘러 보았다.
외국인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가끔씩 서양 사람들은 한 두명씩 보였었는데 오늘은 모두 네팔리들이다.
이곳 레익사이드는 여행자 거리다. 모든 상권/레스토랑,바/기념품가게/슈퍼...등등이 외국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를 한다.
따라서 이곳의 모든 업주들은 - 네팔리나 외국인이나 할 것 없이 - 개점 휴업 상태다.
이곳엔 유명한 패러글라이딩 이륙장이나 전망 좋기로 유명한 '사랑곳'이란 산이 있다. 지금 창밖으로 보고 있는데
매일마다 그 사랑곳위엔 수십개 오색 패러글라이딩이 각국의 여행객 손님들을 태우고 하늘을 수놓는 것이 장관이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면서 8000미터급 산봉들을 둘러보는 벅참, 그리고 사람만한 독수리들과 함께 비행을 하는 장쾌함은
느껴보지 않은 분들은 모를 정도.
패러글라이딩 파일럿이 이곳에서 수입도 괜찮은 인기직종인 이유도 그러하다.
하지만 지금 하늘에 떠 있는 패러는 하나도 없다.
손님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 일자리를 찾아 문을 두드리는 네팔리들이 부쩍 늘었다. 끊겨버린 손님때문에 해고된 네팔리들이다. 하지만 나라고
별 수 있나. 그저 'sorry'라고 할 뿐이다.
지진의 피해가 거의 없이 지나간 이곳 포카라는 지금 너무나 평온한 일상이지만,
지진의 피해가 이제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 끝날지 모른다. 서서히 고사되는 나무같다.
포카라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한식당에 손님이 한 명도 없고,
정말 포근하고 아름다운 카페를 꾸며 놓은 커피숍이 하루 커피를 두어 잔 팔기 어렵다.
우리 가게도 마찬가지다.
벌써 매월 월세 걱정, 직원 월급 걱정이 대단하시다.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언제쯤이면 다시 이 지독한 불황이 끝나고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시작될까.
말은 안하지만 교민들 만나보면
'진짜 정리를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지 않나' 하는 표정들을 이심전심 읽을 수 있다. 물론 마치 금기처럼
입밖에 내진 않는다. 그저
'있는 대로만 보도하지...한국 매스컴이나 언론 기사를 보면, 네팔은 전체가 아비규환의 지옥처럼..딱 끝난 나라처럼
나오니 참...' 할 뿐이다.
언론의 과장, 왜곡, 부풀리기 보도가 하루 이틀 일인가마는 이건 좀 심하다 싶을 정도다.
심지어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다'고 기사쓴 신문도 보았다. 우리도 처음 듣는 이야기다.
기자들아 제발 있는 그대로만 글을 써라. 당신들이 쉽게 쓴 글에
네팔의 교민들은 모든 것을 잃고 타국으로 떠야 하나..하고 고통스러운 걱정에 휩싸이게 된다.
여행카페나 블로그등을 돌다보면...가슴이 답답할 때가 많다.
"네팔은 관광수입이 전체 국가 수입의 '14%'밖에 안되서 관광객 급감으로 인한 피해는 향후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물론 그렇다. 외국에서 네팔리들이 일해서 벌어 들이는 돈이 관광수입보다 더 많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15%의 관광수입이 0%로 수렴되는 순간,
가이드/포터/항공권수입/카투만두와 포카라의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상점, 식당, 슈퍼/패러글라이딩/호텔/숙박업소/
직원...경제에 막대한 타격이 있을 것이고 그것은 점점 확대 재생산될 것이다. 당장 나부터도
몇 천만원 날려먹고 타국으로 떠야 할 판이다.
내가 쉽게 쓰는 글이 때론 타인의 삶에 치명적일 수 있다.
매일마다 조금씩 더 어두워지는 표정들에 말 수가 점점 줄어드는 사람들.
네팔 포카라는 현재 그렇다.
- 아카스_네팔
* 덧붙임 : 한국에서 함께 온 냥이 '나루'는 지진때 이틀 동안 집을 나갔다가 들어온 이후 애교가 더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