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자로님의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배하는 관점입니다.
‘진실은 선과 악에 있지 않다’
‘편견과 선입견은 진실을 보는 눈을 가린다’
이것을 더 알기 쉽게 풀어 쓰면 이렇게 됩니다.
‘박근혜 정부와 국정원을 증오하는 나머지 그들을 전지전능한 악마로 보면
진실이 보이지 않는다. 동지이며 우리 편인 김어준-김지영 팀의 공로는 인정하나
그들은 이런 함정에 빠졌다‘
저는 고의침몰론자였습니다. (김어준이 파파이스에서 분석한 고의침몰의 이유를 정리해서 베오베에 간 적도 있습니다 : 보험사기+언딘이 배를 건질 때의 이익 + 언딘의 주식상장 차익 = 수천억 이상)
그리고 영상이 올라오기 전날, 자로님의 잠수함 가설은 분명히
김어준-김지영 팀의 고의침몰설과 상충될 거라 보고 그를 우려하는 글까지 썼습니다.
이러다 고의침몰설이 힘을 잃으면 어떻게 하지?...이것이 제 생각이었습니다.
심지어 자로님을 의심하기 까지 했습니다. 미용실원장의 증언이 청와대의 기획으로 의심받는 것처럼, 이것은 국정원의 기획 아닌가? (자신을 공격했던 적을 (자로님) 협박, 회유하여 자신의 (국정원) 편으로 삼는 공작이 가능한 것 아닐까?)
아니, 그게 아닐지라도 자로님의 선의와 관계없이 잠수함 가설은 국정원에게 면죄부를 줘서 결국 그들의 이익에 봉사하게 되는 것 아닌가?
자로님의 여러 증거와 주장을 보고, 이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거야 말로 오컴의 면도날입니다. 더 명쾌하고 간단합니다.
너무나 박근혜와 국정원을 증오하는 나머지 (그런 사람들 가운데 저는 상위 5퍼센트 안에 있을 겁니다) 자로님의 새로운 증명을 부정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인정하며 어떻게든 잠수함이 의도적으로 세월호를 격침시킨 걸로 만들려는....죄송합니다만, 인지부조화의 모습들이 보입니다.
아무리 그들이 미워도 이건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잠수함 가설과 고의침몰 가설은 서로 양립할 수 없습니다. 무슨 가미가제도 아니고, 잠수함 승무원들에게 목숨을 걸고 수천 톤 짜리 배와 부딪치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보십니까? 그걸 따를 사람은 있다고 보십니까? 심지어 어뢰설까지 있는데.... 어뢰가 발사됐다면 세월호는 폭발했어야 합니다.
자로님의 의견을 받아들인다면, 남은 결론은 하나입니다.
국정원 소유의 세월호가 잠수함과 우연히 부딪쳐 버렸고, 잠수함이 여객선과 부딪친 것을 감추기 위해 그 모든 사단이 일어난 겁니다. 군사기밀이라면 무조건 은폐하려는 정부의 속성에 자로님의 의견대로 잠수함 수출에 관련된 이해관계가 결합된 걸로 의심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이미 게시판에 몇 분이 98년에 미군 잠수함과 우리나라 어선이 충돌한 기사를 올려 놓으셨더군요. 어선의 선장님은 보상도 일부 밖에 못받고 그저 군사기밀유지를 위해 조용히 있으라는 협박을 받았지요. 잠수함 충돌은 공상과학이 아닙니다. 의외로 흔합니다.)
고의침몰이 아니어도 이것은 그에 못지않은 어마어마한 범죄입니다. 국민의 생명에 앞서 군사적 이익을 앞세웠기 때문입니다. 군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본말전도도 이런 본말전도가 없는 겁니다.
효선이 미선이 사건 때, 왜 우리가 촛불을 들었는지 생각해 봅시다.
이것은 그 수백, 수천 배에 해당하는 정부와 군대의 천인공노할 만행입니다.
2.
국정원 이야기를 해봅시다.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세상의 못된 일은 도맡아 하던 곳이 국정원입니다.
불법 도감청 및 사찰은 기본이고, 간첩사건 조작해서 한 사람의 인생과 그 집안까지 절단내고, 민주화투쟁하던 사람 잡아다가 고문해서 죽이거나 병신 만들고, 대통령의 정적을 암살하려고 하거나 그와 그의 아들을 장애인으로 만들고 (김대중).....
그런데 말이죠. 이렇게 사악한 국정원이, 한편으론 몹시 어벙합니다.
스파이짓 하다가 번번히 걸려서 국제 망신을 당했던 사건들, 모두 인지하고 계실겁니다.
한홍구 교수 아시죠?
이 분이 칼기 폭파 사건 (김현희) 조작 의혹 규명 조사에 참여한 후,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들이 그런 조작을 저지르고 수십 년간 그 조작을 완벽하게 은폐하기엔 너무나 무능하다’
한홍구 교수만큼 국정원의 더럽고 끔찍한 역사를 정확히 아는 분도 드뭅니다.
김현희는 북한사람이 아니라 국정원이 만들어낸 가공의 북한 공작원이다....라는 선입견을 누구보다 깊게 가졌을 법 한 분이란 얘깁니다.
그런데, 막상 그 사건을 샅샅이 파헤쳐 보니, 그들이 고문이나 사찰 같은 건 잘 하지만, 여객기를 폭파하는 정도의 대규모 사건을 조작하고 그것을 수십년이나 은폐할 정도의 실력을 갖춘 집단이 전혀 아니었다는 겁니다. 너무 찌질하고 무능한 조직이었다는 거에요.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자로님 말씀대로, 모든 선입견을 지우고 사태를 있는 그대로 봐야 진실이 보인다는 겁니다.
증오에 사로잡힌 나머지 국정원을 전지전능한 조직으로 평가해서 비합리를 합리로 꿰어 맞추는 행위를 하면 안된다는 겁니다.
저들의 특기가 뭡니까? 천안함이 가라앉으면 ‘북한 잠수정이 감쪽같이 들어와서 버블 젯트 어뢰를 발사하고 (미국도 없는 기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은행 전산망이 마비되면 ‘북한 소행이다....’ 뻑하면 모든 것을 북한 탓으로 돌리며 북한을 전지전능한 지구 최강대국으로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박근혜-국정원 만능설도 그렇습니다.
대선 부정을 감추고 사람들의 눈을 돌리기 위하여 국정원과 군이 모의하여 잠수함과 배를 충돌시켜 아이들을 인신공양의 제물로 삼았다...는 얘기까지 나옵니다.
잠깐만 생각해도 오류 투성이인, 이런 식의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가 뭘까요.
자로님이 몹시도 경계하는 그 놈의 ‘선입견’ 탓입니다.
결론을 정해놓고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니 내가 원하는 것만 내 머릿속에 들어와 잘못된 결과가 도출되는 겁니다.
3.
김어준 이야기도 해봅시다.
저는 한국식 중도(?)를 어마어마하게 싫어합니다.
‘이쪽도 옳고 저쪽도 옳으니, 서로 사이좋게 지내요.
다 좋자고 하는 일 아닙니까. 허허허허...‘
이런 태도가 우리 사회를 지금껏 퇴보시켜왔습니다.
옳고 그름을 가리려는 사람을 모가 났다고 비판하고
그저 두루뭉수리하게 둥실 둥실 지내자는 태도...
비겁하고, 게으르며, 무책임합니다.
자로도 옳고 김어준도 옳으니 지켜봅시다...라고 말하면 안됩니다.
둘 중 어느 쪽이 맞는지 우리 나름대로 생각하고 치열하게 토론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견해를 얻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느 한 쪽이 패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박할 것이 있으면 반박하고, 인정할 것이 있으면 쿨하게 인정하면 되는 겁니다.
그렇게 모두 성장하고 배우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현재 이렇게 봅니다.
김어준-김지영 팀이 틀렸습니다.
그 분들의 공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월호에 관한 논의가 이만큼 오는데
그들에게 일등공신 공훈을 줘도 부족합니다.
언론이 침묵할 때, 김어준 만큼 세월호 문제에 천착한 사람이 또 있습니까.
그러나 이제 한발짝 더 나아갈 때입니다.
현재 제작하는 영화 ‘인텐션’....내용의 전면수정이 불가피하다고 봅니다.
자로님의 지적이 너무 날카로워 김어준팀이 이것을 반박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기 때문입니다.
걱정은 좀 됩니다.
제가 딴지일보 초기부터 김어준의 팬으로서 그의 대부분의 행적을 잘 압니다.
그는 자신이 틀렸다고 인정하는 법이 없습니다.
황우석 사태....김어준의 흑역사입니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그는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로님 영상이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는데도, 그가 진행하는 뉴스공장에선 이에 관해 단 한마디의 언급도 없습니다.
아마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서일겁니다.
반박하거나, 인정하거나 해야할텐데, 둘 다 여의치 않겠지요.
저는 김어준 총수의 진화를 바랍니다.
사람이 잘 바뀌지는 않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