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 침몰할 때 사고 해역으로 출동한 상륙강습함은 인근 공해상에 쌍용훈련을 마치고 모항인 일본 사세보 항으로 귀환 중이던 미 해군 7함대 소속 본험 리차드함다.
4만 톤이 넘는 본험 리차드함은 세월호 승객들을 구조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수송용 대형 헬기인 '시 나이트(CH-46)' 42대, 대잠헬기(MH-60R) 6대를 탑재하고 있었으며, 3,000명이 넘는 미 31해병대 병력을 태우고 있었다. 웬만한 병원을 능가하는 규모 의료 시설도 갖추고 있었다.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들은 본험 리차드함의 조 타인츠 사령관은 구조 요청을 받자마자 방향을 바꿔 세월호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현장에 접근할 수 있는 안정적인 코스를 파악하고 구명보트를 장착한 헬기도 준비했다. 타인츠 사령관은 당시 상황에 대해 페이스북에 “비극에 빠진 친구를 돕기 위해 어깨를 맞대며 일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본험 리차드함은 세월호 승객을 구조하지 못했다. 먼저 사고 해역으로 급파한 MH-60 헬기 2대는 세월호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회항해야 했다. 한국 정부가 사고 해역 진입을 불허한 때문이다. 미 해군 공식 홈페이지는 당시 상황에 대해 "한국 당국은 수색구조 활동의 효율성 등을 이유로 미 해군 자산이 당장 필요하진 않다고 밝혔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미 해군은 이례적으로 한국 정부의 초기 대응을 지적하는 보도자료를 발표하기도 했다. 침몰 3일 뒤 낸 보도자료에서 미 해군은 "우리는 사고 사실을 통보받았을 때 즉각적인 도움을 위해 항로를 변경했지만 한국의 대응은 우리 자산의 즉각적인 이용을 덮어버렸다(eclipsed)"고 지적했다.
그런데 29일자 중앙일보에서 뭔가 흥미로운 기사가 나왔다. 세월호 침몰 다음 날인 17일부터 22일까지 공식적으로 수색·구조활동에 나선 본험 리처드함이 세월호에서 한참 떨어진 곳을 수색했다는 내용의 기사다.
중앙일보는 미 해군 관계자가 성조지 인터뷰에서 "한국 측 요청으로 침몰 지점에서 약 6~17마일(약 9~17km) 떨어진 곳에 대한 수색작업을 요청받았다"고 밝혔다면서 하지만 왜 해당 구역에 대한 수색을 요청받았는지는 알지 못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