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꾸준히라고 말할 순 없지만 나름 교회를
다녔던 사람입니다. 일요예배를 비롯해 수요,금요
예배까지 다녔고 교회학교를 졸업했으며 성가대에서
테네로 잠시나마 활동도 했죠.( 여잔데 목소리가 허스키
한데다 약간 저음이라서요.ㅠ.ㅠ)
그렇기에 저는 무당이 되기전까지 장난으로 혹은
재미삼아라도 점을 본적이 없었어요.
그런 제가 일본을 다녀온 후 자꾸 옆에 여자 꼬마아이가
쫒아다니면서 노래를 부르네요.
어떤날은 빨간불빛, 또 어떤날은 파란불빛, 오로라?
같은걸 내뿜으면서요.
이상하기도 했지만 저한테 뭔가가 자꾸 들리는거라요.
어디 어디를 가라고요.
그냥 발길 닿는대로 무작정 찾아 나섰네요.
거기서 만난분이 훗날 저의 신어머니가 되셨죠.
그분을 대면했을땐 그냥 뭔가 싶고 할말이 없더라구요.
그냥 발길닿는대로 왔습니다. 했어요.
절 보시더니 "네 집안에서 한명은 나와야 하는게
맞지만 너는 20%로 부족하다. 그래도 이길을 가겠느냐"
이러시더라구요. 저는 그냥 "네.20%를 채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했네요.
제 언니들은 다 시집을 갔고 애들도 있기 때문에
어차피 시집도 안갔고 그렇기에 애 또한 없는 제가
이길을 가는게 차라리 낫다 싶었습니다.
처음엔 안된다고 하셨던 신어머니도 결국 포기하시고
3주후로 날짜를 잡게 되었네요.
저는 사실 남들이 말하는 신병이라는 걸 그닥 느껴보질
못했네요. 근데 무당되고 가만히 뒤돌아보면요.
삼풍사고때 대구 지하철사고때 간발의 차이로 전
피할 수 있었고 또 제가 어렸을적에 건물이 무너지면서
깔려서 정말 죽을거 겨우 산목숨이었거든요.
이런걸 보면 신병앓이는 없었지만 죽을고비를 크게
세번을 넘긴거더라구요.
특히 어렸을때 사고나서 아빠가 저 들쳐 엎고
서울대병원 갔을때 의사선생님께서 돈있음 살고
없음 얘는 죽는다 했대요.
그당시 다행스럽게도 아빠가 건물을 몇채 가지고
계셨기에 다 팔아가면서 몇번에 걸쳐 대수술 후
제가 살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언니가 농담으로
"널 무당으로 만들라고 그때만 아빠가 부자였나보다"
라고 해요. 왜냐면 그후로 아빠가 정말 고생 많이
하셨거든요. 이러고보니 제가 무당이 된 계기가
참 우습네요. 은연중에 저희집안에 무당이 한명
나와야 한다는건 알고 있었기에 저는 그냥 순순히
응했던거 같아요. 어차피 더이상 갈곳도 없다라는
생각도 있었던거 같구요. 처음엔 나하나 희생하면
우리 집안 시끄럽고 산란한거 괜찮아지겠거니 했는데요
무당되고 보니까 오히려 제가 가족들한테 너무 큰
도움을 받아요. 제가 희생한게 아니라 가족들이 절
위해 희생을 하더라구요.
개인적인 가족사가 있어서 좀 빼고 쓴부분이 있지만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공포도 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 벅.
(나중에 제가 겪은 신내림과정 , 신내림 후 변화에
대해 또 글 쓸께요. 허락해 주시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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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5/08/10 23:14:48 1.236.***.164 술이모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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