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이 서거 하시고 승효상선생이 봉하마을에 노대통령 묘역을 설계를 했다.
나는 승선생에게 전화를 걸어 저 공사 중 내 주특기인 금속공사를 하겠다고 땡깡을 부려 묘역 조성공사에 참여하게 됐다.
49제에 맞춰서 급하게 공사를 진행하는데 왠 비가 그리도 쏟아지는지, 아무리 장마라지만 비가 너무 심하게 온다.
허허발판에 흙을 쌓고 다지고 또 다져도 엄청나게 내리는 비에 여기저기서 무덤이 쓸려 내려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들이 나왔다.
내가 생각해도 장난이 아니다. 여러 사람들과 고심 끝에 무덤 내부에 추가적인 배수로를 설치하기로 하고 추가적인 토목공사를 하다 보니 시간이 다가오고 왠 놈의 비는 끝없이 내리고 공사 진척은 더디고, 속이 탄다.
하루는 비가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묘역 옆 농수로의 물들이 오버플로우 일보직전 상황까지 발생한다.
각종 장비를 동원하여 농수로를 더 파고 물길을 돌리는 등 각종 조치를 통해 간신히 오버플로우는 해결했지만 혹시 모를 침수 상태에 모두들 노심초사 저 쪽에서 밀짚모자에 칠부바지를 입고 아쿠아 슈즈를 신고 삽 한자루를 들고 걸어오는 사람. 백수 안희정이였다.
노대통령 무덤 주변에 물길을 내 무덤 내부로의 물의 유입을 막으려 열심히 삽질을 한다.
조치가 취해졌으니 안 해도 된다고 말렸으나 대꾸도 안하고 묵묵히 파고 또 판다. 결국 하루 종일 삽을 들고 물길을 만든다.
안희정이 무덤 앞에서 하루종일 울면서 삽질을 하는걸 옆에서 지켜본 나는 비가 얼추 그치고 안희정의 삽질이 멈춰진 후 안희정에게 내가 묻는다.
뭘 그렇게 열심히 파세요. 보는 사람 미안하게.
안희정 왈 아버지 무덤이잖아요.
아버지 무덤에 물이 들어가면 안되잖아요.
제가 아버지에게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저거밖에 없잖아요.
돌아가셨지만 돌아가셔서라도 편하게 지내셔야 하잖아요.
아버지 잘 묻어드리고 아버지가 못다 한 꿈 이뤄내야죠.
공사하느라 경황이 없어 잠시 잊었었는데 안희정에게 노무현은 아버지 맞았다.
생물학적 아들과 정신적 아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버지의 아들이니 나중에 큰 일 하겠군.
몇 년 후 안희정은 충청남도로 가더니 혼자의 힘으로 도지사가 되더라.
출처: 김찬식 페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